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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 Oxogan The Twin Head and Twin Soul
그나마 머리가 두개인 녹색괴물의 모습까지는 똑똑히 볼 수 있었는데, 스테로이드를 드럼째로 주사받은듯한 근육질 몸매의 소유자가 짐승가죽으로 만든 반바지만 입고 있는 모습은 청소년관람불가를 넘어서 29금은 될 것 같았다.
-방심은 금물이다, 움파카. 야미도엔님의 말에 따르면 상대는 마애혈불 긴고의 목숨을 끊은 실력자. 방금만 하더라도 보통의 인간이였다면 네 일격에 두개골이 쪼개져야 했지만 버텨냈지.
"흥! 그거야 내가 힘조절을 해서 그런거고. 어이 그쪽의 수수깡 허수아비. 자 어서 디파일러 킹을 쓰려트렸다는 힘을 발휘해 보실까. 오랜만의 토벌 작전인데 나를 좀 즐겁게 해달란 말이다."
"그럼 우선 나를 이 땅속에 빼주는게 순서가 아닐까? 얼마나 단단히 박혔는지 꼼짝도 못하겠는걸."
"칫! 이 약아 빠진 녀석이."
움파카라는 이름의 녹색괴물이 인심좋게도 내 멱살을 움켜쥐고 땅속에서 무를 뽑듯 강하게 끌어올린다음 바닥에 내팽겨쳤다. 아이구, 아이구 내 허리야. 하기야 이런것까지 신사답게 굴길 바라는건 욕심이겠지. 상대는 목줄이 풀고 달아난 개를 잡기 위해 초월 인터페이스 야미도엔이 보낸 자객.
내가 땅속에 쳐박힌 순간 다른 이들과 함께 협공해 이지 않은것만으로도 감사해야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준비한 덫이 발동할때까지는 약간이 시간이 필요할것 같은데 오랜만에 뻐꾸기 좀 날려서 상대를 교란시켜볼까?
"무기를 사용한다면 뽑을 시간 정도는 주마. 어서 싸움을 준비해라!"
"거대한 낫이 하나 있긴 한데 딱히 주무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여서 말이지. 그것보다 싸울땐 싸우더라도 어떻게 내가 사흉신교를 찾아 올줄 알고 이런 함정을 준비했는지가 궁금한데? 이걸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다면 전투 내내 너무 신경쓰여서 제대로 싸우지 못할것 같에."
"이 버러지같은 녀석이 아까부터 내가 네놈의 선생님이라도 되는줄 아느냐! 야미도엔님이 VOT 시스템을 해킹해서 만든 이 COT 단말기가 있으면 VP로 물건을 살 수 는 없지만 커뮤니티의 대략적인 정보에는 접근할 수 있다. 네녀석 팔륜성에서 아주 거하게 한바탕 일을 벌렸더군. 네녀석이 사흉신교와의 은원을 매듭짓기 위해 언젠가는 이곳으로 찾아올 줄 알았다. 설마하니 단신으로 적의 본진에 쳐들어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게다가 비단 그 팔륜성에서의 사건이 아니였다고 해도 네놈 이곳저곳에서 별의별 사고를 치고다녔더군.
그래놓고서 네놈의 행적이 비밀리에 붙여지길 원했느냐!"
"호오 그말인즉슨 내 명성이 이 넓은 우주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아참 그리고 진짜, 진짜 마지막 질문인데 말이야. 움파카 당신 혼자서 덤빌거야? 아니면 여기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랑 같이 덤빌거야? 어느쪽이냐에 따라서 나도 전략을 바꿔야 하거든."
"당연히 무쇠턱오크 일족 전사의 긍지를 건 일대일 대결이다. 그러니 너는 어서 무서턱오크 일족의 전통대로 무기를 들고 스스로의 이름을 밝혀라!"
"잠깐! 이보시오 반신타락자 양반. 이 함정을 고안한것도 우리 사흉신측이고 함정을 준비한것도 교주인 혼돈인데 왜 당신 마음대로 일대일을 고집하는것이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처음 이곳으로 공간전이를 했을때 저 옥사건이란 작자를 협공하지 않은것 부터가 마음에 들지... 으흐윽!"
쐐해에에에에엑! 스스로를 무쇠턱오크 일족의 전사라고 밝힌 움파카가 전봇대만한 대검을 번개처럼 휘둘러 사흉신교의 간부로 보이는 자의 미간을 겨누웠다. 어떻게 저런 말도 안되게 무식한 무기를 지휘봉마냥 일사불란하게 사용할 수 있는걸까?
일전에 야미도엔이 나의 꿈속에 나타나 건네준 3대 괴검중 하나인 물푸레나무 곤봉은 어쩌면 저 오크를 위한 물건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내 주목을 끌은 물건은 짐승가죽으로 만든 반바지와는 무척이나 괴리감이 느껴지는 스마트 시계처럼 생긴 COT 단말기였다.
