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251 갑자기 찾아온 헬프콜.
* * *
김준은 밤새 무기 손질을 한 다음, 아침 일찍 나왔다.
“아, 오빠! 여기요!”
“음?”
아침 준비하려고 일찍 일어난 인아가 황급히 달려와 김준에게 무전기를 내밀었다.
“연락이 왔어요. 거기서….”
“거기가 어딘데?”
“그, 노래방이요.”
“!?”
김준은 바로 무전기를 받고서 응답했다.
“아, 아! 무전기 받았어요. 누구십니까?”
[치직 준이야?]
“음? 은별 누나? 무슨 일인데?”
[치지직 칙 잠시만…]
장거리에서 무전기 두 개를 이어 붙여서 노이즈가 좀 심했지만, 그 속에서도 은별은 바로 김준에게 목적을 말했다.
[치직 준아. 사장님이 많이 아프셔.]
“음? 갑자기 왜?”
[치직 모르겠어. 갑자기 배가 엄청 아프다고 하시다가, 구토랑 설사를 엄청 심하게 하고 이틀 째 아무것도 못 드시고 있어.]
“엥? 사장님은 또 어쩌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김준은 무슨 일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서 무전기를 들고 거실에서 수첩을 꺼냈다.
“자세히 말해 봐. 상황을 알아야 뭘 해결하지.”
[치직 그러니까 이틀 동안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계속 아파하시면서 잠도 못 주무셔. 밤새 토해대고 아무것도 못 드셔서 물 끓여서 드렸는데 그게 전부였고.]
“그 전에 따로 뭐 먹은 거는 없고?”
[치직 다 같이 먹은 거에서 뭐 따로 없어. 우리도 문제 없고.]
“후우 뭐지?”
그때 하나둘 씩 일어나는 아이들 속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며 나오는 마리를 황급히 불렀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어 잠결에 달려온 마리는 황 여사 일행의 상태를 무전을 통해 듣고는 현재 예상되는 것을 하나하나 생각하다가 천천히 물었다.
“어, 저기. 사장님이 설사랑 복통 말고 다른 건 없어요?”
[치직 어제 열이 좀 나고서 입술 색이 좀 변했는데, 오늘은 좀 나아진 것 같은…]
“아, 안 되는데.”
“식중독이야?”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일단 탈수 막으려고 포도당 준비해야 하고, 다른 사람도 감염될 수 있으니까 감염 대비해야 하고요.”
마리가 황급히 이거 저거 챙기러 다시 방으로 들어갔을 때, 김준은 한숨을 내 쉬면서 시계를 바라봤다.
원래였다면, 어제 무기들을 점검하고 오늘 신릉면 말고 미군부대까지 우회 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렇게 되니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도우러 가야죠?”
조용히 아침 준비하던 은지의 말에 김준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럴 거 대비해서 무전기 설치한 거 아니었어요?”
“후우, 맞긴한데... 그래 가 봐야지!”
“마리, 빨리 씻어. 도시락 싸 줄 테니까.”
“그럼 나도 갈래!”
“!?”
에밀리 역시도 자신만만하게 손을 들어 올리고 나갈 준비했다.
“어차피! 가는 길에 갈 거 아니야? 아메리칸 베이스캠프!”
“야, 지금 거기 다시 다녀올….”
“이미 어제 결정한 거 아니었어?”
“에밀리!”
가야랑 도경이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일단 무장 해!”
“오케이!”
“단! 부대 갈지는 몰라. 그냥 공단면만 다녀오고서 다시 돌아올 수 있어.”
“으흥~”
그 상황에서 여전히 흥얼거리면서, 오토바이 헬멧과 프로텍터, 보호대까지 철저하게 차서 다이너마이트의 몸매를 어떻게든 꽉꽉 조여서 두툼한 중무장한 에밀리였다.
“후 다녀올게.”
“오빠….”
가야를 포함해서 도경이나 나니카, 라나 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고, 은지는 급하게 만든 주먹밥과 통조림, 보온병에 담긴 국을 조용히 건네줬다.
“잘 다녀오세요.”
“음….”
“무사히 돌아오면….”
은지는 잠시 김준의 귓가에 대고 모든 일을 잘 마치고 돌아올 때에 대한 ‘포상’에 대해 살짝 귀띔해줬다.
“!?”
그 말에 놀란 김준, 하지만 잔잔한 미소와 함께 도시락을 건네주고 빨리 가보라고 한 은지.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
이번에도 갑작스럽게 말이다.
***
“자, 세 번째 무전기로 주파수는 똑같이 맞췄어. 무슨 일 있으면 이걸로 터질 거야!”
[삐빅 네, 네~ 지금 아침 식사 잘하고 있습니다.]
