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35화 (13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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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휘르 행수가 서있는 단상 뒤로 프로젝터 스크린이 내려오더니 후보자들이 지난 1년간 디파일러를 잡아들여 벌어들인 VP 합계가 막대그래프로 표시되기 시작했다. 뭐 이미 예상했지만 1위는 유일하게 100,000 VP를 돌파한 나였다.

그 뒤를 일면식이 없는 구조팀 후보자가 30,000 VP, 사자소년 준트록이 20,000 VP대를 기록하며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전이술 마에스트로 체어맨은 어디에 있을까하고 그래프를 쭉 살피는데 여간 찾기 어려운게 아니다.

0 VP라고...? 체어맨은 지난 1년간 단 한번도 디파일러랑 교전해본적이 없다는 소린데 상아탑 전이술 교수라고 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닌가? 그건 그렇고 밑에서 부터 찾았으면 바로 찾는건데 괜히 눈아프게 위에서부터 들여다봤네.

"보시는봐와 같이 옥사건 후보자가 압도적인 1등입니다. 옥사건 후보자는 첫번째 테스트에서 무리없이 보급품을 수납했고 두번째 테스트에서는 간발의 차로 1등을 했으니 사실상 더이상의 테스트는 무의미할것 같군요. 구조팀 최종후보자는 옥사건씨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후보자분들께서는 잠시 남아서 소정의 차비를 지급받으시고 원하신다면 무료숙소까지 안내해 드릴테니 착오없으시길 바랍니다."

지금이야 구조팀 후보자들이 도때기시장마냥 몰려 있어 그렇지 사실 DF등급 소유자라함은 어디서 한가락 한다는 증표였다. 하지만 테스트 과정이 너무나 명약관화했던지라 모두 군말없이 결과에 따른다. 다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을뿐.

나는 휘르 행수와 폭스 비서가 가벼운 인사치례와 함께 후보자들을 떠나보내는것을 기다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내게 전이술 마에스트로 체어맨이 스리슬쩍 다가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래?

"옥사건 군이라고 했나? 젊은 나이에 상당한 수련을 쌓은 모양이군."

"그러는 어르신은 젊었을때 탱자탱자 노신 모양입니다. 주력술식을 고작 몇십번 사용했다고 마력기관 과부하가 온걸보면."

"오호 그걸 눈치챈건가. 젊은 친구가 눈썰미까지 대단하구만. 그러게 말일세. 젊을때는 왜그리 마력축적을 게을리하고 주색잡기에 빠져살았는지.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마력기관이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을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하더군."

"흰소리는 그만하고 용건만 말하시죠."

"흠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이번 구조팀 선발 나에게 양보해줄 수 는 없는겐가? 내가 백신 메달이 탐나서 그런게 아니라 일전에 휘르 행수에게 받은 은혜를 갚고 싶어 그렇네. 휘르 행수에게 보상을 받으면 자네에게 그대로 건넬터이니 어찌안돼겠나?"

"제가 초면인 어르신을 어찌믿고 그런 백지수표를 받는단말입니까?"

"그렇다면 내 자네에게 보증금을 맡겨두고 내가 의뢰를 실패하거나 백신 메달을 자네에게 건네주지 않을때를 대비하는건 어떻겠나?"

"10,000,000 VP 그 이상, 그 이하도 받지 않겠습니다."

"...자네 천만 VP면 전함도 살 수 있다는걸 알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겐가? 흐음. 아무튼 알겠네. 자네의 의사가 그렇다면 내가 더 이상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지. 부디 라라펠양을 무사히 구해오길 바라겠네. 휘르 행수가 겉으로는 쌀쌀맞게 굴어도 속으로는 딸을 끔찍히 아끼는 사람이니."

체어맨이 내 어깨를 툭하고 한번치고는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갔다. 겉으로는 온화한 중년신사처럼 보였지만 그가 내 어깨를 만지는 순간 마치 천년묵은 구렁이가 온몸을 휘감는듯한 싸늘함이 전해져 테스트 1위라는 결과에 도취된 내 마음도 덩달아 식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반사적으로 사령안 제 2형 샤프마인드를 개안한 나는 체어맨이 전이술식을 발동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채 식지않은 마력기관의 흔적이 나를 섬칫하게 만들었다. 이 양반이 무슨짓거리를 한거지?

