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빵- 빠앙-
김준은 정말 오랜만에 온 명국의 집 앞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문 앞에서 클락션 세 번을 눌렀다.
그때 철문보다도 그 안의 집 창문이 먼저 열리더니 명국의 부인 수영이 황급히 몸을 내밀었다.
“어? 왜, 수영씨가 먼저… 아!!!”
“뭐야?”
“오빠! 클락션 누르지 마요! 아기, 아기 있잖아요!”
마리가 바로 눈치채고서 입가에 손가락을 올렸을 때, 명국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도 재활 장비인 부목을 다리 한쪽에 찬 채로, 나무 지팡이 하나를 든 채 절룩거리면서 오는 모습은 순간 김준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명국은 평소 보던 캠핑카가가 아닌 험비를 보고 놀라다가, 이내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 마리를 보고는 바로 문을 열어줬다.
차를 주차하고 내렸을 때, 김준은 지팡이를 진 명국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형님, 오랜만에 뵙네요. 지난번엔 못 도와드려서 죄송했어요.”
“됐어, 다리는 계속 아픈 거냐?”
“그래도 좀 나아지고 있어요. 매일 고무밴드 땡겨서 재활하거든요.”
김준이 그 말을 듣고 혀를 찼지만, 명국은 다친 다리는 개의치 않고 새 차를 신기한 듯 연신 둘러봤다.
“그나저나 차는 언제 바꿨어요?”
“그렇게 됐어.”
“이거 그거죠? 허머H2인가? 그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거….”
“비슷한 거야.”
김준은 담배 한 대를 물고서 불을 붙였고, 오랜만에 와서 마당을 둘러봤다.
“못 본 사이에 엄청나게 많아졌죠? 메추리는 두 배로 늘었고, 병아리도 저거 보세요.”
스무 마리 정도의 병아리가 김준 손바닥만하게 커져서 슬슬 벼슬이 자라고 있었다.
밖에서 남자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마리와 에밀리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아기를 구경하면서 그 목소리가 바깥까지 울렸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 애가 기어 다니진 못 하지?”
“목도 못 가눠요. 시간 더 지나야죠. 우리 은영이.”
“아… 애 이름이 은영이야? 이은영?”
“네, 태명으로 이거저거 했는데 와이프가 저 깨어나고 다시 짓자고 하더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은지씨 이름의 ‘은’짜는 꼭 쓰고 싶다고.”
아마 이 자리에 은지가 있다면 내색 겉으로 않다가 돌아갈 때 고개 돌리고 웃었을 거다.
“그래도 바쁜 걸음 왔는데 뭐 도울 거 좀 있어? 너 몸도 불편한데 할 거 있으면 빠르게 해줄게.”
“아, 정 그러면….”
“대신 저거 차에 있는 부품 좀 여기 맡긴다?”
김준은 라보에 딸려온 블루핸즈 발 차량 부품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
“아우~ 너무 이뻐. 얘는 그때 그 베이비보다 더 작잖아?”
목도 못 가눈 채 누워 있는 아기였으나 에밀리와 마리를 보고는 방긋방긋 웃는 모습에 두 톱스타가 엄마 미소를 지었다.
“수영씨는 별일 없죠?”
“아, 네. 저야 괜찮아요.”
수영은 출산 이후 모유도 잘 나오고, 이제는 걷는데도 문제없어서 남편이랑 같이 밭일도 한다고 한다.
마리는 여기까지 온 김에 모녀의 건강검진을 간단하게 해 줬다.
“베이비 파우더도 없고, 기저귀도 면포 삶아 써서 걱정이예요.”
“그럼 피부엔 뭐 발라요?”
“저번에 주신 그 분말 마데카솔… 그거 써요. 물티슈랑 같이.”
“어휴… 살 안 트게 피부관리도 하고, 예방접종도 해 줘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걸 구할 리 없었고, 그냥 부모가 목욕을 자주 시켜 주면서 최대한 위생을 신경을 써 줘야 했다.
그사이 바깥에선 김준이 명국 창고에 부품 박스를 날라 맡기고, 도끼를 들어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빠각- 빡!
도끼질 한 방에 쌓아 놓은 나무들이 깔끔하게 쪼개지는 모습을 보고 에밀리가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바깥을 봤다.
