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0화 (20/374)

〈 20화 〉 20­ 평소 잘 모르고 지냈던 아이.

* * *

김준은 새벽에 갑자기 잠에서 깼다.

다시 자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아무리 뒤척여도 한 번 깬 잠이 돌아오질 않는다.

“하필 시간도 개 같이….”

혼자 중얼거려봤자, 들을 애들 아무도 없었다.

당장 미닫이의 옆방과 화장실 사이의 작은 방을 두고서 걸어가는데 코골이 소리가 너무도 요란했다.

“그래… 여자 연예인도 코는 골겠지. 사람이니까. 근데… 존나 시끄럽네! 진짜!”

김준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냉장고를 열었다.

안에 있는 음식들을 보다가 팩 소주를 두 개 꺼내고, 안주를 찾다가 비닐에 감긴 당근 하나 꺼내서 나왔다.

그리고 냉장고를 주먹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이게 돌아가서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애들 썩은 음식… 어우.’

이미 공적인 한국전력표 전기가 끊긴 뒤로도 김준이 설치한 장비로 돌아가는 전기.

그래서 더 여유가 있는 김준이다.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물과 전기를 자체 수급할 수 있는 상황이니 이렇게 소주도 음식도 편하게 먹는다.

그때 김준의 코를 간질이는 냄새가 있었다.

“킁, 킁!? 뭐여 이거?”

코를 훌쩍거려서 다시 맡아도 이건 담배 냄새인데, 다들 자고 있는 집안에서 스며들고 있었다.

김준은 혹시나 싶어 여닫이문 방을 슬쩍 열어봤고, 자신의 안방 맞은편의 작은방도 열어봤다 닫았다.

집안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문 열자마자 코골이 소리만 더 크게 들었다.

이 냄새는 어디서 올라오는 거고, 그것도 자신이 안 피는 멘솔 담배 냄새다.

그래서 잠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걸어내려갈 때 갑자기 인기척이 확 느껴졌다.

“앗, 앗!?!“ 잠깐! 앗 뜨거!”

“….”

누군지는 몰라도 그림은 그려졌다.

문열리는 소리듣고 놀라고, 그리고 내려오니 피던 담배 버릴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불똥이 튀고 손 데이고…

딱 김준이 하사 시절에 훈련소 4~6주 애송이들 맡을 때 생각이 날 정도다.

“야!”

“나, 나나…난니 스루…”

일본어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나니카!”

“흐아앗?!”

화들짝 놀라면서 캠핑카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그림자.

김준은 웃으면서 달려가 그녀를 붙잡았다.

“뭐해?”

“아, 미안해요. 스미마…죄송…그러니까…아노….”

한국어랑 일본어를 섞어 말하며 패닉에 빠진 소녀를 향해 김준은 두 팔을 쭉 뻗어 그녀의 양어깨를 잡았다.

“컴 다운! 나니카양.”

“아, 그…그래요. 스미…아니, 죄송합니다.”

평소에 일본어 쓰는 거 0도 못 봤던, 일본인 출신 한국 아이돌.

근데 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당황하면서 한본어를 쓰는지 모를 아이를 진정시켰다.

“뭐 때문에 그래?”

“죄, 죄송해요. 잠이 안 와서 그냥….”

그러면서 그녀가 발로 슬쩍 밟아 치우는 것이 김준의 눈에 들어왔다.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집밖으로 나왔는데, 이게 정체가 밝혀졌다.

“멘솔이네? 아이스 블라스트야?”

“죄송합니다. 제가 그….”

“야, 담배 태우는게 뭐가 죄송해?”

멘솔 담배의 냄새.

그걸 맡고 온 김준이 나오자 놀래서 당장 치우고서 쩔쩔 매면서 연신 고개숙이는 아이돌.

김준은 그녀를 진정시키면서 캠핑카 문을 열고 걸터앉아 자기도 담배를 꺼냈다.

“여기 다들 어른이야. 뭘 그런 걸 빼고 그러냐?”

“그… 여자애가… 담배를 태우는… 그런….”

“나니카, 너 고등학생이니?”

“아닙니다. 저 21살이죠.”

“그럼 됐잖아? 참 나, 뭐가 문제라고.”

김준은 그 옆에 앉아서 팩소주를 뜯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옆에서 담배 걸리고 조마조마하던 나니카를 향해 하나 더 있던 팩소주를 건네줬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앞니로 뜯어 한 모금 마셨고, 순간 목구멍이 찌릿하면서 역류할뻔한 걸 겨우 삼켰다.

딱­

김준은 안주로 쓸 당근을 반으로 쪼개서 나니카에게 건네줬다.

