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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 Oxogan The Little Mermaid
"생각의 정리는 끝났는가? 그렇다면 선택의 시간일세. 여기 자네가 그토록 원하던 구십번대의 무공인 용린무형검의 커몬 스킬북일세. 그리고 이것은 내가 수장으로 있는 용린검가의 정식제자가 됬음을 상징하는 용린검일세.
이름이야 거창하지만 사실 진짜 용의 비늘로 만든것은 아니네. 무늬만 그럴싸한 보급형 무기이네만 아마 쉬이 부러지거나 칼끝이 마모되지는 않을걸세.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해보겠나? 자네의 운명을 송두리채 바꿀지도 모르니 신중하게 선택하게나."
아직 머리속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영감탱이에게 선택을 종용받았다. 만약 용린무형검의 커몬 스킬북을 선택한다면 나는 스킬 포인트를 90 포인트 투자하는것 만으로 강령술사의 유일한 약점인 초근접전을 커버할 수 있을것이다. 반대로 용린검을 선택한다면 계륵을 취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한눈에 봐도 용린검은 내 전쟁용 낫(War Scythe)인 나이트스토커(Nightstalker)보다 넘버링이 한참은 떨어질것같은 영감탱이가 한 말마따나 보급형 무기였던 것이다.
나는 도저히 이 영감탱이의 의중을 알길이 없어 얼티밋 언데드 폼의 능력중 하나인 사령안을 발동했다. 언더월드의 네임드 보스 몬스터인 우버 리퍼(Uber Reaper)를 간신히 아작내고 갈취한 이 눈깔을 이용하면 영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다만 수양이 깊은 사람의 영혼을 꿰뚫어 볼 수록 기하급수적인 마력을 필요로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룡 쉐도우스틸(Shadowsteel)의 심장을 12개로 쪼개어 만든 도데카 코어(Dodeka Core)의 마력기관이 급속도로 사령안을 향해 마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얼티밋 언데드 폼의 진짜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데카 코어 마력기관이 이렇게 눈에 띄게 마력을 소비하는 것은 정말 드문일이다. 역시 보통 영감탱이는 아니였단 말인가? 허나 수천의 이매망량들을 부릴 수 있는 마력을 투자해 얻은거라곤 순수한 기대감이라는 단편적인 감정뿐이다. 순수한 기대감이라고 한다면 저 영감이 딱히 개수작을 부릴 생각은 없다는 소린데. 나는 사령안을 갈무리하고 용린무형검의 커몬 스킬북을 주시했다. 굳이 내가 배우지 않더라도 아이템 경매 사이트에 올리면 수십 억은 우스울 물건이다. 반면에 용린검의 경우 아이템 경매 사이트의 수수료가 아까울 정도의 하품이다.
내가 두 아이템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하는데 영감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용린무형검의 커몬 스킬북을 볼 때는 울상이었다가 용린검을 볼 때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기껏 고생해서 영혼의 속삭임을 꿰뚫어 보았건만 그 고생이 무색하게 저 표정은 너무 노골적이다. 어찌됬든 이걸로 사령안이 알려준 저 영감탱이의 순수한 기대감이란 감정은 아마 내가 용린검을 선택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군. 그 어떤 악의도 없이 순수하게 내가 용린검을 선택하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용린무형검의 커몬 스킬북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내공심법을 익힐 수 없는 몸둥어리인지라 제 위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조금 아래에 넘버링된 외공이나 찾아 익혀야지. 나는 미련없이 용린검을 집어들고 영감의 표정을 살폈다.
[No.11 용린검]
-용린검가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검. 내구성이 뛰어난 것 말고는 크게 장점이 없다.
내구도(100/100)
"드디어 자네는 미혹의 안개를 걷어내고 진실의 반딧불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된 모양이군. 쉽지 않았을텐데 현명한 선택을 해주어 고맙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음이야. 내 정식으로 용린검가의 일원이 된것을 축하하며 직접 자네를 감싸고 있는 미혹의 안개를 걷어내 주겠네. 혹시 새 육체로 갈아타기 전에 본래 자네의 육체였던 아바타를 가지고 있는가?"
"그거라면 혹시나 쓸데가 있을가 싶어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에 보관해 두었습니다만 강령술사의 비루한 신체 능력을 생각하면 언데드 재료로서는 꽝입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완전무결한 은색의 관을 꺼내들어 시체 하나를 소환했다. 나와 꼭 닮은 얼굴이지만 실이 끊어진 무대 인형처럼 널부러진 꼴에 괜스레 소름이 돋는다."
