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5 / 0316 ----------------------------------------------
vol.5 Oxogan The Twelve Sky
아무리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망아지라 해도 제 어미앞에서는 얌전해지는 법. 나는 순순히 GFT(Genetic Force Trooper)를 따라 수도방위본부에 입성했다. 그리고 무려 한강철 소령이 직접 타준 커피를 받아들고 엄마와 대면하게 되었으니,
부시시한 머리카락에 새끼손가락만한 안경테. 엄마는 여전히 눈꼽만큼도 외양에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후르륵. 커커컥커컼! 관찰을 끝내고 아무 생각없이 커피를 들이킨 나는 머리가 띵할정도의 단맛에 토악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독할 정도의 단맛 취향도 변하지 않은건가?
아니 그것보다 한강철 소령 이 자식은 무슨 근거로 엄마와 내 입맛이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외양적인 부분에서 유사점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미뢰세포까지 유전되지는 않았단 말이다! 이 자식 내가 GFT를 똥개새끼들이라고 지칭한것에 대한 복수를 한것이 틀림없어.
"잘 지냈냐?라는 질문은 조금 뻔뻔하려나. 아들에게 터무늬없이 무심한 엄마였으니까."
"하아! 자기가 반쪽짜리 엄마였다는걸 알긴 했군요."
"미안. 이제와서 사과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육아 때문에 내 일을 포기할 순 없었어. 그리고 고마워. 그저 연구실 한쪽에 방치했을뿐인데 이렇게 잘 자라줘서. 그런데 뒤늦게 중2병이 온건 역시 엄마의 정이 부족해서였던걸까?"
"시끄러워요! 어디서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용어로 날 놀려먹고 싶은 모양인데. 중2병은 있지도 않은 힘이 자신한테 있다고 믿는 정신병이고 나는 충분한 힘이 있으니까 그걸 행사하는것 뿐이라고요."
"그 말은 우리 아들도 천외천 유저중의 한명이라는걸로 받아들여도 될까?"
"그건...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나는 김여령 여사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나는걸 보고 그녀가 유도심문을 했음을 눈치챘다. 역시 겉모습은 어수룩해 보일지 몰라도 지능 하나만큼은 생명공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우던 엄마가 어디 가겠는가.
물론 그렇다고해서 엄마를 못믿는건 아니였다. 세상천지 믿을 사람 하나 없다지만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신분까지 의심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엄마가 몸을 담고 있는것으로 추정되는 GFT까지 믿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손패를 숨기기로 했다.
"뭐 내 유전자를 받았으니까 어느분야를 가든 한가닥하는게 당연하지. 그러면 케루빔에 실었던 네 논문인 심근세포 분석을 통한 피부재생력 강화도 VOTO에서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썼던거겠네."
"왜요? 청출어람할까봐 질투나요?"
"청출어람? 하하하. 아들 이론과 실제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는거야. 고작 논문 하나 썼다고 기고만장해 하면 안돼지."
"케루빔에 수십편씩 논문을 올린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거겟죠. 그런데 그러는 엄마는 어떤 실제 결과물을 내놓으셨는지?"
"오면서 충분히 보지 않았나?"
"뭘 봤다는거에요? 이 수도방위본부는 아무리 봐도 기계공학과 컴퓨터공학 그리고 건축공학의 트리플 악셀인데요? 생명공학이 낄 자리따윈..."
"GFT. 제네틱 포스 트루퍼 그게 내 작품이야. 소총탄 정도는 팅겨내는 방탄피부와 10m 높이 정도는 가볍게 뛰어내려 착지할 수 있는 강화근섬유를 지닌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지."
엄마의 말에는 자신감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아무리 가시남자 즉 데몬 타투너가 전투경험이 일천하다해도 일반병사가 천외천 유저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유전자 강화 병사였던가.
그러고보면 도엔버의 호위역을 자청했다가 어이없이 내게 죽임을 당한 아이언가고일도 방탄피부를 지니고 있었지. 천외천들의 특기가 일반병사의 기본능력으로 내려오다니 세상이 변하고 있긴 한 모양이다.
"인간의 유전자조작은 국제조약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아요?"
"뉴트리아X같은 괴물이 튀어나오는 시대에 그 딴 조약이 무슨소용이람."
"제가 봤을때는 헬기에서 낙하산타고 뛰어내리던데."
"아직까지는 대외적으로 공개되선 안되는 부대니까 그렇지.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맨몸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고. 이제 어머니의 위대함을 좀 알거같아?"
