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61화 (161/374)

〈 161화 〉 161­ 아포칼립스에서 신선한 소고기!

* * *

탕­

김준은 주저없이 영주 아저씨가 말한 소를 노리고 미간을 향해 엽총을 갈겼다.

음머어어어어어!!!

갑작스럽게 총알을 맞고 머리가 꿰뚫린 커다란 수소가 비틀거리다가 크게 울면서 달려들 때, 김준은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탕!

원래는 벅샷을 쓰려고 했지만, 슬러그 탄으로 바꿔 단숨에 잡기 위해 날린 두 발의 슬러그 탄으로 얼룩 수소는 비틀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다리를 버르적 거리면서 뇌에 구멍이 뚫린채 피를 철철 흘리자 영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장비를 가져왔다.

“민규 엄마! 빨리 가져와!”

영주가 아내를 부르자 그녀가 황급히 가져온 것은 양동이였다.

그 안에는 김준의 팔뚝 수준의 크기인 길다란 칼들이 가득했다.

“어우….”

“이게 도축용 정형 칼이야! 뼈 자르고, 발골 해내는거!”

“저도 좀 써보긴 했죠. 사냥꾼이었거든요.”

“고라니 좀 짤라봤나베?”

“주로 잡은 건 꿩이나 오리지만요.”

영주는 피식 웃으면서 능숙하게 꿈틀거리는 소의 멱을 따내고 뜨거운 피가 콸콸 쏟아지는 걸 양동이에 담았다.

양동이 하나가 다 찰 때 바로, 영주의 부인이 새 양동이를 몇 개 가져왔고, 급기야는 낑낑거리면서 전기톱까지 마리하고 같이 들고왔다.

“어머, 세상에! 진짜 소를 여기서 잡아요?”

마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리번 거릴 때 몇몇 소들이 지금 도축한 놈을 보면서 음메음메 울어댔지만, 그래도 접근하지는 않았다.

“제 놈들도 아는 거지. 소가 엄청 영리한 놈이거든. 눈앞에서 잡으면 울어대기만 하다가 슬슬 피하면서 사람한테 안 와.”

“그, 그렇군요.”

“근데 이놈은 우리 아버지 들이받아서 잡는 거고, 사람한테 달려드는 놈은 본보기로 죽여야 해. 개건 소건 돼지건 닭이건….”

영주는 마리에게 설명해 주면서 천천히 피를 다 뽑아냈다.

그 뒤로 아내가 가져온 전기톱을 준비하면서 바닥에다가 비닐 천을 깔았다.

“다들 붙잡아봐! 잠깐 이리로 끌자!”

김준과 영주가 붙잡고 뒤에서 두 여성이 거들면서 600kg가 넘는 수소가 순간 들썩이면서 머리가 비닐위로 당겨졌다.

그리고 전기톱을 키며 다들 물러나라고 외쳤다.

위이이이잉­ 드드드드드드득­

죽여서 피를 다 뽑아낸 소의 목에 대고 전기톱이 가죽과 뼈를 잘라내자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마리.

하지만 김준은 덤덤하게 바라봤고, 되려 주변에 튀는 피와 잔해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거 피 냄새 괜찮을… 아니다. 소랑 닭이 이렇게 있는데, 좀비가 와도 문제없겠다.”

그간 좀비들의 피지컬을 봐 오면, 가장 두려운 뛰어다니는 좀비만 하더라도 소는커녕 멧돼지 가죽도 제대로 못 씹는데 현실이다.

게다가 좀비의 공격성으로 소를 공격한다면 역으로 뿔에 받혀 그나마 있던 뼈대도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이이이이잉­ 기기기기긱­

전기톱이 시원하게 머리가 꿰뚫린 소의 머리를 잘라냈고, 혀를 길게 뺀 채 떨어져 나갔다.

“거기 아가씨, 이것좀 같이 들어요.”

“이, 이걸요?”

잘린 소 머리를 보고 머뭇거리던 마리는 눈 딱감고 영주 부인과 같이 들어서 손수레에 담았다.