몸 이곳 저곳을 훑어봤지만 어떤 특별한 이상징후를 발견할 수 는 없었다. 하지만 체어맨이 내 어깨를 치면서 어떤 술식을 발동한건 분명한 사실이였고 왼팔뚝에 매달린 정체불명의 회색 정신망다발 즉 환상술사의 존재도 여전히 거슬린다.

"옥사건 후보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예? 문제라뇨?"

"아까부터 몸을 자꾸 매만지시길래 건강이라도 안좋으신건가 해서 말입니다. 백토성은 일교차가 50도씩 벌어지는 곳이라 가벼운 감기라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지요. 원한다면 비스트코인 소속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해드릴 수 도 있습니다만?"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저 재산이라곤 이 튼튼한 몸덩어리 하나뿐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후보자 선발과정이 끝난 다음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겨죠?"

"저와 30분정도 면담을 거친 후 바로 비스트코인의 탐사용 초계함을 타고 백토성으로 향할시게 될겁니다. 워프 게이트를 거치면 반나절만에 도착하실 수 있을테죠. 그러면 일단 저를 따오시죠. 폭시는 미리가서 내가 지시해둔 물건을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휘르 행수님."

폭시가 특유의 꼬리와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걸음걸이로 먼저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따라 휘르 행수와 함께 걷고 있으려니 휘르 행수가 폭시와 달리 탐스러운 은빛꼬리를 허리에 휘감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엉덩이 위로 꼬리를 살랑이는 행위가 기품있는 귀부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건가?

"옥사건군, 허리에 꼬리를 감은 암컷 수인의 엉덩이를 쳐다보는건 굉장한 실례입니다."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사실 어떤 문화권에서든 외간 여자의 엉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이 실례가 아닌 경우는 드물겠지만 나는 긁어 부스럼을 내지 않았다."옥사건 후보자가 타지에서 와서 그런지 수인들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것 같군요. 엉덩이를 쳐바봐도 되는건 꼬리를 흔드는 암컷 수인뿐입니다. 꼬리를 흔드는것은 구애의 몸짓로 수컷들에게 자신있으면 올라타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요."

"그... 그러면 폭시 비서도?"

"예, 그녀는 한참 물이오른 붉은여우일족의 수인으로 자신을 감당할 수컷을 찾고 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그녀보다 약해빠진 순둥이 수인 몇명만이 어설프게 그녀를 덮치려다 병원신세를 졌을뿐인지라... 밤을 뜬눈으로 지세운다고 하더군요. 하루라도 빨리 그녀가 걸맞는 짝을 찾아 욕구를 해소하고 예전의 밝은모습을 되찾길 학수고대하고 있답니다."

"뭐랄까 수인들은 성적으로 꽤 개방된 느낌이네요."

"일족의 개체수를 유지하는것을 물론 우수한 유전자를 계승하는 섹스를 폐쇄적으로 취급하는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요. 물론 요즘 젊은 암컷수인들이 강한 수컷의 유전자를 판별하고 계승하는 자신들의 숭고한 의무를 망각하고 어설픈 잡종들을 낳는 일에 관해선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서도 말이죠."

잡종이라는 단어를 발음할때 유난히 귀와 꼬리의 털을 곤두세우는듯한 휘르 행수가 우뚝 선 곳은 침실이 구비된 어느 숙소앞이였다. 폭시가 정체불명의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점검하면서 나와 휘르 행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사라니 완전 꺼리침한 느낌인데...

"설마 저한테 놓으려고 준비한 주사는 아니겠죠?"

"옥사건군은 눈치가 빠르군요."

"죄송하지만 정체도 모를 약물 주입하는 일을 올타구나 하고 허락할만큼 쉬운 남자가 아닙니다."

"저 약물의 정체는 한달정도 남자의 성기능을 억제하는 귀룡탕이라는 영약입니다."

"이번 의뢰 때려치도록 하겠습니다. 체어맨이라는 양반이 이번 의뢰를 그렇게 맡고싶어 하던데 지금이라도 한번 그 분한테 찾아가보시죠. 그 양반은 앞으로 쓸일이 없을지 몰라도 제 주니어는 아직 할일이 많단 말입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사정 설명을 충분히 해줄테니 잘들어보고 결정하세요. 제 딸 라라펠은 지금까지 혼기가 꽉차도록 밖으로 싸돌아다닐뿐 진득하게 남자를 만날 생각을 해본적이 없죠. 어미로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때에 비스트코인 상단의 대행수이신 그라트록님께서 혼담을 제안해왔답니다. 그분의 권세를 떠나서 황금사자의 핏줄은 수인족중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하는 고귀한 것.

