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화 (3/374)

〈 3화 〉 03­ 전부 구해줄게, 휴머니즘으로.

* * *

열흘이 넘게 굶었으면서도 그 볼륨은 여전한 금발의 미녀는 걸그룹 스피넬의 비주얼 담당 에밀리였다.

그녀는 미국 백인 집안 아버지와, 주한미군 혼혈 자녀로 태어난 한국 피 25%의 쿼터 미녀.

각종 예능프로에서 섹드립 넘치는 발언과 공연에서 적극적인 팬서비스로 스피넬 팬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에이스였다.

“와우~ 끝난 거야?”

“어, 그래. 너는 됐다. 이제 옷 입어도 좋아.”

“아, 팬티는 밖에 있는데….”

“…있는 것만이라도 입어.”

브래지어와 팬티를 김준이 있는 바깥에 던진 뒤로 남은 옷가지만 챙겨입는 에밀리다.

“그거 냄새 엄~ 청 찐할 거야.”

“…다음.”

“흐으응?”

좀비가 들끓고 갇혀있던 상황 속에서도 살짝 맛이 간 발언을 서슴지 않는 친구였다.

대체 이런 녀석이 어떻게 이 상황에서 잘도 살아있는지 모를 정도로….

“다음.”

그다음 나온 것은 떡진 똥머리에 물로만 겨우 씻어 끈적한 몸이지만, 레깅스를 벗자마자 풍만한 엉덩이가 매력적인 소녀가 나왔다.

그녀는 옷을 벗은 모습으로 김준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저기요. 제가 하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음?”

“저 이거… 좀비한테 물린 게 아니라 귀 뚫은 데 긁다 생긴 상처거든요?”

귀에 피가 약간 묻어난 상처를 보여주는 소녀는 솔로가수로 데뷔한 아이돌 라나였다.

본명은 차나라,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으로 21세기의 국민 여동생이자 섹시 컨셉으로 ‘패왕색 퀸’이라는 타이틀까지 노렸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좋지 않은 사생활 루머가 심했던 소녀이다.

“틴에이저~ 오빠, 쟤 아직 10대에요.”

“스, 스무살이에요!”

“생일 안 지났으니 19살.”

그러자 김준이 짜증스럽게 외쳤다.

“노란머리! 너 시끄러!”

옆에서 에밀리의 말에 김준이 좀 닥치게 했지만, HID라이트로 라나의 몸을 훑어나가면서 점점 배덕감이 살짝 들었다.

“다, 다음.”

이제 둘 남았다.

한 명은 남들과 같이 나체의 여성,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왜인지 겉옷 하나 벗지 않고 기다렸다.

아무튼, 벗은 몸의 여성은 팔을 벌리면서 말했다.

“아마도 밖의 존재들은 신종 바이러스일 거예요. 실험실에서 유출된 거겠지. 그리고 우리는 외상이 전혀 없고.”

“?”

“애들 외상 하나도 없는 거 확인했어요. 그리고 전… 의사에요.”

“의사?”

“일반의지만요.”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포니 테일에 슬렌더한 몸매의 여성은 김준이 모르는 인물이었다.

걸스파이팅에 새 멤버 온다더니 그게 저 사람인가? 아이돌이 아니라 의사를?

김준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히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그, 그러니까 전 의사 출신 배우.”

“그런 애도 있었나?”

“아니 그… [지니어스 서전!] 나 거기 나왔던….”

“그 드라마 안 봤어.”

그녀의 자기소개에도 쿨하게 넘기는 김준, 그러자 뒤에 있던 크러쉬의 멤버 도경이 말했다.

“마리 언니는 저희 같은 소속사에요.”

“아, 그래? 아무튼, 통과.”

상처 하나 없이 몸에 땀 흘린 얼룩만 묻은 그녀까지도 통과.

이렇게 해서 7명째 아이돌의 나체의 몸매를 감상한 김준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한 명.