한 번 도끼를 들 때마다 보이는 팔뚝에 그녀는 아기보다도 김준의 모습을 보고 더 좋아했다.
“안 그래도 장작 패는 거 힘들어했는데, 고맙네요.”
“그럼 그동안은 어떻게 했어요?”
“명국 오빠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바닥에 놓고 톱질로 썰었어요.”
“저분도 진짜 제대로 재활해야 하는데… 상황이….”
마리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수영은 그런 의사 아가씨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빠 살아난 것만 해도 감사해요. 오빠도 운동 계속하면 다리 움직일 수 있다고 하고요.”
“아, 네. 그래요….”
명국에 집에 들러 장작도 패 주고, 닭장과 오리, 메추리장 가서 알도 빼오고 최근에 덜그럭거린다는 모터 발진기도 분해해서 고쳐줬다.
“무기는 있어?”
“닭 잡는데도 이거 쓰고 있어요.”
명국이 창고에서 꺼낸 건 나무로 된 활이었다.
지난번에 사고로 날려 버린 카본제 컴퍼지트 보우는 날렸지만, 따로 빼 놨던 리커브 보우를 가진 명국이었다.
“너도 무기 꿍쳐둔 게 꽤 있나 보구나?”
김준은 집에 비상용으로 가진 보우건이라도 줄까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오리랑 닭은 몇 마리 잡아드리면 될까요?”
“너희 먹을 건 필요한 거 아니야?”
“아, 형님한테는 저기 있는 거 다 잡아다 드려도 부족해요.”
명국은 내친김에 바로잡겠다는 듯 리커브 보우를 들었다.
그러고는 나무를 깎아서 만든 화살을 장전하고 힘껏 당겼다.
“끄으응….”
지팡이 없이 선 채로 다리 한쪽이 후들거려 제대로 고정하고 활을 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김준이었다.
“야, 무리하지 말고 내가 들어가 잡을 테….”
피유유우우우-
파악- 꿰엑!!!
“!!!!”
순식간에 일이었다.
명국이 쏜 화살은 마름모꼴의 철망을 통과하고 암탉 한 마리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맞은 닭이 푸드득거리다 바로 쓰러졌고, 다른 녀석들이 도망 다닐 때 화살을 집고 다시 한번 겨누고는 당겼다.
양궁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활실력은 김준의 사격하고 동급 수준의 명중률이었다.
그렇게 진짜 화살로 닭 10마리를 잡은 명국이 들어가려 하자 김준이 그를 앉히고는 자신이 직접 가서 닭장에서 꺼내 왔다.
“수탉은 왜 이렇게 많이 잡았어?”
“개체 수 조절 해야 해요. 수탉이 많으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죽어요.”
“어쨌든 고맙다. 털은 내가 뽑을 게.”
김준이 닭시체를 가지고 식칼을 챙길 때, 명국은 또 어디론가 향했다.
직접 목을 쳐 내고, 피를 뽑고, 털을 다 뽑아내고 있을 때, 명국은 계란 두 판을 가져 왔다.
“야, 뭘 그렇게 많이….”
“잔뜩 있어요. 형님,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암튼 잘 받으마.”
그렇게 김준이 손질한 닭들과 계란을 챙긴 다음 다시 담배타임을 가질 때,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냈다.
멧돼지한테 들이받혀 캠핑카 박살 난 거 고쳐야 하는 이야기.
오면서 블루핸즈 털어서 자동차 부품 여기다 갖다 놓고 때때로 차 수리를 여기서 할 수도 있단 이야기.
최근에 오는 행상인이 해산물을 가져오는데 서해안쪽에 소규모로 어부들이 있어서 앞으로 수급이 충분하단 이야기.
그리고 오늘 이곳에 들린 다음에 갈 곳에 대한 정보도 명국에게 말해줬다.
“잘되야 할 텐데 말이야.”
“아니, 진심… 미군부대로 가신다고요?”
“안에 생존자 있어. 말했듯이 라디오에서 방송도 들었고.”
“히야, 역시 미국은 미국이라고 해야 하나. 그 상황에서도 잠수함 타고 전 세계에 방송을 한 단 말이죠?”
