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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 Oxogan The Killer Whale, Leviathan
내 파티원들 아니 노예들의 표정이 엘리멘탈 로드가 던전 초행임을 고백했을때보다 한층 더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혼, 염왕채와 함께 동대륙 서버 3대 길드로 통하는 풍운 길드가 몇년째 던전 공략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80층조차 뚫지 못한 진시황릉의 마지막층을 정복하겠다는 강행군에 그녀들이 흔쾌히 동참한 이유.
그 뒷배경에는 VOT 온라인 최초로 Ex등급 던전을 100% 클리어했다는 소문의 주인공, 아크리퍼가 파티의 리더라는 점이 주효했다. 아무리 천외천이나 북두십성 유저라고 해도 죽음의 패널티로부터 자유로울 수 는 없었으니 오히려 막대한 경험치량과 고가의 장비때문에 보통의 유저보다 막대한 손실을 입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우리 한번 진시황릉 99층에 도전해볼까? 안되면 말고.'하는 마인드로 던전 공략에 나섰다가 바닥에 눕게될 경우 튼실한 중소기업이 도산할 정도의 재산 피해를 입을 수 도 있다는 뜻이였다. 사실 돈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이면 다행으로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고위넘버링의 장비를 떨구기라도 하는 날에는...
노예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한채 내게 이빨을 들이밀지도 몰랐다. 그만큼 천외천 유저들은 비싼 메이커 명품 이상으로 자신의 장비들을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게다가 어찌어찌 99층을 돌파한다고 해도 모든 보물을 깍두기가 차지하는 마당에 의욕이 생길래야 생길 수 가 없는 것이다.
"어허 이거 분위기 왜 이래. 다들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 있는거 아니야? 내 전력을 제한다고 해도 여전히 이 파티는 어마무시하다고. 북두십성 유저 2명과 천외천 유저 3명에 직업 구성은 권사, 각법가, 암살자, 거너, 정령술사로 어찌나 알찬지. 솔직한 말로 이런 파티를 어디가서 또 구경해보겠어. 분명히 상상도 못한 직업 시너지가 나와서 병마용들을 단번에 쓸어버릴걸?"
"이미 사건님에게 충성을 맹세한 마당에 진짜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다시 부활이 가능한 게임 캐릭터를 두고 사지로 기어가라한들 꺼릴낄게 있겠습니까? 다만 이 VOT 온라인의 세상에는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적은지라 그 미지의 영역을 탐험할 수 있는 북두십성 캐릭터의 효용성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귀한 장비를 떨궈서 캐릭터의 가치가 떨어질까봐 무리한 사냥은 하기가 싫다?"
"제 캐릭터가 아까워서 그런게 아닙니다. 이 캐릭터조차 사건님의 소유물이니 더 괜찮은 사용방식이 있음을 말씀드리려는겁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A랭크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진시황릉의 공략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고요."
"그럼 어디한번 매드독스 네 의견을 말해봐. 나는 자비로운 주인님이니까 노예의 발언기회를 아예 묵살하지는 않겠어. 어차피 최종결정은 내가 하겠지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어디까지나 조언을 하는것일 뿐이니 이대로 사건님께서 99층을 돌파하겠다고 하시면 군말없이 따르겠습니다. "
이어진 왕루옌의 설명은 계략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정교한 것이였다. VOT 온라인에서는 별다른 세력을 형성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는 맨땅에서 십이지천회라는 대규모 조직을 일궈낸만큼 그녀는 조직의 맹점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직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데 익숙해지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약해지면서 종국에는 자신의 발에 쇠고랑이 채워져 있음에도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하기 위해 풍운의 길드마스터인 스톰 라이더에게 그랬던처럼 다른 실세 간부들 아마도 공대장일 확률이 높은 이들을 전부 세뇌시키자는 것이다.
그렇게 수뇌부만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되면 풍운 길드전체를 화살받이처럼 사용해 전시황릉을 비교적 안전하게 돌파할 수 있으리라. 사실 또 다른 Ex등급 던전인 무간지옥을 돌파할때 사용한 내 전략도 그와 유사한 것이였다. 물론 그때 희생양이 된건 다른 길드가 아니라 내 언데드 군단 그 자체였지만.
