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35화 (235/599)

0235 / 0316 ----------------------------------------------

vol.7 Oxogan The Rebirth Of Aged Blue Dragon

"푸스카 애들이니까 적당 적당히 봐주면서 해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어차피 환상이라는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진흙이 묻던 말던 내 안방인마냥 늪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푸스카에게 미노타우르스 좀비의 제어권을 넘긴 뒤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금방이라도 늪지에 빠져죽은 물귀신이 튀어나올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죽음의 주인인 내가 그딴 잡령을 두려워할리가 있겠는가?

냄새, 촉각, 온도 모든 것이 리얼하기 그지없었으니 마치 가상현실게임에 접속한 기분이다. VOT 온라인에 처음 접속했을때도 이런 느낌이였었지 아마? 물론 VOT 온라인은 실재하는 이공간이였고 이 늪지는 진법으로 형성된 가짜였기 때문에 내 사령안에는 학생들과 미노타우르스 좀비들이 혈투를 벌이는게 훤히 보였다.

모두 길든, 짧든, 얇든, 두껍든 미숙하나마 검기를 발현할 수 있는 검기상인의 경지에 오른 학생들이였지만, 미노타우르스 좀비는 팔리 잘린다거나 목이 잘린다고 전투력을 상실하는 존재가 아니였기에 싸움은 점점 과열되는 형상을 보였다. 그나마 전투센스가 있는 학생들이 미노타우르스 좀비의 다리를 노려 기동력을 상실케 했다.

하지만 좀비들은 기어서라도 악착같이 싸우려 들었다. 아무리 싸움 구경이 재밌다지만 그 수준이 너무 낮아 금새 질려버린 나는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이 진법을 펼친 장본인인 어린세랑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 내게 다소 특이한 관경이 목격되었으니 한 존재에게 무려 3개의 영혼이 달라붙어 움직이는 기괴한 생명체였다.

'뭐야 샴쌍둥이 아니 샴세쌍둥이라도 되는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팔륜학관의 부지내를 활보할만한 존재가 아니였기에 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엇보다도 그 3개의 영혼중 하나는 이미 내게 익숙한 보랏빛 형체. 바로 내가 수왕성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상대해본 무법자 무리인 사흉신교 놈들중 혼돈술사의 영혼과 동일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보랏빛 영혼을 거대 물고기 좀비인 던클레오의 언데드 회로에 동력을 공급하는 영혼석에 사용하고 있었기에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2 계통의 속성마력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저 기괴하고 사이한 기운을 잊을 수 가 있을까?

내 앞을 가로막는 늪지대의 장애물들을 아무렇지않게 가로지르며 그 보랏빛 영혼의 주인에게 다가서려는 순간. 주변환경이 마치 전파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텔레비전처럼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어린세랑의 진법에 무슨 문제가 생긴걸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보랏빛 파동이 내 시야를 덮쳤고 눈을 떠보니 경사가 살벌한 산비탈 위였다.

사령안을 발동중인 나였기에 이게 진법으로 형성된 환상이 아닌 실제환경이라는걸 누구보다 빨리 눈치챘고 이매망량을 이용해 몸의 균형을 유지했다. 말이 산비탈이지 거의 낭떠러지나 다름없는 장소였던지라 미노타우르스 좀비와의 전투에 매진하고 있던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굴러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이게 뭐야!? 이것도 지옥수련회의 훈련 프로그램인가? 해도해도 정도가 있지 일언반구도 없이 이런 상황에 몰아넣다니."

단순히 속성으로 검기발현에만 집중한 학생들과 달리 착실하게 경공술을 익힌 명문가의 자제들은 가까스로 산비탈에서 두발로 균형을 유지했다. 물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더 많았기에 사상자가 속출 할거라는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였다.

사실 나는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도 없었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갈때 망설임없이 손을 내밀만큼 인정있는 사람도 아니였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혼돈술사의 영혼을 갖고 있는 존재의 뜻대로 흘러가는 꼴이였기에 귀찮음을 감수하고 이매망량을 통해 추락중인 학생들을 구원하기 시작했다.

