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50화 (250/374)

〈 250화 〉 250­ 살아남은 보람이?

* * *

“어머?! 지금 저거 뭐….”

“도경 언니! 쉿! 쉿!”

라나가 재빨리 도경의 입을 막았고, 다른 아이들 역시도 뜨악한 얼굴로 아무 소리 안하며 붐박스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We are…]

“오~”

에밀리는 그 상황에서 방송에 나오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고, 그녀 말고도 어느정도 영어를 아는 마리도 슬며시 다가와 들으려고 했다.

김준 역시도 뭔지는 몰라도 확실히 산 사람의 방송이 나온다는 것을 두고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모든 방송이 끝나고 다시 비프음이 들릴 때, 에밀리는 바로 그걸 껐다.

“흐으으음~”

“뭐야? 무슨 방송이었어?”

“에밀리 언니! 진짜 방송 맞아요? 녹화 아니고?”

“으으음.”

에밀리는 심각한 얼굴로 돌아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었어!”

“…?!”

혹시나 싶었는데, 장난치다 중간에 나온 영어 방송에서 에밀 리가 제대로 못 들었다고 말하자 모두가 뜨악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그러다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농담이야.”

“야!”

그 순간 옆에 있던 마리부터 해서 도경이고, 라나고 전부 에밀리에게 달려들었고, 그 얌전한 가야와 나니카마저도 한 대 때리러 일어났다.

그 소란 속에서 에밀리는 두들겨 맞은 엉덩이를 쓸어내리면서 모두의 앞에 말했다.

“우리는 이길수 있을거래. 인류를 믿는다는데?”

“누가?”

“미국 대통령이.”

“!!!!”

세상이 완전히 멸망한 거라 생각하고 지난 1년.

그런데, 갑자기 미국 대통령이 여기까지 보내는 방송이라니, 대체 뭐가 뭔지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말해보라는 김준의 손짓에 옆에서 같이 들었던 마리가 말했다.

“저거 채널이 AFKN인거 같은데, 전 세계에 있는 미군에게 알리는 방송이래요. 대통령인건 모르겠는데, 지금 자기들이 보내는게 오하이오라는데요?”

“오하이오?”

“어, 맞아! 마리도 잘 아네?”

“나 영어로 6년 배웠어.”

의대 출신이니 당연히 그 정도는 안다고 한 마리.

하지만 둘의 잡담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다.

“오하이오에 대통령이 있다고? 그럼 거기는 좀비 없다는 거야?”

“아니지. 좀비가 있는데 싸우면서 우리는 이길수 있다는 말 아니야?”

“미국은 어떻게 연락한거야?”

다른 애들이 하나씩 물을 때, 에밀리는 자신이 들은 것에 대해 말했다.

“그게… 오하이오가 진짜 그 동네가 아니라 뭐 코드네임 같은데?”

“음?”

“미국 대통령이란 사람이 말하더라고, 네이비 원 오하이오라고.”

“네이비 원?”

가야의 물음에 마리가 부연 설명을 해 줬다.

“그러니까 에어포스 원이 대통령 전용기라고 하니까 네이비 원이면 해군 전용기… 오하이오.”

그 순간 김준이 뭔가를 알아차려 바로 말했다.

“잠수함!”

“!?”

“내가 알기로 오하이오는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일거야. 잡지에서 봤어.”

부사관 시절에 군부대에서 밀리터리 매니아다, 플래툰이다 각종 군사 잡지를 구독하는 행보관 덕분에 어깨너머로 알게 된 김준의 지식이었다.

“그럼 네이비 원이라는건, 대통령이 타고 있는거라니까….”

“미국 대통령이 핵잠수함 타고 다니면서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거네.”

육군 출신에 미군 장비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긴 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의 스트레스와 식량 공급 문제만 해결한다면, 10년은 거뜬하게 물과 연료와 산소를 자체 공급할 수 있는 미 핵잠수함.

그리고 그 안에 정예 승조원과 대통령이 있으면서 전 세계에 퍼진 해외 주둔 미군을 통해 방송을 한다.

세상이 완전 망한 줄 알았는데, 1년 가까이 있으면서 미군은 살아있다는게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근데 미국도 장난 아닌가 보네. 본토가 날아가서 아직까지 싸우고 있다고 했어.”

“맞아! 그래서 우리는 승리할 거라고 용기를 북돋는다고 한 거였지.”