그때 거의 9할에 가까운 병력이 전멸해 버린탓에 한달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언데드 제작에만 매진할 수 밖에 없었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무간지옥 99층에 있었던 심연의 크라켄은 끔찍하기 그지없는 보스였다. 레벨 3500이 말이되냐고 말이.
"으음. 그래, 그래. 육체파의 권법가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휼륭한 계획이로군."
"그러면 일단 여기서는 그 보급 책임자가 명령했던 내용을 이수한 다음 차차 기회를 보는걸로?"
"아니 계획이 휼륭하다고 했지 그 계획에 따른다고 한적은 없다. 우리는 이대로 일선에서 사냥중인 풍운 길드와의 충돌을 최대한 피하면서 99층까지 단숨에 돌파한다."
"하지만..."
"하지만? 어쭈, 아까 군말없이 따르겠다고 말한 사람은 매드독스가 아니라 매드캣츠였나 보지? 한동안 흑월파 관리하라고 풀어주니까 군기가 많이 빠진것 같다? 부패의 표식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직접 제 몸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말 잘들을래?"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너무 주제넘게 행동했던것 같습니다. 설사 구십번대의 장비를 떨구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던전을 돌파해내보이겠습니다."
"장비 떨구는건 걱정하지마. 내가 주워줄테니까.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는 깍두기가 그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어?"
"가, 감사합니다."
물론 주워준다고 했지 그걸 다시 돌려준다고 하지는 않았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고 나는 파티를 출발시켰다. 이런 반발이 있을거라는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이매망량이라고 하는 전투수단이 기본적으로 소모성이기 때문이였다. 십만 이매망량군이 있다고해서 함부로 남발했다간 어느새 적벽대전의 조조같은 신세가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십만 이매망량군이 전부 살아있을때 즉 최상의 전력을 간직하고 있을때 99층의 라스트보스에게 전군 돌격시켜야만 밥값을 할 수 있으리라.
둘째는 진시황릉에 등장하는 주요 몬스터인 병마용이 무생물계열의 적이기 때문이였다. 만약 살아있는 생명체였다면 음에너지를 사용한 갖은 저주를 퍼붓는 디버퍼 포지션에 설 수 있었겠지만, 강령술사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골렘인 병마용에게 통할만한 디버프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그리하여 나라는 잉여 인간을 포함한 파티가 진시황릉의 50층에서 99층까지 이르는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50층에서 59층을 뚫기까지는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병마용이 리젠되는 족족 비비앙이 벌집을 만들어 버려 의도치않게 구경꾼이 5명으로 늘어나는 기현상까지 일어날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이봐 쥐문신 꼬마."
"네? 저, 저요?"
"그래 너말이야 너. 아까 함정같은거 잘 찾는다고 했지?"
"네. 기관진식과 관련된 스킬을 조금 배웟거든요."
"그러면 밑에층으로 추락할 수 있는 함정 좀 찾아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만약에 그 함정을 피해갈려는거면 한꺼번에 스캔한 다음에 물감을 좀 뿌려둘려고요."
"아니 그럴 필요없어. 우리의 목적은 그 함정에 일부러 걸려드는거니까."
"60층에서 우리의 보급품을 기다리고 있는 풍운 길드원들과의 충돌을 피하려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추락 함정의 경우 자칫 잘못했다간 몬스터들 한가운데에 떨어져서 포위당할 위험성도 있어요."
"상관없어. 풍운 길드가 고전하고 있는게 70층 라인이라는건 우리가 신경써서 사냥을 해야할 구간도 70층부터라는 거니까. 너도 50층 라인을 내려오면서 봤잖아. 몬스터가 없어서 못잡는거."
어느날 난데없이 자신이 속한 조직을 전멸시키고 그 두목을 노예로 거둔 나라는 존재를 대하는게 아직 어려웠는지 내 앞에만 서면 쭈뼛쭈뼛거리는 샤오밍이 살쾡이같은 움직임으로 59층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추락 함정을 찾아낸 그녀가 우리들을 한쪽 구석으로 호출했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함정앞에 선 우리 파티는 내 신호에 맞춰 앞으로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바닥이 푹꺼지면서 우리들은 밑에층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구멍이 깊어서 낙하속도가 끝을 모르고 가속되었다. 하지만 이 파티원들 중에서 낙하 데미지때문에 곤란을 겪을만큼 어수룩한 유저는 없었다.
