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70화 (7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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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이거 일부러 실패해서 난이도를 올려하는거 아닌가?"

사친연산 원목패를 적당히 배열한 뒤 지(智)의 테스트를 통과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고등학생에게 대학교학과목인 공학수학을 가르친다면 고통스러워 할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때나 배우는 주제인 '참새 한 마리 더하기 참새 세 마리는 몇 마리일까요?'를 가르친다면 고통스럽다 못해 미쳐버리겠지. 겨우 30층 중에서 2층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생유적이라는 위명에 비해 첫인상이 너무 시시한건 사실이였다.

뭐 그래도 일단 3층으로 가서 덕(德)의 테스트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 3층으로 향했다. 문이 개방되자 이번에는 얼음이 찰랑거리는 오렌지 주스와 쿠키가 원목 탁자에 올려져 있었다. 사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문이 닫힌 사이에 누군가가 테이블을 세팅한 뒤 다시 문을 여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층의 인테리어는 동일했다. 그런데 왜 쿠키는 바뀌지 않고 음료수만 바뀌는거지?

당최 이 전생유적을 설계한 사람의 센스를 이해할 길이 없었던 나는 테이블을 지나쳐 덕(德)이 새겨진 문으로 향했다. 매층마다 먹을걸 준비한 정성은 고맙지만 딱히 배가 고픈것도 아니고 얼티밋 언데드 폼은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마력을 기반으로 물질대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 이제까지 그랬던것처럼 덕(德)이 새겨진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왠 거지차림의 사내가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있었다. 이건 꽤 신선하군.

"거기 계신 나으리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쇤내를 불쌍히 여기시고 빵한조각만 주십쇼."

"아 이런 저기 밖에 테이블에 쿠키랑 오렌지주스가 있는데 이런 상황이 있을줄 모르고 들고오질 못했네요. 어쪄죠 저한테는 아무것도 없는데?"

"나으리의 주머니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군요. 부디 저를 가엾게 생각하신다면 이 냄비에 주머니에 있는 것을 넣어주십쇼."

"내 주머니에 뭐가 있다고요? 어라? 진짜네. 뭐야 이거 언제 내 주머니에 쿠키를 넣어둔거야. 진짜 전생유적에서 이상한걸로 여러번 소름돋네. 이걸로 끼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가진게 이거뿐이니 가져가세요."

나는 군복 주머니안에 있는 쿠키를 꺼내 거지차림의 사내 앞에 있는 냄비에 던졌다. 그런데 쿠키가 냄비에 들어가자마자 쿠기가 급속도로 곰팡이를 피우며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어 냄비에 다가가 쿠키를 다시 집어들었는데 고약한 냄새가 나는게 진짜 곰팡이가 핀게 틀림없다. 아니 그 잠깐 사이에 쿠키가 상하는게 말이되?

"나으리는 쇤내를 가엾게 여기신게 아니라 먹지 않는 쿠키를 버리는 기분으로 제가 쿠키를 주셨군요. 아무리 제가 하루하루 빌어먹고 사는 처지라 하지만 그런 쿠키는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헛소리야?"

"제 앞에 있는 이 냄비는 진실의 냄비로 이곳에 음식을 담는 사람의 마음을 음식에 반영합니다. 아무리 별볼일 없는 쿠키라 해도 성녀가 담으면 황금쿠기로 변하며 아무리 비싼 음식을 담아도 그 장본인이 삿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보시는바와 같이 곰팡이가 핍니다."

"아니 배가고프다고 했잖아! 너는 흑묘백묘도 모르냐? 검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주는 쿠키던 하얀 마음을 지닌 사람이 주는 쿠키던 동일한 칼로리를 제공하는 음식이라고. 그걸로 배만 채우면 그만이지 뭐하러 그런 괴상한 냄비를 두고 동냥을 하는거야? 차라리 그 냄비를 팔아서 먹을걸 사질그래? 괴상한 취미를 지닌 부자라면 그 냄비를 꽤 비싸게 사들일지도 모르지. 진짜 사람 간보는것도 아니고."

-덕(德) 테스트에 실패하셨습니다.

-지(德) 테스트 레벨이 5Lv로 상승하였습니다.

-덕(德) 테스트 레벨이 4Lv로 상승하였습니다.

-체(德) 테스트 레벨이 5Lv로 상승하였습니다.

-3층 대기실로 추방됩니다.

