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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디파일러 연대를 괴멸시키고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쿠자르와 혈전을 벌였던 새벽밤은 열흘처럼 느껴졌던 반면에 인어족들의 전생유적 탐색기간인 열흘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지구에서는 학과수업도 빼먹고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에서 용린정권과 용린연환각을 100번씩 복기하고 수왕성에서는 푸스카와 밤낮없이 난투극을 벌이느라 이솔다 공주일행이 귀환하는것을 보고 나서야 열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것을 깨달았다.
이솔다 공주일행은 전생유적 탐사기간동안 무려 기연 3개를 획득하는 기염을 토해내 토너먼트 이후 또 한번 인어족 주민들을 잔치분위기로 만들었다.
전생유적안에서는 오직 개인 플레이만 가능해 내심 걱정했는데 그간의 특훈이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솔다 공주가 정체모를 지팡이를 하나, 메키가 골동품처럼 보이는 진주귀걸이를 하나 그리고 일전에 빙린장성 벽돌 반죽을 돕기 위해 찾아왔던 인어족 자경대원들 중 대표로 말을 꺼냈던 자가 은은한 빛이 나는 삼지창을 들고 당당히 귀환했다.
이제 내일이면 나를 포함한 은린선측 탐사자 10인과 구룡대원들이 전생유적으로 출발한다. 솔직히 말해 쿠자르가 맨손으로 보여준 신위를 목격한 이후 나는 단순히 아티팩트를 획득해서 상승하는 전투력에 회의감을 느꼈다. 물론 내가 현금으로 몇억씩 주고 산 칠십번대 커스텀 아이템, 나이트스토커처럼 영력 랭크를 1단계 상승시켜주는 신기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과연 이런 신기를 돈이 있다고 살 수 있겠는가?
-디파일러 폰(1VP) * 1987
-디파일러 나이트(200VP) * 200
-디파일러 룩(4000VP) * 20
-디파일러 비숍(80000VP) * 1
-202050VP
나는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조작해 소지금액을 출력했다. 그 날 디파일러 연대를 전멸시키면서 유래없이 많은 총알을 보유하게된 나지만 아무리 백신마켓이라고 해도 먹으면 슈퍼맨처럼 짱 쌔지는 알약을 팔지는 않는다. 그런데 하울링 코드 그 호구가 80000VP짜리였다고? 물론 일대일이 아니라 다수대다수 싸움에서 하울링 코드라는 광역 스턴기술은 굉장한 변수가 될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디파일러 비숍이 호구인게 아니라 하울링 코드 녀석이 특별히 호구였다는 소리인가.
미리 찜해두었던 마력입자 축전기(Spellparticle Capacitor)를 무선적으로 구입해야겠지만 막상 구입하고나도 지구에 있는 본체를 손볼려면 필요한게 너무나 많아 골치가 아프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많은 총알을 어떻게 쓰면 잘 썼다고 소문이날까?'와 같은 행복한 고민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해서 허투로 VP를 써도 될만큼 넘쳐나는건 아니였다.
일단 내일부터 시작될 전생유적 탐험이 끝나고 다시 생각하자. 그 동안 단련을 위해 몸을 혹사해 왔으니 오늘만큼은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전생유적에서 귀환한 인어족들을 기념하는 만찬초대를 거절하는 메시지를 VOT 단말기에 남긴 뒤 내 개인선실에 있는 침대로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늘어지게 잠이나 자볼까? 아무리 얼티밋 언데드 폼의 육체가 한계를 모른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이런 게으른 휴식이 가끔씩 필요한 법이다.
* * * *
이른 아침 나는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의 노크와 함께 맑은 정신으로 눈을 떴다. 그래도 한숨 자고나니 그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스스로가 우스울정도로 마음이 편해졌다.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의 안내를 받아 은린선측에서 뽑힌 탐사자 9명과 합류한 뒤 해안가에 도착하자 구룡대가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전생유적까지 안내해줄 인어족 20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천주랑이라고 해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는 없는 노릇이였으므로 이솔다 공주가 직접 인어의 비늘을 2개씩 나누어줬다.
