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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아야사가 너무나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동안 하도 막가파식 행동을 일삼다보니 세상이 뒤집혀도 내가 주지육림만 탐할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이참나 나를 뭘로보고. 나는 과외선생님이 내준 숙제로 찝어준 문제가 있으면 최소한 그건 다풀고 난 다음에 과외선생님의 팬티를 벗기는 타입이였다.
"그리고 다음 안 또한 하희빈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만 최근 백월교에서 크로스데일 한국지부에 대한 사찰을 요구해왔습니다. 정부측 사찰은 적절한 로비로 완전히 무마시켰습니다만 이번에 새로 생긴 VOT 온라인 관련 법안덕분에 백월교에 VOT의 이적과 관련된 사건에 한해서 독자적 수사권이 생긴 모양입니다.
계속해서 기업 기밀 유출을 핑계로 미루고 있었습니다만 그것도 슬슬 한계인지라."
"아니 그냥 보통 애들보다 좀 더 큰 멧돼지 몇마리 키우는것 같다가 더럽게 귀찮게 구네. 알았어. 안그래도 한번쯤은 하희빈을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우리 아기고양이집에는 얼씬도 하지말라고 언질해둘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일전에 맡기신 SSS의 싸이킥 능력 훈련프로그램을 VOT 온라인 접속 캡슐과 연동해서 사용한 결과 제가 어떤 초능력을 획득한것 같습니다. 사실 초능력이라고 하기도 뭐한 능력이지만..."
"오오 그래? 그래서 싸이킥 능력의 명칭은? VOT 온라인의 레벨은 얼마나 올렸고?"
아야사가 싸이킥 능력을 각성하다니 그야말로 거스름돈을 바꾸기 위해 샀던 복권이 당첨된 꼴이라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영혼의 표식이 새겨진 언데드 수하는 아니였지만 지구에서 유일하게 믿을만한 노예로 낙점한 아야사의 전력이 강해진다는건 여러모로 환영할 일이였다.
"일단 싸이킥 능력의 이름은 천리청입니다."
"천리청이라 그렇다면 400km 밖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게됬다라는건가?"
"아뇨. 정말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렸을때 발휘해도 유효거리가 십리도 채 안됩니다."
"그것만 해도 어디야. 축하해 아야사. 한발자국 더 VOT의 이적에 다가선것을."
"그리고 레벨은 아직 1입니다. 싸이킥 훈련 프로그램의 진행에만 집중했던터라 사냥을 할 틈도 없었습니다만 프로그램의 메뉴얼에 싸이킥 능력을 발현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레벨 1이라는 통계까지 있어 섣불리 레벨을 올리기가 겁나더군요. 자세한건 저도 연구를 해봐야 알겠습니다만 SSS 에서는 아바타에게 한정된 잠재값이 존재해서 레벨을 올려 스텟이 올라갈때마다 그 잠재값이 소모된다고 가정한 모양입니다.
그때문에 오히려 레벨 1000인 유저가 싸이킥 능력을 발현하기 어렵다는군요. 엔지 민슨씨가 그탓에 오히려 밀러보다 싸이킥 능력의 발전속도가 느리다는 후문입니다. 무려 최근에는 천외천의 지위를 획득한 엔지 민슨씨가요."
"뭐? 그 농담따먹기 좋아하는 아저씨가 천외천이 됬다고!?"
도엔버가 아야사의 블랙 플라워 해독약을 노린 사건에서 인연을 맺게된 SSS(Special Sequrity Service)의 요원 엔지 민슨. 본래 오지 탐험 전문 기자였다는 그는 천외천의 이명은 없었지만 VOT(Vaccine Of Things) 방방 곳곳을 조사하는걸 워낙 좋아해 유저들로부터 위대한 탐험가라는 칭호로 통했다.
그러나 탐험가라는 직업도 어느정도 전투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탐사불가 지역이 많아 쉽지않은 일이였다. 그래서 엔지 민슨의 재목을 천외천 유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쌓인 짬밥이 거름이 되어 결실을 맺었다라는걸까?
아니면 그동안 내가 죽인 천외천 유저들 때문에 생긴 결원을 채우고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디보자 그 동안 나때문에 죽은 천외천 유저가 도엔버의 호위역이였던 아이언 가고일, 매드알케미스트 블루아주 크로스데일, 건스미스 율리시안 헉스포드, 십이지천의 형제 9명까지 합하면 12명인가...
