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68화 (368/599)

"아 몰라요 나 지금 옷을 다벗고 완전히 야생상태의 나신이 되면 뭔짓을 저지를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따라오기나해요. 옥사건 준위라면 다음날 아침 변사체로 발견된다거나 하지는 않겠죠. 저도 홧김에 사람을 찔러죽인것도 아니고 복상사로 무법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요."00368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 후보의 기록단축을 위해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선수를 뜻하는 단어로 보통 마라톤에서 30km까지 오버페이스로 달려나가 우승 후보의 경쟁심리를 자극하다가 리터이어하게 된다. 그렇게 약 10km를 남겨두고 선두로 치고나간 우승 후보가 이제는 라스트 스퍼트 효과에 의지해 골인지점까지 달려나가 금메달을 차지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

세상일이라는게 그렇게 무슨무슨 이론대로만 굴러가는게 아니였기에 때때론 역효과를 불러오곤했다. 나의 경우가 딱 그러했으니 휘르 행수와 진짜 숨넘어갈만큼 좋았던 하룻밤을 보낸뒤 제 3의 아바타를 가지고 지구로 복귀했을때 에녹을 특훈의 페이스 메이커로 지정한건 통한의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륭 사부의 지도아래 마샬아츠 더 에테르를 배우기 위한 특훈이 본궤도에 오르자 라스트 템플러(Last Templer) 에녹이 페이스 메이커의 본분을 잃고 일취월장의 실력향상을 선보여 나로 하여금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였다.

김소령 여사의 뛰어난 두뇌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VOT 온라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 그러니까 학창시절부터 항상 황새였지 뱁새였던 적은 없었다. 내가 한걸음 걸으면 나머지 학우들은 다리가 찢어져라 전력질주를 해야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그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5분 휴식끝! 연자와 에녹경은 다시 에테르 무기를 형상화하고 무차별 대련에 돌입할 준비를 하도록."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인님? 그 예비육체의 근골은 아무리 생각해도 성당 수련기사보다도 못한 수준인지라 주인님의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닌 저와의 싸움은 불합리함의 극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당 수련기사까지 갈것도 없고 근밀도나 골밀도가 형편없어서 일반인보다도 못한 몸이지만 뭐 어쩌겠어. 륭 사부가 이런 불합리함을 극복해야만 실력이 는다는데."

나는 과거 한줌 먼지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칠십번대 무기인 대형낫 나이트 스토커(Night Stalker)를 형상화하며 자조하듯 말했다. 그러자 싸움을 망설이던 에녹 또한 올림픽 펜싱경기에서나 쓸법한 펜싱검 포일을 형상화해 나와 맞설 준비를 마쳤다.

영력을 있는대로 꼴아박아 실제 나이트스토커보다 한 사이즈 더 업그레이드된 나의 에테르 웨폰은 코끼리도 사형시킬 수 있을정도였지만, 에녹의 에테르 웨폰은 오히려 실제 펜싱검보다 사이즈가 작아 대형낫과 비교했을때 뜨개질할때나 쓰는 바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에녹이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닌 아바타를 조종하고 있다해도 영력 자체는 범인 보다 약간 더 뛰어난 수준이였기에 생긴 격차. 즉 육체 스펙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만큼 마샬아츠 더 에테르의 재료(마샬아츠 더 비타의 재료는 생명력)가 되는 영력 스펙 또한 역으로 땅과 하늘만큼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따지면 마샬아츠 더 에테르만 사용해야하는 이 무차별대련 어느정도 해볼만한게 아닌가 싶을 수 도 있겠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누차말하지만 누군가 전투불능이 될때까지 계속싸우는 것이 이 대련의 유일한 룰이다. 자 그럼 3, 2, 1! 무차별대련 시작!!"

"선공을 양보하겠습니다, 주인님."

"무차별대련에 양보가 어딨냐, 임마! 그래도 기왕 양보해준 공격기회 알차게 써주마!!"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나는 내가 가진 유일한 자산인 Ex랭크의 영력을 활용해 대형낫 나이트스토커의 사이즈를 한층 더 키운 다음 허리를 뒤틀어 주위를 한바탕 쓸어버렸다. 륭 사부까지 유효 공격범위에 휘말릴 수 있는 일격이였지만 그녀가 이정도 공격에 눈하나 깜빡하지 않을 위인이란건 그간의 대련에서 여러차례 증명된 바였다.

아니나 다를까 륭 사부는 팔짱을 낀채로 단 일보만으로 대형낫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나 우리 둘의 대련에서 단 일초도 눈을 때지 않았다. 반면에 에녹은 대형낫이 코앞까지 이르렀음에도 꼼짝도 않고 펜싱검을 콧날과 일치시키는 기수식을 고수했다.