마리와 에밀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다른 나라 역시도 똑같은 상황이지만, 적어도 미국은 수뇌부의 생존으로 이런 지휘도 할 수 있나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듣고 있던 은지가 조용히 김준에게 물었다.

“오빠.”

“왜?”

“이 근처에 미군부대 있어요?”

“주한미군 부대 하나 있어. 육군 기지 큰 거 하나.”

“근데 왜… 우리는 거길 한번도 안 갔어요?”

“거기 가려면 신릉면 지나가야 하거든?”

“….”

신릉면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가야나 인아 등이 화들짝 놀랐고, 마리 역시도 그때의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닭살이 돋아 있었다.

“뭔데? 거기에 뭐 있어?”

“에밀리 너 칼찌했던 놈들 있는 곳.”

“오, 쉣!”

에밀리 역시 그 말을 듣고서 예전에 치료됐던 칼자국 흉터를 어루만지면서 오싹거렸다.

생각해보면 진작에 군부대나 미군기지를 알아봐야 했으나 초반에는 그 일대 수많은 폐차와 좀비 무리로 인해 갈 엄두를 못했고, 이후로 무장을 했어도 차라리 그 일대를 안 가고 말지 자급자족을 위해 다른 동네를 썼었다.

“지금이면 그 갱스터들 그냥 다 쏴서 죽이면 되지 않아?”

“진짜 그래?”

김준이 진중하게 물었을 때, 에밀리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쏴 버리고, 그냥 좀비였다고 하면 나중에 넘어가지 않을까?”

어차피 이렇게 된 상황에서 그냥 제끼라는 에밀리의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 말에 대해 가장 먼저 꺼냈던 은지는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손을 들었다.

“혹시라도 그 쪽으로 간다면 저도 도울게요.”

“너희들 따라가도 위험해서 안 될텐데.”

“어쩔 수 없죠. 제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까요. 그쪽으로 간다면요.”

“근데 나도 가야 하잖아?”

“!?”

에밀리는 붐박스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은지에게 말했다.

“캔 유 스핔 잉글리시?”

“어…”

“내가 가면 되잖아.”

마리가 손을 들었을 때,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상황을 정리했다.

“잠깐만! 일단 거기까지 가려면 준비할 게 많아. 그리고 진짜 위험할수 있으니 무장도 하고.”

뭐가 어떻게 됐건 간에 일단 라디오를 통해 다른 생존자, 그것도 슈퍼파워의 존재를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방송이 갈 원래의 수신자 주한미군 부대로 가서 생존자를 만나고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그동안의 좀비나 그 외 악당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을 거다.

“근데 문제는 그거지.”

“!”

“이 상황에서 걔들이 진짜 무사할까? 진작에 나섰겠지.”

“어… 그것도 그렇지?”

가끔 에밀리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너무 많은건지, 없는 건지 모를 것 같았다.

전세계에 방송을 하는 슈퍼파워의 존재는 알았지만, 받는 사람이 과연 멀쩡할지는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결국 그것에 대해서 판단은 김준이 해야 했다.

정말 위험을 무릅쓰고 신릉면까지 가서 거기서 마주치는 제일파 깡패새끼들 전부 소탕하고, 주한미군 부대까지 가느냐.

아니면, 그들이 움직일때까지 존버를 해서 언제고 구조를 받을 수 있게 수비로 임하느냐였다.

“여기에 대해서 말해볼 사람?”

김준은 술이 확깨는 지금의 상황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지금의 생존방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자리가 되었고, 거기에 따라 언니 3인방인 가야, 은지, 마리가 슬며시 김준의 앞에 앉아서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솔직히 전 모르겠어요. 우리나라도 아니고, 미군 방송을 통한 미국인데 우리까지 구조가 될까요?”

가야가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에도 일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걔네가 진짜 영화에 나오는 정의로운 히어로도 아니고 어떻게 될지 모르죠. 중무장한 다른 나라 군인들이 와서….”

순간 더 무서운 것이 떠올랐던 아이들이 몇몇 있었고, 김준 역시도 그럴 수도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마리의 경우에는 좀 다른 입장이었다.

“적어도 그쪽이 좀비가 되어있건, 부대 안에서 틀어박혀 존버를 하건 이쪽보다는 장비나 무기같은게 엄청날거 잖아요?”

“미군 장비 좋지.”

