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45화 (14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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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성검 아발란체를 든 손에 좀처럼 힘이들어 가지 않는다. 수천, 수만번을 휘둘렀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그러나 눈앞에 동료 아니 적들은 단 한명도 죽지 않았다. 성검으로 성기사의 피를 볼 순 없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길 순 없었으니까.

"과연 마왕격살자의 솜씨는 명불허전이군. 그런데 그 실력이면 그냥 제 1 성기사단을 전멸시키고 성녀님과 함께 야반도주라도 하는게 낫지않나?"

"그런 짓을 했다간 마왕격살자가 아니라 마왕 그 자체가 되버리지 않겠는가? 제 1 성기사단장 트렉슐이여."

"마왕은 죽어서 영웅을 남기고 영웅은 죽어서 명예를 남기겠다라는 소린가?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거지만 보고있는 입장에서 답답하단 말이지."

"제 1 성기사단장 어서 마무리를 하지않고 뭐하고 있는게요? 상대는 지금 검을 드는것 조차 힘겨워 하고 있소. 지금을 놓치면 또 어떤 희생을 치뤄야할지... 커커컼"

"이봐 이교도심판관 한번만 더 나한테 그딴식으로 설교조로 지껄이면 네 놈 목부터 날려버리겠어. 안그래도 교황의 권력다툼에 휘말려서 열받아 죽겠는데 네놈따위가 감히 네게 명령질이냐? 그렇게 마무리가 하고 싶으면 네놈이 직접 하던지. 벌벌떨면서 내 뒤꽁무늬에 숨어있지만 말고 이 겁쟁이 새끼야."

제 1 성기사단장 트렉슐이 솥뚜껑같은 손으로 이교도심판관의 목을 틀어쥐고 무시무시한 살기를 폭사했다. 그는 마족전쟁 당시 수많은 마족을 손수 찢어버린 불세출의 몽크. 만약 내가 성검 아발란체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 마왕격살자의 칭호는 그에게 돌아갔으리라.

지난 30일 동안 성녀 누시아의 방문앞을 버틸 수 있었던 저변에는 트렉슐 그가 전면에 나서지 않은 덕택도 컸다. 그러나 그의 출정과 별개로 슬슬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의 한계가 오고 있었으니 성검 아발란체가 육체를 회복시키는 것도 한도초과라는 느낌이다.

"언젠가 에녹 너와는 어떤 형태로든 승부를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이런 지저분한 방식은 절대 아니였지만. 10분 주겠다. 네 성녀님과 작별인사라도 하고 와라. 그 뒤에 일합으로 승부를 보자."

"자... 잠깐 제 1 성기사단장 그런짓을 했다가 제 4 성기사단장이 성녀의 은총을 받고 회복해서 돌아오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니요? 흠흠. 절대 설교하려는게 아니라 그저 걱정이 되서 말해본것 뿐이니 주먹은 내려놓으시요."

"크크크크크. 성녀가 신성을 잃어버렸다고 국민들을 세뇌시킬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성녀의 웅혼한 신성력이 걱정되는 모양이지? 만전의 상태인 에녹과 싸울 수 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니 안심해라. 에녹의 몸둥어리는 이미 신성력으로 회복할 수 있는 육체의 임계치를 넘어섰어."

"아, 아무튼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면 교황님의 귀에 들어갈터이니 알아서 하시요."

"왜? 이번에는 나를 토사구팽하려고? 뭐 좋을대로 해. 하지만 너희들이 한가지 알아둬야할게 있어. 저 순둥이 에녹과 달리 나는 아주 사나운 사냥개라서 말이야. 내가 솥으로 들어가는 날 족히 성기사단 2개 부대는 전멸할 각오는 해야할거야. 그러면 지금부터 10분을 세겠다, 에녹. 이 10분을 어떻게 쓸지는 너의 몫이겠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감추며 검집에 성검 아발란체를 갈무리한 나는 트렉슐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성녀의 방으로 향했다. 마지막 저승 가는길에 누시아 그녀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지경이 되서까지 예의를 차릴 정신도 기력도 없었던지라 노크없이 열어재낀 문으로 한입도 되지 않은 식사들이 눈에 밟힌다. 지난 30일간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음인가. 방의 한켠에 자리한 아담한 기도실에서 두손을 마주잡고 서있는 그녀는 마치 동상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누시아, 누시아, 누시아, 누.. 시아. 한번쯤 이렇게 성녀님의 이름을 마음껏 불러보고 싶었드랬죠."

