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VOT 단말기로 이런저런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다가 블랙해커가 무법자 집단답지 않게 사후 아바타 AS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된 내가 이솔다 공주를 만나기 위해 수중 아크로바틱 공연이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있는중이였다는 뭐 대충 그런 얘기였다.00355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의 공원은 즐거우셨습니까?"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x 999
"아쉽지만 저희 머메이드 아쿠아리움에서 준비한 공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열렬히 응원해주시면서 참관해주신 모든 관람객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리며 MC메키는 여기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원터피스트 너도 같이 마무리 인사 준비해야지."
-알겠습니다, 주인님.
한때 내가 수왕성에 머무를때 심해에 묻혀있는 전생유적까지 나를 안내해준 전력이 있는 인어족의 꼬마숙녀 메키. 그녀가 어느새 몰라보게 성숙해져 얼음램프의 요정 윈터피스트와 함께 공연의 끝을 아쉬워하는 관객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동해용궁이 용린검가의 자본을 투자받아 시작한 아쿠아리움 사업의 주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어린세랑에게 들어 이미 알고있었지만 설마하니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입석을 제외하고도 천여석이 넘는 좌석이 꽉 차 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은 꽤나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누가 무공이 국민체조급으로 보급화된 행성아니랄까봐 개중에는 북적이는 계단길을 피해 무려 허공답보로 아쿠아리움을 빠져나가는 손님도 있었는데, 무공실력=사회적 지위나 마찬가지인 팔륜성의 계급체계를 생각해보면 중소문파의 장문인이나 팔륜무가의 호법같은 꽤나 고위직에 있는 인물들도 이 수중 아크로바틱 공연을 보러온다는 소리였다.
관객들이 자리를 비우는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이 아쿠아리움 사업의 성공요인을 분석해보자면 가장 큰 골자는 딱 이거였다. 그것은 바로 인어족들의 평균적인 미모수준이 직녀루의 인급 기녀들을 가볍게 상회하고 있다는 점. 어린세랑의 사업수완이고 나발이고간에 인어족들이 미디어 매체에 등장한 순간 게임셋이였던 것이다.
마치 지구에서 베네수엘라를 두고 탑 여배우가 논을 매고, 잡지 표지모델이 밭을 갈고, 아이돌 그룹 센터가 극장 표 파는 미녀의 나라라고 칭송하는 것처럼 수왕성의 인어족들 또한 옆집 유부녀가 무공만 익힌다면 조금 과장해서 팔륜사화(무공과 재색을 겸비한 팔륜성의 여자 후지기수 네명을 일컫는 칭호)에 끼어들 수 있는 수준이라면 믿겠는가?
'뭐 그래봤자 팔륜제일미 어린세랑에 비하면 보름달앞에 반딧불이나 다름없지만서도.'
단언컨대 내가 어린세랑의 가면을 벗고 화상이 치료된 생얼을 본 순간 생불 아니 살아있는 여신을 보았노라라고 소리친건 절대 과장이 아니였다. 실제로 얼마전 고고한 달의 위상, 디아나 여신이 하희빈의 몸에 강림한걸 직접 목도한적도 있으니 이제는 뇌피셜로만 치부할게 아니라 충분히 공신력있는 발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뭐 어린세랑의 경우 여신보다는 선녀의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리는 미인이였지만서도 말이다. 아무튼 그녀와 비벼볼 수 있는 팔륜사화는 전무했고 인어족중에서는 그나마 동해용궁의 이솔다 공주와 북해용궁의 스와레 공주정도가 경합을 벌여볼만했다.
허나 어린세랑의 경우 어렸을적부터 삼베가면을 하고 다녔던지라(심지어 내가 얼굴에 부은 엘릭서 덕분에 화상이 완치됐음에도) 그녀의 미모가 얼마나 빼어난지를 직접 두눈으로 확인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팔륜무가의 연례회동을 용린검가에서 맡았을때 용린루를 방문한 고위인사들 몇몇뿐.
그렇기에 머메이드 아쿠아리움의 입장권만 살 수 있다면 그 누구나 실물을 볼 수 있는 스와레 공주의 인기가 팔륜사화를 넘어 수년째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팔륜제일미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게다가 비키니 복장으로 고난이도 수중 아크로바틱을 선보이는 인어공주를 과연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스와레 공주님 제발 제 티셔츠에 싸인 한번만 해주세요!"
"스와레 공주님의 에메랄드빛 머리카락 개당 1000VP에 사겠습니다. 제발 하나만이라도 팔아주세요!!"
"스와레 공주님의 인어비늘을 가문의 보배로 삼아 후세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저희 집 땅문서를 드릴테니 제발 교환 좀 해주십쇼!!!"
와글와글.