거지차람의 사내에게 몇마디 더 해주려 했건만 몸이 붕뜨면서 시야가 반전된다. 하얀색 타일, 지덕체가 한글자씩 새겨진 문 그리고 포도주와 쿠키가 올려져 있는 원목 탁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그새 음료수를 바꿨어!? 나는 와인잔에 담긴 포두주로 가볍게 목을 축였다. 내가 와인 애호가는 아니지만 제법 맛이 입에 착착감긴다. 와인을 천천히 음미하는 일따위는 성미에 맞지 않기 때문에 한입에 다 털어넣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해 버튼을 눌렀지만 역시나 지덕체 테스트를 최소 한가지는 통과해야만 다음층으로 갈 수 있는 모양이다.

덕의 테스트는 처음에는 초등학교 도덕시험처럼 뻔한 문제일줄 알았더니 예상외의 복병이 숨겨져 있었다. 허나 테스트 실패와는 별개로 누군가가 내 도덕성을 테스트한다는 사실자체가 기분나쁘다. 내게 굶주린자를 보살필만큼 따듯한 마음씨가 없다는건 인정한다. 하지만 내게는 나만의 삶의 방식과 철학이 있고 그것은 선과 악을 떠나서 고유한 김사건식 인생살이법이다.

즉 그런 내 인생살이법이 누군가에게 불합격판정을 받는다면 마치 내 삶이 부정당하는듯해 기분이 더럽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의 테스트나 체의 테스트를 통해서 층을 통과하는게 옳겠지만 아크리퍼(Arcreaper) 옥사건은 본래 포장도로보다는 길이라고 생각될 수 없는 비포장도로를 선호하는 베베꼬인 인간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덕이 새겨진 문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던전 주인장 나오라그래!"

나는 문이 부서질새라 박차고 들어가며 외쳤다. 그러나 문안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을 배경으로 곰 사냥용 덫에 걸린 늑대 한마리가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을뿐 내 성난 외침에 대답해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멋쩍은 헛기침을 두어번 한 뒤에 늑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곰덫에 걸린 개의 다리는 딱봐도 심각해보였다. 이 추운 날씨에 저렇게 피를 흘리고 있으니 저 늑대는 얼마안가 목숨을 잃으리라.

"좋아! 처음에는 괴상한 냄비를 지닌 거지였고 이번에는 상처입은 늑대인가? 상황극 자체는 제법 그럴듯하고 재미있군. 그러면 내가 생각한 답을 들려주록하지. 저 곰덫을 풀어줄 수 도 있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할건대? 동식물들의 먹이사슬에는 인간들의 사회처럼 사회보장제도따위는 없어. 아주 가혹한 곳이라고. 당장 상처가 세균에 감염되서 죽을 확률이 제일 높고 설사 운좋게 회복됬다고해도,

다리가 저지경이 된 늑대가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있을리 없을테니 결과적으로 굶어 죽게 되겠지.

아아 그래. 내가 아주 매정하게 보이겠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고 욕해도 좋아. 하지만 그게 현실인걸 어쩌라고? 나보고 저 늑대를 대려다가 애완동물로 삼기라도 하란말이야? 야생의 본능을 지닌 늑대를 길들이는 건 둘째치고 저녀석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쿠키로는 턱도 없단 말이야. 저 녀석을 키우기 위해 또 다른 생명체를 죽여 고기를 만들면 그 살생은 면죄부를 받는건가? 어림도 없는 소리지."

-덕(德) 테스트에 실패하셨습니다.

-지(德) 테스트 레벨이 8Lv로 상승하였습니다.

-덕(德) 테스트 레벨이 7Lv로 상승하였습니다.

-체(德) 테스트 레벨이 8Lv로 상승하였습니다.

-3층 대기실로 추방됩니다.

어김없이 몸이 붕뜨는 느낌과 함께 대기실로 돌아온 나는 원목 탁자위에 배치된 토마토 주스를 집어들고 하얀 타일에 흩뿌렸다. 새하얀 백색공간이 붉은 얼룩으로 더럽혀졌다. 이쯤되면 사실 포기할법도 했지만 내가 누구인가? 사냥터 문제로 갈등을 빚은 매드알케미스트 블루아주가 그만 쫓아오라고 사정사정을 해도 1000레벨을 500레벨로 깍아버릴때까지 집요하게 달라붙었던 근성나찰의 아크리퍼(Arcreaper)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덕이 새겨진 문으로 쫓아 들어갔다.

*    *    *    *

-덕(德) 테스트에 실패하셨습니다.

-지(德) 테스트 레벨이 78Lv로 상승하였습니다.