나는 이매망량을, 엘리멘탈 로드는 바람의 정령왕을 지지대 삼아 부유해 내려갔고 나머지 무투계열 유저들은 벽을 다리로 박차며 낙하속도를 서서히 줄여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던전은 떨어진 길이로 보건대 절대 60층 초입은 아닐듯했고, 우리를 둘러싼 병마용들도 50층과는 비교도 안되게 무장 상태가 좋아보였다.
그렇다. 우리는 추락 함정에 빠질때 우려했던 것처럼 몬스터들의 무리 한가운데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왕루옌, 쿤메이, 샤오밍이 서둘러 삼각진을 펼쳐 딜러진을 보호했고, 50층 라인을 뚫을때와는 다른 무차별 난투가 시작되었다.
"사건님 이 녀석들은 윗층에 있었던 녀석들을 해치웠을때처럼 원샷 원킬이 안됩니다. 그러니 일단 진형을 유지하면서 벽쪽으로 붙어야 합니다."
"깍두기한테 일일히 보고할 필요 없어. 앞으로는 왕루옌 네가 파티의 지휘를 맡아라."
"그러면... 엘리멘탈 로드님 아무거나 큰 기술로 이 병마용들의 발을 묶어 주시겠습니까?"
"예? 아, 알겠습니다."
친화력이 워낙 높아서인지 엘리멘탈 로드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연두색 빛깔의 소녀 유령의 모습을 한 바람의 정령왕이 매서운 폭풍을 일으켰다. 본래 목적은 병마용들을 잠시 넉백시킨 뒤 벽쪽으로 붙어 좀더 견고한 진형을 짜는 것이였는데 너무 바람이 거세서 오히려 병마용들이 던전의 외벽에 쳐박혔다.
왜소하기 그지없는 체격을 지닌 연두색 빛깔의 소녀가 그 관경을 보고 까르르 웃어재끼며 엘리멘탈 로드의 목에 매달렸다. 과연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정령왕은 정령왕이라는건가. 적들이 무력화된 그 찬스를 놓치지않고 비비앙의 총격과 샤오밍의 암기가 쇄도했다.
일반적인 탄환과 암기가 아니였는지 병마용의 진흙 피부에 파고든 순간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왕루옌과 쿤메이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으니 서서히 몸을 일으키려는 병마용의 양팔을 잡아챈 다음 무서운 기세로 던전 바닥에 내리꽂아 버렸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하는걸 보아하니 더블 테이크 다운이 제대로 먹혀들어간듯 했다.
50층 라인에서 그랬던 것처럼 몬스터가 리젠되는 족족 원거리 공격에 박살나서 근접딜러는 손가락만 빨아야 했던 수준은 아니였지만, 60층 라인도 비교적 수월하게 공략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로 있기는 심심해서 안경잡이 보급 책임자가 넘겨줬던 버프 포션을 조금씩 맛보았다.
'얼씨구. 대형길드랍시고 진짜 효과좋은 도핑 포션들만 모아놓았네. 나중에 왕루옌한테 몰아주면 완전 괴물되겠는데?'
도핑 포션은 대게 육체강화계열의 것들이 많았는데 보통 신체능력을 고정된 수치가 아닌 일정 퍼센트만큼 늘려줬기에, 무력 랭크 F인 내가 마셨다간 맹물을 마시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무투계열의 북두십성 유저인 매드독스가 마시게 되면 성녀 아크엔젤의 축복을 받은것 만큼이나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리라.
거듭해서 불을 뿜는 비비앙의 총구. 엘리멘탈 로드의 어깨위에 앉아 손짓만으로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바람의 정령왕. 각종 병장기로 완전무장한 병마용들을 레슬링 기술로 제압해 나가는 왕루옌&쿤메이 콤보. 한 장면도 놓치기 싫은 동료들의 멋진 활약을 넋놓고 지켜보다 보니 나는 어느새 70층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어라 그런데 누구 한명이 빠진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샤오밍이 내 후방에서 암기를 뿌리며 나를 엄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은신 상태에서 공격을 할 경우 보너스 데미지를 얻을 수 있었기에 아군인 나조차 속이며 숨어있었던 모양이였다. 아니면 내 인지력이 너무 낮아서 나 혼자 눈치 못채고 있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