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56화 (56/374)

〈 56화 〉 56­ 족장이 된 기분이야.

* * *

오리고기.

기름이 많고,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탕이나 훈제, 구이 어떻게든 먹을 수 있지만, 특히 구우면 기름기가 좀 많아도 건강에 좋다는 속설이 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수십 마리의 오리떼가 인간들이 싸그리 쓸려나간 공사현장에서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준은 조용히 공기총을 들었고, 그대로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띵­ 철컥­ 띵­ 철컥­

슬러그 탄 썼다간 고기 맛보기도 전에 공중에서 새 폭파 쇼를 볼 수 있어서 사냥용 연지탄으로 한발씩 쏴대는 김준.

그리고 눈앞에서 오와 열을 맞춰 날아가던 오리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와, 잡았다!”

가야가 손뼉까지 치며, 환호했을 때, 김준이 슬쩍 째려봤다.

분명 아무 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더 잡을 걸 놓쳤다.

뭐라 말할수도 없고, 일단 한눈 판 사이에 하나라도 더 잡자고 생각하며 김준은 끝자락에 있는 오리 한 마리를 더 맞췄다.

그렇게 연지탄을 연달아 계속 발사하면서 떨어진 오리들은 총 5마리였다.

“이쯤할까?”

계절에 따라 짧은 해가 슬슬 지려고 하자 김준은 아쉽지만 여기서 사냥을 끝내기로 했다.

이왕이면 1인 1오리로 하려고 했지만, 더 욕심내서 저것들을 계속 추적하다간 집에 돌아가는데 문제였다.

그것도 오늘은 일반 파밍이 아니라, 진짜 사냥 목적으로 온 것이라 전에 도경이나 에밀리 때 같은 꾹꾹 눌러 담는 루팅은 아니었고, 그랬다간 오늘 잡은 게 전부 다 썩은 고기가 될 거다.

김준은 서서히 자신이 잡은 오리 사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오케이 싸인을 내렸다.

덜컥­

은지가 바로 나와서 빠르게 먼저 잡은 흙 묻은 오리 한 마리를 들어올렸다.

“오케이. 바로 와!”

“아니요. 남은 두 마리 더 잡게요.”

“욕심 내지 말라니까!”

바로 근처에 있는 오리 두 마리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서 전부 챙기는 은지.

김준은 내심 불안했지만, 이런식으로 나가면 정말 몸을 내던지듯이 겁 없이 움직이는 그녀를 전력으로 엄호했다.

가야 역시도 배우대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서서히 새총과 너트를 준비했다.

그렇게 네 마리까지 확보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풀숲을 헤치고, 마지막 한 마리를 찾으려는 순간…

철컥­

지이이이익­

김준과 가야.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창문을 열고 동시에 무기를 겨눴다.

“아앗!”

풀숲에서 뭔가를 보고 불길한 소리를 내는 은지를 향해 당장 이리로 오라며 소리치고 눈앞에 맞닥트리는 존재를 쏘려고 했다.

“찾았다. 마지막 오리!”

하지만 은지는 주변에 있던 오리 다섯 마리를 모두 잡은다음 자랑스럽게 트럭 앞에서 그것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겨누고 있는 앞좌석의 둘을 보고는 다시 표정이 슬며시 굳어갔다.

정말로 아슬아슬해 보였지만, 우습게도 그 이상 주변에 보이는 좀비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둘에 대해서 개의치 말라는 듯 뛰지도 않고 천천히 걸어서 차로 다가와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가야가 머쓱한 얼굴로 새총의 너트를 빼낸 다음 대쉬보드에 담았고, 김준 역시 창밖에 겨눴던 총을 슬며시 옆에 놓았다.

그 둘을 보고서 은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사냥감 수급할 때, 좀비 튀어나오는지 알았구나?”

“아, 왜 말을 안들어? 한번에 하나씩 안전하게 가져오라니까.”

“이미 다 수색했잖아요.”

그러면서 은지는 마지막으로 오리를 가져왔던 풀숲을 가리켰다.

확실히 어린이가 들어가도 머리가 빼꼼 나올 정도로 그렇게 크게 자라지 않은 풀밭이었다.

“그리고 저 숲이 뭐 튀어나올 것 같지도 않고. 금방 다녀오는게 더 빠르죠.”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아.”

“여기서 눈은 제가 제일 좋을걸요? 미리 내가 확인했는데.”

