"길게 말할것 없이 천익성은 이승의 지옥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이교도 심문관들이 신앙 에너지를 봉인된 루시페르에게 공급하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서부터 죽기 직전의 노파 가리지 않고 지옥의 순례길을 강제하고 있는 중이지. 이 모든건 광휘의 치천사, 세라푸스의 살아있는 화신이라 칭송받았던 교황부터 시작해서 12명의 추기경과 크고 작은 왕국의 72명의 왕들까지 모두 타천사의 염상에 오염되 루시페르의 똘마니가 된 탓.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됐으려나?"00371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담담한 어조로 지구의 중세시대 암흑기보다 한술 더뜨는 고향별의 참상을 이야기해주는 트렉슐. 하지만 그러한 그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동정이나 연민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고향별을 되찾기 위해서 이번 임무에 지원한게 아니라 단순히 돈때문에 엔트리 신청을 한건가? 에라이 씨불것 그런거면 뭐하러 저렇게 무게잡고 않아서 비싼척 구는거야.
"트렉슐군이 죽을 당시에도 그 정도였다면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해졌겠군요. 악성향의 고대 제왕중 일부가 그런식으로 신앙 에너지를 수집한다는 얘기를 들어본적은 있지만 엔도미야님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을줄이야. 그렇다면 더더욱 천익성의 토착민들의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토전을 성사시켜야만 하겠군요."
"훗, 글쎄 과연 그럴까. 현재 그들에게는 죽음이라는 안식이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르는데? 뭐 성토전을 하든 전면전을 하든 내 알바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어느쪽이든 임무수행중에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당연하지요. 우리는 동료니까 발목같은걸 잡을 일은 없어요. 대신에 손목을 잡고 같이 반신타락자들로부터의 위험을 헤쳐나가야죠."
앙그릿사가 비취 보석같은 눈동자가 아닌 진짜 비취 보석 그 자체인 동공을 번쩍이며 자신만의 동료론을 설파하자 트렉슐도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그냥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발목을 잡지 말라고? 그건 바로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 짜샤!
"그러면 성토전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일단락 하도록 하지요. 물론 아직 이중에 성토전을 겪어보지 못한 멤버들도 있다는걸 알지만 어차피 성토전이 성사된다 해도 그 상세한 규칙과 싸움의 무대가 될 가상공간은 야미도엔과 엔도미야님의 합의하에 그날 당일 바뀔 수 도 있을테니까요. 퀼레뮤츠양, 엔도미야님께서 그 밖에 따로 지시한 내용이 또 있나요? 만약 없다면 지금부터는 각자의 특기와 포지션을 점검하고 임무 수행 당일 어떻게 천익성으로 집합할지에 대해서 논의 하고 싶군요."
"아아, 아주 중요한게 하나 남아 있지. 이번 임무의 궁극적인 목표에 관한 것이다. 임무명 부터가 천익석 수복작전이긴 하지만 엔도미야님께서는 여신칼날단 서열 8위인 광휘의 치천사, 세라푸스의 생환을 최우선목표로 설정하길 원하고 계신다. 이미 루시페르의 권역으로 넘어가 더렵혀질대로 더렵혀진 행성보다는 여신칼날단의 고위서열자의 목숨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신거겠지. 둘 다 똑같이 봉인된 상태라고는 하나 한쪽은 다죽어가는 상태의 생선을 냉동고에 넣은거고 다른 한쪽은 아주 팔팔한 상태의 생선을 냉동고에 넣은 격인지라 사실 쉽지만은 않은 목표다.
우리가 반드시 성토전으로 싸움을 끌고가야하는 이유기도 하고."
"5:5 싸움이 자칫하면 5:6으로 번질 수 도 있다는건가. 하물며 우리는 냉동고에서 나온 다죽어가는 생선을 보호하면서 싸워야하니 악조건 이런 악조건이 또 없군. 아니 근데 그건 그렇다치고 고대 제왕을 생선에 비유하는건 좀 아니지 않냐, 깡통로봇아?"
"너야말로 슈퍼로이드를 깡통로봇에 비유하고 있지않느냐, 이 근본없는 강령술사놈아!! 흥! 나를 도발해서 이번 임무 엔트리에서 탈락시킬 계획이였다면 일찌감치 단념하는게 좋을 것이고 정말로 고대 제왕을 생선에 비유하는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거라면 그런 네 생각이 부적절한거다. 고대 제왕이라고 해봤자 신성기관이라는 특이한 신체기관이 있는 환상종에 불과할뿐이니 엔도미야님 앞에서는 신이란 칭호를 붙이는것조차 사치에 불과..."
"후훗. 서로 의견을 나누는건 좋지만 우리 너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자제하도록 해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건전한 토론문화가 싹트는 법이니깐요. 아, 그런 측면에서 제가 퀼레뮤츠양의 말을 중간에 끊은것도 잘못된 행동이네요. 죄송해요."