"괜찮군. 이걸로 VOT 시스템의 눈을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것 같네. 이쯤에서 내 애검인 진천용린검 자랑이나 해볼까 하는데 두 눈 똑바로 뜨고 확인하는게 좋을걸세. 구십번대의 무공보다도 더 보기 힘들다는 구십번대의 무기를 견식할 기회니까 말일세."
그 말을 기점으로 나는 발도 자세를 잡은 영감탱이를 가까스로 인식할 수 있었다. 젠장할 도대체 언제 앉아 있던 영감탱이가 저런 안정적인 발도 자세를 잡은거지? 이래서 술사 나부랭이로 동레벨이거나 상위 레벨인 검사의 유효 사거리 이내로 들어가는 것을 반드시 피해야하는 것이다. 얼티밋 언데드 폼을 완성시키고 육체를 갈아탄 이 후에는 동체시력이나 반응속도가 크게 향상되어 왠만한 수준의 검사는 무력으로 제압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진짜베기 검사 앞에선 이렇게 빈틈을 잡혀버린다.
나는 영감의 발도 자세에서 적의를 느낀것은 아니였지만 재빨리 뒤로 거리를 벌리며 사령안을 발동하는 것은 물론 이매망량들을 불러들였다. 내 얼티밋 언데드 폼에 새겨진 괴이한 문신으로부터 가지각색의 스펙트럴 크리쳐들이 튀어나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사령안을 통해 읽어들인 영혼의 속삼임은 '무엇인가를 벤다'라는 아주 단편적인 것. 영감과 충분한 거리를 벌릴때까지 일격적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차오르던 와중에 영감의 검집이 벌어지며 순백의 검신이 반짝인다.
젠장할 검격을 놓쳤다. 이 정도 거리라면 검의 궤적 끄트머리정도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동체시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그저 사령안을 통해 '베었다'라는 영혼의 속삭임을 듣고 검격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신체일부를 스쳐갔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였다. 온몸을 더듬거리며 신체의 이상 여부를 살피지만 어디가 베였는지 조차 알 수 없다. 혹시 상처가 크지 않아서 얼티밋 언데드 폼의 재생력으로 수복해버린걸까?
당최 어디를 베였는지 알 수 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손바닥으로 머리카락 몇 올이 툭툭 떨어진다. 아니 이 영감탱이가 머리카락 몇 올 베자고 그 난리를 피웠단 말이야?
"이걸로 VOT 시스템과 자네를 연결하는 제어망은 끊어 졌네.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축하하네. 헌데 이 늙은이가 자네를 잡아 먹는것도 아닐진데 어찌 그리 과잉방어를 하는겐가. 허허허 내가 다 뻘쭘해지지 않는가?"
"그러니까 제가 술사 나부랭이인지라 말이죠. 초일류 검사와 조우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하게 된달까."
영감탱이가 발도 자세를 허물고 박장대소 하기 시작했다. 혹시 저 영감탱이 초일류 검사라는 칭찬이 기분 좋아서 웃는건가? 구십번대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검사라면 초일류라는 칭호가 오히려 무색할 지경인데 평소에 칭찬에 굶주려 있던 모양이군. 웃음을 그친 영감탱이는 내가 아이언 메이든에서 소환한 내 본래 육체를 집어들더니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아직 통성명도 하지 못했군 그래. 내 이름은 용린혁일세. 부족하나마 용린검가의 가주직을 맡고 있지.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군세이되 군세가 아닌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용린혁 이 영감탱이는 뜬구름잡는 말을 정말 좋아하는 구만. 자신을 용린혁이라 칭한 영감탱이가 내 이름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내 시체의 뒤통수를 만지작 거렸다. 뭐하는 짓인가 하고 쳐다보니 정체불명의 실을 내 시체의 머리카락과 엮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내가 방금 이 자리에 있었을때는 저딴 실 듣도 보도 못했는데.
"이 세계에서의 제 이름은 옥사건입니다. 헌데 저 허공에 있는 실은 도대체 뭡니까?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왜 제 본래 육체였던 아바타와 연결하고 계시는 겁니까?"
"오호라 옥사건 자네 이 실이 보이는겐가? 심즉검(心卽劍)의 경지에 이른것 같지는 않은데 아직 이 늙은이의 견식이 이리도 부족하단 말인가. 이 실은 아까도 말했다싶이 VOT 시스템이 자네와 같은 외방인들의 아바타를 제어하기 위해 처음부터 달려있던 제어망일세.
자네처럼 필요 이상으로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외방인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아바타와의 연결을 강제로 끊거나 최악의 경우 아바타에 달린 폭탄에 기폭신호를 보내기도 하지. 물론 자네는 특이하게도 직접 새 아바타를 만들었기 때문에 아바타가 폭발하는 일은 없겠지만 본체와 아바타 사이의 연결을 강제로 끊는 것을 막지는 못했을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