분명 맞는 말이기는 한데 뭔가 정말로 위험할 뻔한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과 루팅을 다녔지만, 은지만큼 위험한 짓 하는 애는 진짜 찾기 힘들었다.

가야야 맨 처음 하니 시행착오, 인아 역시도 딱 전문분야 외에는 손 안 댐, 에밀리는 적어도 안전한 상황인지를 확인하고 움직인다.

반명 은지는 일단 자신의 직감을 믿고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김준은 담배를 한 대 물고는 은지에게 말했다.

“항상 조심해야 해. 예전에 나도 그런 식으로 초스피드로 물자 나르려고 했다가 가게 안에서 튀어나온 좀비가 덮쳐서….”

“아, 얘기 들었어요. 라나가 그때 밤에 이야기하면서 엄청 울던데.”

“그걸 알면서도….”

그러자 은지는 가야의 눈치도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음부터는 정말 주의할게요.”

“그래.”

“여튼 오늘 잡은 것들 바로 먹는거예요? 저 꿩이나 오리 손질은 못해봤는데.”

“내가 할 줄 알아.”

그래도 은지가 멘탈은 에밀리와 더불어 센 편이다.

갓 총으로 쏴서 잡은 새 시체들을 옆에 끼고서도 태연하게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이거 어떻게 먹냐고 묻는걸 보면 말이다.

“근데 보통 그 나이대 여자들 닭 잡는 것만 봐도 막 놀라면서 울지 않나?”

“케바케죠. 어릴 때 재래시장은 많이 가봤어요. 닭이나 생선 목치는거.”

뭔가 김준과 은지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자 상황이 뻘쭘해지는 것 같았다.

“으, 으흠! 일단 준이 오빠가 손질 하신다고 하셨으니 제가 가서 집에 애들 잘 케어하고 상 필게요. 프라이팬이 많이 필요하겠지?”

“꿩은 푹 삶아서 육수낸걸로 냉면 만들면 기가 막힌데.”

“그… 인아랑 같이 제가 해보죠.”

그렇게 가야와 은지는 서로가 돌아가면서 김준과 대화를 하며 집까지 향했다.

오늘의 사냥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김준이 한 번 둘러보니 다들 가라앉아 있는 건 똑같았다.

“다들 아직도 그러나?”

“꺄아아악?! 그거 뭐예요?”

김준과 은지가 들고 온 새의 사체를 보고서 기겁을 하는 라나와 도경이었다.

김준은 꿩 다리를 잡고 장난스럽게 들어올렸다.

“오늘 먹을 고기!”

“엄마야! 그걸 어떻게 먹어!?”

덩치는 산만한 애가 꿩 보고 기겁하면서 바로 미닫이문 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뭔가 귀여웠다.

라나 역시도 가까이 오지 말라면서 오들오들 떨었고, 그나마 인아는 알긴 해도 저거 손질 못 한다고 두 손으로 X자를 쳤다.

김준은 누구에게도 시킬 생각 없으니 걱정 말라면서 물이나 끓이라고 하고 밖에 나가서 토치랑 칼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아, 이따가 당근하고 양파, 부추, 상추 이렇게 준비해.”

“네! 그건 제가 할게요.”

일단 서로가 아는 상황을 하자고 하면서 김준이 나와 일단 잡은 새들 피부터 뽑고 하나하나 손질을 시작했다.

털을 뽑아내고, 흐르는 물로 깨끗이 닦아낸다음 시장에서 파는 생닭처럼 만들어냈다.

“와아­”

“응? 언제 왔냐?”

오리랑 꿩 털 뽑아서 손질하는데 슬그머니 나와서 그걸 보고 있는 마리가 있었다.

“하루 종일 애들 좀 달래다가 잠깐 나왔죠.”

그리고는 다른애들이 기겁하던 오리와 꿩을 보고서 입맛을 다셨다.

“이거 손질 쉽지 않을 텐데.”

“가르쳐 줄테니 해 볼래?”

“네, 그러죠.”

어렸을땐 해부 실습도 해봤는데, 문제될거 없다는 듯이 김준에게 칼을 받은 마리였다.

그리고 오리 두 마리가 김준과 마리에게 손질이 시작됐다.

“여기 가슴뼈쪽, 올라가면 잡히는데가 있어. 거길 칼로 쑥 박아서 칼집 넣어.”

“으흠~”

“가슴살 분리해나고 가른다음에 반으로 펼치고, 날개도 따로 잘라서 떼어내고.”