"마지막에 와서야 제 이름을 불러주시는군요, 에녹경. 마당앞의 손님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트랙슐경의 배려로 10분간의 휴식시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죽은 성기사는 제로고요. 아무리 그래도 성검으로 성기사의 피를 볼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마검을 들었다한들 에녹경이 사람을 벨 일은 없었을겁니다. 무고한 피를 보고싶어하지 않는 에녹경의 의념이 마검을 압도했을테니. 이런 상황에 염치없지만 마지막 명령을 내려도 되겠습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My highness."

"성검 아발란체에 성녀의 피를 묻혀주세요. 가능하다면 성국에서 가장 용감했던 성기사의 피와 같이."

"... 명을, 크흑!, 따.릅.니.다."

그녀에게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않겠다고 다짐했거늘 더 행복해졌어야할 그녀가 저주받을 운명에 삼켜진다는 생각에 새삼 울컥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이 극단적인 선택이 더 이상 그녀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성검 아발란체를 뽑아든 나는 성녀 누시아를 가슴깊이 안았다. 아발란체에게는 미안하기짝이 없는 일이 되겠군. 마왕을 무찌른 전설의 성검에서 성녀를 찌른 배덕한 성검이 됐으니 다 주인을 잘못 만난 탓이리라. 푸우우우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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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티밋 언데드 폼 제 2형 아크토두스가 그렇듯이 육체의 제어권을 다른 영혼석에 넘기는 빙의(Possession) 술식을 발동할때 나는 예의 영혼석에 봉인된 영혼과 교감하는 과정을 거친다. 아크토두스야 본래 먹이사슬 꼭대기에선 킹왕짱 쌘 포식자인지라,

그저 피식자를 사냥하는 통쾌한 기억뿐이였지만 뇌를 손상당했을때 긴급솔루션 차원에서 내 몸의 제어권을 갖도록 설계되어있는 에녹이란 녀석의 기억만 보면 암이 걸릴것 같았다. 만약 내가 에녹이였다면 납치, 암습, 선동 온갖 추잡한 짓이란 짓은 다써서 교황을 끌어내린 다음 누시아를 그 자리에 올렸을 것이다.

명예라고 하는 허상을 쫓아 히로인과 동반자살이라니 B급 새드무비의 주인공이나 할법한 짓거리다. 뭐 각설하고 실력만은 확실한 녀석이니까 뇌를 재생할때까지 무리없이 버텨줄 것이다. 일반신체부위와 달리 기억의 저장매체인 뇌는 재생시 아주 섬세한 기억조각모음이 필요해 족히 30분은 필요하리라.

뇌라고 하는 영혼의 그릇이 깨져 유체이탈 상태가 된 나는 이마에 순백의 영혼색이 박힌 나 자신의 육체를 관조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에녹이 육체 동기화 과정을 마쳤는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모래바닥에서 일어선다.

"마왕격살ㅈ... 아니 라스트템플러 에녹이 주인님을 뵙습니다."

'오냐,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고 네가 할일만 말해주마. 저기 보이는 이상한 가면을 쓴 아저씨로 부터 내 육체를 30분간 지키면 된다. 단, 한가지 주의할점. 이번 임무는 지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긴 하지만, 상대를 상처입히지 않겠다는 개좆같은 발상으로 상대를 벨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재미 없을 줄 알아.

그렇게 호구처럼 사는건 네 인생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누시아는 아주 잘먹고 잘사고 있으니까 걱정마. 이게 궁금했던거지? 지금부터는 전투에 집중해! 유체이탈 상태에서도 이매망량은 부릴 수 있으니까 엄호해주지.'

설마하니 뇌가 곤죽이된 상태에서도 내가 부활할 줄은 몰랐는지 체어맨은 가면밖으로 드러날 정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기회를 노려 에녹이 모래바닥을 박차고 체어맨에게 짓쳐든다. 같은 육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날렵한 움직임에 체어맨이 급히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린다.

똑같은 하드웨어라고 해도 소프트웨어의 수준이 남다르다 이건가? 평생 검의 길을 걸어온 에녹과 책속에 파묻혀 산 나의 체술격차가 얼마나 현격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였다. 곧이어 에녹의 현란한 체술이 체어맨을 압박했고 나 또한 놀고 있을 수 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매망량으로 체어맨을 넓게 포위해 들어갔다.

악령천인대의 추적은 집요했고 에녹의 발차기는 노련했다. 아무리 순간이동으로 피한다 한들 체어맨도 빈틈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악령천인대의 검격과 에녹의 발등이 체어맨의 갈비뼈를 아작내려는 순간 그의 몸이 흐릿해진다.