내게는 메키한테 받은 중고 인어의 비늘이 있었지만 새삥을 받아둬서 나쁠건 없었다. 이솔다공주가 다소 형식적인 출정인사가 끝내고 내게 다가왔다. 전생유적 탐사가 예상밖의 성과를 거두었던지라 유난히 밝은 표정의 이솔다 공주는 한층 더 여신같은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문득 일전에 꾸었던 야릇한 꿈 생각이 난 나는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는걸 억지로 참으면서 이솔다 공주를 응대했다.
"발두인 함장님에게 대충 사정은 들었습니다. 설마하니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디파일러가 침공해 들어올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몸을 사리지않고 인어족들의 안전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옥사건 준위에게는 항상 고개숙일일만 생기는군요. 옥사건 준위가 전생유적에 가있는 동안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저 혼자만 고생한것도 아닌데요. 은리사저랑 천주랑씨는 물론 실제 전장에 참여한건 아니지만 그 새벽에 환복을 하고 전투대기를 한 은린선의 병사들의 노고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지 그날 밤 이상하게 혈기가 솟구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날뛰었을 뿐이지요."
"물론 그 분들에게도 따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지요. 저 그런데 옥사건 준위, 잠시 귀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이솔다 공주가 뜬금없이 내게 귓속말을 요청했다. 남들에게 전해지면 안되는 이야기라면 VOT 단말기를 이용하면 될것을 나는 별생각없이 이솔다 공주에게 귀를 기울였다. 허리를 굽힐 필요따윈 없었다. 왜냐하면 내 키가 더 작으니까! 이솔다 공주의 입김이 귀를 간질이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볼에 촉촉한 느낌이 0.5초 정도 닿았다 사라졌다. 어라? 혹시 지금 이솔다 공주가 내 볼에 입맞춤을 한건가?
젠장할! 이럴줄 알았으면 실수인척 고개를 돌려서 마우스 투 마우스 충돌사고를 유도했어야 했는대. 나 왜 이렇게 눈치가없냐? 물론 볼에 입맞춤도 감지덕지긴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일전에 토너먼트에서 했던 내기의 보상을 이행하는것 뿐이니까요. 원래는 좀 더 빨리 해드리려고 했는데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이솔다 공주님. 전생유적에서의 선전을 비는 행운의 표식으로 생각할게요."
"옥사건 준위라면 말안해도 전생유적안의 기연을 싹슬어담겠죠. 그래도 최소한 기연 1개정도는 남겨주세요. 다른 행성에서 온 탐험가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하니까요."
"큭큭. 명심하겠습니다, 이솔다 공주님."
바다속에 어떤 위혐이 도사리고 있는것은 아니였지만 개인행동을 하다 길을 잃어버릴 수 도 있었으므로 은린선측 탐사자 10인과 구룡대는 서로 뭉쳐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를 인도하게 된 인어족은 처음보는 얼굴이였지만 지구에서라면 피팅모델을 해도 될 정도로 몸매와 얼굴이 착한 친구였다. 이솔다 공주때문에 눈이 높아져서인지 큰 감흥은 없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해저탐험을 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매력적인 몸매를 뽐내는 인어족들을 보며 눈요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전생유적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전에 메키와 왔을때는 결계에 막혀 들어갈 수 없었지만 전생유적 입장권이 있는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내 손을 잡고 헤엄쳐준 인어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나는 전생유적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전생유적 입구에서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는 은린선측 탐사자 9인과 구룡대원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 시야는 어느새 암전되고 있었다.
* * * *
다시 밝아진 시야에 들어온 관경은 던전이라기 보다는 현대적인 병원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였다. 주위 벽은 새하얀 타일로 채워져 있었고 엘리베이터 하나, 각각 지덕체(智德體)가 한글자씩 적힌 문 세개 그리고 원목 테이블과 의자 하나가 덩그라니 놓여있다. 전생유적에 입장하면 당장이라도 함정을 피해 몬스터들과 혈투를 벌일줄 알았던 나는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에 적응이 되질 않았다.
사실 던전은 꼭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건 사실 내 고정관념에 불과한것이다.
게임이라는 컨첸트를 접해본적이 없는 이솔다 공주라면 이런 분위기를 이국적이긴 하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것이다. 나는 일단 엘리베이터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보통 엘리베이터의 층을 가리키는 LED표시등은 R이라는 알파벳을 가리키고 있었다. R이라 로비의 앞글자를 뜻하는건가? 일단 버튼을 한번 눌러볼까?
