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30화 (13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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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우주여행이라는건 뭐랄까 굉장히 조용하네요."

-하하. 옥준위가 많이 심심한 모양이로군. 하지만 우주에서는 조용하다는 것이 곧 청신호라네. 혹시 우주괴수와 자웅을 겨룬다거나 하는것을 상상한건 아니겠지?

"아니 뭐 그런건 아닌데 파손된 함선잔해속에서 쓸만한 자원을 발견하는 소소한 이벤트정도는 기대했거든요."

-물론 우주를 여행하다보면 그런일이 아예 없는것은 아니네만 지금 실버사이드가 자동항법장치로 타고있는 이 항로는 우주항공 커뮤니티에서 지정해준 정규항로라네. 함선이 난파된다 한들 5시간 이내에 구조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지. 그리고 설사 난파된 함선에서 귀중한 자원을 발견한다한들 주인에게 되찾아주는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어떻게 보면 모두가 VOT 라는 커뮤니티로 묶인 동료이니 말일세.

"자원을 회수한 후에 주인에게 돌려줘도 상관없어요. 단지 모험속에서 보물을 찾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달까. 뭐 사실 도르칸 대위의 말이 정답이긴하죠. 우주에서는 조용한게 청신호다라는게."

실버사이드에 탑승해 수왕성을 떠난지 6시간째. 처음에는 우주밖에서 바라보는 수왕성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몰랐지만 그것도 잠깐. 한숨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한참이나 남은 워프게이트까지의 거리를 보고 나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디파일러의 위협을 몰아낼 수 있을정도로 발달된 행성의 경우 가시거리에 보일 정도로 워프게이트가 가까이 있다지만 수왕성은 행성중에서는 촌동네였던지라 어쩔 수 없단다. 우주항공 커뮤니티에서 지정한 정규항로가 이어져 있다는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할 일이랄까.

-나도 자네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네. 내가 아케인 유니온 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발두인 함장밑으로 들어간것도 다 모험심때문이였으니까. 그런데 막상 디파일러들과 첫실전을 치르고 나니까 도저히 함선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더군. 내가 직접 커스텀 제작한 아케인 쉴드로 무장하고 있었는데도 디파일러 폰들이 벌떼처럼 몰려오니 다리에 힘이 풀리는거야. 그러면에서 가끔 용린은리 소령이 부럽다네.

"은리사저가요?"

-혈혈단신으로 검하나 들고 디파일러를 도륙내는게 멋지지 않은가? 물론 자네도 DF등급의 술사이고 디파일러와의 싸움을 두려하지 않는 군인이라는걸 모르는건 아니네. 그런데 100년전쯤, 아직 내가 소년감성을 지니고있을때의 로망이랄까. 광선검 하나를 들고 우주괴수들과 싸우는 아케인 전사이야기가 왜 그렇게 심장을 떨리게 만들던지. 결국 아케인 전사가 아닌 그가 입을 장비를 만드는 박사가 됐네만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뭐 그것도 괜찮지 않나요? 저도 그런 전대물을 볼때면 주인공들이 입는 장비를 뚜딱만들어 단숨에 전력증강을 이루어내는 박사들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 텔레파시를 끝으로 도르칸 대위와 나는 하릴없이 각자의 좌석에서 빈둥대기 시작했다. 다른 선원들을 살펴보니 VOT단말기의 백신옵저버를 통해 영상을 감상하거나 함선의 단말기로 게임을 즐기는등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나 또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좀이 쑤셔 죽을것 같았으므로 데모닉 그리모어의 인쇄본을 인벤토리에서 꺼내들었다. 그러나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해 다시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으니 이게 다 저자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논 탓이다.

전공서를 공부할때처럼 어떤 논리적 단계의 흐름을 쫓아갈라치면 어느순간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같은 문구가 나와 흐름을 뚝 끊어버린다.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건지. 어디 절에라도 틀어박혀 면벽수련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무덤은 무(無)의 입구이자 유(有)의 입구이니 죽음의 장기를 계승하리라.'

"이게 무슨 중2병 돋는 소리냐고."