진법의 중심에 서있었던 어린세랑 또한 이 대규모 공간이동에 휘말렸을게 뻔했기에 그녀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공주님 안기로 구해내려 했지만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어린세가의 경공술 수준은 높았다. 마치 물길을 타고 서핑을 하듯 산비탈을 미끄러져 내려온 어린세랑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없이 기절한 학생들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이매망량으로 거대한 그물을 펼쳤기 때문에 큰 상해를 입은 학생들은 없었지만 낙하하는 과정에서 정신을 잃은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다. 기왕 도와주는김에 제대로 마무리를 짓기 위해 그런 학생들을 한데모아 놓는 사이 탁월한 경공술을 지닌 일부 학생들이 산비탈을 타고 내려와 어린세랑에게 사정을 따져 물었다.

"어린세랑 선생님 혹시나 싶어서 여쭙는거지만 이 상황조차 진법으로 인한 착시는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이건 훈련계획에 없었던 돌발상황이자 실제상황입니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없는것 같지만 한시라도 빨리 팔륜학관의 의무실로 옮겨서 심신의 안정을 취하게 해야할것 같군요."

"흠흠. 누구때문에 부상당한 학생이 한명도 없었던걸까요?"

"옥선생님 이런 상황에서 공치사를 하고 싶은신겁니까? 학생을 구하는건 선생님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아, 예예. 거참 순수하게 칭찬 한번 해주는게 그렇게 어렵나. 아무튼 이 기절한 학생들 전부 이 산비탈위로 옮기면..."

콰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콰라라라라라랑!!!!

콰라라랑!!!

어떤 병법서에서도 공통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항목중 하나가 적에게 쉴틈을 주지말고 몰아 붙이라는 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했을때 일련의 사건을 계획한 주모자는 적이지만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일을 잘하고 있었다. 이제 막 기절한 학생들을 추스린 상황에서 양쪽 절벽이 귀청이 떨어져나갈듯한 폭발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산사태라는 이름의 거대한 자연의 습격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몇몇 학생들은 제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경공술을 펼쳤지만 어린세랑은 기절한 학생들을 버릴 수 없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아 나는 이 우주에서 제일 나쁜 남자인 주제에 왜 이렇게 착한 여자가 좋을까?

나는 모두가 희망을 버린 순간 레레를 위시한 이매망량군으로 하여금 아치형 방벽을 쌓게해 산사태를 손쉽게 막아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죽음의 신에게 구원받은 어린세랑은 똑똑한 여자답게 수천톤에 달하는 돌무더기를 막아낸 장본인이 나라는걸 눈치채고 복잡미묘한 시선을 보내왔다. 왜 너무 쩔어서 반할것 같아?

"산사태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있다고 진즉에 말하시지 그랬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전력을 다해 도망친 학생들의 안전은 이제 어떻게..."

"친구들을 버리고 도망친 놈들까지 챙길정도로 내가 한가해보이나?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뛰어갔으니 목숨은 구명했겠지."

"아무래도 젖을 빠는 힘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어렸을적에 모유 수유가 아니라 분유 수유였다던가? 케케케케케켘. 어때? 어때? 돌하루방도 자지러질것 같은 농담이였지?"

"과연 흉마십존의 일인인 도올탄님이십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촌철살인의 현기가 담겨있으니 저도 임무중이 아니였다면 광천대소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떼구르르르르. 산사태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마자 냅다 도망친 학생들의 머리통이 피자국를 그리며 이쪽으로 굴러온다. 지옥수련회를 이수중인 학생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경공술을 지니고 있던 그들은 그 경공술이 화를 부를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물론 모든 사태의 원흉은 산골짜기 저편에서 더럽게 재미없는 농담을 씨부리고 있는 5척 단신의 사내였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5척 단신 사내의 부관은 무인이라기 보다는 술사에 가까웠는데 그 뒤로 일렬종대로 서 있는 일개소대의 인간미없는 부하들을 보고 나는 단숨에 그가 강시술사임을 간파했다.

"어디보자. 어디보자. 생각 이상으로 내공이 고강한 고수가 있었던 모양이네. 그 산사태를 내공의 힘으로 막아내다니 말이야. 근데 그런 고수가 있으면 뭐해? 조금이라도 내공을 분산하면 돌무더기에 깔려 죽을텐데. 케케케케케케켘. 하여튼 정파놈들은 지 잘났다고 깝치다가 이렇게 함정에 빠져서 쪽도 못써버고 쳐발린다니까. 그래놓고 사흉신교가 비겁하니 어쩌느니 아이구 시끄러워라."

