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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빙린장성이 완공되고 나면 한숨 돌릴 수 있을줄 알았더니 전생유적의 등장으로 나는 전보다 더욱 바빠져버렸다. 빙린장성 건설에 내가 한창 박차를 가할때 싸이클롭스 좀비 8마리를 반으로 나눠서 벽돌 반죽과 벽돌 축조 과정을 동시에 진행했다면 이번엔 탐험가 숙소 건설과 언데드 모의전투를 동시에 진행하게 되었다.
인어족 자경대원들과의 언데드 모의전투야 이솔다 공주에게 따로 인센티브를 받기로 했고 탐험가 숙소 건설도 엄연히 실버 스케일 간부로서 밥값을 하는거라지만 8마리의 싸이클롭스를 거의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일은 영력이 C에서 B 랭크로 상승한 지금도 벅찬 일이였다.
솔직히 말해 8마리의 언데드 크리쳐를 내 신경계와 동기화 시켜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영력 랭크의 상승보다는 육십번대 네임드 싸이킥 능력인 사고분할(思考分轄)을 사용한 덕분이였다. 물론 영력 랭크가 B가 되면서 영력 커버리지 범위가 교실만한 넓이에서 종합 운동장만큼 늘어난 덕분에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탐험가 숙소 건설 현장과 언데드 모의전투장에 존재하는 싸이클롭스 좀비들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었던 것이니 영력 랭크 향상이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티베타르 원사의 지시에 따라 빙린장성을 짓고 남은 대 디파일러 벽돌로 탐험가 숙소의 주춧돌을 세움과 동시에 거창하고 일렬로 달려드는 인어족 자경대원들을 어깨로 밀어내는 일은 사고분할이 아니였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술사양반 주춧돌이 바로 세워져야 건물이 모진 바람과 눈비에도 멀쩡한 것이요. 그러니 내가 분필가루로 그려놓은 장소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벽돌이 놓여야 하오.
"전원 거창! 외눈박이 거인을 향해 돌격! 망설이지 마라! 겨우 이 정도에 쫄면 디파일러 룩을 만났을때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거기 대열에서 벗어나지마라!"
사고분할(思考分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즉 캐릭터를 생성할때 부여받는 정신적 트리거를 통해서만 발동할 수 있는 싸이킥 능력이였다. 즉 전형적인 술사 스타팅을 했던 내 경우, 캐릭터를 삭제했다가 다시만들기 전에는 얻을 수 없는 능력인 것이다.
하지만 얼티밋 언데드 폼을 제작할때 선천적 싸이킥 능력을 통해서 세상을 인식하는 프레임 자체가 남다른 엘더 스프리건(Elder Spriggan)의 뇌를 이식한 덕분에 나는 육십번대의 네임드 싸이킥 능력인 사고분할(思考分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고분할(思考分轄)을 사용할 경우 정신적 피로도가 심했고 차라리 지능이 있는 언데드들에게 언데드 군단을 분할하여 지휘권을 위임하는 편이 편했기 때문에 VOTO(Vaccine Of Things Online) 시절 자주사용했던 스킬은 아니였다.
하지만 해야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내 몸둥어리는 하나이니 어쩌겠는가?
어느새 해가지고 사위가 어둑해졌지만 실버 스케일의 탐사 조명들을 킨채로 탐험가 숙소 건설작업과 언데드 모의전투는 9시까지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주춧돌의 위치를 목이터져라 바로잡아주던 티베타르 원사도 나이가 있는지라 지친듯 했고 인어족 자경대원들 중에서는 싸이클롭스 좀비에게 나가떨어져 골절상을 입은 자들이 속출했다.
이솔다 공주가 웃음기 하나없이 실전처럼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정말로 손속에 사정을 두지않고 실전처럼 싸운 결과였다. 그렇게 전생유적(前生遺跡)을 동해용궁의 복으로 삼기 위한 강행군의 첫 날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 * * *
육체적으로야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싸이킥 능력인 사고분할(思考分轄)을 장시간 사용한 반동으로 정신적 피로도가 엄청났던 나는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의 안내를 받아 개인선실로 돌아오자 마자 침대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식으로 한달을 보냈다간 내 머리가 터져버릴것 같다.
