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57화 (25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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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 Oxogan The Killer Whale, Leviathan

정작 자신도 일선에서 싸우진 못하고 베이스 캠프에서 보급품 관리나 하는 주제에 나에게 갖은 잔소리를 퍼붓는 안경잡이 풍운 길드원. 이 안경잡이가 진짜 짜증나는 점중에 하나는 인피면구와 등뒤에 風자가 새겨진 풍운 길드복으로 위장한 내 부하 아니 노예들에게는 단 한마디의 싫은소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술사 캐릭터답게 몸이 약한 엘리멘탈 로드가 포션을 담은 상자를 옮기다가 손에서 놓친적이 있었는데, 잔소리를 하기는 커녕 부축을 해주면서 어디 다친데 없냐고 안위까지 걱정해준다. 나는 실수없이 잘해도 보급품을 옮기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불호령이 떨어지는데 말이다.

풍운의 길드장이자 천외천 유저인 스톰 라이더의 소개로 던전내에 잠입하면 상전 대접을 받을줄 알았건만, 길드가 성장하면서 실세 간부들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리다 보니 길드장이란 직위는 어느새 허울에 가까워졌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깽판을 부렸다간 릴리를 데리고 중국까지 출장을 나갔던 고생이 물거품이 되버리고 마는 까닭에 나는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며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나답지않은 행동을 반복한 보람이 있었는지 얼마안가서 60층에 있는 공대에게 보급품을 조달하는 임무가 우리 앞으로 떨어졌다.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건데 이 최상급 치료 포션이나 버프 포션들이 탐나서 하나라도 슬쩍하는 날에는 풍운 길드의 추적대가 서대륙 서버까지 쫓아가서 무한 PK를 걸거야. 다시 1레벨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으면 임무에 충실하라고."

"그거야 기본이죠."

"그리고 너희 여섯명이 손발 꽤 맞춰본 파티라고 듣긴 했다만 Ex등급 던전인 진시황릉은 B등급 던전의 보스가 쫄병마냥 돌아다니는 곳이니까 조심해. 물론 그것도 50층에서 59층까지의 이야기고 60층 부터는 A등급 던전의 보스가 쫄병마냥 돌아다니니까 혹여나 아래 층으로 추락시키는 기관진식에 걸리지않게 주의하라고. 후우, 원래는 이 일을 전담하는 파티가 따로 있었는데 염왕채 길드의 감언이설에 홀라당 넘어가서는. 하여튼 요즘 놈들은 신의라는게 없어요."

"하.하.하. 그러면 저희는 이만 내려가보겠습니다. 혹시나 50층 라인을 뚫는 과정이 지체되면 60층 라인에 계시는 공대분들의 사냥에 지장이 있을 수 도 있으니까요."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진시황릉 50층 베이스 캠프의 보급 책임자인 안경잡이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내 성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매드독스 왕루옌이 그 모습을 보고 한쪽 입가를 씰룩거렸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않았다.

비단 내 지랄맞은 성격이 아니더라도 북두십성 유저 3명과 천외천 유저 3명으로 이루어진 파티가 길드의 보급 관리자따위에게 굽신거리는 이 상황은 기묘하기 그지없는 것이였다. 그만큼 길드의 보급대대라고 하는 것은 3D직종 오브 3D직종으로 예의 파티가 염왕채 길드로 넘어간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신의는 무슨놈의 신의인가. 보급대대는 속된말로 포션 셔틀이라 불리우며 공대가 있는 던전 작업장까지 뚫고 내려갈 수 있는 전투력을 지녀야 했지만, 막상 임무에 들어가면 신속한 포션 배달을 위해 진득하니 한자리에서 파밍(Farming)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여느 게임도 그렇겠지만 VOT 온라인에서 1000레벨 즉 만렙을 달성한 이후는 중요한 분기점이였으니, 이 시점부터 유일한 전투력 상승 수단이 되는 파밍을 막는다는건 캐릭터의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겠다는 의미는 물론 동시에 '너는 거기서 계속 셔틀짓이나 해라.'라고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수준의 술사라면 파밍없이 술식의 연구에만 매진해도 전력을 상승 시킬 수 있겠지만 일반유저에게 그런걸 기대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니.'

