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부대는 언제나 분주했다.
군병원을 앞에 두고서 닭을 키우고, 감자를 캐고, 여름 작물을 심기 위해 밭을 갈고 토마토와 양배추 모종을 준비했다.
물론 천하무적의 미군이 단순 둔전만 하는 게 아니어서 남는 공포탄을 가지고 훈련을 하거나 체력 단련을 철저하게 하면서 전투력을 항시 유지했다.
매주 주일이 되면 벨린저 군종실장의 지도 아래 예배도 드렸고, 신을 믿지 않는 미군들 역시도 단 한가지의 소원인 ‘좀비 사태가 끝나고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기도를 했다.
물론 환자들 케어 역시도 언제나 똑같았다.
“많이 나아졌어요. 이젠 병실말고 다른데서 있을 수 있나요?”
“음, 외상은 치유됐지만, 아직 마약 기운을 빼내는 건 기다려야 해요. 조금만 더 참자고요.”
자신 역시 치료를 하면서, 군의관의 말을 대신 번역해주는 두 한국인 의사의 말에 안마시술소 아가씨들은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건, 저 환자인데….”
같이 칼을 맞았던 메일러 상병은 치료 이후 재활 중이지만, 한국인 환자 김준은 자상이 너무 많았고, 장까지 찢어졌던 몸인지라 아직도 의식이 없었다.
그동안 대소변도 받아내고, 수염도 깎아주고, 상처 봉합이 잘 되는지를 확인하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에어 매트를 깔아주는 등, 지극 정성을 다해 케어한 환자였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미스터 킴을….”
미군 군의관과 한국인 의사 둘이 들어왔을때였다.
“어, 써전!”
“!?”
“지, 지금 저 환자 움직이잖아요.”
“God is.... 캡틴!”
김준은 오랜 기간동안 잠들어있다가 손부터 서서히 움직였다.
***
“으으음-”
김준은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오랬동안 감겨있던 눈이 서서히 떠졌을 때, 온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크윽!”
“Calm down take it easy!”
“!?”
김준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영어와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손아귀에 짓눌렸다.
“읏! 크윽, 우으음!!”
일단 입과 코를 막고 있는 이것부터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들이 팔을 눌러서 뿌리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겨우 두 녀석의 힘을 못 이겼다.
“김준씨! 들리세요? 김준씨!”
“…!!!”
“진정하시고, 잘 들리시면 눈을 깜빡여보세요.”
김준은 눈꺼풀을 바르르 떨면서 세 번 정도 깜빡였다.
그러자 다시 한국어가 들렸다.
“김준씨! 지금 호흡기를 차고 있어요. 자가 호흡이 가능하시겠어요? 한번 호흡 마스크를 풀어볼게요.”
“…!”
김준이 다시 눈을 깜빡이자 천천히 그들을 누르고 있는 손아귀 힘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리고 한국인 의사가 손을 뻗어서 호흡마스크를 천천히 빼냈다.
“푸우우- 후우우우-”
“김준씨.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나요?”
“…몰라.”
“왜 여기 왔는지는 아시나요?”
“혹시… 병원?”
“네, 맞아요. 여긴 주한미군 캠프 험피스의 군병원입니다!”
김준은 귀로 그 말을 듣고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제 막 깨어난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미군 부대라고? 그때 그 칼을 맞고 여기까지 온 거야? 애들은 어떻게 됐지? 내가 지금 얼마나 누워있던거야? 몸 상태가 완전 걸레짝이 됐어. 제대로 움직이는거 맞는건가?’
불안불안한 상황에서 발에 힘을 주자 양쪽 발가락이 까딱이는건 느껴졌다.
그렇게 의사 여럿이 김준의 몸상태를 살피고, 옷깃을 풀어헤치면서 드레싱 준비를 했다.
김준은 자신의 웃옷이 벗겨지면서 배에 있는 상처들을 확인할수 있었다.
“아, 씨발….”
“근육은 붙었지만, 아직도 치료가 더 필요해요.”
“아니, 저기…내가 얼마나 여기 있었죠?”
“한 달간 누워있었어요.”
“!”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수많은 자상을 입고 칼날이 근육을 뚫고 소장까지 들어간 상태였대요. 소장 문합을 하고, 상처 소독과 수혈을 한 뒤로 겨우 깨어난 거였어요.”
“한 달, 한 달이라고….”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면서 급히 들어오는 매튜 리 대위가 있었다.
“준! 깨어났군요.”
“잠깐만! 내가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야. 지금 당장 집으로….”
“진정해요! 다들 무사합니다.”
“뭐?”
매튜는 무전기를 들고서 그곳에 대고 말했다.
“자, 깨어났어요. 누구 먼저 이야기 할 거죠?”
[치직- 나! 나! 아 쫌! 비켜! 무전기 뺏어!]
여럿이서 자기가 먼저 연락하겠다고 말하는 소리가 무전기 스피커를 통해 들리자 김준은 허탈하게 웃었다.
“아, 여보세요?”
[오빠!!!!!!]
결국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치자 김준은 이제야 살았다면서 안도했다.
