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화 (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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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 Oxogan The Little Mermaid

"자네는 특이한 방식으로 육체의 한계를 벗어났구만."

네임드 NPC를 상대하는 것은 역시나 까다롭다. 커몬 NPC는 그저 플레이어가 특정 조건값을 충족하면 그에 따라 정해진 결과값을 내놓을 뿐이다.

따라서 커몬 NPC들은 보통 수동적이며 그들이 능동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 패턴은 정형화되어 있다.

허나 네임드 NPC는 항상 플레이어를 당황시키게하는 변수 덩어리이다.

지금처럼 플레이어의 역량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해 그에 맞는 퀘스트를 내리려할때면 상대가 인공지능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단순히 플레이어의 레벨을 Lv.1에서 Lv.100이나 Lv.901에서 Lv.1000로 나누는 수준이 아니다. 그 플레이어의 내력을 네임드 NPC는 꿰뚫어본다.

스킬이나 장비를 알아보는것은 예삿일이고 세계 최다 접속을 자랑하는 VOT(Vaccine Of Things) 게임 공략 사이트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수 스텟이나 귀속 장비인 문신을 알아본다.

거기에 한술 더떠서 그 스킬을 익히고 있는 플레이어보다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플레이어에게 조언을 하기도 하니 Lv.1000에 도달한 유저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지닌 랭커 집단 천외천(天外天)의 일인인 나도 네임드 NPC는 함부로 대할 수 가 없다.

다만 특이한 것은 이런 네임드 NPC의 통찰력이 커몬 Things가 아닌 네임드 Things에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VOT(Vaccine Of Things)의 모든 NPC 스킬 장비 몬스터등은 그 등급에 따라 Things No.1에서 No.100의 백분율 넘버링을 받게 되는데 그런 넘버링 위에 존재하는 분류가 바로 커몬과 네임드라는 이분법이다.

커몬 NPC와 네임드 NPC의 차이점에서 알 수 있듯이 네임드 Things는 그게 무엇이 됐던간에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변수덩어리다.

"내가 있던 곳에선 환골탈태란 것을 통해 나약한 육신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었네만 자네는 높은 수준의 변이술과 강령술을 응용해 아예 새로운 육신을 만들었군. 걸어온 길은 다르나 같은 곳에 이르렀으니 만류귀종의 법칙을 이렇게 눈앞에서 확인하게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 자네 덕분에 견문을 넓힘과 동시에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네."

뜬구름 잡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나는 이런 형태의 선문답을 굉장히 싫어 했다. 어디까지나 말이라고 하는것은 소통의 수단으로 간단하고 명료해야 하는것 아닌가? 허나 딱봐도 무공이 고강해보이는 네임드 NPC의 비위를 거슬렸다가 어렵게 단서를 잡은 퀘스트를 날려먹을 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고개를 주억거렸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 영감탱이야.

"오랜만에 젊은 친구를 만나서 그런지 서두가 길었군. 자네는 아마 구십번대의 무공을 익히고 싶어 날 찾아온거겠지?"

"합리적인 수준의 대가를 치르고 배울 용의는 있습니다."

나는 촐싹맞게 '네! 너무 너무 익히고 싶어요. 빨리 가르쳐주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걸 간신이 참고 근엄한척 대꾸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구십번대의 무공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만큼 내가 절박하지는 않다는 것을 넌지시 언급한것이다.

"나는 딱히 자네에게 대가를 받고 무공을 팔려는게 아닐세. 굳이 따지자면 자네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고 투자를한다고 보면 되겠군. 허나 내 용린무형검은 절대 익히기 쉬운 무공이 아닐세. 각오는 되어 있는가?"

뭐야 이 영감 나한테 직접 무공을 사사하려는건가? 내가 원하는건 그에 아니라 커몬 스킬북이라고! 구십번대의 무공같이 심오한 네임드 스킬을 내가 익힐 수 있을리가 없잖아.

"어르신 제가 원하는 것은 구십번대의 무공을 직접 전수받는것이 아닙니다. 네임드 스킬을 극성까지 익힌 이 세계의 주민들은 소정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해당 스킬의 커몬 스킬북을 제조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제가 원하는건 바로 그 커몬 스킬북입니다."

이야기가 겉도는걸 방지하기 위해 나는 돌직구를 던졌다. 커몬 스킬과 달리 네임드 스킬은 스킬 포인트가 들지 않는 대신 익히는 과정이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애시당초 네임드 스킬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게임의 스킬보다는 일종의 전공 학문에 가까웠다. 저 영감이 환골탈태와 다름없다며 지적한 내 얼티밋 언데드 폼(Ultimate Undead Form) 또한 팔십번대의 술식인 리치 폼(Lich Form)에 내 전공인 생명공학을 접목한 것이다.