"예, 예.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죠. 그런데 도대체 정부는 언제까지 VOTO에 관련된 일을 숨길 생각인거죠?"
"새로운 법과 제도가 마련될때까지. 아노미 현상이라고 너도 들어봤겠지. 세상이 변하는 만큼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혼란이 야기된다. 정부라고 해서 숨기고 싶어서 숨기는게 아니야. 새 술을 담기 위한 새 부대를 짜느라 늦어지는것 뿐이다. 매스컴에선 연일 정부의 무능함을 탓하고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할건 하고 있어.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이 너무 잦아서 문제지. 아무튼 곧 정식공표는 물론 네가 좋아할만한 학교가 나올거다."
"예? 학교는 무슨 학교요. 올해 화랑대 졸업하면 끝이구만. 대학원따윈 갈생각 없다고요."
"그런 대학말고 소위 능력자 학원이라는게 만들어질거야. 어때? 왼손이 막 꿈틀거리지않아?"
두근거리기는 개뿔! 라이트 노벨도 아니고 정부에서 능력자 학원을 만든다라는걸 액면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일순 없었다. 분명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서 이적의 힘을 손에 넣은 사람들을 수면밖으로 끌어낸 다음 이용해 먹으려는 거겠지.
"글쌔요. 저는 딱히 흥미없네요. 더 이상 할말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한강철 소령한테는 커피 아~주 잘마셨다고 전해주세요."
"잠깐 아직 본론을 꺼내지 않았어."
"아 좀 진즉에 꺼내시지."
"너 엄마랑 같이 일해볼 생각없어?"
"없는데요."
"왠지 그럴것 같았지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니까 조금 섭섭하네. 실은 VOTO에 존재한다는 세계수의 뿌리세포라는걸 연구해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세계수가 있는 지역은 천외천 유저정도가 아니면 탐험이 불가능하대. 그래서 돈을 주고 천외천 유저를 고용도 해보려고 했는데 혼의 수장인 하희빈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한국의 천외천들을 전부다 스카우트 해갔더군.
"좋은 조건을 제시한 모양이죠. 애국심을 담보로 정부에 부려먹히는것보단 낫다고 봅니다."
"흐응. 오랜만에 아들덕 좀 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있을때 잘해라 뭐 그런 교훈을 주고 싶은거지? 배웅은 나가지 않을테지만 가기전에 우리 아들 한번 안아보자."
김여령 여사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려 두손을 펼쳐보였다. 마지못해 25살의 체면을 버리고 엄마의 품에 안기니 과연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에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떨어져산지 언 5년.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온기가 혈관을 타고 전신을 따듯하게 만든다.
"원하시면 머리카락 정도는 몇가닥이든 뽑아드릴 수 있는데 말이죠. 제가 탈모증상이 있는것도 아니고."
"어라 들켰나?"
"너무 티나서 그냥 넘어가려고해도 그럴 수 가 없네요. 어릴때 제가 한참 귀여울때도 단 한번을 안아주지 않던 사람이 다 큰 저를 안으려고 한것부터가 수상한거죠."
"흐음 어린 아이들은 그런것까지 기억하는구나. 나중에 재혼해서 또 아이를 낳으면 주의해야겠어."
"어떻게 손톱이라도 짤라 드릴까요?"
"욕심부려서 미안해, 아들. 그런데 오직 연구목적을 위해서 포응한건 아니야. 나이가 드니까 너무 외로워서 말이지. 그런데 연구에만 빠져살던 인생이다보니 주위를 둘러봐도 친구하나 없네? 남은거라곤 사고쳐서 낳은 아들 하나뿐."
"유년시절 외로운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엄마를 밀쳐내고 곧바로 면회실을 나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주체못할 뜨거운 감정이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건 패배자들의 습관일뿐. 금새 착잡한 기분을 떨쳐내고 수도방위본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중간에 보약 서약서를 작성할때를 제외하면 군인들은 모두 나에게 친절하게 굴었다. 한강철 소령이 엄마에게 직접 커피를 타줄때부터 알아봤지만 이곳에서의 지위가 제법 되는 모양이다. 아마 엄마는 내 유전자가 정상적이지 않다는건 알아도 트롤왕 리쿤다룬의 골수세포 유전자를 끝내 해독해 내지는 못하리라.
마치 중간 조각이 빠진 퍼즐처럼 변이술식 없이는 이형의 존재가 지닌 유전자를 융합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로 나오자 예비군 소집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제갈길을 제촉하고 있었다.