웬만한 치킨집 닭 한 마리보다 큰 사이즈의 오리가 점점 토막토막 나면서 빨간 속살을 드러냈고, 그것들을 물로 씻어낸다음 먹기 좋게 포를 떠냈다.

“식당에서처럼 예쁘게는 안나오네요.”

동글동글하게 썰어서 겉에는 비계, 안에는 새빨간 생고기를 생각했던 마리였다.

“어느 쪽이든 먹어서 기운들 좀 냈으면 좋겠다.”

“동감이에요.”

마리는 오늘 하루 정신과 의사로 빙의해서 애들에 대해서 전부 상담해주고 그녀들의 그리움과 가정사까지 다 들으면서 공감해주는데 아주 곤욕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애들이 아직 어려요.”

“음.”

“뭐, 저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쨌건 가르쳐 준대로 착실히 해서 오리손질을 끝낸 김준은 뽑힌 털무더기를 보면서 넌지시 말했다.

“저걸로 오리털 파카 만들 수 있을까?”

“아~무도 안 입을 걸요? 은지 언니한텐 말하지 마세요. 진짜 만들거 같으니까.”

김준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고기 뭉치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고기, 그것을 프라이팬과 전기불판을 준비했다.

지글지글­ 치이이이익­

“오오오­”

눈 앞에서 생고기가 연기를 뿜으면서 기름이 흘러나오는 모습에 에밀리는 영롱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나니카 역시도 아까 손질하고 온 고기를 보고서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굽는 모습에 조용히 물었다.

“이거 훈제 해도 맛있던데.”

“다음에 잡으면 훈제로 할게.”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아. 앞으로 사냥도 하고 채집도 할때도 있는거지.”

김준은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옛날에 봤던 예능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할 거 없으면 TV돌려서 보던 거였는데, 불현 듯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다시 기억한 것이었다.

“옛날에 뭐냐, 그 어디 전 세계의 오지 같은데 가서 자기들이 텐트 만들고 사냥하고, 불피우던 예능 있었잖아.”

“아, 그거!”

‘정글의 어쩌구’ 하는 당시의 인기예능을 두고서 에밀리가 말했다.

“나, 그거 가본적 있어. 어디 캐리비안 해역 근처였는데.”

“정글 그거? 나도 소속사가 한 명 나가보라길래. 내가 갔어. 나는 그 동남아 우림이었다. 코브라가 이만한게 있는데 뙇!”

가야도 기억에 나는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자신들이 예전에 나왔던 추억 예능을 말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막 놀라면서 그거 어떻게 먹냐는 라나와 도경은 두 눈이 모두 고기 굽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여기서 좀만 놔두면 군침까지 뚝뚝 흘릴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마치 그런거 같았다.

마을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처녀들, 그리고 먹을 것을 구하러 사냥이건 뭐건 일하러 떠난 가장, 아니 족장이라고 해야 될 것 같은 상황이다.

그렇게 고기가 계속 구워질 때, 제대로 먹기 위해 주방에서 추가 메뉴가 나왔다.

“자, 제대로 먹자고 야채를 준비했습니다~”

인아와 은지가 바로 따온 버섯과 상추, 당근 등에 쌈장과 고추장을 가져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고기 구워먹는 회식이 됐을 때 김준은 쌈을 가져다가 마늘 한 쪽, 오리로스 한 점, 양념부추에 밥 조금 올려놓고 싸서 물었다.

“막내 먼저 먹어보자.”

김준이 한쌈 싸 주자 바로 입을 쩍 벌리면서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던 라나.

그녀는 아침에 있었던 우울감이 사라진 상태로 고기맛에 진심으로 향복을 느꼈다.

김준은 쌈 하나 더 싸서 이번엔 인아에게 건네줬다.

“이제껏 요리하느라 고생한 우리 인아도 먹어보자.”

생각해보면 오늘 아이들의 우울모드의 물꼬를 텄던 인아였지만, 먹고서 풀어내자며 그녀에게 건네줬다.

인아역시 오리로스 먹으면서 두 눈이 다시 찡해졌지만, 은지가 토닥여주자 어떻게든 씹어 삼킨다음 말했다.

“완~전 맛있어요.”

“훗”

끼릭­

그 자리에서 김준은 차갑게 둔 소주를 바로 눈 앞에서 땄다.

웃어라, 그리고 먹자!

김준은 그날의 회식을 아주 즐거운 자리로 만들어줬고, 한나절 동안 우울해했던 아이들을 모두 웃게 만들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