4자루의 무전기를 설치하고서 공단면 황 여사 일행까지 통신망을 만들어 놓은 김준.
거기에 맞춰 또 다른 무전기를 가지고 주파수를 황여사 일행과 똑같이 맞췄다.
이렇게 하면 어디를 가건 중간에 설치된 두 대의 무전기를 교차한 기지국을 통해서 자유자재로 대화할 수 있다.
물론 전문 무전기라 하더라도 이렇게 겹쳐 있으면 노이즈가 좀 심하긴 해도 이 라인에 움직이는 동안에는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가는 동안 좀비만 없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쏴아아
“저거는 진짜….”
김준은 뒷좌석에서 샤워하고 있는 에밀리를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간다고 해서 중무장해서 태웠더니 그래도 머리는 감아야겠다면서 그냥 들어가서 씻고 있었다.
“제가 후방도 살필께요.”
“됐어! 앞에 막는 거 아니면 그냥 직진으로 갈 거다.”
어차피 이 길은 며칠 전에도 충분히 다녔던 곳이니 그 이상으로 뭐가 엮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부우우웅
예상대로 공단면까지 가는 도로는 쭉 뚫려 있었다.
지난번 잡으면서 지나갔던 좀비들이 피죽이 되어서 아스팔트 바닥에서 부패하는게 보였다.
“후”
“우욱, 저건 다 썩을 때까지 저렇게 있는 거죠?”
마리가 역한 냄새에 바로 코를 막았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를 바가 없어.”
“네?”
“이 동네가 야생 동물이 워낙 많았거든. 고라니나 들개 같은 게 건너가다가 찻길에… 빠아아아앙!”
“으윽!”
김준은 이 도로 다니면서 숱하게 치어죽은 로드킬 동물들을 생각하며 지금의 좀비 사태에서 다를 바가 없다며 액셀을 밟았다.
[으어어어 으어]
“어, 저기!”
“지나갈 거야.”
지난번에 돌아가는 길에도 보였던 걷는 좀비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냥 잡고 갈 생각도 없이 쭉 직진하는 김준의 캠핑카.
“너도 그냥 도시락 먹고 있어.”
“이 상황에서요?”
“가져가서 먹으면 그 많은 사람 다 나눠줄래?”
“아….”
마리는 그 말을 듣고는 조용히 은지가 싸 준 주먹밥을 하나 들고 한입 물었다.
거기에 맞춰 필터 깨끗하게 청소한 에어컨을 틀어 주자 적어도 시취는 없는 분위기였다.
“퍄~ 시원하다.”
“빨랑 닦고 다시 무장 해!”
“오케이~”
에밀리는 촉촉하게 젖은 더티 블론드의 머릿결을 수건으로 탈탈 털어내고는 캠핑카 안에 있는 새 속옷과 브래지어를 채우면서 하나하나 입었다.
그리고 프로텍터를 입고, 헬멧을 끼려는 순간 덜 마른 머리로 이리저리 부채질했다.
“에밀리?!”
“이대로 쓰면 땀차!”
“저거 진짜….”
“도착하면 그때 쓸게.”
에밀리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젖은 머릿결을 목욕한 골든 리트리버처럼 이리저리 흔들면서 뒤쪽을 바라봤다.
“좀비도 없잖아?”
김준은 돌아가는 대로 저 녀석 꼭 때려주겠다고 다짐하고, 급하게 커브를 틀었다.
세 블록만 더 가면 도착하는 거리에서 마리는 헤드캡 바이저를 쓰고서 석궁을 준비했다.
“오빠 저기!”
“!”
마리가 가리킨 곳을 봤을 때, 그곳에는 좀비 서너마리가 앞을 막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는 순간 놈들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아!!]
“마리야! 뒤로 빠질 테니까, 네가 쏠래?”
“네! 문제없어요!”
“뒤에 아무것도 없어! 스톤 브릿지!”
공교롭게도 후진하는 곳은 김준이 무전기를 설치했던 돌다리였다.
덕분에 양 사이드로 좀비가 쳐들어올 일은 없었고, 김준이 후진하면서 바로 차를 돌았을 때, 어느새 석궁을 장전한 마리가 창문을 열었다.
위이이잉
[캬아아아아아!]
피융 파각!!!!!!
조수석 창문이 열리자마자 일직선으로 날아간 어마무시한 위력의 화살이 달려드는 좀비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퀘에에에!!!
머리통에 화살이 관통한 뛰는 좀비 하나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은 순간, 그 뒤로 보이는 좀비를 향해 빠르게 화살을 장전한 마리.
바로 머리를 겨누고 주저 없이 다음 좀비를 향해 발사했을 때, 역시나 수월하게 잡혔다.
“하나 더!”