그 뒤로 정형 칼을 가지고 영주가 능숙하게 발골을 시작했다.

배를 가르고, 안에 있는 갈빗대에 칼집을 내고 내장을 하나하나 꺼냈다.

“이게 소 간!”

“어우, 무겁네?”

김준이 장갑을 끼고 피가 축축한 간을 들어 양동이에 담았다.

그 뒤로 퀴퀴한 냄새의 곱창과 대창에 쓰이는 창자, 천엽 등의 내장을 각각 발라내서 넘기자 그것을 재빨리 들고 가 물에 담가 핏물부터 빼내는 영주 부인이었다.

“근데 나니카는 어디 갔는데, 안 보여?”

“그게, 안에 있던데요?”

“아, 그 일본인 아가씨? 우리 어머니가 뭐 좀 싸 주신다고 같이 들어갔소.”

마리가 밖에서 거들고 나니카는 안에서 할머니하고 또 뭔가 챙기고 있다고 한다.

“소 머리는 댁들 거니까 가져가셔.”

“아니요. 머리는 괜찮아요.”

“그럼 꼬리를 가져가실라우?”

“아, 꼬리는… 네 그건 가져갈게요. 내장도 좀 주세요. 간 빼고.”

“간은 우리도 못 주지. 환자가 계신데, 아버지 드려야 해요.”

두 사내가 소 한 마리 잡고서 발골을 하는데, 내장은 누구 꺼, 꼬리는 어디 꺼, 갈비랑 안에 살은 또 어디 거 하면서 나누는데 훈훈한 분위기였다.

그때 옆에서 마리가 ‘소 간 함부로 먹으면 큰일나는데…’ 라고 중얼거렸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뭐라도 노인 철분 보충이 필요하긴 했다.

“소 다리도 주실 수 있나요?”

“응, 두 개 가져가쇼. 대신에 아까 준 거 중에서 쌀이랑 생수도 좀 더 내려놓고.”

“그건 맘껏 가져가세요.”

“그리고 이거…”

“오오….”

갓 도축한 신선한 소에서 나오는 부위는 고기 매니아라면 환장을 할, 채끝살, 꽃등심, 안창살 등이었다.

“담배 좀 놓고 가면 이것도 넘길게.”

“열 보루면 됩니까?”

“어이구, 그렇게 있어? 그럼 땡큐지!”

어차피 담배야 몇 백 보루가 있는데, 그거는 줘 봤자 문제도 없었다.

김준은 영화나 게임 등에서 좀비건 핵전쟁이건, 전염병이건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담배는 화폐로 치는걸 보고 웃었는데, 인제 보니 소 한 마리랑 교환이 잘 되는 걸 보고 고증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는 큰 부위별로 톱과 칼을 써서 자르고, 그 옆에서 김준이 신문지로 고기 하나하나를 포장하고, 부위별로 담았다.

그렇게 소 한 마리를 잡고 나온 고기가 200kg가 넘었다.

그 중에서도 김준쪽은 굳힌 선지와 소다리 두 개, 소꼬리, 내장 일부, 안심과 갈빗대까지 넉넉하게 반 딱 떼어받아서 정말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어우~ 진짜 엄청 감사하네요.”

“우리도 뭐 그만큼 받았으니까.”

김준은 차 안에 가득 쌓인 소고기를 보고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그쪽은 집에 냉장고 있수?”

“태양열 집열판 있어서 그거로 전기 수급합니다.”

“아, 그럼 됐구먼, 저거 일단 상온에 하루 정도는 숙성해도 돼요. 날씨도 선선하니 볕드는데만 안 두면 안 썩어. 그 다음에 포장해서 냉동실에 얼리면 돼.”

“네~ 네~”

“대신에 선지는 좀 빨리 먹어야 돼고, 저거는 천엽이랑 파썰고, 시래기 넣고 된장 풀어 푹 끓이면 기가 막히거든.”

공교롭게도 전부 집에 있는 것 들이었다.

그동안 국밥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멧돼지 잡은거 푹 삶아다가 돼지국밥 어설프게 만든 게 있었는데, 가져가면 진짜 선지국이고, 해장국이고, 설렁탕이고, 꼬리곰탕이고 죄다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계속 보이지 않던 나니카가 수레에 뭔가를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오빠! 이거요!”

