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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 Oxogan The Twin Head and Twin Soul
'슬슬 련이를 자빠트릴때가 됬는데 조금의 틈도 안보이네...'
뫼비우스 우주정거장에서의 볼일을 마친 나는 비스트코인 우주정거장으로 복귀해 휘르 행수와 안부섹스를 나눌 짬도 내지 못하고 황룡선을 출발시킬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궁기련이 사흉신교 수뇌부의 추궁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것 같지가 않아 일정을 대폭 앞당기기로 했던 것이다.
사전에 혼돈자령의 영혼을 봉인한 소울스톤을 줄끝에 매달아 펜던트 형태의 길찾기용 아티팩트를 만들어둔 나는 그렇게 무한한 우주로 발을 내딛었다. 물론 초반에는 가급적이면 정규 항로에 존재하는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서 시간을 단축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혼돈자령의 펜던트는 정규항로를 벗어난 미지의 영역을 가리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황룡선의 워프 엔진을 통해 항해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우주는 너무 넓어서 일반적인 연료 사출형태의 비행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비효율적이였고, 공간을 접어 맞닿는 지점끼리의 좌표이동을 가능케하는 워프엔진의 기동이 일반적이였다.
다만 전함정도의 질량체를 워프시키기 위해서는 일개 발전소의 연간 총전력량을 필요로 했기에 우리의 여행은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워프-충전-워프-충전을 하루걸러 반복해야만 했다. 목적지가 정확히 정해진 상황이 아니였기에 이러한 과정은 너무나 지루하기 짝이없는 것이였다.
당연히 빠구리 한판이 간절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이 넓은 전함에서 사람이라곤 나와 궁기련뿐. 나머지는 전부 함선 운용을 위해 제작된 옵티컬로이드와 리페어로이드로 가득차 있었던 지라 나는 곤란을 겪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함선의 단 하나뿐인 암컷인 궁기련이 아직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였다.
"련이야 이 오빠랑 직접 살을 섞는게 거시기하면 대신에 내 거시기 좀 빨아주면 안되? 며칠째 굶었더니 아랫도리가 근질거려서 미치겠다."
"싫어, 싫다고! 도대체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을거야? 나는 아직 정식으로 명이한테 고백한적이 없기때문에 명이를 다시 만날때까지는 순결을 지키고 싶다고. 혹여나 강제로 나를 범하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아바타에서 본체로 돌아갈테니까 알아서해!"
쾅! 궁기련이 하루중 유일하게 나와 시간을 함께하는 우주보존식량 식사타임. 허나 그 시간마저도 함께 있기 싫다는듯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이내 자기 몫의 우주보존식량을 챙기고 자기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허허... 내가 좀 노골적으로 들이대기는 했지만 예비 서방님께 저런 버릇없는 태도라니, 나중에 련이의 본체를 되찾으면 고기 방망이로 단단히 참교육을 시켜줘야겠구만.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포장지를 뜯으면 고온의 열을 발산해 익혀먹는 미트볼을 한입에 쏙하고 털어넣었다.
'꺄아아아아아악!'
그런데 미트볼을 채 씹기도 전에 궁기련의 개인선실이 있는 복도쪽에서 아스라히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설마 궁기련의 방과 연결된 샤워실에 배치한 옵티컬로이드의 존재를 들킨건 아니겠지.
나는 비싼 돈을 들여 스텔스 모듈까지 달아둔 옵티컬로이드 클로킹 뱃(Clocking Bat)이 궁기련이 쏘아낸 화살에 박살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황급히 함내 식당을 뛰쳐나갔다. 다행히도 이매망량을 요술 양탄자 삼아 순식간에 도착한 궁기련의 개인선실 앞에서 나뒹굴고 있는건 클로킹 뱃의 잔해는 아니였다.
대신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가 복도에 쏟아진 궁기련의 우주보존식량 초코볼을 개처럼 쭈구려앉아 훑어먹고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 158cm로 보이는 키에 형광염료를 바른듯 은은한 빛이 나는 금발.
그럼에도 확연히 동양인임을 알 수 있는 까무잡잡한 피부와 그것보다 더 까무잡잡한 본래는 흰색도복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누더기를 입고 있는 신원미상의 소녀. 아니 도대체 이 소녀는 수백대의 옵티컬로이드가 실시간으로 감시중인 황룡선 함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단 말인가?
"우적우적. 배고파, 배고파!"
"너, 너는 누구야? 야 옥사건 이 함선에는 우리 둘밖에 없다고 했었잖아. 도대체 이 아이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거냐고!"
"그건 내가 묻고싶은 말이야. 황룡선 함내는 수백대의 옵티컬로이드와 리페어로이드가 항시 순찰중인데 말이지. 평범한 인간이 강습함도 없이 우주밖에서 침입해 들어올 순 없는 노릇이고. 어이 땅에 떨어진 초코볼 좀 작작 햝아 먹고 이제 그만 정체를 밝히시지?"
