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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57화 (57/374)

〈 57화 〉 57­ 까짓거 지르자!

* * *

회식으로 엄청나게 달렸던 김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머리맡에 휴대폰으로 시간 확인이 아니라 시계를 보고서 확인한다는게 이제는 익숙했다.

디지털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시간은 계속되고, 오늘 하루의 일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김준.

“흐아아암~”

시원한 물로 세수를 해도 숙취의 두통과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

내일모레라고 해도 아직 서른인데, 빠르게 체력소모가 되는거 같아 앞으로는 운동을 두 배로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주방에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났다.

“언니, 이 정도면 되요?”

“먹는 거 생각하면, 분명 사리 더 달라고 할걸? 아끼지마. 어차피 한번도 안 먹고 쌓여있던 거잖아.”

“끄응, 역시 그렇죠?”

아침일찍 일어나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은지와 인아를 보면서 김준은 반갑게 인사하며 식탁에 앉았다.

“냄새 좋네? 뭐 만드는거야?”

“어제 오빠가 잡은 꿩 삶아요.”

“호오?”

은지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새벽부터 푹푹 끓여서 우려냈던 육수를 한 번 찍어먹어보고 김준에게 건넸다.

“오빠 말대로 우려내면 냉면육수로 괜찮은데요?”

김준은 한모금 마셔보고 짭짤한 맛에 엄지를 올렸다.

주방에서는 부탄가스 렌지로 큰 냄비에서 메밀면을 삶으며 땀을 뻘뻘 흘리는 인아가 있었다.

그 뒤로 삶은 꿩고기를 발라내고, 지난번 담근 열무김치를 얇게 썰어서 고명처럼 만들었다.

정말 제대로 만드는 물냉면에 김준은 물을 마시면서 느긋하게 기다렸고, 오늘의 아침은 어제의 격한 회식 이후 시원하게 해장할 수 있었다.

“자, 먹자!”

김준은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만들어진 평양냉면의 육수를 음미하면서 오랜만에 별미를 먹어서 매우 흡족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얼큰한 해장 대신, 차가운 냉면을 먹으면서 속을 달랬고, 예상대로 잔뜩 삶은 면이 부족할 정도였다.

“아, 뭘 모르네. 여기서 식초랑 겨자를 왜 풀어?”

“응, 남 먹는거 신경쓰는거 아니야.”

도경과 에밀 리가 냉면 먹는데 식초랑 겨자가지고 투닥거리고, 순간 옆에서 같이 부으려다가 움찔거리는 나니카가 눈치를 보면서 슬며시 식초통을 내려놨다.

김준은 저런 모습도 참 볼때마다 익숙하다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식사 이후 그릇을 비운 뒤로 김준은 식후 연초 한 대 이후로 오랜만에 작업을 시작했다.

도경과 인아를 데리고 하는 작업에는 전체적으로 차를 한 번 손보면서, 그동안 숱하게 좀비를 들이받고 깔아뭉갰던 범퍼 부분을 수리했다.

딱­ 딱­ 딱­

찌그러진 쇠 부분을 펴고, 그 위에 좀더 강화된 구조물을 달아서 정말 장갑차처럼 만들어내고 있었다.

좀비는 한 번 들이받아버리면 그대로 전신이 으스러지는거고, 혹시 모를 상황에서 유리가 깨질까봐 거기에 따른 추가 장갑도 부착했다.

“그거 같네요.”

“음?”

“그 사파리 같은 곳에서 호랑이나 사자 사이에 다니는 차 있잖아요.”

“뭐, 다를 바 없긴 하지.”

도경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구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일머리 좋은 인아와 힘으로 해결하는 도경, 이 둘의 조합도 은근히 작업 때는 도움이 많이 됐다.

“다음 루팅때는 니네 둘이랑 같이 가 볼까?”

“네?”

김준의 즉석 제안에 당황하는 도경, 하지만 인아는 그 상황에서 쿨하게 받아들였다.

“저야 뭐, 언제든 가지요.”

“흐음, 그래.”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루팅은 이 둘로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번엔 인아가 차를 수리하면서 넌지시 질문했다.

“오빠, 근데요.”

“음.”

“차라리 앞에다가 뭔가 날카롭게 달아놓는게 더 좋지 않아요? 확실히 좀비 죽이게요.”

“어우­ 잔인하게.”

도경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눈을 반짝이면서 물어보는 인아의 질문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하지만 말이지.”

“네.”

“그러면 좀비는 쉽게 잡아도 그 앞에 걸려서 덜렁거릴거잖아. 그걸 달고 달리다가 감염되면 어쩌니?”

