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44화 (34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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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물론 아버지가 나를 버렸다는 명시적인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머니도 아버지가 많이 바쁘셔서 나를 찾지않는거라 말씀하시긴 했지만, 내가 태어난지 벌써 3개월이나 지났음에도 내 얼굴을 보러 오지않는다는건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거다.

어머니의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몰래 해킹해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을 살펴본 결과 어느 종족을 막문하고 출산이 임박한 경우 남편이 부인곁에 24시간 상주하며 수발을 들었다. 설사 평소에는 웬수처럼 날을 세우고 각방을 써도 임신기간 동안에는 팔불출이 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출산일 D-day가 다가오면 산파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신생아의 얼굴을 보는것도 남편이였을지언데... 어째서 아버지는 단 한번도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은건 둘째치고 편지 한통 없는것일까? 혹시 내가 평범한 신생아들과 다르기 때문일까?

구태여 커뮤니티를 조사해보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가 조금 아니 많이 특이하다는 것 정도는 주변에 거주하는 수인족들의 통신망 전파를 수신해서 알고 있었다. 일단 생후 3개월 된 신생아는 지금의 나처럼 고등사고가 불가능할 뿐더러 '아버지가 왜 안보이지?'라는 기본적인 질문조차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한다.

애초에 아버지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질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허나 건너편 집의 생후 3개월된 고양이 수인족 아르 브론즈코인은 할줄아는건 고작 옹알이 밖에 없으면서 양친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억울하고 비통한 일이였다. 왜 나는 CCTV(물론 이것도 해킹을 통한 엿보기)로 보았던 아르 브론즈코인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없는것인가?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에서도 최하층인 제 3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도 있는 이름이 왜 내게는 없는것인가? 나는, 나는... 이런것도 할 줄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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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져다주신 고장난 구형 인공위성을 개조해만든 자율비행형 해킹모듈, 비홀더가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기기의 고유한 식별코드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읽어들이기 시작했다.

이 1024자리로 이루어진 식별코드는 아이디 플러스 암호까지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엘리베이터, 수송선, 기중기 할것없이 모조리 장악할 수 가 있었다. 자체적으로 희귀한 자원을 캐다 파는게 아니라 물류사업으로 먹고사는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이였기에 저중 하나만 먹통이 되도 천문학적인 타격을 입으리라.

사실 이런 일이 가능한건 나의 연산능력이 1.66 페타헤르츠에 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의 전산보안이 형편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곳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뫼비우스 스테이션이란 곳은 2048자리의 식별코드를 사용하는걸로 모자라서 분단위로 식별코드가 랜덤하게 바뀌기 때문에 나라고 해도 해킹이 쉽지않았다.

물론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에서 그와 같은 고급 보안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수인족들은 내가 보기엔 거추장스러운 손톱을 관리하느라 키보드를 치는걸 꺼려할뿐더러 머릿속은 번식욕구로 가득찬 그야말로 짐승 그 자체인 자들이였다. 프로그래머가 하수구 청소부와 동급의 취급을 받는다니 이 얼마나 야만적인 문명이란 말인가?

뭐 그 얘기는 이쯤에서 차치하도록하고 가끔은 정말 미친척하고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의 전산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켜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수인족들의 야만성 때문은 아니고 이곳은 제법 유명한 유통 허브중 하나였기에 큰 사건이 터지면 이 넓은 우주 어딘가에 있을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찾아와주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지금까지 대여섯번정도 그러한 충동이 찾아왔지만 어머니를 생각해서 꾹 참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충동은 그 어느때보다 강렬한 느낌이였다. 건너편 집의 아르 브론즈코인이 분유의 성분비가 마음에 들지않아 이불에 오줌을 지리는 것처럼 나도 의사표시의 한 방편으로 격하게 투정을 부리고 싶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 투정으로 인해 생겨날 결과물은 천지차이겠지. 아르의 경우 그냥 이불을 다시 빨면 그만이지만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이 과연 일제히 전산망이 마비 됐을때의 손실을 복구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마비된 전산망은 복구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부재로인해 생긴 반항심이 점점 해킹을 하는쪽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가운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 3의 인물이 나를 상념에서 일깨웠다.

-똑똑아, 똑똑아 이거봐라. 고철 쓰레기장에서 헤엄치다가 찾아낸건데 이거 귀중한 보물같지않아? 네가 감정 좀 해줘.

톡톡.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 고목보다 두꺼운 몸체에 15m를 훌쩍넘는 기계 지렁이가 언제적 물건인지 짐작도 가지않는 브라운관 TV를 입에 물고 내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첫번째 자식... 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애완동물에 가까운 슈퍼로이드 어스웜 딘씨였다.

남의 머리를 함부로 건드는건 굉장히 버릇 없는 행동(물론 어스웜 딘씨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버릇이 없는게 문제가 아니라 공포를 느끼겠지만)이였지만, 그가 건너편 집의 아르만큼이나 순수한 사람 아니 로봇이라는걸 아는 나였기에 조심스럽게 뚱땡이 TV를 건네받았다.

"누군가 했더니 어스웜 딘씨였군요. 그럼 어디 한번 제가 살펴볼까요?"