-옥준위 자네가 기대했던 이벤트는 아니 듯 싶지만 뭔가 별일이 생기긴 생긴 모양이네. 미확인 순양함급 함선에서 구조신호를 보내왔어. 지금 가시거리에 잡힐정도로 근접했네만 함선 쉴드도 발동하지 않고 표류중인걸 보면 전력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것 같군.

"우리가 꼭 도와줘야 하는겁니까? 그 우주항공 커뮤니티의 구조선이란 곳에 맡기면 되는게 아닐런지."

-함선 넘버링이 항공우주 커뮤니티의 항공편 리스트에 뜨지않는것을 보면 구조선 보험에도 들지 않았단 소리지. 함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전련 시스템 점검도 안하고 구조선 보험도 들지 않다니 무능하기 짝이없군. 나도 그냥 지나치고 싶네만 저기에 타고 있는 승무원들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잠깐 도킹해서 전력 시스템을 손좀 봐주고 오겠네.

"도르칸 중대장님 상대 함선에서 본함의 소속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구조받는 입장에서 깐깐하게 굴기는. 하긴 요새 무법자들의 해적질이 종종 보고되곤 하니까 무리도 아닌가? 실버스케일 커뮤니티 소속의 실버사이드함이라고 전하도록.

"상대 함선의 지휘부 오퍼레이터의 메시지 수신 확인해ㅆ..."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734/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541/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442/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399/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211/16)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함선내부가 지진이라도 난듯 흔들린다. 삐딱한 자세로 내 전용좌석에 누워있던 나는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전시상황이란건 단박에 눈치 챗지만 함선간의 교전은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서도 경험해본적이 없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감이 안잡힌다.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에 탑승해 주함포 피스메이커 제 1형을 사출해본 경험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인없는 스텔스 잠수함을 대상으로한 일방적인 기습에 불과했다. 그나마 도르칸 대위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승무원들을 타일러 회피기동에 돌입한 덕분에 샌드백이 되는 상황은 면한듯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구조신호로 위장한 무법자 해적선이였던 모양이네. 항공우주 커뮤니티가 지정한 정규항로에 저렇게 떡하니 해적선이 있을리가 없거늘. 앞으로 꽤나 소란스러워질걸세. 즉 우주여행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뜻이지.

"제가 함선전투에 대해 해박한건 아니지만 저쪽이 순양함이면 사실상 구축함인 저희에게 승산이 없는것 아닙니까?"

-승산만 없다 뿐인가. 저쪽에서 작정하고 우리를 격추시키려들면 활로를 찾는것도 쉽지 않은 일일세. 실버사이드는 내가 신경써서 쉴드부분을 손봤기 때문에 버티려고만 하면 1시간도 넘게 버틸 수 있네만 화력자체의 급이 달라 응전자체가 무의미하네. 그렇다고 보급선으로 설계된 실버사이드가 정찰선처럼 기동력이 좋은것도 아닌지라.

"도르칸 중대장님 상대 함선이 추가로 포문을 개방한탓인지 실버사이드의 메인 컴퓨터가 회피기동에 필요한 연산처리를 거부했습니다."

-전원 충격에 대비하라!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4.955/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4.821/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4.732/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4.699/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4.533/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4.408/16)

-실버사이드의 메인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4.313/16)

콰아아아앙!!! 콰과과과과광!!! 콰앙쾅쾅쾅!!!

다시한번 함선이 격렬하게 요동쳤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나는 꼴사나운 장면을 연출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함선간의 힘싸움에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것이 문제였다.

아군이 밀리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도울 수 없다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만약 상대편 함선내부로 침투할 수 만 있다면 깽판이라도 칠텐데 여기서 관망할 수 밖에 없단 말인가? 나는 정령화 상태로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오르시나를 호출했다.

"오르시나 혹시 지금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저 함선 내부의 수원으로 포탈을 열순없어?"

"불가능. 애시당초 이 함선 내부에도 수원이라고 부를만한 건덕지도 없는 인공물만 가득할뿐. 만약 물길이 이어져 있는곳이라면 포탈을 열 수 있겠지만 그런것도 아니잖아? 이런 상황이 있을까봐 엔도미아님이 용기병에게 안배해둔 함선이 기야스인것을 왜 지구에 두고온거야."

