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쿵쿵-
김준은 미군부대 체력단련실에 있는 런닝머신을 가동하면서 경보로 달렸다.
깨어나자마자 걷는 것도 힘들어했던 몸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다시 피가 돌았다.
천만다행인 것은 칼에 맞고 엄청난 피를 흘려, 혼수상태였어도 심정지까지 오지는 않아 뇌손상은 없었다고 한다.
김준 역시 기습적으로 달려든 조직원들에게 칼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놈을 처리하고 일어날때까지의 일을 무전기를 통해 들을 정도로 정신은 또렸했다.
역시나 문제는 몸 상태.
여기저기 베이고, 찢어진 몸을 꿰매긴 했지만 다시 근육을 움직이는데는 힘이 들었다.
“끄으으응!”
“스탑! 스탑!”
런닝 이후에 매트에 눕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려는 순간, 오버트레이닝을 확인한 미군들이 김준을 말렸다.
“아직 위험해요. 써전 말로는 근골격? 여튼 그렇게 전부 상한 상태이니 무리하게 움직이면 붙은게 다시 터진대요.”
“에휴-”
매튜 대위의 말을 들은 김준은 한숨을 쉬면서 힘겹게 일어났다.
확실히 걷는 건 문제가 없는데 아직은 할 게 많았다.
그렇게 제한적인 운동을 마친 뒤로 샤워장에 갔을 때, 김준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복근은 진작에 사라졌고, 오른쪽 옆구리부터 등까지 칼자국이 수없이 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물어 보였지만, 누가 보더라도 문신 그 이상의 혐오감을 보일 흉터였다.
“….”
김준은 가까이 다가가 지난날 다쳤던 어깨부터 최근에 찔린 복부와 등까지 칼침 자국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 칼침 뿐만이 아니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슬쩍 올리자 얼굴, 특히 눈가 한 곳이 말려서 짝눈의 상태였는데, 이건 예전에 애들 무기 만들어준다고 석궁 테스트하다가 부러진 나무조각이 얼굴에 튀어서 눈두덩이가 찢어진 거였다.
이게 다 1년만에 생긴 일이었다.
“쯧-”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욕조에 고인 물을 퍼내 샤워를 했다.
그래도 씻을 수 있고, 푹신한 침대에 쉴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
“살았네! 정말 살았어!”
“형님도 다시 보니 정말 반갑네요.”
김준은 떠나기 이틀 전에 미군부대로 찾아온 양근태를 보고는 두 손을 잡고 반가움을 표했다.
자세히 보니 양근태는 혼자만 온게 아니었다.
“오~ 스윗 걸~”
“헤이~”
양근태는 기존의 픽업 트럭 대신 미군한테 받았다는 두돈반 트럭에 아가씨들을 가득 태워 왔다.
그렇게 이야기 했던 미군 부대에 필리핀, 태국, 베트남, 중국 아가씨들이 내리자 미군들은 환호하면서 초면부터 서로 포옹하고, 찐한 애정행각을 하면서 안내를 받았다.
이렇게 소사벌 황 여사 일행의 쉘터 하나는 사라지고, 그 생존자들은 미군들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김준은 그 모습을 보고 담배를 물었다.
“자네 집에, 그 은지인가? 그 아가씨 당차대?”
“네, 은지한테 얘기 들었어요.”
“원래 연예인이었다면서? 생활력이 아주~!”
“형님이 필요한 물자 지원 많이 해주셨다면서요?”
“물물 교환이었지. 그래도 한 달 동안 잘 살아가더라고.”
“감사합니다.”
김준은 담배를 내리고 양근태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은지가 그러더군요. 미군들이 저희 집 가려는거 형님이 막아주시고, 따로 다니면서 필요한거 다 구해주셨다고요.”
“내가 뭐… 으하하하!”
사람을 믿는 다는 건 평소에도 힘든데 아포칼립스에서는 더 힘든 법이다.
