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54화 (354/599)

그건 바로 연자의 성격이 지나칠정도로 철두철미하기 때문일세."00354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철두철미(徹頭徹尾),

직역하면 머리부터 꼬리까지 빈틈이 없다는 뜻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방침을 바꾸지 않고 생각을 철저히 관철함을 이르는 사자성어였다. 보통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 단어였지만, 륭 사부의 말하는 뉘앙스로 보아하니 나의 단점을 꼬집기 위해 이 사자성어를 인용한 느낌이 다분했다.

"다소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지금부터 본녀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게. 연자는 일단 기본적으로 태생이 격투가가 아닌 술법사야. 그렇지 않은가?"

"확실히 저는 어렸을적부터 영매능력과 김여령 여사의 지능을 물려받은 재능 금수저긴 했지요. 운동신경은 그닥 좋지못했지만 이 정도면 저 스스로도 충분히 오버밸런스라는걸 인지하고 있답니다."

"확실히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이란건 무투가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지만, 자신의 손이 닿는 범위내에서 있는 힘껏 노력을 하지도 않고서 자신에게 미천한 재능을 부여한 하늘을 탓하는건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동이지. 그리고 바로 그 노력을 방해하고 있는게 바로 연자의 철두철미한 성격일세. 사실 방금 태양의 에테르를 이용한 나의 마샬아츠를 목전에둔 무투가라면 그 누구나 회피를 최우선과제로 삼지 몸으로 받아낼 생각을 하지는 않네. 거기서 어느정도 경지에 이른 무투가라면 준비동작만을 보고서도 어디로 피해야할지 머리가 아닌 몸이 계산을 했겠지만...

연자는 까짓것 한대 맞아주지라는 마음가짐이 너무 노골적으로 자세에서 드러나더군."

"하.하.하. 그래 보였나요? 사실은 감히 사부의 젖꼭지를 건든 대가로 벌을 달게 받을 심산이였는데 제 3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해할 수 도 있었겠군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늘그래왔듯 새치혀가 이끄는대로 허세를 부려보는 나였지만 륭 사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팩트폭격을 해왔다.

"아니. 연자는 그 철두철미한 성격때문에 항상 몸에다가 이중, 삼중, 사중의 안정장치를 구비해두지. 내가 본것만 그정도니 모르는 안정장치까지 합한다면 오중까지 될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그 촘촘한 안정장치들 때문에 연자의 머릿속에는 위기의식이란걸 찾아볼 수 없게 되었네. 물론 그것이 꼭 나쁘다는 얘기는 아닐세. 연자는 항상 본녀의 상식을 벗어난 괴물들과 정면대결을 고집해왔고, 그만큼 만전을 기하지 않는다면 절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테니 말이야."

"으음, 그래서 륭 사부는 지금 제 칭찬을 하고 싶은건가요 흉을 보고 싶은건가요?"

"칭찬을 하고 있는것도 흉을 보고 있는것도 아닐세. 단지 연자가 무투가로서 성장하는데 있어 그 터무니없을 정도로 튼튼한 몸이 방해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었을뿐."

"그러면 제가 어떻게해야할까요? 터무니없을 정도로 연약한 몸으로 갈아타기라도 해야하는건가요?"

"정답일세. 본녀가 알기로 지금 연자가 말을 하고 있는 그 몸도 연자의 본체가 아닌걸로 알고있네. 그러니까 그... 아바타라고 하던가? 아바타를 하나 만들 수 있다면 두개를 만드는것도 크게 어렵지는 않을터. 약골까지는 필요도없고 일반인과 다를바없는 수준의 육체에 깃든 연자와 함께 다시 기초부터 마샬아츠 더 비타와 에테르를 수련하고 싶네. 단언컨대 하루에 딱 여섯시간만 내게 할애해준다면 절대 후회하지않을만한 성취를 보장해주지."

그저 농담처럼 던진 말에 륭 사부가 격하게 긍정을 표하자 나는 몹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륭 사부의 말마따라 새로운 아바타를 구입하는게 동네슈퍼에서 물건을 사는것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였다.

내가 VOT 단말기를 손에 넣기도전에 범죄율 급증을 이유로 아바타가 백신마켓에 금지품목으로 설정되긴 했지만, 블랙해커라고 하는 브로커 집단이 은밀히 구매자에게 접근해 아바타 거래를 성행해왔기 때문이였다. 실제로 동해빙궁의 이솔다 공주가 인어족의 리더와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코드네임 블랙A라는 인물에게서 아바타를 구입하는걸 바로 곁에서 참관한적이 있지 않던가?