얼티밋 언데드 폼(Ultimate Undead Form)을 완성하기 위해 졸업논문을 쓸때보다 수백 곱절은 더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도대체 왜 게임에 그 정도의 생명 공학 매커니즘을 녹여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확실히 소정의 수수료를 지불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용린무형검의 커몬 스킬북을 만들어낼 수 있네만 과연 그것이 의미가 있겠는가? 용린무형검은 그닥 화려한 무공은 아닐세. 그저 갈대를 흔드는 산들바람처럼 보이지만 보이지않는 자연의 섭리를 쫓는 무공이지. 그런 소박한 무공인지라 저잣거리에서 약장수가 구경꾼들을 모이게 할 때조차 쓰이지 못할걸세."

VOT(Vaccine Of Things) 시스템이 용린무형검을 구십번대의 무공으로 책정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초식의 외형과는 별개로 용린무형검의 효용성은 VOT(Vaccine Of Things) 시스템이 보증한다. 물론 커몬 스킬인 무공의 경우 스킬 포인트를 아무리 투자해도 10성까지밖에 익힐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허나 그 무공을 12성까지 익히자고 네임드 스킬을 익히는건 지옥불로 달궈진 가시밭길을 걷는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이미 팔십번대의 술식인 리치 폼(Lich Form)을 익히면서 그 가시밭길을 걸어본 전적이 있는 나로서는 상위 넘버링의 네임드 무공을 익히는건 사양하고 싶다. 게다가 나는 무공에 관해선 완전히 문외한이라고. '닥치고 어서 스킬 포인트만 투자하면 익힐 수 있는 커몬 용린무형검이나 내놔 이 영감탱이야!'라고 말했다간 당장 칼부림이 나겠지?

"단순히 화려한 무공이 강한게 아니라는것 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무공으로서 구십번대의  넘버링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어르신이 왜 겸손해 하시는지 술사 나부랭이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쇼."

"외화내빈일 지언즉 겉으로 화려한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네. 따로 배움을 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무릇 당연한 세상의 이치이니 말일세. 허나 앎과 실천은 다른 법이지. 허름한 무명옷과 화려한 비단옷을 두고 선뜻 허름한 무명옷을 산뒤 남은 돈으로 책을 사라하면 그리할 수 있겠는가?

이번엔 화제를 바꾸어 격물치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세. 앎의 궁극에 도달하고자 할때 사물의 이치를 치밀하게 파고들어야함을 모르는 사람 또한 없네.

허나 실제론 어떠한가? 자네는 사물의 이치를 치밀하게 파고들기 보다는 커몬 스킬북이란 임시방편을 통해 쉬이 앎의 궁극에 도달하려 하고 있네. 일찍이 아바타 중 강령술이란 분야에 있어 가장 궁극에 가까이 도달했다고 평가받는 자네가 이리 지름길을 쫓으니 오매불망 자네와의 만남을 기다려온 내 마음이 마치 반딧불을 쫓다 놓쳐버린 아이와 같네 그려."

'아니 그거야 이게 게임이니까 그런거 아니야!'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걸려 맴돌았다.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큰 성취감을 얻게 해주는 것 그거야말로 게임의 본질이고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 이유중 하나이다.

이치에 어긋나 있는것은 내가 아니라 VOT(Vaccine Of Things)내의 네임드 Things들이다. 고작 게임에 그런 어려운 섭리를 담아야할 필요가 있는것인가? 물론 그런 게임때문에 대학도 졸업도 하지않고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지만 때때로 VOT(Vaccine Of Things)내의 네임드 Things들을 접하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게임때문에 오히려 골머리를 앓게된다.

지도교수님보다 까다로운 네임드 NPC와 전공심화따위는 찜쪄먹는 네임드 스킬. 스마트폰 따위는 애들 장난감으로 만드는 네임드 에고 웨폰들. 머리 속에 VOT(Vaccine Of Things)내에서의 또 다른 나인 옥사건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하나의 질문이 수면위로 올라온다.

VOT(Vaccine Of Things) 게임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까?

일단 공돌이긴 하지만 생명공학계열이였던 나는 스마트폰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모른다. 허나 그 원리를 모른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쓰는데 지장이 있는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VOT(Vaccine Of Things) 또한 마찬가지인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할뿐 이 또 하나의 세계라고 칭해질만큼 거대한 게임을 구동하는 프로그래밍 아키텍쳐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야 그게 아니야 스마트폰과는 달라.

설사 내가 스마트폰이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지 모른다고 해도 그건 분명 존재하는 길을 내가 걸어보지 못했을뿐. VOT(Vaccine Of Things)의 경우 아예 그 길 자체의 존재여부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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