VOT의 철자를 생각하면 저건 COT(Corruption Of Things)쯤 될 것이다. 저게 있다면 VOT 단말기를 지닌 생명체를 살해한 사람도 VOT 커뮤니티에 접근할 수 있을테니 무법자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잇 아이템이였다. 물론 다른 누구도 아닌 반신타락자로부터 저 COT 단말기를 강탈할만큼 간큰 무법자는 없을테지만서도.
"이봐 도울전욱이라고 했나? 한번만 더 무쇠턱오크의 신성한 결투를 방해한다면 네놈의 두개골부터 전심전력을 다해 쪼개버릴테니 잠자코 있는게 좋을거야."
"크윽. 이보시오 시리우스 양반. 당신이 이 고집불통 오크좀 어떻게 해보시요. 내가 처음에 듣기론 당신이 이 자보다 서열이 훨씬 더 높다고 하지 않았소?"
-야미도엔님의 서열화는 단지 피상적인 정보를 통합해 전투력 순위를 매겨놨을뿐. 그것이 곧 지휘서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움파카에게 그 무엇도 강제할 수 없다.
"끄응. 그럼 프리우스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움파카와 우리가 서로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휘계통에 있지 않은건 사실이지만 이번 임무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서 협조할 의무는 있지. 움파카 10분을 줄테니 너의 신성한 결투라는걸 마무리지어라. 그때까지 타겟이 제거되지 않으면 우리도 개입하겠다. 임무수행중 필요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소요했을때 생길 수 있는 변수를 우리는 감당하고 싶지 않다.
"하아? 10분? 그렇게 많이도 필요없어. 5분이면 저 옥사건이란 놈을 으깨버릴 수 있으니 시리우스랑 프리우스 댁들은 거기서 구경이나 하고 계쇼."
"흐으응. 그렇게 결정된거군요. 자 그럼 결투에 앞서 정식으로 제 소개를 하죠. 저는 아크리퍼 옥사건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육체파는 아니고 술법사 나부랭이죠. 적이지만 이렇게 일대일로 싸울 수 있게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끼어든다거나 하면 곤란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동시에 덤빈다면 모를까."
"흥! 그런 녀석이 나온다면 우선 내 손으로 작살을 낼 생각이니 너는 신경꺼라. 나는 무쇠턱오크 일족의 움파카다. 선공을 양보할테니 어디 한번 재롱을 부려봐라."
"호오 선공을 양보해주신다니 이렇게 감사할때까. 자 그럼 모두 하늘을 보면서 김치 앤 치즈!"
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싱긋 미소를 직자 움파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였다. 내가 방금 무쇠턱오크의 전통에 따라 소환한 거대한 낫형태의 무기인 글래셜투스는 미동도하지 않고 있는데 내가 하늘을 주목하라고 하니 이게 무슨 어설프기 그지없는 페이크인가 싶었겠지.
하지만 잠시뒤 반투명한 보랏빛 결계너머로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기의 파동이 전해져 오자 그제서야 움파카는 자신의 주무기인 전봇대 대검을 억세게 고쳐쥐었다. 보통 용이 승천한다는 표현은 이무기가 수행을 쌓아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표현을 지칭하는 것이였지만 이번에는 하늘에 있던 용이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당연히 그것은 실제 용이 아니라 거대한 기의 폭풍이 형상화된 모습이였다. 내가 미리 황룡선과 금용희와 합을 맞춰둔 덫. 그것은 바로 역린(逆鱗)이라는 다름 전함에는 없는 황룡선만의 고유한 함포였다.
이 역린이라는 함포는 사용자와 정신감응을 통해 장풍형태 무공의 위력을 수십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무공을 업으로 삼는 팔륜성의 주민들이 고안할법한 전략무기였다. 내가 무영선의 흔적을 찾으러 떠났을때 옵티컬로이드로 지켜보면서 혹시나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지체없이 나를 포함한 이 절벽주위를 역린을 사용해서 포격하라는 명령을 내려놔었는데, 그것이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였다.
황룡거사에 비한다면야 아직 손색이 있겠지만 천살성이란 체질을 빌어 어린 나이에 엄청난 경지를 이룬 금용희의 전력을 다한 장풍이 수십배 증폭된 결과는 그야말로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가파른 절벽이 깍여나가 마치 수천년동안 풍화작용을 거친 그랜드 캐니언처럼 변해버렸고 견고해 보였던 보랏빛 결계도 얇은 유리창처럼 깨져나간다.
자 그럼 이제 내가 살길을 도모해야 하는데,
글래셜투스 시동기 발(發) 절대영도[Absolute Zero Point, 絶對零度]
아무리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니고 있는 나라고 해도 역린같은 전략무기에 정통으로 타격을 받으면 잠시간은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덫을 준비한 사냥꾼이 자신의 덫에 당해버린다면 의미가 없다. 하여 나는 움파카가 나를 땅속에 쳐박았을때 부터 역린의 포격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한빙청수갑과 글래셜투스 한쌍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시동기 절대영도를 나 자신을 타겟으로 사용한 순간, 황금빛 용검기가 쓰나미처럼 휘몰아치며 시야를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