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2 / 0316 ----------------------------------------------
vol.3 Oxogan The Rise Of Venom Dragon
밀러와 엔지는 아직 아야사가 완쾌된 상태라는걸 모르는 모양이다. 뭐 원래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한다고 지금도 내 발밑에서 부들부들거리는 도엔버가 저 대화를 들었다면 철썩같이 해독제가 자신의 유일한 구명줄이라고 믿게 되겠지. 썩은 구명줄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본래라면 고스트 놈들을 지옥끝까지 쫓아가서 한 놈도 남김없이 주살하는게 맞다.
하지만 도엔버라는 인질, 아야사라는 비전투인원을 데리고 추격을 하기엔 위험성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인원을 나누기엔 상대의 전력파악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우르사티한테서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을 하나 구입해오는 거였는데 말이다. 오르시나의 수원 포탈을 이용하면 전이술식 서비스 비용이 절감되니 백신마켓에서 구매하는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을텐데.
나는 아까부터 말이없는 도엔버를 땅바닥에서 일으켜세워 밀러가 있는쪽으로 보냈다. 심문이라면 남자에 한해서 나도 자신이 있었지만 특수요원의 심문은 어떤방식인지 견식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넘겨주었다.
"레드위도우 이 녀석 손발좀 묶어줘. 그리고 밀러씨는 일단 해독제의 위치랑 고스트놈들의 병력규모에 대해서 좀 심문해줘요. 그리고 도엔버 너는 순순히 정보를 부는게 좋을거야. 만약 밀러씨가 바톤을 넘겨서 내 차례가 오면 심문이 아니라 고문이 시작될거다."
"고문? 지금 고문이라고 했어? 천하의 도엔버가 발가벗겨진채로 여동생 앞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있을 수 밖에 없는 지금 이 상황이 내겐 최악의 고문이야. 여기서 더 이상 나쁠 수 없을정도로 최악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여동생한테 평소에 잘해줬어야지. 내게 아야사같은 여동생이 있었다면 별이라도 따다줬을거야. 그런데 오히려 여동생의 물건을 강제로 훔치기나 하다니. 이 이상 꼴사나워지기 싫으면 어서 해독제가 있는곳을 불어."
"오 역시 신은 공평한것 같아. 도엔버에게 부, 권력 그리고 영화배우 여자친구를 줬지만 조금 형편없는 소시지를 붙여줬군."
"흐흐흐흐흐흐흐흐. 그래 떠들 수 있을때, 실컷 떠들어라. 고스트놈들이 싸가지는 없어도 일처리는 확실한 편이란 말이지. 너희들은 이 자월도에 고립된.... 커억!"
밀러는 도엔버의 목과 갈비뼈부분을 선거유세띠모양으로 감싸더니 팔근육이 팽팽해질 정도로 짓누르기 시작했다. 과연 저런 서브미션기술이 심문에 효과적일까 의심하려던 찰나 도엔버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야사는 차마 도엔버가 고간을 만천하에 드러낸채로 고통에찬 비명을 지르는 꼴을 못보겠는지 고개를 돌렸다.
"내가 좋게 말하니까 호구로 보여? 내가 악력하나는 자신이 있어서말이야. 어디한번 갈비뼈가 폐를 압박하다못해 쪼그라들게 만들때까지 버틸 수 있으면 버텨봐."
"아악! 말할게, 말한다고! 내 차키에 있는 후레쉬 건전지 집어넣는곳에 있어."
"어린애도 아니고 정말 뻔한 곳에 숨겼군. 소지품 검사만 했어도 찾을 수 있었겠는걸. 이러면 심문한 보람이 없잖아."
"하아하아... 그러면 네놈이 심문할 보람이 있게 항문에라도 숨겨올걸 그랬나? 네놈이 게이같다는 소리다. 말귀를 못알아 쳐먹으니 욕을한 보람이 없... 커억!"
"밀러 해독제 찾았어. 그런데 이 차키 페라리 세르지오꺼 같은데? 새삼 우리가 거물이랑 얽혔다는게 실감이 나는군."