그리고 그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인기를 반영하듯 관람객중 일부 극성팬들이, 공연 잘봤으면 얌전히 집에 돌아가서 발씻고 잠이나 쳐 잘것이지, 아크로바틱 배우 대기실 근처에서 진상짓을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모두 빠져나갔을때 나 또한 그 대기실을 통해 인어족들과 접촉할 계획을 짜고 있었기에 나는 순간 불쾌지수가 팍!하고 치솟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용린검가측에서도 이러한 스와레 공주의 극성팬들의 행태를 모르는바가 아니였는지 무림 기동대를 파견해 호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였다. 용린검가의 식솔에 불과한 내가 복장만 보고 정확한 단체명을 유추하는것은 무리였으나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어 나로 하여금 반가운 감정을 들게 만들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용린환으로 용린은리 사저의 손에 이끌려 멀고먼 수왕성까지 차출된 용린검가의 수재였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유약한 성격의 용린환이 과연 저 극성맞은
팬들을 매몰차게 쫓아낼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피어오른 순간 결국 진상팬중 하나가 대기실 앞에 쳐진 최후의 통제선을 넘어서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무림 기동대가 다수의 팬들과 몸싸움을 하는 틈을 노린듯한데 경공만 놓고 봤을때 본인도 제법 적잖은 수련을 쌓은 무림인인듯 했다. 이대로 뒀다간 인어족들이 옷을 갈아입는 광경(인어족들은 원래 비키니를 평상복처럼 입긴하지만 무대용 비키니처럼 화려한 장식이 달려있는걸 입지는 않는다)이 외부인에게 노출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살벌한 서걱! 소리와 함께 통제선을 넘은 진상팬의 다리가 뼈채로 절단나고 말았다.
털썩!
여차하면 이매망량을 전개해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할 생각이였던 나였지만, 갑작스런 칼부림에 일단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때아닌 유혈사태에 진상팬들은 물론 무림 기동대까지 패닉상태에 빠진 모양새였지만 정작 칼부림을 낸 장본인으로 보이는 어린 소년은 아주 침착하게 검에 묻은 핏자국을 털어내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무, 무슨 짓을 하는 것이요, 섬전비룡대주 용린군!! 이 몸이 백학루의 지배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따위 만행을 저지른것이요? 그대가 용린검가에서도 촉망받는 기재라는건 알고 있으나 본인과 연이 닿은 고관대작중에는 팔륜무가의 장로와 호법들도 있음을 알... 억!!!!"
"시끄럽다. 나 녹린검 용린군은 나보다 약한자의 명따위는 듣지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몇안되는 용린검수중 한명인 혈린검은 이 통제선을 넘는 인간을 베라는 명령을 내렸지. 따라서 스스로가 팔륜오객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치않는 자들은 지금 즉시 물러나는게 좋을 것이다."
웅성웅성.
이야 용린검가에 용린은리 사저 말고도 뭐든 저질러보고 보는 막가파식 인사가 또 있을줄은 몰랐는걸. 나는 왜소한 체구에 어울리지않는 소년검수의 폭발적인 패기에 속으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이걸로 어중이 떠중이 진상팬들은 알아서 떠나줄테니 이제 나는 용린환에게 친한척 손을 흔들며 나타나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영혼없는 인삿말을 건넨뒤 얼렁뚱땅 대기실로 입성하면 아주 간단하게 미션 석세스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의료진들이 나타나 한쪽 다리가 깔끔하게 절단난 진상팬을 이송하고 난 뒤에도 자리에 남은 이가 나말고도 또 있었다. 혹시 팔륜오객중에 스와레 공주의 팬이 있나 싶어 옆사람을 흘낏 쳐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고머리에 비녀까지 꽂은 삼십대 중반의 여성이 스와레를 쫓아다니는 그림은 너무 이질적인 것이였다.
거기다 새치인지 염색인지 분간이 잘 가지않는 눈처럼 흰 머리카락은 그녀가 액면가보다 훨씬 더 연배가 많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총기를 잃은 흐리멍텅한 눈동자와 코를 찌르는 술냄새라는 두가지 단서까지 종합해보면 스와레의 열혈팬이라기 보단 그냥 동네에 한명쯤 있는 미친년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딸꾹~! 야 임마 왜에 머메이드 아쿠라이룸에는 남자 인어들의 수중 아크로바틱 공원은 없는거지? 지금 남녀차별하냐 이 쒸부럴 탱탱부럴 같은 새끼들아!! 천릿길을 걸어와서 비싼 암표까지 주고 들어왔는데 왜 남자 인어들은 공연을 안하냐고!!!"
"저, 저기 아주머님 오늘의 공연은 다 끝났으니 이만 물러나시는게 어떨련지? 수중 아크로바틱 공연과 관련된 피드백은 동해용궁 커뮤니티에서 따로 받고 있으니 그쪽을 통해서..."
"너 이 쒸불넘이 지금 나보고 아줌마라고 했냐!? 안그래도 청송루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서 화딱지나 죽겠는데 오늘 너 죽고 나는 산다!! 죽기 싫으면 어서 남자 꽃돌이 인어들 불러와서 내 술시중 들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