차가운 외모에, 흐트러짐 없이 옷의 단추를 꾹꾹 채운 장발을 땋은 미녀.

개인적으로 김준이 좋아하는 아이돌이었다.

걸그룹 에잇틴.

그 그룹의 리더 은지.

김준이 현역시절 미쳐 있었던 걸그룹이었고, 하사부터 중사 때까지 그녀들의 노래는 언제나 휴대폰 벨소리였다.

리더지만 인기는 상대적으로 제일 적었는데, 김준은 그래도 제일 그녀를 좋아했다.

팬으로써 사심도 느껴졌지만, 김준은 정중하게 말했다.

“다른 아가씨들같이 똑같이 검사해야 데려갈 수 있어.”

“…싫어요. 전 됐어요.”

은지는 날카로운 눈으로 김준을 노려보며 옷을 벗는 것을 거부했다.

“이 앞에서 홀딱 벗고 몸을 보이니… 차라리 저는 여기 남죠.”

“뭐? 여기 남는 다고?”

김준이 되물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는 웅크려 완강하게 거부했다.

“저기, 내가 은지씨. 내가 엄청 팬이거든? 공식팬클럽 서포터에잇의 회원이기도 하고.”

이런 실랑이 하기 싫으니까, 이 상황에서 구해줄테니 그냥 빨리 끝내자고 제안하는 김준이다.

“싫다고! 차라리 몸을 보이느니….”

“야이씨! 내가 지금 당신 알몸 보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팬클럽 인연만 아니었으면 그냥 두고 가….”

“차라리 그러던지! 난 따로 남아있을 테니까!”

앙칼지게 외치는 주은지를 보고, 김준은 이 상황에서 자신이 뭐하는 건지 허탈해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때 다급히 가야가 뛰어와 중재했다.

“아저씨! 아니, 오빠! 제가 얘 화장실로 데려가서 확인할게요.”

“뭐? 내가 그걸 어떻게 믿고….”

“이제껏 우리 상처 없잖아요? 꼼꼼히 조사할테니까 부탁드릴게요. 그러니까 어떻게…네?”

김준은 난처한 얼굴로 다른 멤버들을 바라봤다.

그녀들 역시 차라리 그렇게 하자고 매달렸고, 할 수 없이 HD등을 가야에게 건네주고, 안에 있는 화장실로 두 여성이 들어가 몸수색을 자체적으로 했다.

그 와중에 옷을 입고서 겁에 질린 여성들이 김준의 주변을 맴돈다.

저 멀리 나타난 좀비 둘 빼고는 다행히 추가로 등장하는 존재는 없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가야가 김준에게 플래시 라이트를 건네줬다.

“이상 없었어요.”

“….”

뒤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며칠간 못 씻었어도 단추를 꼭꼭 채우는 은지다.

“후우, 피곤하다. 그럼 이제 가자.”

김준은 거리를 두면서 앞장서고 8명의 연예인이 그를 따르며 주변을 걱정스럽게 둘러봤다.

십 수일이 넘게 갇혀있으면서 지옥같은 상황을 겨우 벗어난 상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녀들은 일단 배고픔과 목욕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김준 역시 그것을 알고서 데려가면 일단 욕조에 받아놓은 물로 쟤들 씻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종합운동장 복도를 벗어났을 때, 김준은 밖을 보고 곧바로 뒤에 있는 그녀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곧바로 장전했다.

철컥­

“모두 엎드리고 귀 막아.”

“!”

그 순간, 가야가 맏언니로써 남은 아이들을 전부 고개 숙이게 했고, 김준은 문밖에 있는 좀비를 발견하고 겨눴다.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지만, 야산의 꿩이나, 송전탑 위의 까치를 잡는다고 생각하고 차분하게 겨눈 다음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슬러그 탄이 날아가 차 근처에 있는 좀비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그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다른 좀비들이 다가온다.

