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50화 (15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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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동이 틀때까지 계속된 폭풍같은 정사에 지쳐 잠이든 라라펠은 점심때가 되서야 일어나더니 양고기부터 찾았다. 먹성이야 여전했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져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양고기를 내 입에 직접 먹여주기까지 했다.

딴에는 몸을 섞은 정이 있어 살갑게 구는 모양인데 나는 웰던파였고 남이 뜯다남은 고기를 먹고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기에 거절했다. 그러자 라라펠은 엄청나게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반만 남은 고기를 마저 씹어먹는게 아닌가.

아이고 이 늑대아가씨야 세상사람이 모두 댁처럼 육회를 좋아하는게 아니에요. 나는 라라펠을 뒤로하고 후라이팬에서 겉표면이 바삭바삭하게 익어가고 있는 양고기를 뒤집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나를 잡아당기는 우악스러운 손길이 있었으니,

그 손길의 주인은 아니나 다를까 라라펠이였고 나를 안아들고 릭과 레서가 보란듯이 입맞춤을 해온다. 어젯밤의 섹스는 보통 요란했던게 아니였기에 이제와서 들키고 자시고 할것도 없지만 타액과 뒤섞여 밀려들어 오는 생고기 반죽이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우우웁. 누님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옥토끼, 이 누나한테 시집올래?"

"호오 드디어 라라가 가정을 이루는건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시집가기 싫다고 악을 쓴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는군."

"싫은데요. 왠지 누님한테 시집가면 평생 객지를 떠돌다가 고생만할것 같아서 말이죠."

"그러지말고 이 누나가 용병일 하면서 쌓아둔 돈이 꽤 있거든? 손에 물안묻히고 호의호식하면서 살게 해줄게."

"그 돈으로 초진동 빔샤벨이랑 아케인 윙슈트 산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건 아직 돈이 모잘라서 안돼."

"그래요? 잘됐네요. 한푼이라도 더 벌고 싶으면 저를 따라나오세요. 데드마스크의 시체는 회수했지만 그 부하들의 에너지 웨폰과 전함 크레센트의 잔해는 아직도 사막에 쓰레기처럼 널부러져있죠. 싸그리 긁어모으면 꽤 짭짤할겁니다."

나는 라라펠이 마우스 투 마우스로 전달한 생고기의 비릿함을 애써참으며 식도로 삼킨뒤 캠핑트럭을 빠져나왔다. 쌍둥이 태양이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대지에는 마치 헨델과 그레텔이 돌아가는 길을 빵조각으로 표시한것마냥 전함 크레센트의 잔해가 이어져 있었다.

이제는 기억속에만 남아있는 위압감 넘치던 전함 크레센트의 모습과 비교해보니 새삼 디파일러 킹의 힘이 어마무시하다는걸 체감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팔각의 침식자들중 대붕공자 카트랏슈처럼 인간에게 우호적인 디파일러 킹이나 퀸은 없을것이다.

보자마자 바퀴벌레를 본것마냥 짓이기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내 수준이 그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선 더 강해지는 수 밖에 없었으니, 나는 거인족 좀비 빅패밀리를 소환해 학익진 펼쳐 전함 크레센트의 잔해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망월해적단의 기본무장인 전기톱은 취급에 주의를 요하는 에너지 웨폰이라 라라펠 일행에게 맡길 생각이였다. 물론 전함 잔해는 내가 독식하는거고 전기톱만 십분지이정도의 수고비를 줄 생각이였다. 내 아이언 메이든이 아니면 몇천톤의 짐을 옮기는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니 당연한 처사였다.

"전기톱만 한쪽으로 모아주시고 난 다음에는 캠핑트럭에 탑승한채로 천천히 저를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일전에 방문했던 전생유적을 경유해서 사상누각까지 가이드라인을 만들 어야하니까요."

"하아? 옥토끼, 귀찮게 왜 그런짓을 하는거야?"

"그래야 전생유적 입장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먹을 수 있을테니까. 발견이후 30일이 지나기 전까지 전생유적의 위치는 공개되지 않잖아?"

"그냥 천체좌표를 메모해두면 되는거 아닌가?"

"백토성은 특유의 자기파때문에 천체좌표 오차가 심해서 불가능. 우리가 백신마켓에서 식량을 전이술 서비스로 주문하지 못한것도 그 이유였잖아. 레서, 운전하게 되면 내가 먼저 할게. 예전처럼 12시간씩 교대하자고."

"그래서 전생유적 입장권을 팔면 우리한테 얼마가 떨어지는건데?"

"한푼도 안드립니다. 싫으시면 먼저 가시던가요. 물론 릭이 말했듯이 백토성은 천체좌표 오차가 심해서 사상누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이이익!"