"흐윽흐윽. 배고파, 배고파! 이 배에 승선하고나서 부터 단 한끼도 제대로 못먹었어. 혹시 먹을거 더 없어?"
"에휴. 이건 뭐 인간 베히모스도 아니고. 좋아, 식량이라면 얼마든지 제공할테니 배를 채우고 나면 내가 묻는 말에 하나도 빠짐없이 대답하는게 좋을거야."
"훌쩍훌쩍. 알았어. 대신 밥 많이 줘야되?"
나는 낡은 도복의 앞섬이 풀어헤쳐져 제법 알이 실한 과육 두개가 속살을 드러낸 모습을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예의 소녀를 함내 식당으로 인도했다. 그 모습을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던 궁기련도 퉁명스러운 발걸음으로 우리뒤를 따라붙었으니, 배가 고파서라기 보다는 그녀도 금발도복녀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인듯했다.
때아닌 삼자대면을 하게된 나는 약속했던대로 우주보존식량을 종류별로 식탁위에 대령했다. 그러자 금발도복녀는 내가 먹다 남긴 미트볼까지 흡입하며 베히모스 뺨치는 식탐을 선보였으니, 식탁위로 수북했던 우주보존식량들이 바닥나는건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였다.
잠깐 이 장면 왠지 어디선가 본듯한 기억이... 아하 휘르 행수의 딸인 라라펠을 구출하기 위해 백토성의 사막으로 향했을때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지. 그나마 금발도복녀는 이미 조리된 인스턴트 음식을 섭취하고 있는거지만, 라라펠의 경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 수십 킬로그램을 씹어 삼켰던지라 지금 생각해도 피비린내가 맡아지는 기분이였다.
"꺼어억~ 아아 잘먹었다."
"그래 여기저기 수북히 쌓인 비닐 용기를 보아하니 정말 원없이 배를 채운것 같군. 그럼 내 질문에 대답할 준비는 됬겠지?"
"으으 근데 배도 부르고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황룡물아일체신법을 사용해서 몸이 노곤한데 한숨 자고 대답해주면 안되?"
"뭐? 이 금수같은 년이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쳐자고 남의 배에 무임승차 해놓고서 니 꼴리는데로 다하겠... 아니 잠깐! 황룡물아일체신법이라고? 설마 네녀석이 황룡거사의 하나뿐인 제자인건 아니겠지?"
"으음 아마 맞을걸. 사부가 속세에서 사용한 별호가 황룡거사였으니까."
"황룡거사의 제자라고!? 그 팔륜일황의 황룡거사? 아니 그것보다 옥사건 네가 황룡거사한테 제자가 딱 한명 있다는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잠깐 진정해 궁기련. 나도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너까지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 상황을 제대로 정리할 수 가 없잖아. 흠, 좋아. 그러면 다음으로 네 이름과 왜 이 황룡선에 무임승차했는지를 말해주실까? 설마 함선 이름이 황룡선이라고 해서 이 함선이 네 사부의 것이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에 그, 그게 그러니까..."
뻔뻔하게 음식을 요구할때와는 달리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렵게 입을 열기 시작한 금발도복녀. 일단 그녀의 이름 석자는 금용희로 갈데없는 고아였던 그녀를 황룡거사가 거둬줄때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허허 이래서 운명이란건 참 기묘한 것이다. 누구는 고아인데 사흉신교에게 납치되고 누구는 팔륜일황을 사부로 모시게 됬으니 말이다.
뭐 정작 금용희 본인은 성질 고약한 늙은이 밑에서 갖은 혹독한 수련을 받느라 도망치고 싶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하지만서도. 아무튼 그 덕분에 사물과 하나가 되어 기척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황룡물아일체신법과 같은 신공절학을 익히게 되었다고 하니 그녀가 운좋게 수백대의 옵티컬로이드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던게 아니였다.
그리고 대망의 황룡선 잠입 이유가 마침내 밟혀졌으니 나 그 사실을 듣자마자 눈앞의 식탁을 쪼개버릴뻔 했다. 알고보니 팔륜무가의 수뇌부 중 일부가 황룡거사를 찾아가 황룡선을 대가로 나를 팔륜성 밖으로 쫓아내주지 않겠냐는 딜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본래 황룡선은 황룡거사에게 진상할 목적으로 건조했다는 감언이설까지 더해서 말이다.
그렇군. 이 녀석들이 한동안 나와 황룡선을 팔륜성에 묶어둔것은 황룡거사의 소재지를 찾기 위해서였나.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아찔함을 느끼며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겼다. 어차피 이제와서 팔륜성으로 돌아갈 수 는 없는 노릇이였니 지금 당장은 사흉신교의 본단을 치는 일에 집중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