"잠깐만 기다려봐. 전에 보니까 스칼라라는 애는 포션 상자도 버거워하는걸 보니 무력랭크가 F인것 같던데 그냥 베이스 캠프에 두고가는게 어때? 너희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동안 내가 보급대대의 일을 가르쳐줄 수 도 있는데 말이야. 요새 VOT 온라인의 주가가 하늘 높은줄도 모르고 치솟고 있다보니까 길드 관리직정도만 되도 왠만한 회사원들보다 연봉이 많은 수준이라는거 너희들도 모르지 않겠지?"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술사 포지션인 스칼라가 빠지게되면 저희 파티의 화력이 조금 부족해져서요. 무려 탱커만 3명인 파티인지라, 하하. 무력 랭크가 F인것도 마력쪽에 스텟을 전부 몰아줘서 그런거구요. 뭐 무령 랭크가 F인건 저도 마찬가지니까 잘 보호해 가면서 내려가겠습니다."

"뭐 너도 무력 랭크 F였어? 어쩐지 고작 포션 상자하나 옮기는데도 움직임이 굼뜨더니만. 쳇, 알았으니까 얼른 가봐."

아니 저 안경잡이 새끼는 지가 뭐라도 되는줄 알고 자꾸 오라 가라야. 나는 저 같잖은 보급 책임자가 엘리멘탈 로드에게 흑심을 품은 정황을 포착했음에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헤어지면 앞으로 평생 보지않을 인간과 아웅다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인내심이 뛰어나시군요. 정말이지 그 보급 책임자가 사건님에게 막말을 할때마다 무슨 사단이 일어날까 가슴 졸이며 지켜봤습니다."

"흥! 증오해마지않던 상대가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한건 아니고?"

"아, 아뇨 결코 그런 일은..."

"농담이다, 매드독스. 진지하게 반응하기는. 아무튼 지금부터 작전 브리핑을 하겠다.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전에도 말했듯이 진시황릉 던전의 마지막 에어리어인 99층을 클리어하는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기서 나오는 모든 아이템은 내 것이다. 설마 여기에 의의를 갖고 있는 발칙한 노예년은 없겠지?"

"저기... 아크리퍼씨 저는 딱히 아이템 욕심같은건 없지만서도요. 던전을 탐험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서 그런데 뭔가 주의해야할만한 것들이 있을까요?"

"천하의 엘리멘탈 로드가 던전 공략이 처음이라고? 흐음."

엘리멘탈 로드의 던전 초행선언에 나뿐만 아니라 왕루옌, 쿤메이, 샤오밍 그리고 비비앙까지 당황스러워했다. 아무리 북두십성의 지위가 단순 파밍보다는 네임드 스킬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중요한 자리라고 해도 던전 공략 경험 자체가 전무하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물론 엘리멘탈 로드가 극단적으로 친NPC 성향을 지닌 유저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같은 유저와의 접촉은 일체 차단하고 VOT 온라인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실제 주민인것처럼 행동하는 플레이어들을 속칭 아미고(Amigo)라고 했는데 엘레멘탈 로드도 그 중 하나였던 것이다.

보통 아미고들은 일반적인 게임 유저들이 숨쉬듯이 반복하는 사냥, 파밍, 거래의 순환을 거의 하지 않기때문에 만렙조차 찍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런 아미고가 천외천도 아니고 북두십성의 지위에 올랐다? 도대체 타고난 친화력 스텟이 얼마나 깡패였기에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지금부터 귓속말로 대화한다. 아무리 아미고 플레이어라도 귓속말 기능정도는 사용할줄 알겠지? 엘리멘탈 로드 아니 스칼라 너 혹시 VOT 온라인에서 처음 캐릭터 생성했을때 스텟이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나?"

-으음. 다른건 다 F였었는데 물, 불, 바람, 땅 친화력만 모두 A랭크였던것 같아요."

-미친!! 1레벨 캐릭터가 A랭크 스텟이 1개도 아니고 무려 4개였다고? 허허. 뭐 그정도 되니까 아미고 플레이어가 북두십성의 지위까지 올랐던 거겠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또 누가있지?"

-바, 바이올라 언니 말고는 없어요. 하지만 언니는 게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그냥 별말없이 지나갔는데 제 캐릭터에 뭔가 문제가 있는건가요?"

-글쎄다. 너무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꺼낼만한 주제는 아닌것 같군. 아 참 그리고 앞으로도 네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은 친화력 스텟에 대해선 절대 함구하도록.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네 언니는 물론 너 또한 내 노예라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예...

내가 처음 캐릭터를 생성했을때 C랭크의 영력을 지니고 있었던걸 생각하면 엘리멘탈 로드의 A랭크 친화력은 재능을 넘어서 치팅에 가까운 수준이였다. 물론 마력은 F랭크였다고 하니 레벨 1상태에서 최상급 정령을 소환할 수 는 없었겠지만 스텟을 마력에 투자할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으리라.

