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아아악-
일단 정리를 위해 에밀리가 차 안에서 양동이에 물을 잔뜩 담아와 돼지 해체했던 피바다를 씻어냈다.
그사이에 부스럭거리면서 다른 짐승들이 하나둘씩 다가오고 있었다.
“늑대도 아니고, 개 무리네….”
멧돼지 사냥을 마치니 피 냄새를 맡고 온 들개 무리를 본 에밀리는 움찔하다가도 침착하게 바닥에 널브러진 멧돼지의 박살 난 머리를 들어 올렸다.
꽤 묵직했지만 못 들 수준은 아니었고, 십 수 말의 들개들을 보고서 바로 집어 던졌다.
“먹어라!”
깨앵-
으르릉- 으르르르릉-
처음 멧돼지 머리를 던지자 놀라서 뒷걸음질 치던 들개들은 바로 귀나 코 등을 물어뜯으면서 서로 으르릉거렸고, 하이에나 떼같이 달려들었다.
“뭐야, 개?”
“쫓아낼 필요는 없는 거 같아.”
허겁지겁 달려와 멧돼지 머리를 이리저리 뜯어먹어대는 들개 무리를 본 김준과 마리는 딱히 신경 쓸게 아니라며 에밀리를 데리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차 안에서는 갓 잡은 멧돼지 한 마리를 손질해서 새빨간 고깃덩이들이 전기그릴 옆에 놓여졌다.
“일단 먹고서 돌아갈 거 강구해 보자고.”
“와~ 바비큐! 삼겹살!”
“전기그릴 켤 게요.”
마리가 레버를 돌리자 불판에서 점점 열기가 올라왔다.
차 안에서 구워 먹는 멧돼지 고기였고, 연기가 전부 그릴에서 흡수되는 신형이어서인지 딱히 매캐한 냄새도 없이 고기가 익어갔다.
쫘아아아아아-
“크~ 소리 좋고.”
차 사고가 나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애들을 달래는 건 역시 고기였다.
소주랑 소금으로 씻어내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멧돼지 고기는 차를 박살 냈다는 것을 잊게 할 정도로 엄청난 맛이었다.
에밀리나 마리 모두 자글자글 구워진 것을 한입에 넣으면서 행복해했다.
김준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미소를 지었을 때, 뒤늦게 통증이 밀려왔다.
“큭, 이거 진짜….”
“오빠 팔.”
“계속 시큰거리네. 거기 파스좀.”
“제가 뿌려드릴게요.”
마리는 계속 신경 쓰지 않았던 김준의 왼팔 상태를 위해 의료키트에서 스프레이 파스를 꺼내 다가왔다.
김준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보호대를 하나하나 벗었을 때 그 안에 드러난 근육질 팔이 드러났다.
문신 하나 없이 말끔한 몸인데, 대신 수많은 칼 자국이 가득했다.
“아, 이때 팔….”
“그래도 다 아물었어. 가끔 비오면 시큰거리지만.”
“….”
마리는 부어오르다가 새파란 멍이 든 팔을 보고서 직접 파스를 뿌리고, 소염제를 건네줬다.
대략적인 응급처치를 마쳤을 때, 에밀리는 조용히 지켜보다가 포크로 잘 익은 멧돼지 고기 한 점을 찍어서 김준에게 건넸다.
“아~ 해 봐.”
“됐어, 먹어.”
“해 봐~ 먹여줄게.”
에밀리가 계속 살랑거리자 김준이 입을 벌렸고, 한입에 쏙 넣어 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멧돼지 바비큐 식사를 마친 셋은 시동이 안 걸리는 캠핑카 안에서 편하게 쉬었다.
슬금슬금 다가와서 김준의 옆에 착 달라붙은 마리와 반대편에서 꼼지락거리면서 엉덩이를 옆에 딱 붙인 에밀리.
양손의 꽃으로 그냥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고 주물거리면서 힐링 타임에 들어갔다.
“이대로 여기 계속 있어도 좋을 거 같아.”
“그냥 오늘 하루는 여기 묵고 내일 갈래?”
“안 돼. 멧돼지 썩어.”
