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 205 무너진 인프라에서 살아가는 법.
* * *
김준은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을 보고 혀를 찼다.
피거품을 물고서 달려드는 좀비와 거기에 달라붙어 뿌리치는 암소.
김준은 차를 돌리고 총을 들어 겨눴다.
콰드드득 카득
무어어어어
인간의 형상을 한 좀비들이 소를 물어뜯을 때,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들어 뿌리친다.
콰앙
소가 가볍게 머리 한 번 흔든걸로 뿔에 받혀서 나가 떨어지는 좀비들.
바닥을 기면서 버르적거리는 좀비들을 김준이 바로 엽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철컥!
김준은 엽총으로 좀비 둘을 잡았고, 나가떨어진 좀비들을 밀쳐낸 암소가 바로 벗어나서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커다란 눈이 깜빡깜빡 거리면서 무슨 일이 일어난지 아직도 몰라하는 암소.
김준이 긴장해서 그 상황에 대치하고 있을 때, 뒤에서 도경이 외쳤다.
“어? 오빠, 저기 집에서 사람 나와요.”
“응?”
김준이 고개를 돌리자 집에서 나오는 중년 남성이 새총을 들고서 좀비에게 쏴 댔다.
“영주 아저씨네.”
다행히 저 집도 사람들이 잘 사는 것 같았고, 김준은 공기총으로 바꾸고 다른 좀비도 잡아 해결했다.
그렇게 해결을 한 다음에 집앞으로 왔을 때, 그는 익숙하게 손을 흔들었다.
“잘 지내셨어요?”
“아이구, 누가 왔나 했네. 의사 아가씨도 왔구만.”
“아, 안녕하세요?”
“응? 그 일본인 아가씨는 어디가고 다른 사람이 왔어? 어이구, 키 엄청 크네?”
영주는 자신보다 키가 큰 도경을 보고는 일단 손을 내밀며 악수를 하고 안으로 안내했다.
김준은 그 와중에 총을 들고 아까 잡은 좀비들과 피가 묻은 암소가 계속 머리를 털어대는 모습을 보고는 넌지시 물었다.
“저거… 괜찮은 겁니까?”
“뭐? 소? 에이~ 문제 없더라고.”
그러면서 손가락 두 개를 까딱거리는게 담배를 달라는 것 같았다.
김준이 한 대 건네주자 바로 불을 붙인 영주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직접 털어놨다.
“몇 번 왔었어. 저 괴물새끼들.”
“좀비가요?”
“그래, 영화에 나오는 그 좀비… 그거지.”
지난번 아버지를 습격했던 황소 한 마리를 잡은 뒤로 풀어놓고 키우지만, 들판의 잡초와 말린 여물을 먹으면서 키우던 소와 닭이었다.
그런데 좀비들이 살아있는 생명의 냄새를 맡고서 접근하는데,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한가로이 풀을 씹던 소들.
“그렇게 좀비들이 몇 놈 달려들었어. 근데 끄덕도 없더라고.”
“그… 동물은 감염 안되나요?”
“그런 거 같더라고, 그리고 말이야.”
영주는 아까 좀비한테 물린다음에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는 암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가죽이 보통 질겨? 인간 이빨로 들어가긴 하간디? 이거 이거가?”
영주가 입을 벌리자 크라운을 씌운 송곳니가 보였다.
하긴 김준이 보더라도 사람이 아무리 개쎄게 물어봤자 소 가죽은커녕 소 털이라도 뜯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번에는 개들이 나갔다가 좀비가 달려드는 걸 물어 뜯고 왔어. 어우 난 그놈들도 퍼진줄 알았는데, 멀쩡하더라? 저기 저 놈들.”
시골 잡종 개들이 가득한 곳에서는 자기들끼리 놀고 있으면서 반 야생상태로 다니는 놈들이 보였다.
김준은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모를 상황이라 일단 같이 추가 침입이 없을지 살펴 보기로 했다.
한편 안에서는 마리가 들어와 안에 있는 부상당한 노인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번 줬던 응급키트를 살폈다.
“좀 어떠세요?”
“아이구, 아가씨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는 기침도 적고, 열도 안나고.”
“영감이 어떻게 살아나나 보네.”
마리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매일 갈라고 했던 멸균거즈를 핀셋으로 걷어내고 상처를 봤다.
피고름이 뚝뚝 떨어지던 그때보다는 아문 상태였지만, 아직도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썩은 부분이 있네요. 이거 좀….”
마리는 소독용 알콜과 거즈로 메스를 들어 씻어내고는 새카만 살에 대고 천천히 도려냈다.
“좀 아파요.”
“됐어. 그냥 해.”
마리가 썩은 살을 도려낼 때, 뒤에서 그걸 보던 할머니가 말했다.
“영감이 예전부터 많이 다쳤어요. 예전에는 농기구 혼자 수리한다고 트렉터 밑에 들어갔다가 쇠판대기가 떨어져서 바로….”
“갈빗대 두 대 나갔었지.”
“또 전에는 이앙기 안에 낀 돌하고, 부러진 날 고친다고 손 집어넣었다가.”
“어우 손가락 두 개 짤리는 줄 알았어. 그래도 요새 병원은 다 봉합해주데?”
이야기만 들어도 끔찍했고, 시골 농사짓는 노인들이 얼마나 안전불감증인지 알게 된 마리였다.
그녀는 썩은 살을 도려내고, 지혈을 한 다음 소독해서 붕대를 감았다.