무슈의 매스 슬로우를 피했을때처럼 자신의 몸을 찰나의 시간동안 이공간 속으로 밀어넣었던 것이다.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틈을 타서 체어맨이 다시 품속에서 수저세트를 꺼내들었다. 지체없이 포크와 나이프를 순간이동시켜 이번에는 내 심장을 노려왔지만 은빛수저들은 허무하게 모래바닥을 구를뿐.

"어... 어떻게 내 텔레웨폰을 피한것이냐!"

'그러게 무슨 재주로 피한거냐, 에녹아?'

"어차피 적의 목적은 주인님의 육체 어딘가. 마력의 파동이 퍼져나가는 순간을 포착해서 회피기동을 했을뿐입니다. 어려울거 없는 일이죠."

'나는 반응도 못하고 당했는데 완전 억울하네.'

"그런데 주인님 혹시 사용할만한 검이 있습니까? 저자를 잡기 위해선 육탄전만으론 힘들것 같습니다."

'검이라면... 왼쪽 팔목 부분에서 검을 잡아당기는듯한 제스쳐를 취해봐.'

에녹이 내 명령에 따라 왼쪽 팔목을 검집삼아 검을 잡아당기자 용린검-TM2가 뽑혀져 나왔다. VOT 단말기의 일종으로 무기를 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 용린혁 가주의 선물이였다. 설마하니 이 검을 쓸날이 올줄은 몰랐지만 검이 있는 에녹과 없는 에녹은 천지차이일터.

"자네 움직임을 보니 갑자기 딴 사람이라도 된것같아. 뇌를 헤집어놨으니 무리도 아닌가? 머리를 다치고 난 뒤 지능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 있지만 운동능력이 좋아진다라... 이것참 알면알 수 록 신기한 친구로군."

"악의는 없다. 하지만 죽어라."

템플 스워드맨쉽 BB(Black Belt). 제 1 절 라이트닝펜서

에녹이 모래위로 미끌어지며 일점을 꿰뚫기위해 최적화된 움직임을 취했다. 도저히 내 몸둥어리로 재현된 검술이라고 상상이 가질 않는 찌르기가 체어맨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를 꿰뚫었다. 체어맨이 뒤늦게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렸지만 이미 가슴께에 피가 흥건하다.

뭐랄까 뇌가 재생은 물론 기억조각모음을 끝낼때가지 버티기 위해 에녹을 불러들였거늘 오히려 나보다 잘싸우고 있어 멋쩍기 그지없다. 검사와 술사의 반사신경과 동체시력 차이가 극명한 상성차이로 이어졌으니 우월한 재생력만이 능사가 아니였음이다.

"쿨럭쿨럭... 빌어먹을! 이런때를 대비해서 검사못지않은 육체훈련을 감수했던것인데 검의  궤적을 놓쳐버리다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마검사도 아니고 평범한 술사가 갑자기 초일류검사의 움직임을 보이다니 사기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군."

'댁의 텔레웨폰도 적잖이 사기거든? 에녹 빨리 죽여버려!'

"명을 받듭니다, My master."

"뭐라고 대구좀 해보지 그래? 검실력이 좋아져서 그런가 설검은 녹슬어버린겐... 쿠어억!"

에녹의 검끝이 다시한번 체어맨이라는 과녁으로 꽂혀들어갔다. 유체이탈 상태에서도 살점에 박혀들어간 금속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지는듯 하다. 이것으로 끝인가 싶었으나 역시 늙은 생강은 삼키고 나서도 코끝을 찡하게 울릴정도로 매웠으니,

일전에 내 언데드 크리쳐를 흡착시켰던 블랙홀을 생성해 에녹을 끌어당겼다. 검상을 입은채로 저런 고난이도의 술식을 전개할줄이야. 에녹이 급히 검을 회수한 뒤 물러서려 했지만 유리창처럼 깨져버린 공간이 모래동산채로 에녹의 다리를 잡아당겨 공간을 왜곡시켜 버렸다.

장난감 조립인형처럼 다리가 기이한 각도로 꺾여버린 에녹이였지만 내가 유체이탈 상태라한들 얼티밋 언데드 폼의 우월한 재생력이 어디가겠는가? 삽시간에 재생된 다리가 에녹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니 체어맨의 회심의 일격은 무위로 돌아갔음이다.

"쿨럭쿨럭... 처음 생각했던 그 느낌이 정답이였군. 자네는 그야말로 괴물이였던거야. 흐하하하하하하! 인정하지. 이번 전투에서 내가 패배했다는 사실을. 그런데 자네 혹시 그런 이야기 들어본적 있나? 최고위전이술사는 자신의 마력기관을 워프게이트화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야. 그런고로 미안하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옥사건 자네의 패배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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