그렇게 수왕성보다 2배로 강한 때얏볕 아래에서 VP 벌기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술사나 무인이 강해지기 위해 통상적으로 취하는 수단으로 명상과 수련을 들 수 있겠지만 모름지기 단기간에 강해지는데에는 현질만한 것이 없었다.

아이언 메이든에 전함 크레센트의 잔해가 쌓이자 마음까지 풍요로워 지는 기분. 그 기분은 전생유적에 다다를때까지 이어졌다. 아바타라는 것을 몰라 방치했던 체어맨의 시체는 디파일러 폰이 타버린 살을 파먹기라도 했는지 하루사이에 백골화 되어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분혼수투를 꺼내 뼈다귀만 남은 데드마스크의 아바타에서 영혼위상전환용 구술을 회수한 나는 트럭에서 대기중인 라라펠 일행과 합류해 사상누각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4km마다 자이언트 윔 좀비 한마리를 꺼내 표지판처럼 박아두었으니,

언데드 회로를 내 영력망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전생유적과 사상누각을 잇는 가이드라인으로 삼기 위함이였다. 사실 천체좌표를 믿을 수 없는 이 백토성에서 내가 사상누각까지 향하는 길을 안내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이유도 바로 이것때문이였다.

*    *    *    *

교대로 운전석에 오르는 릭과 레서의 네비게이션겸 말동무가 되어 사막을 가로지르길 3일째 드디어 사상누각의 실루엣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지척에 달해 살펴보니 백색휘광으로 번쩍이는 성벽이나 산엄한 경비는 여전했으나 손님을 맞이하는 성문경비대장의 태도는 180도 바껴있었다.

"아이고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백토성의 기후가 익숙치않아 많이 힘드실텐데 여기 시원한 얼음물 한잔 드시면서 신원과 방문목적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것참 경비대장의 친절에 몸둘바를 모르겠군. 여기 100 VP를 줄테니 부하들과 같이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하게나."

"아이고 이러시면 안됩니다, 손님. 요새 사상누각에서 대대적으로 부폐척결감사가 있어서 1VP라도 받았다간 큰 사단이납니다."

"허허. 그런가? 열흘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지."

"그게 열흘전에 어떤 괴한이 제 전임자가 무례하게 굴었다고 사상누각과 멸망전을 벌이려 했답니다. 그 일이 계가 된게지요. 사상누각이 사라진다니 제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승진을 했고 다른 상인들도 사상누각의 달라진 모습에 호평을 하니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좋은게 좋은거지. 서로 날을 새워가며 얼굴 붉힐일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면 사담은 여기까지하고 엔츄라 여왕에게 옥사건 준위가 왔다고 전해주겠나?"

"예, 옛!?"

옥사건이라는 이름 석자를 듣자마자 성문경비대장의 안색이 파리해지더니 허겁지겁 목에 매단 뿔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오늘은 싸우러 온거 아니라니까. 손을 뻗어 그를 말리려했던 나는 뿔피리에서 비상호각처럼 날카로운 적신호가 아닌 환영의 빵빠레가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성문경비병력도 웅성거리기만 할뿐 나를 잡으러 올 기색은 아니였다. 그리고 얼마안가 사상누각의 대로에서 데저트 오스트릿에 탑승한 엔츄라 여왕의 서넛의 호위병력을 이끌고 나타났으니 뿔피리가 경계령을 뜻하는 신호가 아님을 다시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옥사건 준위 오랜만입니다. 전에 알려준 VOT 단말기 어드레스로 기별을 해주셨다면 미리 마중을 나왔을텐데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뇨, 아뇨. 이것참 너무 성대하게 맞아주시니 제가 다 멋쩍네요. 물론 제가 한짓이 있으니 그런거겠지만. 오늘은 엔츄라 여왕에게 사업차 할애기가 있어 왔습니다."

"비스트코인의 오행수중 한명인 휘르 행수의 여식은 무사히 구조하신겁니까?"

"예. 뭐 우여곡절이 이래저래 많긴했지만 지금 성문밖의 캠핑트럭에서 몸성히 잘지내고 있습니다. 같이 올까하다가 긴 여행에 지쳤는지 그냥 쉬고싶다고 하더군요. 엔츄라 여왕에게는 실버라군의 남은 임금만 잘 처리해달라고 말해달라면서."

"따지고보면 실버라군분들도 사상누각을 위해 디파일러 무리와 싸워준 용병분들이니 안으로 모셨으면 했습니다만 옥사건 준위를 너무 밖에 오래 새워두는것도 실례겠죠. 따라오세요. 급히 준비한 만찬이지만 입맛에 맞으실겁니다."

