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은 장비를 전부 챙기고, 에밀리와 마리를 데리고 모험길에 올랐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세팅 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새벽 일찍 일어나 밥 먹기 전에 혼자 다 만들어놓고 빠르게 나온 일행이었다.
“뒤에 저거 귀엽다.”
견인 고리 하나에 이끌려서 딸려오는 미니트럭 라보를 에밀리가 장난감처럼 구경하고 있었다.
“저거 뒤에 타면 놀이기구 같을 거 같아.”
“위험하다. 그런 거 하지 마.”
“흐응~”
어째 좀비가 가득한 바깥에 나와도 언제나 머리가 꽃밭인 저 금발 아가씨를 보고 김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상황에서 조수석에 앉은 마리가 오늘의 행선지를 두고 물었다.
“그래서 그 블루핸즈는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
“그냥 밟으면 30분이면 가는데, 뭐가 나올지도 모르고 이건 속도 제한도 있어서.”
험비는 민간 차량이 아닌 엄연한 군용 수송장갑차이니 시속 100km 이상 밟을 수도 없고, 넘기지도 못한다.
물론 시내 주행에서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과속 딱지 물 리도 없는 아포칼립스의 땅에서 건전하게 경제속도로 달리기로 했다.
김준이 오랜 기간 다니면서 불에 타 도로에 있는 폐차들을 장애물 코스 달리듯이 가면서 돌진할 때, 그 옆으로 지나가는 좀비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저것들은 언제 다 죽으려나?”
“지나가는 게 나아.”
“준 오빠! 근데 좀비가 막 저 토이트럭에 올라타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럴 리가 있냐. 쫓아오는 속도가 있는데.”
김준이 혀를 찼지만, 사이드미러를 통해 보던 마리도 넌지시 김준에게 제안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것 같아요. 앞에 좀비가 막고 있을 때, 뒤에서 튀어나온 놈들이 뒷차를 공격하면요.”
“아, 그건 상관없어.”
김준은 앞을 보면서 바로 핸들을 틀어 버렸다.
“꺄읏?!”
“와우!”
갑작스러운 드리프트에 아가씨들의 몸이 들썩일 때, 김준이 향한 곳은 하천의 샛길로 내려가고 있었다.
덜컹- 덜컹- 쿵- 쿠웅-
들썩거리는 상황에서 콘크리트로 된 하천 내리막길에 내려온 김준의 차.
원래였다면 하천을 두고서 양 사이드에서 런닝이나 자전거를 타고서 시민들이 밤 운동을 다니는 곳이었다.
그곳을 차로 내려와서는 바로 주행하는 모습에 둘은 이게 길이 되나 싶었다.
“옛날에 하천 관리 하는 공무원 친구가 있었거든? 밤에 트럭이 내려와서 이렇게 정비하더라고.”
중장비까지 내려서 하천 정비공사를 하는 상황을 기억한 김준은 이곳을 통해서 블루핸즈가 있는 동네까지 쭉 달릴 셈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좀비 대신 수많은 야생 동물만 가득했다.
방치된 채로 사람 키만큼 자란 잡초 일대에서 고양이나 들개들이 후다닥 도망치고, 하천에는 오리나 왜가리들이 유유히 누비면서 고기를 잡아댄다.
그런 한가로운 땅을 서행으로 유유히 달리고 있는 김준을 조수석에 앉은 마리가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순간순간 기책이 있으시다니까….”
적어도 기본 지식보다는 비상 상황에서의 임기응변은 가히 범접할 수 없는 김준이었다.
차가 쭉 달리면서 앞에 오르막길이 보일 때, 김준은 그곳을 지나치면서 멈췄다.
“나 잠깐 내릴 테니 기다려.”
“?!”
“저거 후진으로 올려야돼. 일단 뒷차 라보 체인 풀고 올린 다음에, 험비도 올릴 거야.”
앞은 계단에 뒤쪽이 차가 올라갈 수 있는 오르막길인데 험비의 덩치로는 차를 돌려서 올라가기가 모호하게 폭이 좁았다.
직진만 되는 상황에서 김준이 선택한 것은 일단 뒷차를 먼저 올린 다음에 후진으로 험비를 올리고 위에서 다시 견인해서 끌고 갈 셈이었다.
그렇게 김준이 먼저 내리면서 견인 체인을 잠시 풀 때, 에밀리가 도와주겠다고 나오려고 하는 걸 마리가 붙잡았다.
그렇게 라보를 운전해서 먼저 오르막길로 올라가고 걸어 내려와 험비에 타고 후진으로 올려서 다시 위로 올라왔을 때, 그 일대는 끝없이 펼쳐진 4차선 도로가 있었다.
“그나마 이 동네가 길은 제일 깔끔하네.”
“여기가 거기예요? 그 조폭들 만났다는….”
“어 맞아.”
“가야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나무 엄청 많고 밤길에 쭉 달리는데 뭐가 막 튀어나와서….”
그것도 벌써 작년의 일이었고, 김준은 시큰거리는 왼팔을 부여잡고는 힘있게 직진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길에 아직도 방치된 녹슨 오토바이 잔해 들과 백골화가 된 시체 형상을 보고서 마리와 에밀리가 순간 질색했다.
좀비한테 먹히지 않고, 인간의 시체로 이렇게 방치되는 것 역시 상당히 끔찍한 광경이었다.