"엔지씨 빨리 아야사에게 갖다주세요. 신이시여 제발 늦지 않았기를."
나는 이제 가치가없는 해독제를 가지고 영화를 찍고있는 아야사일행을 뒤로하고 숲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너무 조용한게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이매망량 천인대를 전부 방패로 구체화시킨 뒤 전방위를 돌아가면서 주시했지만 열원은 감지되지 않았다. 인간에 비하자면 과장이 아니라 100배는 감각이 뛰어난 아라크네족의 시스트린이 잠자코 있는걸 보면 근처에는 엘리트 고스트가 없는게 맞겠지만 괜시리 불안해진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우회에서 돌아간 엘리트 고스트 3명도 마음에 걸리고 역시 은린선에서 괜히 적지않은 예산을 투자해 수십대의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을 운용하는게 아니였다. 세밀한 정찰은 디파일러들 처럼 돌격밖에 할줄 모르는 놈들하고 싸울때도 유용했으니 경험 많은 직업군인들과 교전을 펼칠때는 새삼 말할것도 없다. 나는 경계를 잠시 멈추고 얼추 상황이 정리된 아야사 일행을 일견했다.
여전히 독에 시달리는 척 하면서 해독제를 생명수처럼 들이키는 아야사의 연기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줘도 될 정도였다.
"아야사 이제는 좀 괜찮아?"
"살만해. 밀러 도와줘서 고마워."
"뭐 진짜 최고공헌자는 따로있는걸. 사건씨의 활약을 생각하면 감사인사를 받는게 민망해질 정도지."
"물론 사건님에게는 따로 감사인사를 전해야겠지만 밀러나 엔지씨에게도 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레드위도우양도 무거웠을텐데 불평않고 부축해줘서 고마워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제 손이 닿는 범위내에서 모두에게 보답하겠어요."
"걸출한 남자 동창 두명이 왜 아야사양에게 매달리는지 알겠군. 미인의 감사인사를 받을때 직장상사의 격려인사를 받을때보다 엔돌핀이 10배는 더 나오는것 같아. 물론 아직 국장님에게 격려인사를 받은적은 없지만 아마 그럴거야."
"그러면 저는 잠시 제가 아는 해운업체 사장님에게 연락좀 할게요. 아마 한시간 이내로 배한척을 보내주실거에요. 여기서 신호가 터질지는 모르... 꺄악!"
아야사가 스마트폰을 들어올리는 순간 시스트린이 아야사를 거세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아야사가 있던 바로 그 장소에 총격이 스쳐지나간다. 파앙!! 단순한 총알이 아니라는걸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아야사보다 앞으로 나서 일종의 인간 바리케이트 역할을 수행했다. 파앙!! 재차 이어지는 총격이 이애망량의 방패 하나에 명중 했다.
어마어마한 충격량이 이매망량을 허물어 버렸다. 소총탄 앞에서는 제법 견고한 수비력을 보여줬던 이매망량의 방패가 과자처럼 바스라져 버린다. 망령이야 다시 모으면 그만이라지만 시야에 잡히지 않는 지점에서 공격해 들어오니 반격을 할 수 없다. 밀러와 엔지를 챙길 여유도 의욕도 없었지만 두 콤비는 능숙하게 병풍형태의 방탄방패를 골프가방에서 꺼냄과 동시에 대물저격총을 그 자리에서 조립해냈다.
엔지가 일전에 옥상에서 보았던것처럼 대물저격총을 잡고 밀러는 기관단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채로 다른 손을 이용해 야간투시경을 집어들었다. 파앙!! 이번에는 내 미간을 노리고 또 다시 총격이 가해졌지만 이매망량 천인대를 전부 방패로 돌린 상황에서 유효타격이 될 순 없었다. 하지만 총성 사이에 차량엔진음이 들린순간 나는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아니길 바랬지만 뒤를 돌아보자 숲너머 헤드라이트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미스터 김 뒤는 우리한테 맞기고 군용트럭을 막아줘. 군용트럭을 동원했다는 것은 그 만큼 반동이 심한 거치형 총화기를 준비했다는 소리야. 밀러 어느 방향이였어? 총탄구경을 봤을때 절대 위치를 수시로 바꿀 수 있는 저격총은 아니야."