확실히 그 정도 인원이 단기간에 죽었다면 엔지 민슨이 천외천으로 치고 올라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비록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것은 아니였지만 VOT 온라인 오픈 초기부터 기자일을 때려치고 게임에 몰두했던 올드유저라고 하니까.
"그래서 엔지 민슨 그 아저씨가 받은 천외천의 이명은?"
"사우전드 퀘스트라더군요. 워낙 VOT 온라인 세계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별의별 퀘스트를 다 수행하셨다고 하니 엔지씨에게 이만큼 어울리는 이명도 없을겁니다."
"아니 그런데 그런 중요한 사실을 너한테 막 떠벌리디?"
"엔지씨가 VOT 온라인 세계의 탐험은 물론 천외천 유저들의 신상을 조사한다는 이야기는 해드린적이 있지요? 엔지씨는 본인이 천외천 유저로 판명받은 순간 그 사실을 기사화했습니다. 아마 SSS와도 협의하지않고 돌발적으로 그런 행동을 벌인것 같은데 역시 엔지씨답다고 할까요."
"뭐 난징성 대재난 이후 천외천 유저의 의미가 단순한 게임 폐인에서 기적을 뿌리고 다니는 산타로 변했으니까 일부로 그 사실을 노출했을지도 모르지. 생각해보면 몸값을 올릴 절호의 타이밍 아니겠어? 어제 인터넷을 보니까 대기업은 말할것 도 없고 어중이떠중이 기업들까지 나서서 천외천 유저 특별 채용 공고를 내더만."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겠군요. 어쨌든 제가 보고드릴 사안은 여기까지인것 같습니... 아 맞다! 일전에 부탁하신 최신형 VOT 온라인 접속 캡슐이 도착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내가 들고가지."
무게가 족히 쌀 두가마니에 달하는 최신형 VOT 온라인 접속 캡슐을 마치 두루마리 화장지 세트를 들고가겠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아야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난징성 대재난이 벌어진 날 분명히 영빈관에 내가 머물고 있었다는걸 알면서도 아야사는 그 무엇도 물어오지 않았다.
VOT 온라인을 단순히 게임으로만 알고있는 우레조차 내게 그때 일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적당히 얼머부리느라 혼났는데 말이지. VOT의 진실에 어느정도 발을 들인 아야사라면 내 정체가 아크리퍼라는 것까지는 모른다해도 일반 천외천 유저인 키메라 워리어가 아닌 북두십성의 일원이라는 것까지 어렵지않게 유추해냈을터.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중하는걸까? 그렇다면 확실히 아야사는 현명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아야사에게 모든 전말을 이야기 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현재 밀린 숙제가 너무 많아 그런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내게 주어진 숙제중 단연코 최우선순위라고 할 수 있는 엔도미야와의 협상은 그먀말로 나는 물론 지구의 미래까지 달린 운명의 한판 승부였다. 크로스데일 한국 지부의 경비실에서 접속캡슐을 인계받은 나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이매망량을 타고 기야스함에 올랐다. 그럼 시작해볼까?
* * * *
"잘 알아들었지, 기야스? 조금이라도 내 몸에 이상이 생기면 접속 캡슐의 전원을 뽑아버려."
-함장령 수리했습니다. 함내 안전 프로토콜에 따라 함장의 바이오 리듬의 표준편차가 3.14를 넘어선 순간을 조건분기로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겼음을 판별하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최신형 VOT 온라인 접속캡슐을 기야스함 내의 전원과 연결시킨 나는 실로 오랜만에 접속캡슐안에 안착했다. 이전에 자취방에서 쓰던 모델과 비교도 안될정도의 안락함에 다 잊어버리고 이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러나 언제 다시 퀼레뮤츠같은 괴물이 나를 잡으러 지구로 올지 모르는 지금 쉬고 있을 틈따윈 없었다. 스스로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것도 중요하겠지만 내 목숨이 위협받는 근본적인 원인을 뿌리뽑아야만 안심하고 계집질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익숙한 조작법을 따라 접속준비를 마친 나는 일전에 아바타가 VOT 온라인의 세계를 탈출해 수왕성에서 로그아웃을 했을때와는 달리, '이미 다른 유저에의해 계정이 점유되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했다. 역시 이렇게 되는건가? 나는 심호흡을 한번하고 조심스럽게 캐릭터창을 클릭했다.
[옥사건(Lv.1000)의 상태창]
-생명체를 쇠하게 만드는 음에너지 때문에 무력 랭크가 한단계 하락합니다.
-이미 1000레벨을 달성한 까닭에 더 이상 레벨업을 할 수 가 없습니다.