“아….”

“밀쳐내고 깔아뭉개는건 몰라도, 차 범퍼에 좀비 시체가 끼어있으면 위생적으로도 감염적으로도 안 좋아.”

“그, 그렇네요.”

인아는 짧은 생각에 고개를 숙였고, 그래도 아이디어를 내 준 것에 대해 쓰다듬어 주려다가 멈칫했다.

갑자기 지난번 마리하고 하룻밤 보낸뒤로 아침에 정면으로 마주쳤던 그때가 떠오른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얘도….’

아직 김준하고는 육체적으로 아무 썸씽이 없었던 3인방 은지, 인아, 도경.

뭐 언젠가 눈이 맞으면 하겠지만, 지금은 그냥 익숙한 애들하고 자는 것도 돌아가면서 하니 느긋하기로 했다.

“다 됐다!”

김준은 범퍼에 새 구조물을 설치한 뒤로 이것 때문에 연비는 좀 더 안 좋아지겠지만, 안전성을 생각하며 기름을 가득채우고 세차를 끝으로 마쳤다.

***

얼마 후.

김준은 오랬동안 안 썼던 거실의 TV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만들어준 장난감으로 젠가를 하거나, 장기 한 판, 그것도 아니면 포커나 고스톱 등의 카드 게임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완결까지 가진 애장판 책도 몇 번씩 다들 읽어서 내용을 줄줄 외울 때였다.

그 상황에서 김준은 예전에 은지랑 같이 서점을 털면서 챙겼던 오락기를 꺼냈다.

과거 추억의 컴보이에 알라딘 보이의 카피 게임기였지만, 막상 제대로 하질 못했다.

“전기 아끼겠다고 이걸 그냥 처박아 뒀으니….”

“관정 펌프 돌리는 걸로 전기가 다 그리로 갔다면서요.”

“그렇지.”

은지가 말한대로, 그쪽으로 돌리는 데 전기가 소모되서 물을 위해 엔터테이먼트는 포기해야 했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준이 가지고 있던 DVD로 영화도 보고 녹화된 드라마도 봤었지만, 이제는 안 써진 지 오래돼서 먼지가 쌓일 때마다 아이들이 꼼꼼히 닦는 장식품이 되었다.

그 상황에서 김준은 결심했다.

“이번 루팅에서 추가 전기를 좀 수급해야겠다.”

“네?”

식량이나 물, 혹은 다른 생필품을 구하는 것은 이해가 됐지만, 전기를 가져오겠다는 말에 아이들은 무슨 소리인가 해서 어리둥절했다.

김준은 일단 모두 앉아보라고 한 다음 노트를 꺼내서 하나하나 설명했다.

“자, 들어봐. 일단 이 집의 메인 전력은 캠핑 발전기 등이야. 아주 매일같이 돌아가면서 그것으로 위에 있는 태양광과 태양열 집열판을 이용하고 있지.”

“네, 그렇죠.”

“자전거랑 사이클도 엄청 많이 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것도 전기 주력 맞지?”

에밀리의 말에 김준은 그건 겨우 냉장고나 밥솥 전력 유지 정도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래서 말인데, 추가로 배터리랑 발전기를 좀 더 루팅하려고 한다.”

“그런 거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죠?”

“일단은 배터리야 차량용 공업사 가면 많고, 배터리 같은 건 괜찮은 곳이 하나 있어.”

김준의 말에 생존을 위해 전기를 구하러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두가 납득했다.

“일단 무거운 걸 많이 날라야 하는데, 도경이 가능?”

“…네, 뭐. 그러죠.”

어차피 지난번 귀띔을 한 번 들었으니 이번 물자 루팅때는 자신이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인덕션이나 전자렌지, 저 TV보다 전기 덜 먹는 작은 걸로 구해서 쌓으려고 하거든. 인아도 가자.”

“네, 알았어요.”

이렇게 두 명의 파트너를 정하고서 김준은 내일 오전 떠날 준비를 했다.

안 그래도 점점 짧아지는 해 때문에 태양열과 태양광의 전력 효율이 떨어지는데, 지금 이걸 준비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연히 달력을 봤을 때, 김준은 한숨이 나왔다.

“곧 있으면 진짜 한 해가 가네?”

대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좀비 사태에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 움직이는 자신들.

절 쪽에 있는 사람들이나, 어디선가 꿋꿋하게 살아있을 생존자들을 떠올리면서 김준은 하루 빨리 이 상황이 끝나기를 달력에 대고 기도했다.