그때 블랙A랑 으쌰으쌰하는걸 이솔다 공주에게 들켜서 정말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였는데 블랙A 그녀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블랙A는 VOT 단말기를 사용할 수 없는 무법자였기 때문에 현재로선 마땅히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좋아요, 륭 사부의 제안을 수락하도록 하죠. 하지만 그전에 한가지 물어볼게 있습니다. 륭 사부의 방식대로 특훈을 받고나면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수 있는겁니까? 이런 말씀드리면 조금 송구스럽지만 저는 륭 사부의 태양펀치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지금도 륭 사부를 품에 안고 싶어서 미칠지경이에요. 륭 사부처럼 멋진 여성을 곁에 두고도 구경만 하는건 태양펀치를 10번 얻어맞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라는거 알고계세요?"

"그건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일세. 누차 말했듯이 연자는 사실상 무적이나 다를바 없는 육체로 무수히 많은 전장을 돌파해온 까닭에 일반적인 전투센스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네. 보통의 육체로 갈아탄다고 해도 재활과정만으로도 제법 많은 시간을 잡아먹겠지. 허나 성실하게 내 훈련을 따라온다면... 연자가 본녀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해도 가슴정도는 만질 수 있게 해주지."

"열심히하겠습니다, 충성!"

나는 군복무 시절 가장 빠릿빠릿했던 일병 3호봉때의 기억을 되살려 아주 절도있는 자세로 차렷, 경례!를 시전해 보였다. 공부해야할 술법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으니 주먹질이나 연습할때가 아니라는 이성의 목소리는 륭 사부의 가슴을 마음껏 만질 수 있다는 본능의 외침앞에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

본래 여성의 정조관념과 관련해서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줘왔던 륭 사부가 저런 미끼를 던진걸 보면 내 턱주가리에 태양펀치를 정틍으로 꽂아넣은 일을 못내 미안해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하긴 보통 인간이였으면 그 태양펀치 한번에 목숨이 열개라도 모자랐을테니. 그럼 여기서 간을 좀 더 봐볼까?

"훈련 도중에도 그런 열정적인 태도가 십분지 일이라도 반영됐으면 좋겠군."

"암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륭 사부 혹시 가슴을 만지는 김에 엉덩이도 만지면 안되나요?"

"...한대 더 맞고 싶은건가?"

이글이글.

륭 사부의 주먹에 다시금 가공할만한 열기와 빛이 모여드는걸 목격한 나는 입을 꾹 다문채로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다시 재생이 가능하다고 해도 태양펀치를 또 얻어맞는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특히 륭 사부가 같은 부위를 재가격했다간 부상정도를 떠나서 트라우마로 남을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륭 사부와의 만남이 어느정도 일단락되고 나는 선장실로 복귀하면서 엔도미야가 부여한 Ex랭크 임무 '천익성 수복 작전'의 실행일까지 계획적인 시간운용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술법 공부, 무예 수련 그리고 크림슨 메이든의 새로운 주민들 영입까지. 어느것 하나 제 2, 제 3의 반신타락자들을 상대함에 있어 소흘히 할 수 없는 것들이였다.

사흉성때처럼 또 다시 아슬아슬한 줄타기같은 전투가 벌어져서는 안되었다. 오직 압도적인 힘으로 단숨에 상대를 무릎꿇리는 것만이 죽은자들의 아버지이자 왕이자 주인인 아크리퍼에게 어울리는 싸움방식이였다. 자는 시간을 1시간 이내로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이리라.

*    *    *    *

"휘이익! 인어족 곡예 최고다!!"

"꺄아아아아아악!!! 스와레 공주님 싸인 좀 해주세요!!!"

"옥수수가 왔어요. 오징어도 있어요. 땅콩은 서비스로 드립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팔륜성의 한 야외 돔으로 수중곡예를 관람하는데 최적화된 시설을 자랑하는 신축건물이였다. 팔륜성에 때아닌 수중 아크로바틱 붐을 일게한 주역들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영복을 입고 팔륜성을 상징하는 여덟겹의 훌라우프를 거침없이 통과할때마다 귀가 찢어질듯한 환호성이 이어진다.

100일간의 폐관수련 기간을 반도채우지 못한 참사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시간계획을 세우기로 한지 삼일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수어지교(물의 수호정령 오르시나의 권능중 하나)를 타고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단순히 놀기위해서가 아니였다.

륭 사부와의 약속대로 보통의 몸(십이신장 호랑이 신의 가호를 받지도 않고 트롤왕 리쿤다룬의 골수를 이식하지도 않은)을 손에 넣기위해 블랙해커의 행방을 쫓다보니 결국 이곳에 이르게 된것 뿐이였다. 블랙A와 이솔다 공주가 접촉했을때만 해도 일처리가 하도 허술해보여서 금방 꼬리를 잡을 수 있을줄 알았건만 블랙해커는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더 은밀한 조직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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