"야광막대로 방향과 높이를 지정해줄게요. 그런데 천리안이 밤에도 쓸 수 있는 싸이킥 능력이였어요?"
"밀러 우리는 인생의 반을 밤과 함께 보낸다고. 밤에 쓸모없는 능력은 인생의 반동안 쓸모없는 능력이란 소리야. 천외천은 아니지만 나도 VOTO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만렙은 찍은 사람이야.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싸이킥 능력을 선택했을것 같아? 거기 있었군. 일단 한놈 보내고."
나는 밀러와 엔지를 믿는다기 보다는 시스트린을 믿고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곳으로 돌진했다. 아무리 화력이 강한 무기라고 해도 이매망량 천인대를 모두 방패로 구체화해 반구형태로 감싸면 접근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총화기로 무장한 직업군인을 상대로 근접격투를 펼칠 생각은 없었지만 고스트놈들이 생각보다 빨리 전열을 정비하고 어디선가 고화력 무기를 챙겨온 탓에 이매망량의 일부를 공격용으로 돌리기가 어려워졌다.
설마하니 내가 시속 70km로 달리는 군용트럭에 정면으로 달려들줄은 몰랐는지 끼이이익!하는 급정거 소리가 들려온다. 천외천 유저인 내가 선보인 이적의 힘때문에 한번 크게 데인적이 있다보니 차와 인간이 충돌했을때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를 천외천 유저에게도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군용트럭이 흙먼지를 피우며 드리프트를 시도했다.
군용트럭의 짐칸에는 고구마도 구울 수 있을듯한 총구가 연탄구멍처럼 자리잡고 있는 게틀링건이 실려 있었다. 새하얀 고스트 슈트를 입은 엘리트 고스트의 표정이 보일리가 없었으나 나는 왠지 푸른안광이 비웃음을 짓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상손님이 만원짜리 요금을 십원짜리로 바꿔서 낸것처럼 탄피가 솟구친다. 총열이 불을 뿜을듯이 번쩍일때마다 이매망량의 방패가 속속들이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까꿍!"
이매망량 천인대가 구축한 방패의 숲이 전부 불타없어지기 전까지 아직 여유가 있긴 했지만 저 멀리 빛을 뿌리는 또 다른 헤드라이트 두 쌍이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매망량의 방패를 디딤돌 삼아 군용트럭위에 오른 나는 코앞에서도 게틀링건 사격을 멈추지않는 엘리트 고스트의 안면을 용린정권으로 날려버리고 게틀링건 손잡이를 이어받았다.
용린연환각 을(乙) 초식 내려찍기로 엘리트 고스트를 확인사살한 나는 게틀링건의 각도를 돌려 군용트럭 운전석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메이는 군용트럭이 세 그루의 나무를 연달아 아작내고 나서야 나무밑둥에 쳐박혀 정지했다. 나는 혹여나 군용트럭이 폭발할까 재빨리 땅에 내려선뒤 다음 타겟을 찾아 나섰다.
앞선 군용트럭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목격한 두 군용트럭은 조심스럽게 방향을 돌려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땅거죽을 뒤집을듯 속사되는 두 게틀링건을 보아하니 후퇴라기 보다는 전략을 바꾼듯했다. 하긴 아바타가 아닌 본체에게는 시속 70km로 달리는 차량을 따라잡을 재량이 없다. 나를 중심으로 선회를 하면서 쉬지않고 게틀링건을 쏘아되는 두 군용트럭은 적잖이 거슬리는 상대였다.