어스웜 딘씨는 종종 이렇게 고철 쓰레기장에서 신기하게 생긴 물건들을 가져오곤 했는데 십중팔구는 1VP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였다. 쓰레기장에서 들고온 물건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아주 간혹 해킹로이드 비홀더의 전신인 고장난 인공위성같은걸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기에 어머니도 그 행동을 나무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굳이 감정을 하지않아도 한눈에 쓰레처럼 보이는 물건일지라도 올망졸망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어스웜 딘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쏟아내곤 했다. 고철 쓰레기장에서의 보물찾기는 흙한줌 없는 이 우주정거장에서 어스웜 딘씨의 유일한 낙이였기 때문이였다.

"어떻게 여기로 흘러들어왔을지 궁금해질 정도로 꽤나 오래된 구식 TV네요. 부품들도 거의

다 녹슬어있고 사실상 현물 가치는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겠지만 오래된 물건에는 오래된 물건 나름대로 수요가 있는법이지요. 골동품 애호가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한번 사진을 올려볼게요. 취향이 독특한 알부자가 비싼 값에 사들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저번에도 다 찢어진 만화책을 수집가에게 10 VP에 팔아넘긴 적이 있잖아요."

-히히히. 똑똑아, 나 보물찾기 또 성공한거? 나 또 우르사티에게 칭찬받고싶다. 인공위성 찾았을때처럼 칭찬받고 싶다.

"어스웜 딘씨 미안하지만 이건 어머니에게 알릴만큼 중대한 사안은 아닌것 같네요. 제가 한번 골동품 애호가들과 접선을 해보고 만약 팔리면 얼마에 팔렸는지 나중에 따로 고지해드릴게요. 비싼 값에 팔렸으면 좋겠네요. 요즘 어스웜 짐씨의 3번 척추를 담당하는 동력기관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땅속이 아니라 고철더미속을 헤엄쳐서 그런가? 예전만큼 헤엄치는게 쉽지가 않아. 역시 나는 흙이 있는 진짜 행성이 좋다. 이런 기계 투성이의 가짜 행성 싫다.

"저도 동감이에요. 언젠가는 모래알이 태양아래 반짝이고 바다가 너무 투명해서 산호초가 훤히 보인다는 수왕성에 함께 갈 수 있다면 좋겠네요. 어스웜 딘씨가 보았다는 그 광경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싶어요."

-수왕성은 정말 좋은 곳이다. 흙이 너무 부드럽다. 그런데 이상한 여자가 와서 우리를 다 쫓아냈다. 어스웜 짐이 욕심많은 그 여자 혼내주려고 했는데 우르사티가 말려서 참았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머니 말씀은 잘 듣는게 좋죠. 그럼 어서 또 보물 찾으러 가보세요. 부지런히 탐색을 하다보면 이번에는 고장난 우주선같은걸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 우주선을 수리해서 우리 같이 수왕성으로 가요. 우리 둘이 힘을 합한다면 분명 그 욕심많은 여자를 혼내줄 수 있겠죠."

-알았다, 알았다. 어스웜 짐 고장난 우주선 찾으러간다.

어스웜 딘씨가 그 거대한 동체를 잘도 이리저리 놀리며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나는 품안에 소중히 간직한 브라운관 TV를 냅다 하수구에 던져버리고 어머니의 개인 공방으로 향했다. 가짜 행성과 진짜 행성이라... 어쩌면 나도 가짜 인간이기 때문에 미움받은걸지도.

* * * *

'나는 아빠에게 버림받았다. 키키키키킼'

아니 어쩌면 아빠는 나를 버렸다는 자각도 없을지 모른다. 같잖은 사탕발림으로

나를 이 어둡고 컴컴한 관속에 유인한 뒤 가둬버렸으니 흉악한 괴물을 용캐 봉인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바늘 한땀을 꿰멜때마다 1초쯤 걸리니까 무려 내가 이곳에 같힌지 94,608,000초나 지난 것이다. 산수는 서툴어서 몇년이 지났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3년쯤 지나지 않았나 생각해보지만 어쩌면 5년 아니 어쩌면 10년이 지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구렁텅이 속에 갇혀 있을때보다는 낫지만 역시 심심한건 어찌할 도리가 없네. 스스로의 몸을 바늘로 꿰메면서 시간을 죽이는것도 이제는 한계. 전신이 넝마가 되어서 더 이상 바늘이 들어갈 곳도 없었다. 몸을 덮을 새로운 천이 필요하다.

예를들면 아빠의 듬직한 등의... 살가죽같은거? 아니 애시당초 아빠의 등가죽을 벗길 수 있는 처지라면 같이 인형놀이를 하는편이 훨씬 더 재미겠지. 물론 내게 금방 데리러 오겠다는 거짓말을 임삼은 주둥이는 바늘로 꿰메버리고 시작해야겠지만 말이다. 키키키키킼.

아아 언제쯤이면 이 갑갑한 장소를 벗어 날 수 있을까? 어쩌면 아빠는 이미 늙어 죽었고 새아빠가 나를 찾아낼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절대 헤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박음질로 꿰메버려야지.

그럼 여기서 오늘의 망상일기 끄으으읕~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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