"본체와 아바타의 전력 밸런스 맞춰야했으니까. 막말로 지금 이 함선이 격추되어 우주미아가 된다해도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닌 아바타는 살아남을 수 있어. 하지만 본체는 그렇지못하니까. 저 도르칸 대위님 혹시 제가 저 함선에 침투할 수 있는 방법이 혹시 없겠습니까?"

-강습을 시도하겠다는 말인가? 본함에 강습용 초계함은 없네만 일인용 강습 텔레포터가 하나 있긴하네. 하지만 이걸 사용해서 침투한 순간 자네는 순양함급 함선내부에서 고립되어 버리네. 저 정도 함선이라면 함포뿐만 아니라 내부 경비병력도 만만치 않은건 당연한 일이고 지휘부의 오퍼레이터가 함선도어를 폐쇄한 뒤 산소공급을 차단하면 아무리 자네라도 손쓸도리가 없네.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저를 한번 믿어주시고 보내주십쇼.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 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주항공 커뮤니티의 구조선에 신고를 하긴 했네만 못해도 5시간은 걸릴것 같다고 하는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결국 자네에게 걸어볼 수 밖에 없겠어. 전용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게. 곧바로 출격시켜주겠네.

오르시나가 정령화 상태로 내 몸에 깃드는것을 확인한 나는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동여맷다. 무법자 해적나부랭이인지 뭔지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음이다. 일단 상대 함선 내부에 침입하기만 하면 그 자리에는 곧 지옥도가 펼쳐지리라.

안전벨트가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잠기자 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내 전용좌석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도르칸 대위도 시시각각 떨어지는 메인 쉴드 수치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거겠지. 레일을 타고 30초간 이동했을까?

텔레포트 룸으로 추정되는 공간에 도착한 나는 마음을 편히 먹고 전광판의 전력 게이지가 차오르는 것을 기다렸다. 딱 한명을 항성간 이동도 아니고 지근거리에 있는 함선내부로 텔레포트 시키는데 왠만한 발전소의 하루치 전력공급량인 30만kW가 소모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광판을 통해 확인 수 있었다.

전이술식의 힘이 아닌 과학의 힘만으로 텔레포트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더 놀라운걸지도라는 생각하는 찰나 몸이 붕뜨는 느낌과 함께 시계가 암전된다. 지독한 울렁거림을 느낌과 동시에 시계를 회복한 나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복도의 한가운데 서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텔레포트 반응을 느끼자마자 경계령을 울린건가?

"오르시나 지금부터 너와 함께하는 첫 실전이 펼쳐질것 같군. 어디 한번 혓바닥만큼이나 매서운 파도술식능력을 기대해보겠어."

"너나 잘하세요. 나한테 있어 파도술식은 펼친다는건 숨쉬는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거든?"

"그러면 일단 상대의 함선내부 경계병력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 파도술식으로 내 몸을 보호해줘."

"함선이 격추당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계약자를 보호하는건 보람이 없겠지만 일단 명령이니까 털끝하나 다치지 않게 만들어주지."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걸 보니 이 녀석들은 출입문을 폐쇄하고 공기주입을 차단하는 간접적 방식이 아닌 직접적인 요격을 택한 모양이다. 오르시나를 믿고 이매망량을 모두 공격용으로 전환한 나는 팽팽한 감각의 날을 세우며 적의 등장을 기다렸다.

복도의 양옆에서 출입문이 열리고 고성능 슈트와 에너지 웨폰으로 무장한 경비병력과 거미다리를 지닌 배틀로이드가 쏟아져 나온다. 이것참 데모닉 그리모어에서 습득한 악령군세를 시험해보기에 딱 좋은 상황이 아닌가?

"강습병에게 항복을 권고한다. 현재 너는 완벽하게 포위된 상태다. 항공우주 커뮤니티령에 따라 정당한 포로대우를 약속할테니 무의미한 저항으로 피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밑도끝도없이 선공때려놓고 항공우주 커뮤니티령은 찾고 나발이야! 좆이나 까잡수세요."

이매망량(魑魅魍魎) 제 2형 악령천인대(Expedition of the Evil Thou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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