“메디폼하고, 항생제 수액 있으면 더 빨리 나으실 수 있을텐데…”
“아이고~ 지금도 충분해요.”
“그나저나 도경이는?”
거실에서는 도경이 짐을 나르고 있었다.
“끄으응!”
“어머, 이걸 다 들어요?”
“어디다가 옮기라고요?”
“그, 밖에….”
“와, 저 누나, 짱 쎄다!”
도경은 거실에 있는 박스들을 들어올려 한 곳에 날랐다.
밖에서 김준과 영주가 그걸 보고 거들었지만, 그녀는 혼자 다 날랐다.
“후우 안에 이게 뭐에요?”
“아, 그게….”
상자를 열자 그 안에 있는 건 착유기와 부탄가스캔, 그리고 캠핑 발전기였다.
“우리도 창고 털어서 제대로 운영해보려고.”
“아, 여기 목장이었지….”
김준은 그것들을 두고서 중얼거렸고, 영주는 피식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시원하게 우유나 말아줘?”
영주는 그 착유기로 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무척이나 푸짐했다.
“자, 드세요.”
“와~ 대박!”
“이게 다 직접 만든거에요?”
그동안 생존자들의 쉘터를 돌아다니면서 물물교환을 하고 많은 대접을 받았었다.
절에서는 직접 재배한 채소와 김준 일행과 교환하는 쌀과 밀가루로 만드는 담백한 채식 공양.
명국네 집에서는 닭과 계란을 수급하면서 푸짐하게 먹던 닭고기와 달걀, 그리고 역시 농사를 지어 먹는 식사.
황 여사 일행은 살기 위해 직접 연못에서 고기를 잡고, 식당을 운영했던 황 사장이 직접 만들어주는 생선과 염소고기.
마지막으로 이곳 목장에서는 진짜 신선한 고기와 치즈, 우유, 나물이 가득한 진짜 시골밥상이었다.
“아니 뭘 이렇게까지…”
“내가 손이 쫌 커서 말이죠~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밥심 말고 뭐가 있어?”
고봉밥에다가 소고기 수육, 갈비탕에 고사리, 참나물, 등이 있는 호화 식단이었다.
게다가 깨끗한 물 대신 직접 쨘 우유를 주는데 탈지분유로 타서 먹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맛이었다.
“캬~ 좋네요.”
“소주 땡기네.”
“당신은 손님이 왔는데!”
3대가 모여있는 대가족은 스테인레스 밥상에 담긴 식사를 먹으면서 소주까지 원하는 넉살을 보였다.
대식가인 김준이나 도경도 다 못먹을 정도의 엄청난 양에서 마리는 딱 반 공기만 덜어서 먹는데도 다 못먹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묵은다음에 또 집에는 언제 갈 거유?”
“바로 안 갑니다. 좀 더 내려갈거에요.”
“잉? 그게 무슨 소리여?”
영주와 영주 어머니의 눈이 커졌고, 김준은 갈비탕을 한술 뜨면서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했다.
“여기서 좀 더 내려가서 물건들 좀 수급하고, 올라갈 생각입니다.”
“거기를 직접?”
“네~”
“허 참, 우린 이 집에서 살기도 급급한데, 진짜 대단하신 양반이구만.”
“이쁜 처녀들도 많이 달고 말이야.”
노부인의 말에 마리나 도경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붉어졌다.
“어머님, 저 아가씨가 여배우잖아요? 강마리.”
“이잉~ 그 드라마에서 나왔던 수술 잘하는 여의사?”
“네~”
“배우가 아니라 진짜 의사였는지는 몰랐네.”
“아하하하….”
마리는 자기 작품을 언급해준 영주 가족들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 옆에 있는 도경을 보고도 크래쉬 걸이라는 걸그룹은 잘 모르지만, TV에 나오던 사람이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국내 최장신 걸그룹 멤버라서 예능에 하도 많이 나와 노인분들이 TV보다가 한 번씩은 언급한 이름이었으니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마리와 도경이 설거지를 도울 때, 김준은 상을 접으면서 잠시 영주의 부름에 밖으로 나갔다.
“담배 한 대 주쇼.”
“여기요. 한 보루 놓고 가죠.”
“어우, 아주 땡큐지.”
아포칼립스 시대에서 남아있는 유흥거리라고는 술, 담배, 그리고 여자가 전부일 것이다.
“나도 옛날에는 두갑씩 태웠는데.”
“강제로 금연하신거, 제가 깬거 아닙니까?”
“풋, 그런가?”
담배를 태우는 두 남자는 어두워지는 날씨 속에서 넌지시 제안했다.
“저 봐요. 가로등 하나도 없으니 해만 지면 바로 깜깜해지잖아. 근데 여기를 갈 수 있겠어?”
“정 안돼면, 차 안에서 자면 됩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그냥 자고 가셔. 저기 창고쪽도 원래 사람 사는 방이었거든.”
사랑채를 직접 내준다는 말에 김준은 오늘 하루 기꺼이 여기서 묵기로 했다.
“근데 말이야. 김준씨, 나 부탁하나 하고 싶은게 있어.”
“네? 뭡니까?”
“이거는… 음, 진짜 힘들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 미리 걸어놓을게, 소 두 마리면 되겠어?”
소 두 마리를 준다는 말에 대채 무슨 거래를 하자는 건지 궁금해지는 김준이었다.
“저기 나 말이야, 그게 좀 필요한데…”
“…그거요?”
“요거.”
“!?”
그 순간 김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