앙그릿사가 또 한번 반들반들한 비취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자 퀼레뮤츠가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엔도미야를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퀼레뮤츠의 반응치곤 꽤나 뜨뜨미지근한 것이였다. 천외천 유저풀이 북두십성 유저부터 큰 전력차를 보이는 것처럼 여신칼날단의 10위권도 그러한걸까?
"사과따윈 필요없다. 어차피 내가 해야할 말은 다 전했으니."
"그렇군요. 일단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엔도미야님께서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세라푸스양은 동료니까 반드시 구해낼 심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금도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을 천익성의 토착민들을 그냥 방치할 수 는 없지 않을까요? 그건 엔도미야님께서 추구하는 정의와도 어긋난다고 생각해요."
"정의? 미안하지만 엔도미야님이 추구하는 길은 정의 보다는 질서를 확립하는 쪽이다. 물론 천익성의 토착민들을 구할 수 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편이 좋겠지만, 만약 그들의 존재가 루시페르의 부활을 필요이상으로 앞당긴다면 나는 언제든지 델타크롬의 주포 슈퍼노바로 천익성을 박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앙그릿사 네가 이 팀의 리더라곤 하나 이 팀 자체가 엔도미야님의 명령에 의해 발족한 것인 바. 함부로 개인의 가치관을 이입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으음."
과연 보기드문 천연녀인 앙그릿사도 퀼레뮤츠의 논리에는 쉽사리 답변을 할 수 없었는지 양 관자놀이를 검지로 짓누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확실히 내가 만나본 엔도미야는 정의를 수호하는 선신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게 사실이였다.
주가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펀드매니저처럼 질서의 엔트로피라고 하는 수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게 바로 단순한듯 하지만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야의 본질이였던 것이다. 무슨 타이거 이등병 구하기도 아니고 당연히 천익성을 수복해 세라푸스를 구출하려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질서의 엔트로피를 회복하려는 목적일게 뻔했다.
"그러면 이런건 어떨까요. 질서와 정의 두가지 개념이 질서와 혼돈만큼이나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건 아니잖아요? 잘 찾아보면 분명 교착점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 교착점을 찾을때까지 제가 좀 더 노력할게요."
"노력이라고 하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마라. 야미도엔이 바보가 아니라면 우리 팀의 전력에 상응하는 반신타락자 멤버들을 뽑아서 보내올터. 앙그릿사 너 혼자서 이인분 아니 삼인분도 해낼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돌발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퀼레뮤츠가 거기까지 말하고 힐끔 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반신타락자 서열 11위 시리우스, 프리우스 듀오와 22위 움파카, 롬파카 형제를 단신으로 해치운 일을 그녀도 알고 있는 모양이였다. 엣헴! 그렇다. 나처럼 4인분은 할 수 있어야 스스로의 가치관을 관철시킬 수 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 가치관을 한 단어로 정의하려면 뭐가 좋을까?
Chaotic Pervert쯤이면 되려나.
"물론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남들에게 정의롭길 강요한다면 그건 위선에 불과하겠죠. 장담하건대 레어에 있는 보석을 모두 터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 삼인분은 해내겠습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이 이상 태클을 걸지는 않겠다. 좋을대로 임무계획을 짜보도록."
"후훗. 그러면 먼저 돌아가면서 각자의 특기를 한번 이야기 해보도록 할까요. 그래야 적절한 포지션을 정할 수 있을테니까. 아까부터 말이없는 트렉슐군부터 시작해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얘기해주시겠어요?"
"...나는 주먹을 쓴다."
트렉슐이 그 한 마디를 툭 던지고선 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우리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아주그냥 처음과 끝이 제대로 일관된 새끼로구만. 나도 길게 말할것 없이 '나는 언데드를 쓴다.'라고 말하면 되는건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가봐 앙그릿사가 서둘라 반례를 꺼내놓았다.
"주먹을 쓰신다는건 무투계열의 능력자라는 말씀이시군요. 대인전투 능력이 뛰어나다는 공신력 있는 평가도 있으니 성토전이 벌어지면 상단로에 혼자 서시는게 좋을것 같네요. 그럼 다음으로 제 특기를 소개를 하자면 보석술법이라고 하는 다소 생소하실 수 도 있는 능력이에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보석에 특정술법을 저장해서 영창이나 마력소모 없이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지라 누군가가 영창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죠. 개인적인 희망사항입니다만 중앙 전투로에 혼자 서고 싶네요. 그 편이 익숙한지라."
"저, 저는 대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요. 대지의 흐름을 따라 순간이동도 할 수 있어요. 전투는 서툰지라 나, 나그네 포지션을 자고싶은데... 안될까요?"
"나는 보시다시피 슈퍼로이드이기 때문에 용도에 맞는 파츠만 있다면 그 어떠한 능력도 사용할 수 가 있다. 육해공 그 어느 장소에서든 전투가 용이하고 근중원 그 어느 거리에서든 요격이 가능하지. 성토전은 나도 처음인지라 적당히 남는곳에 가도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