나는 흑전갈단중 한명이 끌고온 데저트 오스트릿에 올라타 엔츄라 여왕의 뒤를 쫓았다. 언데드 전투마 나이트메어를 타고가도 그만이였으나 이미 뿔피리때문에 대로변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튀고 싶진 않았다.

엔츄라 여왕을 따라 대로변을 한참 달려 도착한 사상누각의 궁전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곳으로, 빵모자처럼 생긴 지붕에 첨답이 달린 건물에 들어서니 시녀들의 연회준비가 한창이였다.

거기에 시녀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에 착석하니 흘리지 말라고 턱받침까지 손수 매주는게 아닌가? 귀빈대접을 해주니 고마운 일이였지만 대기업에서 블랙컨슈머를 손님으로 받아 어르고 달래는 느낌이 들어 마냥 좋아할 수 는 없었다.

"옥사건 준위의 사업이야기를 듣기전에 한가지 확인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우물에서 숭늉찾는 소리처럼 들릴 수 도 있겠습니다만 혹시 사막에서 전함을 만난적이 있습니까?"

"아니 엔츄라 여왕이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사실 제가 꺼내려던 사업이야기에 그 전함에 관련된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만..."

"역시 워프신호 감지 타이밍이 공교롭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전함은 망월해적단의 두목 데드마스크가 선장으로 있는 크레센트였을거고요."

"어떻게 수천km가 떨어진 사막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 잘아십니까? 혹시 엔츄라 여왕이 실은 망월해적단의 숨겨진 조력자라던가 그런건 아니겠지요. 사실 화이트 샌드 1kg에 1g을 정제할 수 있다는 화이트 티타늄이 전함 외벽에 빈틈없이 코팅되어 있었다는게 지금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조력자라... 잘못 짚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데드마스크는 사상누각의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전함의 외벽을 뒤덮을 정도라니 많이도 훔쳐갔군요.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흥분했군요. 데드마스크는 전매특허인 전이술로 백토성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며 화이트 샌드를 밀수한 악질 무법자였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 워프신호 관측소 건물을 지은것도 다 그 양반때문이였죠."

겉으로 봐서는 누가와도 엔츄라 여왕이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사령안으로 그녀의 영혼 속삭임을 엿들어 보았다. '그 빌어먹을 노인네가 과연 어떻게 됐을가?', 다행히도 그녀에게서 순수한 분노가 느껴진다.

돌다리를 두들겨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 이상없이 단단했다. 사실 VOT(Vaccine Of Things) 시스템으로 전 우주가 연결된 세상에서 무법자와 협력하는 행위는 너무나 리스크가 큰 행위였다. 곱추 환상술사 함비처럼 목숨을 저당잡힌 경우라면 모를까.

나는 엔츄라 여왕의 속사정을 알았으니 이번엔 내 차례라 여기고 데드마스크 즉 체어맨의 정체에 대해서 폭로하기 시작했다. 휘르 행수를 협박해 VP를 뜯어내기 위해 그가 벌인 협잡극의 기승전결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자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포커페이스야 말로 뛰어난 외교관의 필수덕목중 하나겠지만,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에서 시작되 백토성의 사막에서 종결을 고한 음모와 싸움을 전해듣고 천하의 엔츄라 여왕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함비라는 자의 신병은 제가 잡아두고 있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절대 해코지를 하려는건 아니고 결과적으로 체어맨 교수가 백토성으로 워프한 직후 실종된 꼴이니까요. 담금성의 상아탑에는 체어맨의 제자들이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얼렁뚱땅 넘어갈리가 없습니다. 체어맨과 데드마스크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그가 중요한 증인역할을 해줄 수 있겠죠."

"사실 저도 함비 그 친구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군요. 엔츄라 여왕에게 흔쾌히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그가 원한다면 사상누각에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게 돕겠습니다. 무법자의 팔에 달라붙어 VOT 단말기 셔틀로 살아가다니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면 아직 사업이야기에 관한 이야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것 같습니디만 음식이 식기전에 정리하는게 좋을것 같군요."

"그러고보니 사막에서는 양고기만 먹었던지라 입안이 좀 텁텁하군요. 저도 스튜가 따듯할때 먹고싶으니 핵심만 말하겠습니다. 제게 전생유적 입장권 7장, 데드마스크의 목, 망월해적단의 에너지 웨폰, 전함 크레센트의 잔해 이렇게 4가지 현물이 있습니다. 이걸 모두 엔츄라 여왕의 재량으로 현금 즉 VP로 땡겨주십쇼."

"1800만 VP"

"1900만 VP"

"저도 중개수수료는 챙겨야하지 않겠습니까? 1850만 VP"

"콜!"

"사실 어떻게보면 사상누각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데드마스크를 처리해주신점 이번 거래와 별개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여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하룻밤만이라도 극진히 대접하고자 하니 사양하지 말아주십쇼."

"그것도...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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