잠시 멈춰서 노을이 지기 시작한 거리를 감상하고 있노라니 나는 문득 아야사가 보고 싶어져 스마트폰을 꺼냈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아야사 말대로 예비군 소집에 응하지 말걸 그랬네. 그나마 다행인건 그런 나를 위로해줄 상대가 있다라는것.
-아야사 크로스데일입니다. 사건님이십니까?
"어 나야."
-뉴스에서 소집령을 받은 예비군들 중에 사상자가 나왔다는 속보가 있어 걱정했습니다. 어떻게 몸은 괜찮으신겁니까?
"뭐 조금 사단이 있었던건 맞지만 나는 쌩쌩해. 그것보다 산을 타느라 목에 먼지가 많이 끼어서 그런데 레스토랑 하나만 통채로 잡아놔. 오랜만에 고기 좀 썰어야겠어."
-바로 준비해놓겠습니다. 지금 위치는 어디시죠? 기사를 보내드릴까요?
"아니 됐어. 내가 호텔로 갈게."
* * * *
장발장이 봤다면 훔치고 싶을 정도로 매끈거리는 은식기가 돋보이는 강남 인근의 레스토랑. 아야사가 대한민국 곳곳에 인맥이라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는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한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TV에서도 나오는 쉐프님이 운영하는 곳이라던데 용캐 저녁시간에 홀 전체를 빌렸군.
"급히 예약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확실히 그럴것 같아. 내가 시키고도 미안할 지경이니까. 단순히 돈이 많다고 전세낼 수 있는 곳은 아닌것 같은데?"
"맞습니다. 이 곳에 쉐프님과는 조금 인연이 있어서요. 본신의 힘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과 의 인연을 쌓아라. 저만의 처세술이죠."
"레드위도우는 어떻게 지내고 있지?"
"레드위도우씨에게는 강남 근처에 작은 부띠끄를 열어드렸습니다. 아마 이곳과도 그리 멀지 않을 겁니다. 원단은 물론 재단까지 레드위도우씨가 직접하는 방식인데 상류층 여성들에게 제법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저도 레드위도우씨에게 그정도의 재능이 있을줄은 몰라 놀랐죠. 일단 한국에서 찬찬히 인지도를 쌓다가 나중에 밀라노까지 다리를 놓아드릴 생각입니다. 패션스쿨에 등록할 필요는 전혀 없을것 같고요."
"륭 사부는?"
"아 사건님의 무예스승이라고 소개했던 분 말이시군요. 상당히 무뚝뚝한 분이시라 처음에는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만 최근 본 마스크 보어의 전투 시뮬레이션에 발벗고 나서주셔서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 분도 상당히 범상치 않은 분이시더군요. 본 마스크 보어 준성체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이 하는데 놀랍게도 전투가 끝나고나면 본 마스크 보어에게 상처가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이지 사건님과 함께하는 동안 천외천 유저에 관한 인식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초인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자들이랄까."
"륭 사부에게 그 정도야 껌이지. 그건 그렇고 이 블루베리 소스 완전 맛있는데?"
"저도 참 좋아하는건데 사건님의 입맛에 맞아 다행입니다."
한우 안심 스테이크에 곁들어 먹으라고 나온 샐러드에 뿌려먹는 블루베리 소스가 여간 맛있는게 아니라, 나는 웨이터를 통해 블루베리 소스를 통채로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VVIP쯤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긴장한 웨이터가 1.5L 짜리 블루베리 소스 원액을 들고 왔다.
그걸 본 순간 피식 웃음이 나면서 기발한 생각이든 나는 웨이터에게 여자친구와 단둘이 할말이 있으니 홀을 떠나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손님도 웨이터도 없는 넓은 레스토랑에서 나와 아야사만 남게 됬고 나는 아야사가 보란듯이 바지를 벗은 다음 자지를 발기시켰다.
아야사가 와인을 마시다가 사래가 들려 콜록거렸지만 아랑곳 않고 자지에 블루베리 소스 원액을 빈틈없이 발라 푸른 마검을 완성시켰다. 어떻게 보면 공공장소라고 볼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의 성행위는 내게 한단계 높은 짜릿함을 선사해주겠지.
"아야사 테이블 밑에 들어가서 내 요리를 맛봐주겠어? 처음에는 블루베리 소스맛이 나다가 나중에 찐득찐득한 유백색의 시럽이 나오는 요리야."
"그, 그러니까 지금 레스토랑에서 페... 펠라치"
"반론은 허용치 않겠어. 나 꼭지 돌면 어떤놈인지 알지? 어서 빨리! 주인님이 만든 요리를 식게 만들셈이야?"
"아,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