당장에 김준이 사라지고 8명의 미녀들이 자기들끼리만 살아가고, 어떤 외부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군들이 애들 구해주겠답시고 찾아간다고 했다.
과연 그들이 순수한 선의로 이곳에 머물게 해 줬을지, 한달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는 상상하기도 끔찍했다.
물론 그건 양근태에게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고, 만약 양 사장이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그것 또한 상상하기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군도 양근태도 김준에게는 ‘좋은 이웃’으로 남게 되었고, 한 달 간의 공백속에서 그가 안도할 수 있었다.
“나도 김사장에게 고마워. 덕분에 나이 50넘어서 늦장가 가게 됐어.”
“네? 그게 무슨… 아!”
그러고보니 양근태의 왼손에 반지가 하나 끼어져 있었다.
“형님, 설마?”
“그래, 황 사장하고 합쳤어. 뭐 이 상황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다 늙어가는 사이에 그렇게 됐지. 과부 마음은 홀애비가 안대잖아? 하하하-”
양근태는 소소한 사람이었다.
분명 아포칼립스 시대에서 차를 타고 방방곡곡을 누볐지만, 그는 비슷한 나이대의 황 여사와 살림 차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황 여사에게 그들을 구해준 것이 김준이라는 것을 알고서 오히려 감사해했다.
“은별이랑 나미는 남겠다고 해서 넷이 같이 살고 있지. 딸뻘 되는 애들이니 이렇게 다같이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야. 내가 뭐 다늙어서 늦둥이를 볼 지는 몰라도 말이야.”
“형님, 잘 됐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 유지하자고요.”
“그래.”
김준은 양근태와 악수하면서 짆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렇게 신릉면 제일파 소굴의 조폭들에게 신음하던 안마시술소 룸 여자들도, 황 여사 밑에 있던 보도방 여자들도 모두 혈기왕성한 젊은 미군들이 있는 부대로 들어갔다.
비록 모양새가 안 좋긴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 뭉치게 되었고, 연대 단위로 사내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그녀들은 나름대로 살아갈 것이다.
김준은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되는 상황을 보고 하늘을 바라봤다.
“벌써, 1년이 지났네.”
김준은 가끔씩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움켜쥐고서 이제 떠날 준비를 마쳤다.
***
“자, 차는 싹 다 정비해 줬고, 혹시 몰라서 MRE랑 통조림도 잔뜩 넣어줬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벨린저 대령을 포함한 미군 병사들은 퇴원해서 돌아가는 김준을 향해 인사해줬다.
벌써부터 몇몇 병사는 옆에 여자들을 끼고서 아주 물고빨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신세 많았습니다.”
“언제든 와도 좋아요. 이제 우리는 같은 동료입니다.”
벨린저 대령과 뜨거운 악수를 나눈 김준은 수많은 미군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차에 탔다.
“후우-”
아직도 욱씬거리긴 하지만, 이제 남은 치료는 집에서 할 거다.
김준은 한 달만에 다시 차에 앉아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매끄럽게 시동이 걸린 차량은 곧바로 미군부대를 달렸고, 정문까지 가는 길에 험비 두 대가 엄호해줬다.
그리고 문에서 경계를 서던 미군들이 철문을 열어주자 드디어 미군부대를 나설 수 있었다.
참으로 길었던 일이었다.
***
집에 돌아왔을 때 8명 모두가 반가움에 김준에게 달려들었다.
“흐윽- 흑-”
“흐아아앙- 오빠! 오빠!”
“훌쩍- 흐윽-”
우는 소리는 각기 달라도 김준의 몸을 끌어안고서 오열하는 소녀들.
김준은 모두를 끌어안으면서 토닥거려줬다.
“오빠, 못 보는 줄 알았어요….”
김준은 그 말을 한 가야를 안으면서 그녀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맘껏 쓰다듬어줬다.