“아이스박스 넣었잖아?”
“그래도 안 돼.”
김준은 그 말이 나온 김에 양손의 꽃을 떼어 놓고서 조용히 일어났다.
파스를 뿌린 상태에서 아직도 시큰거리는 어깨와 팔이었지만 그래도 움직일만 했다.
“무기 챙기고, 가자.”
“난 준비 됐어.”
“저도요.”
에밀리와 마리는 각자의 무기와 오랜만에 쓰는 자전거 안장 지팡이, 그리고 김준이 챙기라고 한 차량공구와 배터리를 넉넉하게 들었다.
“에밀리가 짐을 챙기고, 마리가 엄호해.”
“네, 그렇게 할게요.”
김준은 미리 숙지한 이야기한 다음에 조용히 차 문을 열었다.
“해 지기 전에 다녀와야 한다? 다들 조심해.”
km 단위로 걸을 수 있으니까 긴장한 아이들을 위해 주의사항을 확실하게 말했고, 굳은 얼굴의 마리와 느긋한 이미지의 에밀리 모두 같이 움직였다.
그렇게 셋은 어제 토끼를 잔뜩 잡았던 그 언덕으로 향했다.
탁 트인 잔디밭에는 지난번 잔뜩 잡고도 아직도 토끼떼가 가득했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아기 토끼들을 보고 순간 혹해하는 마리를 향해 김준은 쿨하게 말했다.
“데려가도 못 키워.”
“그래도 사육해서 대규모로 식량 공급은….”
“나중에 틀덫 같은 거 만들어서 무사히 데려와 사육 가능하면 그때 생각해 볼게.”
김준은 눈앞에서 굴러다니는 토끼 무리를 보고는 앞으로 고기 필요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다가 뒤에서 비명이 울렸다.
“꺄아앗?!”
“뭐야?”
“바, 발밑에 뱀!”
“뱀?!”
김준이 황급히 다가왔을 때, 후다닥 달려가는 건 뱀이 아니라…
“장지뱀이잖아!”
“뭐야, 도마뱀이네….”
“아아, 진짜 놀랬다고요.”
마리는 뜻밖에 작은 동물이 후다닥 달려가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했다.
창고에서 쥐 나왔을 때도 그렇고, 뭔가 꼼지락거려서 움직이면 질색하며 놀란다.
“뱀은 없을 거야. 원래 토끼나 닭 있는데는 뱀이 안 꼬여.”
김준은 걱정할 거 없다면서 워커 신은 발로 바닥을 쿵쿵 쳐 대며 다시 가자고 손짓 했다.
상수원이 있는 곳이어서 주변은 개발을 거의 하지 않은 언덕의 공원이었고, 걸어갈 때마다 그동안 인간을 거의 보지 못했던 토끼들이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김준이 언덕 위로 올라와 바로 내려갈 길을 봤을 때, 저 멀리서 작은 벽돌 건물이 보였다.
“저기다.”
“어, 차가… 있다!”
멀리서 봐도 차 몇 대가 있는 것을 확인한 마리와 에밀리는 이제 살았다며 안도했다.
“가서 확인해 봐야지. 좀비는 안 보이는 데 말이야.”
철컥-
그래도 혹시 모르는 상황에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김준이 앞장서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발 조심해라.”
김준은 천천히 내려가며너 총을 이곳저곳에 겨눴고, 다행히 내려올 때까지 무사했다.
소사벌 상하수도사업소에 도착한 김준 일행은 일단 차부터 살펴봤다.
“이거는 마티즈, 그 옆에는 옵티마.”
“경차나 승용차는 별로야. 이걸로 하자.”
김준이 고른 것은 소형 트럭 라보였다.
옆에는 [소사벌시 상하수도사업소]라고 쓰여 있는 게, 이곳에서 쓰는 공무차량으로 보였다.
“차는 어떻게 열어요?”
“보통 이런 게 있으면 안에 들어가서 키를 넣었을 텐데….”
“그럼 저 안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깨진 창문에 굳게 닫혀 있는 철문.