"어이 거기 난쟁이 똥자루 너 사흉신교 소속이냐?"

"엣헴. 그렇다. 이 몸이야말로 젊은 나이에 교내서열 10위에 올라 최연소 흉마십존을 달성한 그 이름도 찬란한 도올탄님이시다."

"교내서열 10위? 그건 도올명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그새 교내서열이 바뀐건가?"

"흥! 도올명 그 자식은 임무를 실패한 죄로 단짝인 도철광과 함께 뇌옥에 갇힌지 오래야. 고아출신놈들이 깝치는게 맘에 안들었는데 아주 잘된 일이지. 케케케케케케켘. 아, 아니 잠깐 네가 어떻게 도올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거지?"

"시끄럽고 그러면 도올명, 도철광과 함께 다니던 궁기련이란 여자는 어떻게 됬지?"

"그런거 마, 말해줄까 보냐!"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넌 지금까지 겪어본적 없는 고통을 받으며 죽는다. 그냥 죽고싶으면 빨리 말해."

"뭐, 뭐 저딴 녀석이 다있어! 내가 어부지리로 흉마십존의 일원이 됬다고 생각해서 그런 모양인데 그전에도 나는 교내서열 12위였다고! 너 임마 12위면 팔륜오객과 맞먹는..."

"도올탄님 저런 녀석과 더 이상 말섞을것 없이 역천혈강시들로 단숨에 쓸어 버리죠. 최대한 빨리 학생들의 신병을 제압해 데려오라는 궁기수란님의 명이 있지않았습니까?"

궁기수란? 나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뒷통수를 맞은듯한 충격과 함께 어느 인물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새로이 팔륜학관의 독공담당 교사로 취임했다는 독고수란 선생. 눈물점이 매력적인 그녀가 사실은 사흉신교 소속이였다고? 그것도 강시술사가 압존법을 사용한걸 보면 그녀 또한 흉마십존의 일원이며 도올탄보다 윗서열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봐 어린세랑 팔륜성의 팔륜함대는 도대체 경계를 어떻게 서기에 사흉신교놈들이 이렇게 대놓고 돌아다니는 거냐?"

"팔륜함대의 경계는... 완벽합니다. 무려 천여개의 정찰위성을 항시 가동해서 쥐새끼 한마리도 몰래 팔륜성에 잠입할 수 없게 감시중이죠. 하지만 사흉신교 세력이 팔륜성내에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것 또한 사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지금 경계를 담당하고 있는 청룡문이 사흉신교와 내통을 하고 있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최악의 경우..."

"이것들이 최연소 흉마십존 도올탄님을 앞에두고 어디서 사담을 나누고 있어? 니들 앞에 놓인 이 역천혈강시의 존재 자체가 너희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다음 따위는 없다 이 말이야. 그럼 도오오오오오오올격!!!"

나는 학생들을 구할때 같이 챙겼던 미노타우르스 좀비 소대를 선발대로 내세웠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무인들이 강시술사의 지휘아래 좀비들과 격돌했다. 학생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킬때까지의 시간벌이는 될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였다.

역천혈강시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그들은 언데드 주제에 핏빛검기를 뿌리며 미노타우르스 좀비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목과 팔이 짤려도 엉금엉금 기어서 싸우던 녀석들이였지만 갈기갈기 뻣친 핏빛검기 앞에선 기본이 10분할이다 보니 일격에 전투불능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푸스카가 거리를 벌리며 원거리 공격을 펼쳤지만 상대도 언데드 인것은 마찬가지. 비수가 급소에 꽂혔다고 해서 주춤할 놈들이 아니였다. 어쩔 수 없이 푸스카에게 퇴각명령을 내린 나는 단일개체로 Ex등급의 전투력을 지닌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을 소환하기로 했다.

산사태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고도 몇 만이나 되는 이매망량군이 남아 있었지만 팔륜성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걸 깨달은 이상 가능한 이매망량군의 손실은 피하고 싶었다. 십만 이매망량군을 부리게 된건 좋았지만 공동묘지가 아니면 병력손실을 메꾸기 어려워졌으니 그렇다고 일부러 학생들을 죽여서 그들의 영혼을 부릴 순 없지않겠는가?

흑단관구(黑檀棺柩)에 잠들었던

월영공(Moon Shadow) 듀리스

묘지기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현현(顯現)하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