'이거 원 내가 타인의 재능을 시셈하는 날이 올줄이야. 크크킄.'

"좋아. 엘리멘탈 로드가 파티를 짜서 던전을 공략하는게 처음이라고 하니 간단히 각자의 포지션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사실 북두십성의 지위에 오른 유저에게 탱커, 딜러, 힐러의 개념을 적용하는건 무의미한 일이야. 막말로 엘리멘탈 로드 너 혼자서 탱, 딜, 힐 다 하라고 하면 솔직히 못할것도 없잖아? 하지만 진시황릉의 최고층에서도 그런 솔로잉이 통할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지금부터 엘리멘탈 로드 너는 우리 파티의 임시 힐러다."

"예? 하지만 저는 힐링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물의 정령왕이 있잖아, 물의 정령왕이. 힐링을 전문으로 하는 소환수는 아니지만 정령왕정도면 천외천 신관 유저 뺨치는 힐량을 갖고 있을터. 여차하면 풍운 길드의 보급품에 있는 힐링 포션을 사용해도 그만이니까 부담갖진 말고."

"하지만 그건 도둑질..."

"다음으로 왕루옌, 쿤메이, 샤오밍 너희들은 이 파티의 탱커들이다. 물론 너희 셋의 능력이 탱킹에 전문화되어 있지 않다는건 알고 있지만 F랭크의 무력을 지닌 나와 엘리멘탈 로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3탱커 포지션은 필수적이지. 일단 왕루옌이 가장 먼저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먹은 다음 혹여나 어그로가 튀면 쿤메이는 나, 샤오밍은 엘리멘탈 로드를 전담 마크한다."

"사건님 송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쿤메이는 그렇다쳐도 샤오밍의 경우 전사보다는 도적 클래스에 가까워서 탱킹 능력은 비교적 떨어지는 편입니다. 순간적으로 어그로를 끌고올 수 있는 스킬도 없고요."

"함정의 해체하면 잘 할 수 있다고요, 왕루옌 두모ㄱ... 아니 언니."

"그거라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여차했을땐 땅의 정령왕이 엘리멘탈 로드의 방패가 되어줄테니까."

한때 크로스데일 한국지부에 잠입해 정보를 염탐하려고 했던 샤오밍의 경우 은신과 암살에 관련된 무공을 주로 익히고 있어 확실히 탱커에 어울리는 캐릭터는 아니였다. 하지만 파티내에서 가장 단단한 탱커이자 엘리멘탈 로드 못지않은 딜러인 매드독스 왕루옌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후위로 빼는건 조삼모사같은 짓거리였다.

샤오밍이 엘리멘탈 로드를 지키다가 1회용 방패수준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한이 있어도 지금은 이 포지션이 최선이였다. 게다가 내가 말했듯이 땅의 정령왕이 엘리멘탈 로드를 비호하고 있는한 던전내에서 그녀가 위험에 처할일은 많지않을터였다. 땅의 정령왕정도면 던전의 지형을 변화시켜서 적의 공격을 차폐하는일도 가능했으니까.

"마지막으로 비비앙 너는 자연스럽게 원거리 딜러를 맡게 될텐데 괜찮겠어? VOT 온라인에 접속하는건 꽤 오랜만일텐데."

"현실에서도 사격연습은 계속 해왔으니까 상관없어. 다만... 율리시안이 만들어준 총으로 사냥을 해야한다는게 꺼림칠할뿐."

"총기를 제작하는 장인계열 천외천 유저는 그녀석이 유일했고 총기는 활에 비하면 드랍율도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잖아. 이 파티의 전력 밸런스를 고려하면 천외천 밑으로는 방해물이 될뿐이야. 율리시안의 총이 아니면 천외천이 될 수 없었을거라고 말했던건 바로 너였고. 그러니까 눈 딱 감고 그 총이 내 자지라고 생각하고 쏴버려."

"...그것 참 마음이 따듯해지는 위로로군. 그래서 우리의 대단하신 자지를 가지고 계신 파티 리더께서는 어떤 포지션을 수행할 생각이지?"

"글쎄다. 고된 전투로 힘들고 지친 우리 파티원들을 자지로 위로해주는 서포터?"

"장난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나도 Ex등급의 던전은 처음이지만 A, B등급 던전의 보스가 쫄병처럼 돌아다닌다는 그 보급 관리자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것쯤은 알고 있어. 아무리 북두십성 유저가 3명이나 있다고 해도 까딱 실수하면 전멸할 수 도 있다고."

"좋아 그러면 솔직하게 말하지. 이번 진시황릉 던전 공략. 나는 그냥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해라. 일종의 깍두기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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