-덕(德) 테스트 레벨이 77Lv로 상승하였습니다.

-체(德) 테스트 레벨이 78Lv로 상승하였습니다.

-3층 대기실로 추방됩니다.

"이번에는 사이다인가? 탄산음료는 목이 따가워서 싫은데."

하지만 덕 테스트에서 쉼없이 열변을 토해낼려면 뭐라도 마셔서 성대를 적셔줘야만 했다. 나는 사이다를 원샷하고 가볍게 트림을 한 뒤 여유로운 걸음으로 덕이 새겨진 문으로 입장했다. 덕 테스트를 시도한지 17회째까지는 문을 박살낼 기세로 뛰어들었지만 18회에 해탈한 뒤로는 던전 주인장이 알아주던 말던 나만의 고독한 싸움이 이어나갔다. 이번 무대는 재판소인가? 내가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것은 물론 눈앞에 판결망치가 떡하니 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피고인은 어린시절 배고픔에 빵을 훔쳐 달아난 전과가 있긴 하지만 그 이후로 죄를 뉘우치며 많은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어왔습니다. 단순히 빵집주인이 빵 하나의 매출손실로 인한 불행보다 이 피고인이 베풀은 선행으로 인한 행복이 훨씬 더 큰대 이제와서 피고인의 죄를 심판하는것은 법이 지향하는 정의와 거리가 있다고봅니다."

"하아... 이번에는 장발장 독서감상문인가. 변호인이 생각하는 법이 지향하는 정의와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조금 다른것 같군. 내가 생각하는 법의 정의는 사회의 질서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보편적인 규칙이다. 법이란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게 아니야. 인간이란건 두 명 이상만 모여도 갈등을 빚을 수 있는 존재다.

그 때 시시비비를 가려주는것이 법이며 피고인의 선행이 죄를 덮을만큼인가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나 생각해볼 일이다.

진정으로 법이 경계해야할 것은 그게 아니라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가 잘못됬다는 사실을 피고인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이든 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왕이든 똑같이 판결내릴 수 있을만큼 공명정대한 지표가 될 수 있느냐겠지. 참고로 덧붙이자면 본 판사는 무신론자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언급한것은 단순히 상징적인 예시였으니 오해하지말도록."

"정말이지 쫑알쫑알 말 많은 녀석이군."

그리하여 피고인은 유죄다라고 판결망치를 내리찍으려는 순간 피고인의 입에서 여성의 차분한 저음이 흘러나왔다. 덮수룩한 수염이 가득한 사내에게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다니 기묘한 일이다. 흐리멍텅한 눈으로 잠자코 내 판결문을 듣고 있던 피고인이 갑자기 이지가 느껴지는 선명한 눈동자로 딴지를 걸자 나는 직감적으로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혹시 이 던전의 주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냈구만.

"그래 나는 새치혀만 펄떡거리는 놈팽이야. 그래서 네가 뭐 보태준거 있냐? 아 그러고보니 매번 색다른 음료수로 내 성대를 촉촉하게 만들어줬구나."

"이봐 너무 이 시험을 깊게 생각하진 마. 덕 테스트는 단지 탐사자가 앞뒤상황 가리지않고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한줄기 선의로 행동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것 뿐이니까. 딱히 법이 어쩌고 먹이사슬이 어쩌고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게 아니야."

"그래서 네녀석이 그런 출제자 의도를 말해준적이나 있냐? 왜 이제서야 나타난거야!"

"탐사자 개인에게 특혜를 베풀수는 없었으니까. 너도 방금 말했잖아. 법은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한 지표가되야 한다고. 나 또한 어떤 탐사자에게나 공명정대해야할 의무가 있지. 그럼에도 지금 내가 모습을 드러낸건 너의 테스트 레벨이 일반적으로는 도저히 클리어할 수 없는 난이도에 도달했기 때문이야.

즉 어차피 가망이 없는 탐사자니까 특혜를 줘도 31층에 도달할 일따윈 일어나지 않는다는거지.

31층이 뭐야, 당장 이번층조차 클리어 하기 버거울걸?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실패할줄 알면서도 테스트에 수십번 도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수고했어. 올해의 사서고생하는자같은 상이 있다면 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됬군. 대기실로 돌아가면 따듯한 핫초코라도 타줄테니 그거 먹고 전생유적 탐험은 포기해. 괜히 81Lv 체 테스트에 도전했다가 비명횡사하지말고."

"내가 지금부터 덕 테스트는 포기하고 31층에 도착하면 어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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