전부 걷는 좀비들. 하지만, 그중 하나가 이상했다.

[우워어어어!!! 우어우어우어!!!!]

알 수 없는 괴성을 내뱉으며 그 중 좀비 하나가 별안간 뛰기 시작했다.

“이런 씨!”

다른 좀비보다 월등히 빠른 그 녀석을 보고, 김준은 침착하게 조준경으로 놈의 머리를 겨눴다.

생긴 게 인간형이라 그렇지 이런 사냥감 한두 번 상대해본 게 아니다.

눈앞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너구리도 뒷목 노려서, 그리고 정면에서 달려드는 멧돼지도 공기총으로 눈알 한 방 맞춰서 잡았던 그였다.

타앙!

20m 가까이 접근해 달려오는 좀비를 한 방으로 쓰러트린 김준은 곧바로 허리춤에 슬러그 탄을 장전했다.

그때였다.

[으어어어!]

슬러그탄으로 머리가 깨진 좀비가 다시 일어나서 달려드는 것이었다.

“우웁!?”

비명을 지르려던 아이돌 중 하나를 가야와 체육돌 도경이 곧바로 막았다.

그녀들 모두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지만, 김준은 그 자리에서 장전하던 샷건을 내려놓고 허리춤의 M­10 리볼버를 꺼내 갈겼다.

타앙!

샷건에 이어 권총까지 한 방 맞은 좀비는 그제야 움직임을 멈췄다.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고 벽에 붙은 찐득한 피와 살점이 흘러내리는 것이 확인 사살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 뒤로 서서히 걸어오는 좀비들을 보고 김준은 샷건 장전을 마친 다음 밖에 있는 캠핑카를 가리켰다.

“저거 뒷문을 열고 들어가. 내가 바로 운전할 테니까 뛰어!”

“네! 어서들 가자!”

가연이 애들을 안내하고, 나니카, 도경, 인아, 에밀리 등등 열흘 넘게 굶은 아이돌들이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달려서 캠핑카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 김준은 옆에 있는 은지의 손을 붙잡았다.

“!?”

“넌 따로 타.”

그녀가 바로 뿌리치려 했으나, 김준의 손아귀 힘에 버틸 수 없었고 그녀는 곧바로 끌려갔다.

김준은 다른 7명의 아이돌과 달리 은지를 조수석에 태웠다.

그리고 운전석에 탄 김준은 바로 시동을 걸었다.

운전석은 이미 좀비 시대 이후 김준의 손에 의해 잔뜩 개조되어 있었다.

일단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김준이 설치한 강화 아크릴판이 있었다.

거기에 안쪽에서 조수석 차 문을 잠가 은지는 그 안에 갇힌 상태가 되었다.

그 상황에서 김준은 허리춤에 있던 리볼버를 꺼내 은지 쪽을 겨눴다.

“내가 직접 못 봐서 아직 의심좀 들어서 그러는 거, 이해하지?”

“…후우, 그러던지요.”

아크릴판 하나를 놔두고 총이 겨눠진 상태지만, 은지는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면서 눈을 감았다.

적어도 뒤에 애들이 물리는 일이 없고, 조수석에 그녀가 혹여라도 좀비가 된다면, 엽총과 권총이 겨눠져 김준의 방아쇠 한 방에 영거리에서 머리가 날아간다.

“얘들아! 꽉잡아라, 좀비 막 치면서 갈 거다!”

김준은 그렇게 뒤에 말하고는 액셀을 힘껏 밟았다.

소사벌 운동장에서 집까지는 10분 거리.

거기에 기름은 만땅이었다.

나머지는 가는 동안 좀비를 몇 마리나 치고 가냐는 것이었다.

이런 일에 대비한 건 아니었지만, 캠핑갈 때 산길에서 로드킬에 차 망가지지 말라고 동물원 사파리 같은데서 쓰는 금속 범퍼를 달아놨었다.