“적어도 그 뭐냐… 오빠가 운전할 수 있는 크레인이나 그 미군 트럭같은거 하나만 교환해도….”

“험비?”

“네! 우리가 걔들하고 물물교환 되는게….”

“무기나 기름이나 먹을거나 그쪽이 더 많을텐데 뭘?”

가야가 거기서 한마디 했을 때, 마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말했다.

“그… 골드바나 위스키 같은 기호품을 가져다주면 걔들도!”

“역으로 걔들이 기관총 들이밀고 다 뺏어가면?”

“으윽….”

“과연 가진 물건만 뺏어갈까?”

이럴때는 진짜 맏언니로써 위험할 상황을 다 말하는 통에 마리가 무슨 말을 못 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아직도 처음 만난 인간할 때 몹쓸 짓을 당할 뻔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모두가 동요할 것을 막기 위해 더욱 더 활기찬 모습에 몇 번이고 말할 기회가 있었지만 은지가 ‘그냥 혼자만 담고 있어라.’ 라는 한 마디로 영영 봉인해버린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야 또한 저렇게 말하는 이유를 잘 알았다.

그녀 또한 김준이랑 같이 루팅을 가다가 별안간 제일파 오토바이 무리가 달려들어서 차를 박살 내고 약탈을 하려다가, 김준이 죽음을 무릅쓰고 퇴치해낸 것을 봤고, 생존자라고 모두 정토사 스님들이나 양궁선수 명국 같은 친절한 이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봤다.

결국 어떻게 해도 답이 안나올 상황에서 은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나도 말해도 돼요?”

“그래, 은지도 말해봐.”

은지는 미군부대의 존재를 먼저 물어본 입장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라디오 방송에서 말한것도 그렇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

“미국인이고, 한국인이고, 깡패고, 군인이고 결국은 사람을 믿냐, 안 믿냐. 이거야.”

“….”

“준이 오빠가 그동안 구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 조폭이란 존재도 있지만… 아예 피하면서 한 번도 안 만나면 그냥 이대로만 살면 돼.”

사실 지금도 살아가는데는 문제 없으니 그 말대로 하면 된다.

“라디오 방송? 그냥 딴 나라 사람들도 아직 살아있구나, 생각하면서 말이지.”

“그렇기는 하지만….”

“난 확실히 말했어. 결국 선택은 준이 오빠 몫이지만, 만약 진짜로 그쪽으로 간다면 가 볼 거야.”

은지는 이제껏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위험할 수 있는 그곳을 자진해서 따라가겠다고 알렸다.

그리고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에밀리 역시 조용히 손을 들었다.

“I belive in America.(나는 미국을 믿습니다.)”

“영화 대사 읊지 마….”

“농담 아니야. 진짜 믿어.”

명작 영화의 대사를 인용한 에밀리의 말에 그걸 DVD로 같이 봤던 몇몇 아이들이 피식거렸지만, 김준은 전혀 웃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저러는게 괜히 머릿속이 꽃밭이 되는게 아닐지, 아니면 이제껏 보통의 생존자들은 다 만나고 제일파 깡패들 상대했을때처럼 미군을 상대할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어느쪽이든 선택하는 순간, 앞으로의 삶에서 뭔가가 변화가 생길거라는 것은 모두가 알게 됐다.

***

그날 밤.

김준은 안방에서 그동안의 무기들을 하나씩 점검했다.

요새는 잘 안쓰게 됐던 공기권총.

같은 연지탄을 공유하는 공기총 두 자루.

그리고 슬러그탄과 멧돼지탄, 꿩탄으로 다양한 총알을 쓸 수 있는 엽총 두 자루.

마지막으로 여기저기에서 구한 경찰용 리볼버 권총 3자루까지.

그리고 아이돌들이 쓰는 석궁 세 자루까지 이 정도만으로도 다른 생존자 중에서도 탑티어의 무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지의 상대를 만나기 전 과연 이것만으로 상대할 수 있을지 몰랐다.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살았겠지만, 이 자리에서 시간이 흐른다면 결국 언제고 볼 존재들이니 이쪽의 무장도 확실히 해야했다.

“후우­”

김준 자신도 군인 출신이지만, 타국의 군인들을 본다면 과연 그들이 아포칼립스에서 아직도 정의를 소유한 집단인지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역시 계획을… 짜야겠지?”

그들의 존재를 안다면 가장 무서운 빌런이 될지, 히어로가 될지는 모를 상황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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