“우리 아기도 안 만들고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얼굴은 눈물콧물 짜고 있으면서 그 와중에 아기 이야기를 하는 에밀리의 금발 머리도 쓸어내려주면서 언제 만져도 탄탄한 엉덩이를 토닥여줬다.
“흐윽- 진짜… 진짜 너무 오래 걸렸잖아요!”
옆구리를 끌어안아 좀 아프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는 라나, 내색 전혀 안하고 있었지만 감정기복이 심해서 언제나 울던 머리카락 자란 인아, 생일 앞두고서 갑자기 사라진 게 서운할 법 했지만, 김준이 왔으니 됐다면서 달라붙은 나니카.
“아직 치료할 거 많죠? 제가 다~ 고쳐드릴게요. 그러니까 꼭 여기 있어야 해요.”
“그래 마리야.”
“씁, 내가 웬만해선 안 우는데….”
뒤에서 그 큰 덩치로 모두를 안아주는 도경.
김준은 모두가 다 소중하다면서 맘껏 안아주고 토닥였다.
그리고 남들과는 달리 한 발짝 살짝 떨어져 있고, 눈물도 안 흘리는 그녀, 은지가 말없이 김준과 눈을 마주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내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앞에서 오열하는 애들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내색은 안한다 하더라도 눈가와 뺨이 붉어진게 김준이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김준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한 달만에 만난 그녀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고 오랜만에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퍄~”
침대에 편하게 누웠을 때, 뒤따라온 에밀리가 있었다.
“나 아직 환자야.”
“흐응~”
에밀리는 조용히 김준에게 다가와 고양이처럼 살포시 누웠다.
검은색 탱크탑에 육덕진 하체가 드러나는 돌핀 팬츠 차림으로 김준의 옆에 누워 팔을 배는 에밀리.
김준은 이것도 참 오랜만이라면서 그녀의 금발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달 동안 우리 얼마나 보고 싶었어?”
“엄청 보고 싶었지.”
“나도야.”
쪽- 쪽-
에밀리는 김준을 끌어안으면서 연신 그의 목과 얼굴에 키스를 하면서 품에 안겼다.
“섹스 못한다니까….”
“이렇게만 있을래. 앞으로 내가 옆에서 계속 먹고자고 하면서 케어해줄게~”
“안 그래도 돼.”
“흐응-”
그때 노크와 함께 조용히 들어오는 라나와 나니카도 있었다.
그녀들 역시 재회의 기쁨을 더 누리고 싶은 지 은근슬쩍 침대위로 올라가 빈 자리를 찾았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우리 차나라 양도 보고 싶었어.”
“진짜요?”
“나니카도.”
“고마워요!”
빙긋 웃는 세 미소녀.
그리고 에밀리가 김준의 귓가에 속삭였다.
“준 올 날을 기다려서 준비한게 많아.”
“뭐, 특식이라도 만들었어?”
“더 좋.은.거♥”
“?”
에밀리는 뒷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사진을 몇 장 꺼냈다.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인데 어째 살구색과 흰색이 참 많은 사진이었다.
“준이랑 다시 할 날 기다려서 준비했어♥”
“…미쳤구나?”
김준은 사진들을 보고서 후다닥 일어날뻔 했다.
거기에 찍힌 것들은 다름아닌 이 집에 사는 아이돌들의 누드사진이었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알몸에 란제리 하나만 걸쳐서 속살이 드러난 채 포즈를 잡은 에밀리의 모습.
또 재단을 한 건지 줄인 교복 차림에 제로투 댄스를 추면서 노브라 차림인 나니카.
컨셉 화보인지 벗은 몸을 보이는 다른 아이들, 가장 압권은….
여기 안 방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M자로 다리를 벌린채 가장 소중한 곳을 손가락으로 슬며시 벌리거나, 두 손으로 더블 피스를 한 에밀리의 사진이었다.
“조만간 여기에 다시 들어가는 거야♥”
김준은 앞으로 이런 거 하지 말란 의미로 그녀들의 엉덩이를 힘껏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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