“여기서 아랫길로 빠지면, 옛날 황여사 일행 있는 카센터인데….”
거기는 이미 차 유리다, 범퍼다 이것저것 챙긴 뒤였고, 아무래도 정품 부품으로 가려면 그냥 직진해서 블루핸즈까지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쭉 지나치면서 대로로 달려서 겨우 도착한 블루핸즈 정비소.
셔턴는 굳게 닫혀 있었고, 주변에는 신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립식 상가가 폐허의 상태로 을씨년 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뭐 없으면 좋겠는데….”
“찝찝하긴 해. 다 문이 닫혀 있어서….”
에밀리가 뒤에서 연신 두리번거렸으나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게 상가 단위로 골목골목이 있어서 뭔가 섣불리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김준은 블루핸즈의 셔터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냥 통짜로 막힌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바깥에서 안을 볼 수 있는 구조인 것을 확인한 김준은 공기총을 들어 올려 그곳을 겨눴다.
목표는 플라스틱으로 된 셔터 창문이었고, 방아쇠를 당겼다.
띵-
쩌억-
연지탄이 박힌순간 사정 없이 금이 간 셔터 창문.
타원형으로 된 창문이 균열이 간 것을 확인한 김준은 주변을 보고는 다시 홀로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공기총으로는 완전박살 내기가 힘든 셔터 창문을 향해 손도끼를 꺼내서 내리쳤다.
파각-
쨍-
그때였다.
콰아앙- 쾅-
캬아아아아악- 캬악- 크와아아아아아!!!
쿵- 쿵- 쿵-
“아, 씨발 역시….”
셔터 안쪽으로 좀비가 있었다.
정비사인지, 생존자가 들어갔다 감염된 건지는 몰라도 그냥 열었다가는 뭔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쾅- 쾅!! 콰앙!
김준은 손도끼를 집어넣고 전기충격기로 바꿔서 알루미늄 셔터를 향해 댔다.
지지직- 지지지직-
쿠우웅- 쿵- 캬아아아악-
그 뒤로 소리가 끊기긴 했지만,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계속 이렇게 대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김준은 다른 방법을 이용하기로 했다.
험비 안에서 두 아가씨가 석궁을 장전한 채 토끼눈을 뜨고 이리저리 깜빡일 때, 김준은 다시 한번 라보의 견인 쇠사슬을 떼어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질질 끌고 와서 블루핸즈 대리점의 내려간 셔터에 대고 깨진 창문에다 고리를 걸었다.
만약 잘 돌아가는 스마트폰이랑 셀카봉이 있었다면 안을 살피는 데 문제없을텐데 그런 것들이 하나둘씩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김준은 그렇게 쇠사슬을 걸고 험비 끝에 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자, 지금부터 끌어서 저거 뜯어낼 거야.”
“오~ 아메리칸 스타일! 나 게임에서 저거 봤어!”
GTA 스타일로 건물에 쇠사슬 걸어서 냅다 달려 무너트린 장면이 생각난 에밀리가 좋다고 박수를 쳤고, 김준이 힘껏 액셀을 밟은 순간 바로 쇠사슬이 팽팽해 지면서 알루미늄 셔터가 딸려 나왔다.
끼기기기기긱- 콰아아앙- 쿠당탕탕탕!!
아예 통째로 셔터를 뜯어내자 그 안이 그대로 드러났다.
쓰러진 좀비 하나가 있고, 그 뒤로 작업복 차림으로 맹렬히 달려드는 좀비들.
하지만 앞만보고 달리다가 김준이 걸어놓은 쇠사슬과 무너진 알루미늄 셔터에 저절로 넘어지면서 버르적거렸고, 차를 돌리고 창문이 열린 순간 두 미소녀가 날카로운 석궁 화살을 장전한 모습이 보였다.
파아아앙- 파각-
파각-
마리가 날린 건 정확하게 미간 한가운데를 맞춰 한 방 컷.
반면 에밀리는 조금 빗나가서 눈을 뚫고 들어갔는데도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거기에 맞춰 마리가 한 발 더 쏴서 겨우 쓰러트릴 수 있었다.
“쳇, 원샷 원킬이 안 됐네.”
“그래도 잘 맞춘거예요.”
마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자신이 맞춘 두 마리의 좀비를 사냥감처럼 바라봤다.
정비소 안에 있는 좀비를 처리한 뒤로 김준은 안으로 들어와 장비들을 챙겼다.
“준! 이거 다 챙겨?”
“스패너나 부품은 박스채로 담아.”
“오빠, 이건 뭐죠? 베어링 같은데….”
“다 집어넣어, 아! 에밀리랑 마리 둘이 타이어도 좀 싯자.”
김준이 오더를 내리고 안으로 들어가 자동차 케이블과 차량용 유리창, 그리고 교체용 범퍼 부품까지 한 번에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부피 때문에 많이는 못 넣겠지만, 일단 중요 장비는 담고 나중에 캠핑카가 돌아가면 그때 와서 죄 쓸어갈 셈이었다.
2시간 동안 험비는 물론이고 뒤에 있는 라보 짐칸에까지 한가득 자동차 부품을 담은 김준 일행.
그다음 목적지는 명국이네 집이었고, 거기다가 차량 부품들 좀 맡겨 놓을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