과일도 아니고, 비닐에 칭칭 감긴 채로 냉장고에 오랫동안 있었던 당근을 보고 나니카는 그것도 한입 물었다.

“생각해보니, 너랑은 거의 이야기를 안 했네?”

“네, 저도… 오빠하고는 잘 이야기를…”

“그러게말이야.”

가장 연장자인 가야, 막내인 라나를 제한다.

그리고 누가 봐도 확 튀는 혼자 금발인 아가씨 에밀리도 제하자.

그리고 남는 애들 중에서 일단 키가 제일로 큰 도경도 제외, 의사라는 타이틀이 있는 마리 제외, 최근에 가장 말이 없다가 지난번 장기판 만들고 술안주 차려줘서 말 튼 은지 제외, 마지막으로 지금 여기 먹는 음식을 만드는 인아 제외.

그러면 딱 얘만 남는다.

“그래도 특이성이 있긴 하지. 유일한 일본 출신.”

“아, 그… 그렇죠.”

“지금쯤 그 동네는 어떠려나?”

“….”

나니카는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얘도 타국에서 연예인 데뷔를 위해 온 건데 어쩌다 보니 세상이 망해있고, 지금은 자기 집에 객식구로 눈칫밥을 먹으며 산다.

나니카는 조용히 팩 소주를 마시다가 넌지시 말했다.

“어차피 가봤자, 만날 사람도 없어요.”

“음?”

“저, 보육원 출신이거든요.”

“….”

“그리고 고등학교 취업반 다니다가, 연예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하다가 캐스팅 됐죠. 그때가 18살때였어요.”

그 뒤로는 일사천리.

한국 연예기획사가 한참 K­pop으로 여기저기 나라의 얼굴 반반하고, 한국어 좀 하는 애들 모아다가 국제걸그룹 데뷔하는 대세에 그녀도 참여했고, 2년간의 빡센 트레이닝 이후로 데뷔.

그리고 1년간 최고의 활동을 하다가 정산받기도 전에 세상이 와장창.

생각해보니 뭔가 자기 삶도 괴로워서 팩소주를 쪽쪽 빨아먹는 나니카였다.

“괜한걸 물어봤구나.”

“아니에요,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서로 간에 알고 지내죠.”

“후우, 그래.”

김준은 담배를 한 대 태우고는 너도 피라면서 말했다.

“담배 숨길 필요 없어. 여기는 다 자유롭다. 나한테 엉기는 거랑 서로 쌈박질하는 거 빼고는.”

“아, 네.”

김준은 달빛에 당근 반쪽 씹어먹으면서 팩소주를 먹다가 넌지시 중얼거렸다.

“내일 아침은 뭘려나.”

“인아 언니가 그때그때 재료 보고 만든대요.”

“너는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음….”

나니카는 잠시 생각하다가 지금 당장 먹을수 있다면 하나 골랐다.

“교자만두요.”

“음~ 그래.”

김준은 팩소주를 비우고 자리에 일어났다.

나니카 역시 눈치껏 일어났고, 각자의 방으로 서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난 김준은 가볍게 씻고서 밖으로 나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아와 은지.

그리고 상을 펼쳐놓고 수저를 셋팅하는 라나가 있었다.

“좋은 아침~”

“아, 오빠 일어나셨어요?”

뒤늦게 씻고 온 나니카도 합류해 아침식사를 거들었고, 김준과 마주쳤을 때 살짝 웃었다.

가장 작은 키에 몸매는 좋아서 짤뚱한 몸인데도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녀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뭐야?”

“말린 명태 하나 넣어서 미역국 끓였어요.”

“딱 좋네.”

그렇지 않아도 팩 소주 마신 뒤로 잠 설쳐서 지끈거린 머리였는데, 해장으로는 기가 막힐 것 같았다.

그 외에 반찬들을 꺼내는데 갑자기 비명이 울렸다.

“어머! 이거 어떡해?!”

“꺄앗! 뭐에요? 이거?”

“뭐야? 왜그러는데?”

김준은 주방에서 소란이 난 것을 보고 들어왔다.

은지가 열어보고, 다른 아이들도 보다 놀란 것은 냉장고에 김치였다.

새하얗게 곰팡이가 슬었고, 거기에 빨간 물도 빠져서 악취가 풍겼다.

“어우, 완전 쉬었네.”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이렇게 썩으면 안 되는데….”

식량이 많아도 이렇게 썩는 상황이어서 먹을거 하나 사라졌다고 생각한 아이들.

하지만 김준은 뺨을 긁적이고 말했다.