근데, 재수가 있으려니 그것이 훌륭한 충각이 되어서 좀비를 그냥 밀고가도 문제없는 전차가 되었다.

부우우우웅­

[으어어어어­]

콰직!

눈앞에 보이는 좀비 두셋을 그냥 들이받아 버리자 사정없이 날아간다.

범퍼카 취미는 없어서 그대로 깔아뭉개고 가거나, 아니면 튕겨나갈 때 유리창 쪽으로만 날아오지 말라고 이리저리 핸들을 돌렸다.

쿠당탕! 쿵쾅!

뒤에 있던 아이돌들은 그 거친 운전에 비명을 질렀지만, 덕분에 좀 더 빨리 올 수 있었다.

오늘도 열 마리는 넘게 좀비를 잡은 김준은 일단 집 앞에 차를 주차시키고, 기어 뒤 케이스를 열었다.

딸깍!

그 안에는 소주병이 있었다.

참고로 마실 수는 없었다.

반은 마시고, 거기다가 신나를 채워 넣고서 옷가지로 틀어막아 적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칙­ 치이익­

즉석에서 만든 소주 화염병으로 눈 앞에서 서서히 접근하는 좀비를 향해 던졌다.

쨍그랑!

화르르르륵­

전방 10m에 화염병이 터지면서 생긴 불의 장벽.

그리고 김준은 반대쪽 역시도 던져서 집까지 들어가는데 좀비가 접근 못 하도록 앞뒤로 화염병을 까서 벽을 만들었다.

근처에 인화성 물질이 더는 없어서 저게 다 타면 알아서 길은 다시 생긴다.

그런 다음 문밖에서 엽총을 겨누고서 서서히 문을 열었다.

“됐다! 다 나와.”

“으… 네.”

멀미를 느끼며 비틀거리는 아이돌들을 김준이 집으로 안내했고, 마지막으로 조수석에 홀로 남은 은지가 있었다.

김준은 그녀를 보기 전 권총을 꺼내고 물었다.

“진짜… 몸수색 계속 거부할 거야?”

“…차라리 이 차 안에서 기다리죠.”

“들어가자마자 애들 씻으라고 보내면 결국은 한번은 벗어야 할텐데?”

“됐어요. 차라리 내가 좀비가 되는지 안 되는지 이 안에서 확인하면 되잖아요?”

“고집 겁나 세네, 팬이었는데 정떨어지게….”

김준은 그러면서 문을 열고 그녀에게 권총을 맡겼다.

초면에 바로 무기를 맡긴 김준은 그녀에게 숙지법을 알려주고 문을 닫았다.

“애들 목욕 다 하고, 그때까지도 멀쩡하면 꺼내러 올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김준이 그렇게 말하면서 돌아설 때 은지는 받은 권총을 들고서 그대로 들어올려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킥!”

방아쇠를 당기고 빈 총의 소리에 김준이 피식 웃었다.

애초에 총포상에서 루팅할 때 총알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걸 모르고 저녀석이 결국 당겼다.

“이래서야 내가 너를 구해줄 이유가 없….”

하지만 뒤를 돌아본 김준은 뜻밖의 상황을 봐 버렸다.

은지는 그 권총을 김준에게 겨눈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권총을 자기 턱밑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없어 산 것이다.

“….”

“자기 턱밑에 겨누고 쏘는 건 어디서 배웠냐?”

“하… 하하….”

은지는 힘없이 권총을 떨어트리고 고개를 숙인채 눈물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째 우는 모습이 공연중 팬들 앞에서 웃는 모습보다 처량하면서도 그 미모에 다시 김준의 마음이 움직였다.

“뭔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가야가 말했으니 몸수색은 더 안 할게.”

“….”

“대신 애들 샤워 끝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그때 같이 들어가자.”

김준은 일단 진정 좀 하라면서 창문 안으로 물과 사탕 몇 개를 주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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