-지덕체의 시험을 최소 1개 통과해야만 다음층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현재 전생유적에 입장하신 탐험가의 지(智) 테스트 레벨은 1Lv입니다.
-현재 전생유적에 입장하신 탐험가의 덕(德) 테스트 레벨은 1Lv입니다.
-현재 전생유적에 입장하신 탐험가의 체(體) 테스트 레벨은 1Lv입니다.
왠지 이럴거 같다고 생각은했지만 나라는 사람은 직접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였다. 즉 지덕체(智德體)가 한글자씩 적힌 세 개의 문중 하나에 들어가서 어떤 시험을 받아야한다는 소리같은데 뭐 부터할까? 고교시절 전교 1등을 놓쳐본적이 없었던 나는 지(智)의 시험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노멀하게 체(體)의 시험을 받아보는것도 괜찮겠지. 다른 시험에 비해 테스트 내용이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체의 시험이 뭐 별거 있겠는가? 아무리 특이한 구조를 지닌 던전이라고 해도 체를 측정하기 위해선 몬스터와 쌈박질을 시킬 수 밖에 없다.
아니면 뭐 팔굽혀펴기 100개를 시킬지도 모르지. 어느쪽이 됬던 가볍게 몸풀기로 통과하기엔 체의 시험만한게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체 글자가 새겨진 문을 발로 뻥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재미 있게도 문안의 공간은 현대적인 병원처럼 생겼던 로비와는 다르게 녹빛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축구를 하고 싶게 만드는 기가막힌 장소였다.
그리고 그 초원에 완전히 발을 들이밀자 내가 들어왔던 문이 꽝하고 닫힌다. 힘을 주어 열어보려고 해도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일단 한번 체의 시험을 받으러 들어왔으면 시험을 끝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양이다. 좋아! 어디 한번 내 첫 상대가 누군지 확인해 볼까? 눈에 불을켜고 주위를 살펴보지만 녹빛 초원에는 햇빛, 잔디 그리고 가슴보형물처럼 생긴 실리콘 덩어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잠깐만 뜬금없이 이런 장소에 실리콘 덩어리라고?"
발걸음을 재촉해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니 실리콘 덩어리가 아니라 슬라임 형태의 몬스터였다. 설마 이 녀석이 내 첫상대라는건가? 꼬물꼬물 움직이는게 살아있는 생명체는 맞는것 같은데 타오르던 투지를 식게만드는 초라한 몰골이다. 오케이, 오케이. 뭐든지 튜토리얼은 가볍게 가는게 맞는거지. 일단 어린 아이도 해치울 수 있는 슬라임을 통해서 시스템을 익히고 다음층 부터 본격적인 던전이 시작되는거 아니겠어?
나는 슬라임을 주저없이 밟아 터트리고 내가 입장했던 문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살짝당겼을뿐인데 활짝 열린다.
-체(體) 테스트 레벨이 2Lv로 상승하였습니다.
-로비의 체(智德體) 테스트가 초기화되었습니다.
-2층으로 향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대충은 전생유적의 지덕체 시스템에 대해 이해한 나는 다음층으로 향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턴을 눌렀다. 이번에는 곧바로 문이 열렸고 내가 탑승하자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문을 닫고 다음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한게 맞나?싶을정도로 진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LED 표시등은 2층을 가리키며 문을 다시 개방했다. 로비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인테리어였지만 다만 다른게 있다면 원목 탁자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와 쿠키하나가 있다는 점이다.
아니 이거 누가 준비한거야? 조금 소름돋는 일이긴 했지만 나는 고소한 향기에 이끌려 쿠키를 한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따듯한 우유를 들고 이번에는 지(智)의 문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로비 그러니까 1Lv의 체(體) 테스트를 생각하면 1Lv의 지(智) 테스트도 여유롭게 우유나 한잔하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올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의 문에 들어간 나를 반겨준것은 사칙연산이 새겨진 원목틀이였다. 정해진 숫자가 합리적인 수식이되도록 사칙연산 원목틀을 재배치하는 퍼즐이였다. 아무리 내가 생명공학과라고 해도 수능때 수리영역 1등급을 맞았는데 이딴 문제를 풀고 앉아 있어야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