혹시라도 그냥 열었다간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김준은 에밀 리가 가지고 있는지팡이를 받아서 문을 툭툭 쳐봤다.
쿵- 쿵- 쿵-
일단 건드려 본 다음에 잠자코 기다려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두들겼을 때 바로 반응이 왔다.
콰아앙- 쾅- 쾅-
“캬아아악!!! 캬악!!! 캬아아아아!!!”
“꺄앗?!”
“안에 있구만!”
그것도 격하게 움직이는 반응을 보니 뛰는 좀비 같았다.
저 녀석을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까 생각했을 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쾅쾅쾅- 콰앙- 쾅! 쾅!!!
여기서 열면 바로 튀어나오고 한 방에 잡는다고 해도 피가 튈 수 있었다.
그때 김준은 뭔가를 떠올리면서 마리를 불렀다.
“허리춤에 그거.”
“네? 허리… 아!”
김준이 웃으면서 마리의 허리 춤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전기충격기’였다.
김준은 그동안 구비는 하지만 거의 써 본 적이 없는 그것을 가지고 테스트해 봤다.
지지직- 지직-
“오케이! 작동 잘되고.”
쾅- 쾅!! 캬아아아악!!!
여전히 철문을 미친 듯이 두들겨 대는 철문 너머의 좀비를 향해 김준은 바로 녹슨 철문에 전기충격기를 갖다 댔다.
딱- 딱- 지지지지직-
캬아아악!! 쿠우웅-
효과는 굉장했다.
그렇게 날뛰면서 바깥에서 두들겨 대던 좀비의 움직임이 멈춰버리고 그 너머로 고목처럼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피식 웃고는 전기충격기를 다시 마리에게 던져 줬다.
그러고는 에밀리와 마리 둘에게 석궁 겨눌 준비 하라고 한 다음에 지팡이 끝의 자전거 안장 부분을 문고리에 걸었다.
“자, 문 연다?”
“…오케이.”
“준비됐어요.”
덜컹- 덜컹- 끼이이이-
철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안에서 매캐한 연기까지 올라왔다.
예상대로 문 너머로 뻗어 버린 좀비의 시체가 있었다.
안전조끼를 입고 이곳의 펌프 기계를 조작하는 운전원 공무원으로 보였다.
“잔뜩 무장하셨구만.”
안전조끼 뿐만 아니라 원래는 흰색이었지만 여기저기 들이받고, 피에 절어 새카매진 안전모 차림을 보고서 김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쨌건 그 좀비 시체를 지팡이를 통해 끌어내서 불에 태워 버렸고, 그사이에 내부를 살펴봤다.
“이거 봐. 있다니까?”
건물 안 벽에 걸려 있는 [5670]이라 쓰인 키를 손에 넣은 김준.
숫자는 저 라보의 차 번호였다.
“타! 이걸로 가자.”
“다시 돌아가는 거야?”
“일단 확인 좀 해 보고.”
김준이 차 시동을 걸기 전에 안에 배터리와 기름 상태를 살펴봤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차량용 배터리로 충전을 하고 키를 꽂아 조용히 돌렸을 때…
부르릉- 부르르르르-
“오케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캠핑카가 망가진 상황에서 인근 상하수도 사업소의 트럭을 쓸 수 있게 됐다.
“좁다. 어떻게 낑겨 앉자.”
경트럭에 어떻게 셋이 탄 상태로 천천히 핸들을 돌렸고, 캠핑카때와 다른 힘찬 움직임은 안 나오지만 어떻게 굴러는 가는 차로 일단 사냥터로 돌아온 김준.
그들은 일단 가져가야 할 멧돼지의 사냥 전리품.
그리고 무기와 의료키트, 각종 중요 물품을 옮긴 다음 탈 준비했다.
“이건 진짜 불안 해….”
“작긴 작네요.”
“이것도 과적 걸릴지 몰라, 라보 트럭 덜덜거리는 거 딱 질색인데.”
그래도 어떻게 집에는 가야 하니 일단은 액셀을 밟았다.
최고 속도 99km의 경트럭이 멧돼지와 각종 짐을 가득 싫어 낑낑거리면서 달렸고, 김준은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