은빛늑대 일족의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진정한 순혈은 제 딸 세대가 마지막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 세대를 어설픈 잡종으로 시작할 생각이 없습니다. 최강의 일족이라 불리우는 황금사자와 은빛늑대의 결합을 통해 수인족의 부흥을 이끌어나갈 기린아를 잉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번에 제 딸 라라펠을 구조하는 진정한 목적이였죠. 물론 어미로서 걱정하는 마음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제 딸이 명줄하나는 더럽게 질긴 년인지라 옥사건군도 실제로 만나보면 구조보다는 선보기 싫어하는 딸아이를 강제로 끌어내는 느낌을 받을겁니다."

사실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닌 내게 왠만한 약물은 제 효과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일시적이긴 하지만 고자가되는 영약이라니 꺼려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휘르 행수가 강제로 혹은 몰래 먹이려 한것도 아니고 차근차근 뒷배경을 설명하고 있었기에 나도 일단 잠자코 듣기로 했다.

"수인들한테는 핏줄이라는게 그렇게 중요한겁니까?"

"인간인 옥사건군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군요. 인간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그릴 수 있죠. 실제로 그 결과물로 옥사건군이나 전이술 마에스트로 체어맨같은 걸출한 DF등급의 술사들이 구조팀 선발과정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수인족의 경우 극단적으로 무와 술식의 재능밸런스 기울어져 있고 무의 기반이 되는 육체가 극단적으로 핏줄에 영향을 받습니다.

제 딸 라라펠은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실버라군이라는 용병 커뮤니티의 대장으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것도 개인의 노력보다는 은빛늑대 순혈종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 발두인과 동갑인 준트록 도련님이 말도안되는 신력을 발휘했던걸 옥사건군도 보셨을테고요. 과연 단순 노력으로 그 나이에 그런 힘을 지닐 수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발두인 함장의 경우는 어떻게 된겁니까? 어렸을때부터 함장으로서의 소양을 교육받은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

"발두인을 임신했을때 제 몸이 좋지 못했던 탓인지 그 아이는 태어났을때부터 몸이 약했죠. 본능적으로 육체파로 키워서는 안되겠다는걸 느꼈죠. 은빛늑대일족으로서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 이상의 공부를 해야했던겁니다."

"그렇다면 수인족을 이끌어나갈 기린아도 학구파로 키우면 되는거 아닙니까?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굳이 따님인 라라펠양을 강제로 결혼시킬 필요가 있는건지 저로선 의문이군요. 거기에 수인족이 이런 대규모 상단을 부흥시킬 수 있는 뒷배경에는 꼭 육체적인 힘이 전부가 아니였을것 같은데요."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에 도킹할때 거대한 짐을 거뜬히 들어올리는 수인족 일꾼들이 개미마냥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그들의 타고난 완력은 분명 적지않은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겠지. 하지만 상단이라함은 잘못된 결정한번으로 어마어마한 손실을 볼 수 있는 집단이고 용감하지만 무식한 지휘관이 빛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비스트코인 상단이 이렇게 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육체적인 힘은 약하지만 지혜로운 수인족들의 공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수인족은 유전자단위로 포식자와 피식자간의 위계질서가 박혀있다는 사실 알고계셨습니까? 한마디로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한들 피식자는 수인족들의 우두머리로서 적합하지 못합니다. 본능적으로 포식자를 상대로 움츠러들어 우두머리의 위엄을 세울 수 가 없지요.

그런 일이 반복되어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비스트코인 상단이 어찌될지 옥사건군도 모르지 않을거라 봅니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줄은 몰랐군요. 그런데 그게 제가 귀룡탕을 마셔야하는 배경과 어떤 상관이 있는겁니까?"

"수인족들이 성에 개방적이라고 해도 지도자급 자제간의 결혼 직전에 지저분한 염분이 나서야 위신이 서질 않으니까요."

"마치 제가 라라펠양을 덥치기라도 할것처럼 이야기하시는군요."

"아뇨. 그 반대입니다. 라라펠이 옥사건군을 덮칠까봐 두려워 이런 조치까지 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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