네 마리 중에 셋이 뛰는 존재였고, 전방 20m를 앞두고 달려오는 마지막 뛰는 좀비를 향해 마리는 차분하게 대쉬보드를 열어 화살을 장전하고는 10m까지 다가온 좀비를 향해 마지막 한 발을 날렸다.
파각!!!!
[크르르르 캬르으아악]
순간적으로 실수해서 머리가 아니라 목을 뚫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확실한 타격을 줬고 목이 뚫려 썩은 피를 쏟아 내던 좀비가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비틀거리더니 이내 푹 쓰러졌다.
“후우”
“문 닫고!”
“네, 네!”
위이이잉
김준은 그 자리에서 핸들을 돌려 놈들을 짓밟은 채 직진했다.
뒤늦게 느릿느릿 거리는 좀비 하나가 발견됐을 때, 그건 자신이 잡으려고 공기총을 꺼냈다.
그리고 아주 수월하게, 까치나 꿩을 잡듯이 공기총 연지탄으로 한 방에 잡아버렸다.
그렇게 가는 길에 기어이 좀비를 잡고서야 김준 일행이 황 여사 노래방에 도착했다.
***
딸깍!
“잠깐만 볼게요. 으으음”
마리가 의료도구를 가지고 황 여사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플래시로 눈과 입안을 비춰 보고, 청진기를 대서 심박수도 체크하고, 혈압에 온도계로 체온도 재 봤다.
“흐으음.”
“어떤데?”
“식중독이 맞는 거 같아요. 지금 상황에서는….”
마리는 차에서 준비한 생수를 가지고 포도당 캔디를 직접 빻아서 물에 풀어줬다.
“일단 당분 보충부터 하셔야 돼요. 천천히 드세요. 이거랑 같이요.”
일단 당분 보충부터 하고, 설사부터 멈추는 지사제를 같이 준 마리.
그 뒤로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살폈다.
“다 버리는 게 아까워서 생선 조각 몇 개 먹긴 했는데.”
“안 돼요! 그냥 텃밭 거름으로나 쓰시지.”
“그래야 되나 봐. 아줌마가 주책이지.”
음식점을 오래 했던 양반이 이 상황에서 아이들이 먹다 남긴 생선찜이 아깝다고 주워 먹다가 탈이 났다고 한다.
마리는 주사가 없는 상황에서 일단 상비약으로 어떻게든 응급처치를 했고, 포도당 사탕을 몇 개 더 둬서 당분간은 죽과 더운 차로 시작했다.
“일주일은 걸릴거예요.”
“아이고, 의사 아가씨 고마워요.”
“드라마에서만 의사가 아니라, 진짜 의사였네?”
“일반의지만요.”
마리는 은별에게 시간 대로 포도당과 지사제, 소염진통제와 항생제까지 모두 건네줬다.
“우리야 많으니까 좀 드릴게요.”
“아, 고마워요. 우리도 저번에 장독 가져온 게 몇 개 있는데 드릴게요.”
은별이 나미와 같이 고추장과 된장 독이 있는 대로 마리와 에밀리를 데리고 갔다.
그 상황에서 황 여사는 조용히 김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중사 삼촌, 담배 있으면 하나 찔러줘 봐.”
“아, 사장님 진짜!”
“줘 봐. 며칠 못 굶어서 구름과자라도 먹어야겠어.”
김준은 한숨을 쉬며 장초 한 대를 꺼내 건네줬고 불을 붙여줬다.
담배 한 대의 침묵 속에서 황 여사는 조용히 김준에게 말했다.
“중사 삼촌. 나 얼마 못 갈 거 같다.”
“뭔 소리예요?”
“배탈 난 것만 해도 이 지경이야. 솔직히 이제는 좀 지치기도하고, 입 줄여야 될 거 같아.”
“거 쓸데없는 소리 하신다. 아까 옥상 보니까 콩이나 무다, 고추다 시금치다 제대로 재배하시더구만.”
“얼마나 가겠어?”
“….”
그동안 내색은 안 했지만, 황 여사는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았다.
“몸뚱어리 하나 가지고 여기까지 왔던 애들이야. 내 가게에서 일하면서 고향땅에다 돈 보내던 애들인데, 이젠 힘들어.”
“아, 저도 식구 많아요.”
“적어도 건달 놈들 노리개 신세만 아니면 돼.”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런 말 하시기 전에 몸이나 추스르세요.”
김준은 근처에 있는 재떨이 깡통에 꽁초를 넣고는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안에서 무슨 이야기한 지 모르는 필리핀, 중국, 베트남 아가씨들은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면서 김준을 봤다.
“밥이나 해 먹자.”
김준은 캠핑카에 있는 식량을 꺼내 뭐라도 만들어 먹기로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