에보니 메이든에서 지능이 있는 언데드 수하를 불러 일을 분담해야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B랭크의 영력으로 제어 가능하고 가급적이면 내게 충성심이 높고 순한놈으로 불러야 뒷탈이 없겠지.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의 세계가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금 아무래도 지능이 있는 언데드 크리쳐를 소환하는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이 녀석들이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라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사령안이 있다고 해도 이것으로 엿볼 수 있는건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감정일뿐. 심계가 뛰어난 놈이 마음먹고 속마음을 숨기려고 하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이 녀석만큼은 믿을 수 있겠지.
흑단관구(黑檀棺柩)에 잠들었던
사일런트워커(Slientwalker) 푸스카
묘지기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현현(顯現)하라
인벤토리에서 오랜만에 에보니 메이든을 꺼내들어 시동어를 외치자 검은 연기와 함께 다소 슬림한 미노타우르스의 실루엣이 비친다. 미노타우르스의 타고난 종족적 특성인 헐크 근육을 포기하고 암살자의 길을 걷는 이단아로서 사일런트워커라는 이명을 지닌 이 미노타우르스 좀비는 본성이 우직하고 거짓말을 할줄 몰랐다.
언데드로 만드는 과정에서 본인의 요청대로 암살자에 적합한 육체로 변형하는 것은 물론 스펙트럴 띵(Spectral Thing)인 쉐이드를 부릴 수 있는 강령술식을 문신으로 새겨주었다. 그 결과 푸스카는 비록 죽은 몸이지만 암살자로서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내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몇 안되는 언데드 수하였다.
"사일런트워커 푸스카가 주인님을 뵙습니다."
"아 오랜만이다, 푸스카. 다짜고짜 불러서 묻는 말치곤 이상하게 들릴 수 도 있겠지만 너 알고 있었냐? 너 자신이 게임상의 몬스터가 아니라 진짜 현실의 미노타우르스족 이였다는거말이야."
"예, 알고있었습니다. 제가 죽고나서 VOT 시스템이 죽음을 떨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저를 죽음에 이르게한 상처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것처럼 사라졌습니다. 그후 제 몸은 VOT 온라인이라는 공간으로 워프되었고 저는 네임드 몬스터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의식주 무엇하나 부족한 것은 없었으나 마치 족쇄에 채워진듯 답답한 삶이였죠.
거기까지가 주인님을 만나기 이전의 제 삶이였고 주인님의 은총을 받아 새 육체를 부여받은 후의 이야기는 주인님이 더 잘 알고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앞에서는 복종하는 척해도 뒤에서는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놈들과 달리 너만은 내게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 충성심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허나 그 당시 저는 VOT 제어망에 의해 말과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마 다른 네임드 몬스터들도 마찬가지 였으리라 생각됩니다. 허나 어느 순간 VOT 제어망이 사라졌고 지금 이렇게 주인님께 진실을 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용린혁 가주님이 VOT(Vaccine Of Things) 제어망을 끊은 순간 내 언데드 수하들과 연결된 제어망도 모조리 끊긴 모양이군. 이걸 호재라고 해야할까? 아니 푸스카 녀석이 특이한것일뿐 나머지 녀석들은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더 다루기 힘들어지겠지.
"그래서 VOT 제어망이 끊어진 지금 에보니 메이든 안에 있는 녀석들은 지금 뭘하고 있지?"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서로 파벌을 나누어 날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밴쉬 세이지 누시아님의 중재가 있어 아직까지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저조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그래? 누시아가 중재를 하고 있다니 다행이군. 더럽게 말을 안듣는 놈들이긴 해도 일단 내 전력의 일부이니 손상되면 곤란하거든."
"그리고 누시아님이 주인님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만 읽어보시겠습니까?"
"푸스카 너 혹시 압존법이라고 아냐?"
"예? 압존법이라 하심은..."
"윗사람 두명을 한문장에 포함시킬때 더 높은 사람에게만 높임말을 사용하는 언아예절인데 너 아까부터 누시아한테 꼬박꼬박 님을 붙이더라?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보니까 이제는 나보다 누시아가 더 윗사람같나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주인님!"