어쩔 수 없이 오늘 처음 테스트 해보는 FAS(Fabric Archane Suit)의 쉴드를 믿고 이매망량 천인대의 일부를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목표는 군용트럭의 두터운 타이어에 숨구멍을 내는 것이였다. 마구잡이로 차량근처를 난도질 하는 이매망량의 검이 백미러를 박살내고 트럭 겉표면에 무수히 많은 기스를 내기 시작했다.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는 괴현상에 안에 타고있는 운전자는 죽을 맛일 것이다.
-FAS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84/16)
-FAS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64/16)
-FAS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49/16)
-FAS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27/16)
-FAS 쉴드가 피격당했습니다.(15.06/16)
그러나 역시 공격에 집중하면 방어가 약해지는 법 급소부분만 가려두었던 이매망량의 방패를 비집고 양쪽에서 퍼부어진 게틀링건이 쉴드 한 겹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렸다. FAS의 쉴드가 WAS(Wearable Archane Shield) 보다 내구성이 2배로 강하다고 했으니 만약 WAS가 우선 발동되었다면 쉴드가 2겹이나 날아갔을 화력이 퍼부어진 셈이다.
그러나 공격용으로 전환된 이매망량의 검들이라고 해서 놀고 있는게 아니였다. 결국 눈먼 이매망량의 검이 두 군용트럭의 타이어를 펑크내는데 성공했다. 두 군용트럭이 술취한듯 비틀거리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나는 오른쪽의 군용트럭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아바타인 옥사건과는 다르게 확실히 지구력의 개념이 존재하는지라 턱밑까지 숨이 차오른다.
한 쪽 타이어가 펑크가 난 탓에 좀처럼 스피드를 내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군용트럭 위로 도약한다. 물론 이매망량을 도움닫기로 사용한 덕분이지 내 피지컬이 올림픽 선수 뺨대리는 수준이여서가 아니였다. 코앞에서 게틀링건의 안마를 받는건 역시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몸을 낮게 깔고 용린연환권 갑(甲) 초식 다리 후리기를 사용했다.
게틀링건을 부여잡고 있다가 자세가 무너진 엘리트 고스트의 심장에 내 자취방에 침입했었던 B플랫 엔터테이먼트 경호팀장의 것이였던 단검을 다섯번이나 연달아 찔러넣었다. 일격으로 깔끔하게 상대를 절명시키는 방법따위는 모르지만 나만의 더티스타일로 한놈 한놈 완벽하게 끝장을 낸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게틀링건의 각도를 180도 돌린 나는 이제 막 운전석에서 벗어나려하고 있는 엘리트 고스트에게 불을 뿜었다.
"비밀번호라도 걸어두지 그랬어. 아무리 강한 무기라고 해도 주인을 못알아보면 말짱 도루묵이지 안그래?"
나는 필요이상으로 엘리트 고스트를 너덜너덜하게 만든 뒤 왼쪽으로 향했던 군용트럭을 찾아 눈에 불을 켰다. 다행히도 동료가 연달아 두번이나 당했으니 도망칠법도 한데 근처에서 이쪽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게틀링건이 조용한것이 수상하다. 아무리 쏘아재껴도 내가 끄떡도 하지 않으니 포기한건가?
하긴 FAS의 쉴드 한 겹이 너덜너덜 해진건 VOT 단말기를 지니고 있는 나만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니 저치들은 이매망량의 방패를 뚫은줄도 모를 것이다. 상대가 나에 대한 정보에 무지하다는 점 자체가 또 하나의 방패가 되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삶의 의욕을 포기한 사냥감을 사냥하는것만큼 쉬운일도 없는지라 나는 여유롭게 마지막 군용트럭에 접근했다.
하지만 그치들은 포기한게 아닌 모양이다. 어디선가 바주카포를 집어들고 트럭밖으로 나온 운전사가 나를 향해 포탄을 쏘아올린다. 그게 끝이 아니라 게틀링건 밑에 숨어있던 엘리트 고스트가 다시 게틀링건을 부여잡고 불을 뿜기 시작한다. 부지부식간에 일어난 협격을 뒤늦게 눈치챈 나는 엄폐물에 숨을 생각도 못한채 그저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