무력: F(0/16)
마력: B(0/128)
영력: A+++(384/512)
스텟포인트: 0
이것은 분명 내가 얼티밋 언데드 폼을 완성하기 전에 사용했던 더미 아바타임이 분명했다. 본체나 진퉁 아바타에게는 없는 레벨이 바로 그 증거. 용린혁 가주가 진퉁 아바타에 연결된 VOT 시스템의 제어망을 끊고 더미 아바타에 재연결 했을때만해도 이녀석을 다시 보게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거 참.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지식을 긁어 모은 나는 이 더미 아바타에 엔도미야가 아바타의 제어를 위해 심어둔 폭탄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물론 VOT 온라인에서 아바타가 죽는다 한들 본체가 죽는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실을 기억해서 나쁠건 없었다. 그럼 접속해볼까?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암전된 시야가 밝아지면서 확인한 공간은 일단 용린혁 어르신이 계셨던 용린객잔은 아니였다.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정도로 맨들맨들한 대리석 감옥이 내 더미 아바타를 가두고 있었다. 사실 눈앞의 쇠창살만 아니면 성스러운 신전이라고 착각했으리라.
흰 대리석 타일에 티한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뭐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이런 전개인가? 이 더미 아바타에 귀속된 이매망량은 단 한기도 존재하지 않았고 이 신전 감옥의 성스러운 기운때문인지 지나가는 망령 한기조차 보이질 않아 나는 대리석 바닥에 드러누울 수 밖에 없었다.
지구의 본체보다 약해빠진 F랭크의 무력, 즉 일반인 수준의 완력으로 뭘 할 수 있겠는가? 어디 떨어지는 나뭇잎에 맞아죽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게 한숨을 푹푹쉬며 이대로 잠이나 한숨 잘까 고민하던 나는 건너편 감옥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무거운 눈꺼플을 들어올릴 수 밖에 없었다.
"혹시 거기 옥사건군 자네인가?"
"이 목소리는 용린혁 가주님이십니까?"
"허허허. 내 혹시나 싶어서 귀식대법을 해제하고 일어나 봤더니 역시 자네였군. 이렇게 더미 아바타에 접속한것을 보면 자네도 대충 사정을 알고있는듯 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엔도미야가 무슨 제안을 하든 그것을 받아들이게나."
"그건 조금 곤란할것 같습니다. 용린혁 가주님."
"그게 무슨 소리인가? 분명 여신칼날대의 집행자가 자네의 행성에 파견됬을터인데 서로 사전에 협의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VOT 온라인에 접속했단 말인가?"
"아 그 퀼레뮤츤지 켤레뮤츤지 하는 깡통로봇은 제가 고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장기판위의 장기말쯤으로 여기는 엔도미야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 제 힘으로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야를 당해낼 수 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최소한 동등한 조건에서 협상테이블을 마련해볼 생각입니다."
"이런이런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구만. 이렇게 되고보니 자네를 용린검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이 미안해지는군. 내가 아니였다면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을것을."
"그런 걱정은 하지않으셔도 됩니다. VOT 시스템을 각성한 이후로 저는 제 욕망에 솔직해지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덕분에 그전까지의 삶은 가짜라고 생각될만큼 짜릿한 시간을 보냈으니 엔도미야가 여신칼날대 전원을 출격해 저를 척살하려해도 저는 용린혁 가주님을 원망하지 않을겁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냥 당해주겠다는건 아니고요 최소한 두서넛은 같이 저승으로 데려가야죠."
건너편 창살너머로 용린혁 가주가 침통한 표정을 지은채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내게 미안한 감정이 가시지않은 모양이였지만 내가 용린혁 가주에게 토해낸 말들은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였다.
사회적으로 약속한 법률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눈앞의 적은 쳐죽였으며 쌔끈한 여성이 있으면 일단 가랑이부터 벌리고 보았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막무가내의 삶이 내 영혼을 해방시켜주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두손에 적의 피를 묻히고 좆대가리를 보지속으로 들이밀고 싶다면 지금 엔도미야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그 순간 내 영혼은 다시 속박당할 것이고 죽는 그날까지 머리위에 초월 인터페이스라는 하늘을 두고 살아야겠지.
그런것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학교라는 시스템, 사회라는 시스템, 교우관계라는 시스템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는건 25세 이전의 삶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내 각오가 전해진 것일까? 신전 감옥의 복도끝에서부터 열쇠더미를 찰캉거렸던 간수로 추정되는 이의 그림자가 눈앞에 길게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