명국은 생각지도 못한 일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마음속에 희망이 생기는 거 같았다.
“일단 그쪽하고 소통이 되면 좋겠는데 말이야.”
“후… 미군이라. 어마어마하네요. 저였으면 알아도 못 갔을 거 같아요. 아니, 아예 라디오에서 영어 나오는 것도 이해 못 했겠죠.”
이 상황에서 김준 일행이니까 가능한 일이었고, 여기서 볼일 마치고는 바로 그곳으로 간다고 하니 그저 응원밖에 할 게 없었다.
“형님, 진짜 조심하세요.”
“그래, 너도 몸 잘 챙기고, 다음에 또 사냥 한 번 가자.”
그러면서 험비의 체인을 풀고 라보의 차 키를 명국에게 던져 줬다.
“오토바이 없이 어디 나가지도 못할 텐데 저 트럭은 네가 써라.”
“아이, 이거까지는….”
“받아~ 다음에 올 때 저거 다 자라면 20마리 받아 갈 테니까.”
닭장 안에서 뽈뽈거리며 다니는 약병아리떼를 가리킨 김준의 한 마디에 명국은 멋쩍게 웃으면서 다시 올 때 다 잡아드리겠다며 약속했다.
***
“자~ 다시 여기까지 왔어? 으응~?”
“누구 나와 있으면 좋겠다.”
명국 부부네 집을 들린 뒤로 진입한 미군부대 사거리.
이미 여기까지 오면서 지난번에도 많이 잡았던 좀비를 다섯 마리나 쓰러트리고서 붉은색 벽돌로 이뤄진 부대 장벽을 크게 돌고 있는 김준의 험비였다.
“저기 안에 있는 거지? 아미들.”
에밀리의 말에 김준은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 그거 준비 했지?”
“여기 있어!”
좌석 밑에 있던 것을 꺼낸 에밀리는 기둥에 돌돌 말린 것을 펼쳐 내서 김준에게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깃발이었다.
김준이 펄럭이게 할 흰 면의 셔츠를 하나 찢었고, 에밀리가 잉크 적신 펜으로 큰 글자를 써서 영어로 또박또박 이야기를 적었다.
내용은 다름과 같았다.
[우리는 부대 밖에 있는 한국인 생존자입니다. 우리 역시도 AFKN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바깥에서 제임스 E 맥클러리 중령의 수기를 읽고 그분들의 유지를 이었습니다. 이 깃발을 확인하시면, 이후 답장 깃발을 달아주십시오. 열흘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 내용을 영어로 써서 준비한 깃발을 에밀리가 험비 위에 있는 루프탑 위로 올라가며 챙겼다.
“잘 꽂아라! 안 되면 내가 하고.”
“아니야! 여기다가 그냥 달면 되잖아?”
에밀리는 깃대를 가지고 몸을 숙여 미군부대의 철조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팔을 쭉 뻗어서 미군부대 장벽에 있는 한 곳에 꽂아놨고, 다행히 떨어지지 않은 채 철조망 사이에서 바람을 맞고 펄럭있는 깃발이 보였다.
“오케이 됐어. 그럼 이제….”
김준은 다시 차 안으로 들어온 에밀리와 마리에게 귀를 꽉 막으라고 한 다음 힘껏 클락션을 울렸다.
BBB-BBBBBB-BBBBBB!!!!
군용트럭의 클락션은 특히 더 커 보였다.
좀비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김준은 계속해서 클락션을 눌러댔다.
이렇게 해서 소리를 듣고서 확실히 올지 모르는 존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5분 동안 계속 눌러대고 귀가 얼얼할 상황에서 담배 한 대까지 태우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 애석하게도 반응은 없었다.
“진짜 안에 아무도 없는 거 아니야?”
“모르지. 안쪽에서 아예 못 들었을 수도 있고.”
“그건 아닐 거예요. 여기까지 왔으면 희미하게라도 확실히 들려요.”
마리도 한 마디 거들었을 때, 김준은 결국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핸들을 잡았다.
그렇게 오늘은 자동차 부품과 닭과 달걀, 각종 야채만 챙긴 채 돌아가게 됐다.
김준 일행이 두고 간 깃발이 열흘 뒤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