***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다시 깨어난 것은 기적이에요.”
제복 차림에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온 벨린저 대령은 김준의 손을 잡으면서 그에게 십자가 펜던트를 건네줬다.
“깨어났으니 됐어요. 다 나을때까지 여기서 편하게 계시면 됩니다.”
“아뇨. 그렇게 오래 있을 필요 없어요.”
“오~ 준. 여기는 좋은 써전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좀비는 우리가 잡고 있고, 당신의 집에 있는 아가씨들 역시 매일같이 무전기로 연락하면서 다들 잘 있다고 했어요.”
[치직- 올 롸잇!]
그때 옆에 있는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김준만 듣는게 아니라, 무전기를 끼고서 다른 애들도 모두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준 보고 싶어~]
[오빠! 진짜 괜찮은거죠?]
[치직- 소장 문합까지 했다면서요? 전문의가 있으면 거기서 치료 확인 하실 수 있어요]
에밀리 뿐만 아니라 라나와 마리의 이야기까지 듣고서 벨린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몸에 있는 실밥은 다 풀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글쎄요. 제가 여기서 한 달 넘게 있었다고 했는데, 빨리 가서….”
그때였다.
[치직- 치료 잘 받고 오세요.]
“!”
은지였다.
애들 하나하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은지는 가장 마지막에 통화를 했었는데 그녀는 무척이나 차분했고, 지금 집 안에서 8명이 잘 살고 있으니 김준이 치료 받고 천천히 와도 된다는 걸 다시 강조했다.
[오빠는 이제까지 다쳐도 제대로 치료 안 받고, 지쳐도 쉬질 않았잖아요.]
“은지야. 그래도 거기 또 몰라. 좀비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고, 너무 오래 비웠어.”
[치직- 네~ 네~ 한 1주일은 그래서 애들 울고불고 했어요. 근데, 뭐… 이제는 오빠 무사한 거 다 알잖아요? 이거 무전기로 계속 이야기 할 수 있고요.]
“….”
[오빠도 저희 믿고 치료 받고 쉬어 주세요. 그동안 저희가 여기 집 싹 정리해 놓을게요.]
김준은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발짝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그렇게 믿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가 있다는 거겠죠. 준은 정말 좋은 리더입니다.”
벨린저 대령은 빙긋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군 병사 두명이 다가와 김준에게 총을 건네줬다.
“!”
“지난번 소총은 넘어져서 망가졌고, 새걸 드리죠. 이건 지난 번 것보다 좋을 겁니다.”
벨린저는 김준에게 M4 카빈 소총 한 자루를 새로 건네줬다.
이 모델은 레일이 달려있어, 손잡이부터 스코프까지 전부 미군 장비로 채워져 있었다.
거기에 내부 정비를 할 수 있는 키트까지 그의 몫으로 주자 김준은 조용히 그것을 바라봤다.
“총알은 다 나으시면 그때 채워 드리죠.”
“흐음, 네.”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피식 웃었다.
“일 주일 정도는 여기에 더 있겠습니다.”
벨린저는 빙긋 웃으면서 엄지를 올렸다.
***
그 뒤로 김준은 빠르게 재활운동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누워있어 살도 쭉 빠지고, 음식도 감자를 잘게 다져 물에 푼 죽과 가루 주스를 마시면서 천천히 위장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미군 부대 내에 있는 재활 운동기구를 통해 난간을 잡고 걷는 것부터 런닝까지 차근차근 진행했다.
그리고 매일 1시간 동안 미군 군의관과 그걸 번역해주는 한국인 의사를 통해서 혹시 생길지 모르는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도 받았다.
스윽-
달그락-
“어떻게 보이시나요?”
“이게 그거 맞죠? PTSD.”
“네, 맞아요.”
“트라우마라고는 알았는데, 그렇게 말했을 때 순간 못 알아 들었단 말이죠. 킥!”
자기 영어 못한다는 셀프 디스를 하면서 미군 군의관이 꺼낸 벼려진 대검을 유심히 바라봤다.
칼에 찔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 그 이후로는 애들이 드는 장난감 칼만 봐도 흠칫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준은 군의관이 대검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지켜봤고, 오히려 손을 내밀어 그걸 자신에게 달라고 까딱거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줘 보세요.”
“….”
군의관이 대검을 건네주자 옆에 있던 통역 의사가 불안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김준은 품 안에서 새빨간 사과 하나를 꺼내 대검으로 껍질을 깎았다.
“!”
“미국 사과는 진짜 완전 새빨갛더군요. 어디 색깔 착색도 없고.”
김준은 대검으로 깎은 사과를 한 조각 잘라서 두 의사에게 건넸다.
군의관이 멋쩍게 웃으면서 한 조각 받아들고, 옆에 의사도 한 입 물었다.
“제가 좀 둔감해서 그런지 별 느낌은 없어요. 손 떨리는 것도 없고요.”
김준은 자신도 사과 한 조각을 깎아서 입에 물고 우물거렸다.
감자 죽만 먹다가 느끼는 청량한 과일 맛이었다.
“외상만 치료되면 정말 일상 복귀에는 문제 없겠네요.”
“물론요.”
김준은 완전 부활을 준비하면서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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