푸스카가 오버스러울 정도로 납작 업드려 사과를 구했다. 나는 돌다리도 두드려 가보자는 심정으로 사령안을 발동했다. 푸스카의 영혼이 '이런 내가 실수했구나!'라는 속삭임을 전해오고 있었다. 그 속삭임에 담긴 어조에는 분명 나에 대한 죄송함이 묻어 있었다. 다행이도 푸스카는 믿어도 괜찮을 것 같다.
"죽을죄? 뭐 찔리는거라도 있는 모양이지?"
"주인님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에보니 메이든에는 워낙 독보적인 능력을 지니신분이 많다보니 주인님께 잊혀질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누시아님이 제게 손을 내밀었고 언젠가 때가되면 주인님께서 가장먼저 저를 부를지어니 그 때 전령역할을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은연중에 누시아님께 줄을 댄 셈이되었고 주인님께서 그토록 경멸하시는 파벌을 형성하고 말았습니다."
"누시아가 내가 푸스카 너를 가장먼저 부를것을 예상했다고? 흐응 일단 그 누시아가 보냈다는 편지줘봐."
오체투지한 상태로 내게 조심스럽게 편지를 내민 푸스카가 다시 고개를 납작 엎드렸다. 그런 과잉충성이 싫지 않았던 나는 푸스카를 방치한채로 편지를 읽어내렸다. '족쇄를 푸셨으니 날아오르실 차례입니다.'라는 한문장이 편지의 전부였다. 혹시나 다른 곳에 비밀 메시지같은게 있나 싶어 편지를 뒤적거리는데 정말 그 한문장이 전부였다.
아놔 누시아 이년이 내가 이런 선문답 안좋아하는거 알면서도 이따구로 보냈네. 족쇄라는 표현이 VOT(Vaccine Of Things) 제어망을 지칭한다는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날아오를지에 대해선 적혀있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게 이 부분인데 뭐 어쩌라는거야.
누시아는 내가 충성심이 높고 우직한 푸스카를 가장먼저 부를거라고 예상한것은 물론 언젠가 내가 VOT(Vaccine Of Things) 제어망을 끊고 VOTO((Vaccine Of Things Online) 세계에서 벗어날거라는 걸 예상했다. VOTO((Vaccine Of Things Online) 시절부터 범상치 않은 여자라는건 알았지만 이정도의 혜안을 지니고 있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헌데 그런 혜안으로 구체적인 행동강령같은걸 적어주면 좀 좋아?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날아오르실 차례라고 하면 내가 어디가서 날개옷이라도 사입어야 하는건가?
"수고했다, 푸스카. 사실 압존법은 결국 겉치례에 불과하고 정말 중요한건 네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겠지. 네 충정을 의심해서 미안했다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도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황이였거든. 아무튼 내일부터 푸스카 너는 나를 도와 미노타우르스 좀비들을 이끌고 인어족들과 모의전투라는걸 펼치게 될것이다.
최대한 실전처럼 하되 사상자는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내 아직 믿을 수 있는 언데드 수하라곤 너 하나뿐이니 네가 할일이 많아 질것이야."
"성심껐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일단 오늘은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아가서 누시아한테 전하거라. 선문답같은 표현으로 귀찮게 굴지말고 육하원칙에 맞게 논리적으로 내가 할일을 전해달라고 말이야. 알았지?"
푸스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정중한 목례를 올리고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아갔다. 걱정했던 일 하나를 해치우자 참았던 정신적 피로가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감히 눈꺼풀을 덮쳐오는 수마를 거부할 생각도 못하고 침대에 달라붙은 나는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조종해 로그아웃을 하기로 했다.
아침 수업이 있는지라 어차피 잘거라면 본체에서 자는게 낫겠다 싶어 내린 판단이였다. 아득해지는 시야가 다시 회복되었을때 어두컴컴한 자취방에 정체불명의 신형이 포착되었다. 자취방 천장이 시야에 보이면 다시 바로 잠들 요량이였던 나는 깜짝놀라 몸을 일으켜 세울 수 밖에 없었다.
"누...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