다음날 준비를 완벽히 마친 김준은 같이 보조 파트너로 나갈 인아와 도경의 상태도 확인한다음 차를 타고 운전 준비를 했다.

집 안에는 연장자 3인방이 다같이 있으니 언제나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출발하는 순간, 김준은 일단 주변을 둘러보다가 큰길 국도 쪽으로 향했다.

“오늘 갈 길은 고가 넘어서 고속도로 IC 있는 곳이거든?”

“고속도로면… 위험하지 않겠어요?”

지난 번 고가차로 진입하려다가 그 곳에서 죽음의 참상을 봤던 도경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김준 역시도 그 상황을 알았지만, 자신의 계산대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이상으로 가는 건 위험하겠지. 하지만 IC 가기 전에 있는 곳이야. 그 일대가 죄다 논밭인데, 중고 가전제품이나 카센터 같은 곳이 알음알음 있거든.”

전형적인 시골 국도 대로변에 있는 가게들.

차타고 가서 물품을 본 다음에 주문 배송 위주로 돌아가는 곳이었으니 인적은 적을 것이다.

문제는 그곳에 가는 길까지 얼마나 많은 좀비를 볼까가 염려됐지만 말이다.

“오늘 조수석엔 도경이가 있으니까 새총 명중률은 걱정 없겠다.”

“뭐, 보인다면 바로 쏴 버릴게요.”

처음으로 김준에게 배운 생존술을 써서 좀비를 잡아본 유경험자인 도경이 어깨를 으쓱거렸고, 뒷좌석에 있던 인아는 둘을 보면서 부디 오늘 루팅이 안전하게 끝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바로 그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오빠, 앞에 좀비!”

“인아야! 주변 둘러봐라.”

“네, 넷!”

인아가 황급히 망원경으로 주변을 둘러봤고, 후방에서 추적하는 좀비 없고 왼쪽은 논밭, 오른쪽 대로에도 멀쩡한 것을 보고 말했다.

“없어요! 앞에 저 셋이 전부인가봐요.”

“오케이! 도경아~ 준비해라!”

“넷!”

도경은 대쉬보드에서 너트를 꺼내고 자신의 새총에 대고 잠시 읊조린 다음 바로 창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새총을 당겼다.

빠캉­

띵­!

동시에 발사된 새총 너트와 공기총 연지탄.

세 마리 중 두 좀비가 순식간에 맞고서 비틀거릴 때, 가운데 있던 남은 한 녀석이 갑자기 달려들었다.

캬아아아아아­

“야이씨! 들어와, 뛰는 놈이다!”

“히익!”

도경이 황급히 몸을 집어넣었을 때, 김준은 차를 뒤로 뺀다음 거리를 벌리면서 침착하게 연지탄을 장전했다.

그리고 전력을 향해 달려오는 좀비의 마빡을 향해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띵­

시간이 좀 걸렸지만, 세 마리 좀비 모두 확인사살까지 끝낸 김준의 루팅 일행은 길게 한숨을 쉬면서 다시 갈길을 갔다.

여러번 나왔지만, 역시 물건을 챙길 때보다 가는 길이 더 험난하다.

그리고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파밍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때였다.

***

“꺄아아아악!”

3층에 있던 아이들의 비명이 들리자 조용히 저녁거리 준비하던 은지와 가야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위에 누군데, 저렇게 목소리가 커?”

“나니카 같은데, 내가 가볼게.”

은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묻은 손을 탁탁 털고는 소란에 나온 마리와 같이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옥탑방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의 나니카와 라나를 보고서 직감적으로 뭐가 잘못됐다고 여겼다.

“왜 그래?”

“어, 언니 밖에…밖에!”

“밖에 뭐?”

“좀비가 달려오고 있어!”

“!?”

은지와 마리가 황급히 옥탑방 위에서 내려다보자 정말 한 무리의 좀비가 점점 이곳으로 몰리고 있었다.

으어어어어­

크아아아­ 크어크어­

“!”

“헐? 뭐야, 저거!”

그동안 밖으로 파트너들을 정해서 나갔던 김준을 기다리며 집 안에서 얌전하게 일하던 톱스타들.

그런데 김준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좀비 무리가 다가온다.

그것들이 이 집안에 담벼락을 넘고 올라와 안으로 들어온다면… 남은 것은 여섯 명의 연약한 여성들을 금방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

“야, 빨리 2층으로!”

마리는 황급히 두 동생들을 데리고 2층으로 향했고, 은지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2층에 있는 아이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다.

그러는 사이 좀비들은 점점 더 김준의 아지트 앞으로 몰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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