“빼놔. 못 먹을건 아니야.”

“저걸 먹어요? 곰팡이를요?”

“이거 곰팡이 아니에요.”

소란을 보고 온 인아는 빈 유리병 하나를 가져다가 그 하얀 부분을 수저로 긁어내 담았다.

그 사이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온 아이들은 부엌이 왜 저리 소란스럽냐고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오늘은 김치냉장고의 새 김치를 꺼내먹고, 공간 모자라서 남겨놓은 김치 처분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 밥 먹고서 다 같이 저 김치 두 통 처리하자.”

“저거 진짜… 먹을수 있는거예요?”

하얗게 센 비주얼에 국물도 끈적거리고 냄새도 신내가 확나는 걸 보니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심한데 그래? 우리 지금 자급자족한지 두 달 넘었는데, 이 상황에서 먹을 걸 버려?”

가야의 물음에 라나가 말했다.

“언니가 부엌에서 한 번 보세요. 완전 상했어요. 곰팡이 슨거 보면….”

“그거 곰팡이 아니라니까, 너무 발효되서 효모 낀 거야.”

인아가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저게 묵은지 되가는 과정이야. 효모만 빼고 씻어다가 삶아서 참치 넣고 볶음김치 할 수도 있고, 두부만 있으면… 크으, 참기름에 깨소금 둘러서….”

음식해서 먹는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 입맛을 다시는 인아.

확실히 생활력 강한 애가 하나 있으니 다른 애들 컨트롤이 잘 된다.

먹는 것도 지금이 아포칼립스 시대인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영양가 있는 삼시세끼를 즐기고 말이다.

김준은 밥을 먹다가 잠시 생각했다.

자신이 처리하자고 했으니 뭘 어떻게 만들어먹을지를 고민했고, 인아 말대로 죄다 볶을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과거 대규모로 김장을 준비하고, 기존에 남은 묵은 김치를 한큐에 다 쓸어버리는 법을 말이다.

“인아야.”

“네, 오빠.”

“숙주나물 많이 있지?”

“네, 한가득 담아놓고, 무침 준비하는데, 오늘 저녁에 그거 할까요?”

“아니, 그거 전부 가져오고 찬장에 있는 밀가루 다 꺼내. 추가로 창고 내려가서 꺼내올게.”

“네?”

김준은 남은 8명에게 말했다.

“오늘 만두 만들자. 지금 있는 재료들 가지고.”

“마, 만두요?”

“세탁실 위에 큰 다라이 있잖아? 그 뒤에 찜기 있다. 이따 꺼내서 한번 씻고, 준비하자.”

만두라는 이야기에 같이 먹던 아이들은 하나씩 이미지를 떠올렸다.

“아… 군만두가 좋은데.”

“나는 떡만둣국도 좋아.”

“아니야. 갓 만들어서 뚜껑열자마자 김이 확 나면서 나오는 그 찐만두가….”

벌써부터 먹을 생각에 흐뭇해서 한 마디씩 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중에서 어제 교자 먹고 싶다고 했던 나니카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의 요리에 열과 성을 다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은 만두 만들기에 들어갔다.

설거지가 끝나고, 김준이 말한 대로 세탁실 찬장 위에서 도경이 팔을 뻗어 낑낑대다가 찜통을 꺼냈고, 은지는 그것을 닦는다.

김준은 창고 내려가서 곰 그림이 그려진 밀가루를 가져오고, 인아는 만두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음, 일단 김치 살짝 씻고 숙주나물이랑 같이 물기 쫙 뺀 다음에….”

“옥상에서 버섯하고 채소 있는거 따오고, 통조림 까면 만두 속은 문제 없지 않아? 찬장에 참기름하고, 소금도 많아.”

“네, 그래야죠. 문제는 두부하고 계란인데….”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어디서 구할 수가 없었다.

“어쩌겠니. 우리가 요리 대회 하는것도 아니고, 있는 음식가지고 충분히 만들어 먹어야지.”

“이럴땐 진짜 세상이 망했다는게 실감이 드네요.”

그 흔한 계란 한판, 두부 한 모를 못 구하고 끙끙거리면서 자급자족을 해야 된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나중에라도 야생 닭이나 꿩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걸 잡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진짜 궁금하네? 동물은 감염이 될까? 아니면, 먹어도 문제없을까?’

그걸 알려면 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먹을 거 쌓인 상황에서 목숨 담보 맡기긴 싫었다.

어쨌건 그런 걸 먹을 날은 앞으로도 한참 뒤의 상황일테니 김준은 오늘 하루치를 만두 만들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