“이건 또… 와씨!”

빈 펫트병에 가득 담긴 것은 오늘 쨔냈다는 신선한 우유, 그리고 치즈와 버터까지 있었다.

진짜 이제껏 만난 집에서 가장 풍족하고 신선한 유제품과 고기를 수급받으니 그동안 식용유로 마가린 만들고, 화학유화제 풀어서 만든 모조치즈, 탈지분유 풀어 먹은 우유가 무색할 정도였다.

“진짜 너무 퍼주신거 아닙니까?”

“아이고, 젊은 사람들은 많이 먹어야지. 게다가 우리 영감 치료에 약까지 챙겨줬는데 말이유.”

할머니는 김준 일행한테 잘 살아남으라면서 채소에 유제품에 고기까지 잔뜩 챙겨줬다.

물론 그쪽 역시도 잔뜩 받은 휘발유와 쌀, 밀가루, 건면, 담배, 구급상자, 무기를 챙겼으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암튼 감사합니다. 다들 잘 살아남죠.”

“어떻게 여기까지 다시 오실수나 모르겠수. 소사벌에서 여기라면 진짜 오는데도 고생인데.”

“안 그래도 오늘이 첫 탐험인데 많은걸 알았군요.”

김준이 영주와 담배 타임을 가질 때 그들은 그동안의 정보를 공유했다.

“그… 소사벌은 살아있는 사람 많이 있어요?”

“몇몇 생존자들이 따로따로 사는 쉘터가 있긴합니다.”

“쉘터? 그…이렇게요?”

“네.”

“으으음, 우린 여기 이후로 나가질 못하고 있수. 읍내 나가보려고 했다가 저 위로 바글바글 하거든.”

원래는 시골 길 까지 마을버스가 하루에 네 번와서 읍내까지 이어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곳으로 가는 순간 좀비만 득실거린다고 한다.

김준은 아산 역시도 상황이 다를 바 없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래도 생활력 강하고 인적이 없는 곳에 사는 이런 시골 사람들이나 자급자족으로 겨우 먹고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고 기회가 되면 다시 와 보죠. 그때는 어르신 몸 상태 제가 한 번 볼게요.”

“후우~ 그래요.”

김준은 차에 올라탔고, 영주 일가는 안방에 누운 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달려와 배웅해줬다.

특히 아이가 손을 흔들면서 또 오라고 고개를 숙이는데, 순간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비탈길을 지나 다시 도로로 올라와 외곽도로로 올라왔을 때, 김준은 옆에 앉은 마리를 한 번 보고 뒤에 나니카에게 물었다.

“나니카! 지금 안에 공간 어때?”

“아까보다는 나아요. 휴게소에서 가져온 거 거의 다 줬으니까요.”

“흐으음.”

김준은 그 말을 듣고서 결심한 듯 바깥 상황을 봤다.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정도.

오전에 출발해서 농가에 오고 안에 사람들 치료하고, 소 잡고 도축하고 몇 시간 걸려서 아직 해가 떠 있을 때, 김준은 결심한 듯 말했다.

“얘들아! 딱 하루만 더 루팅하자.”

“네?”

“어차피 지금 캐리어 박스에 소고기들은 하루는 지나도 충분해. 그 사이에 더 쓸어가야겠다.”

“아, 그러면… 다시 휴게소 가나요?”

마리의 물음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빈 말통 빼놓은걸로 휴게소 주유소에서 기름 채우고, 편의점에서 남긴 것들 싹 쓸어. 그리고 아까 니들 옷 있지? 그것도 다 챙기자.”

“그… 될까요? 가는 길에 어두워지면.”

“세 시간 정도남았는데, 길 한 번 봤으니까 문제 없어.”

김준은 결심한 듯 마리와 나니카를 데리고 한 번 턴 곳에 대한 추가 루팅을 위해 달렸다.

이왕 타지까지 온 것, 아예 뽕을 뽑아낼 계획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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