그렇게 나이트스토커가 에녹의 목젖까지 들이닥친 순간 녀석은 내 몸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유연성으로 죽음의 림보 게임을 가뿐히 통과했다. 속은 에녹일지라도 겉모습은 나와 똑같았기에 나는 회심의 공격이 빗나갔다는 아쉬움과 동시에 기묘한 안도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쓸데없는 감상을 느끼는것도 잠시 에녹이 대형낫의 공격이 닿지 않을만큼 자세를 낮춘 다음 나에게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왔다. 그 돌진속도는 엉거주충한 오리걸음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재빨라서 나는 나이트스토커를 회수하기도 전에 빈틈투성이인 하반신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펜싱 더 에테르(Fencing The Aether) 착(着)

템플 스워드맨쉽 BB(Black Belt). 제 1 절 라이트닝 펜서

푸우욱!

"끄아아아아악!!"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무차별 대련 종료! 연자는 치료를 마친뒤에 잠깐 나 좀 보지."

그 결과 에녹이 일부러 뭉특하게 만든 펜싱검 포일의 검끝이 쾌속의 스피드에 큰 관통력을 얻어 내 허벅지를 소세지마냥 꿰뚫어버렸다. 이 더미 아바타에는 고통을 감쇄시킬 그 어떤 장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나는 돼지 멱 따는 소리를 토해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에 따라 정신집중이 중요한 에테르 무기 또한 자연스럽게 하얀 입자가 되어 소멸.

륭 사부가 지정한 룰의 전투불능은 단순히 목젖에 칼끝을 들이미는 수준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더 이상 싸움을 속행할 수 없을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상태를 의미했기에 이러한 유혈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였다.

미리 대기중이던 메디컬로이드가 내 팔뚝에 진통제와 지혈제를 주사하자 그나마 살만해진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안일한 싸움을 해왔는지 새삼 다시 한번 통감할 수 있었다. 적이 머리를 노리든 심장을 노리든 게의치않고 내 할것만 하는 습관이 뼛속까지 자리잡혀 있다보니 머리론 적의 공격을 인지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에녹은 평소 대련보다 깊은 상처를 입혔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해 내 주위를 서성거렸지만 나는 손을 훠이훠이 휘둘러 축객령을 내렸다. 녀석은 녀석 나름대로 내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했을뿐더러 에녹이란 인간자체가 대련이라는 상황을 이용해 악의적인 공격을 감행할만한 위인이 못되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제 어느정도 출혈이 멎은 다리를 쩔뚝거리며 륭 사부의 뒤를 따라나섰다. 뒷짐을 진채로 색향천월관에 마련된 대련실 맨구석탱이까지 걸어나간 륭 사부는 다소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과거 신을 모시는 성기사였다는 저 에녹이란 친구의 발전속도는 실로 놀라울 정도더군. 조금만 더 하면 왼손만을 쓴다는 가정하에 본녀와 대련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그에 반해 연자는 지난 두달간 마샬아츠 더 에테르의 기초단계만을 간신히 이수했을뿐이지. 본녀가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해 미안하군."

"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것 뿐이니까 륭 사부는 너무 자책하지마세요."

"아니. 마샬아츠 더 비타때도 그랬지만 마샬아츠 더 에테르의 경우 영력을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연자는 극상의 토양을 지니고 있는 제자나 다름없었네. 씨앗을 뿌리기만 해도 거목이 자라날 땅에 고작 새싹하나가 돋아난 것은 본녀의 교육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거겠지. 본래 무차별대련은 라의 일족 고유의 수련방식이긴 하나 걸음마를 하기도 전에 주먹질부터 배우는 라의 일족과 각종 기문술법을 익혀온 연자를 동일선상에 놓은것은 크나큰 실수가 아닐 수 없어."

"그래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건 아닌걸요. 륭 사부의 말마따라 제 육체의 백업을 맡고있는 에녹만큼은 눈부실정도의 성장을 이뤄냈으니 제 아바타의 스펙이 올라간건 틀림없는 사실이죠. 오로지 자신만의 순수한 무투술만을 실력으로 생각하는 무도가와 달리 저같은 강령술사들은 하수인들의 성장이 곧 스펙업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설사 그 하수인이 실체가 없는 유령이라고 해도 말이죠."

"연자가 그렇게 말해주니 본녀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군. 본녀의 특훈은 오늘로써 마무리 되었지만 마샬아츠 더 에테르 또한 마샬아츠 더 비타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기술이니 앞으로도 부디 부지런히 갈고닦아..."

띠! 띠! 띠! 띠! 띠!

륭 사부의 설교가 길어지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VOT 단말기가 위협적인 경고음을 반복해서 울려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였기에 나는 륭 사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VOT 단말기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