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화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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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01­ 살다 보니 세상이 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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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김준의 할아버지 집은 요새와 같았다.

50년이 지난 이 건물은 몇 번의 공사 이후 언제나 A급 시공에, 혼자 살기에는 정말 넓은 곳이었다.

1층은 상가와 창고, 2층은 방 3개의 집, 거기에 베란다를 타고 옥탑방까지 증축해서 2개의 집까지 추가한 단독주택.

지금은 전부 임차인이 빠져나갔지만, 할아버지와 둘이 살 때만 해도 월 100만 원씩 꼬박꼬박 들어오던 곳이었다.

김준은 그런 집안에서 부모님을 일찍 여읜 과거를 잊고 취미 생활이나 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 빠지고, 오토바이를 좋아해 기계 만지다가, 군대에 가니 윗선의 간곡한 요청에 부사관 지원.

그리고 상사 진급 전에 군 생활 계속하는 거 재미없다고, 전역.

그 이후에는 할아버지 도와서 고향에서 농기계나 트럭을 고치는 소일거리로 살아갔다.

이후에 고향인 소사벌시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물려받은 다음에는 시골에서 꿩이나 고라니 사냥하던 취미 살려서, 아예 정식으로 수렵면허를 땄다.

주로 가을에 농작물 노리는 고라니나 송전탑의 까치랑 까마귀 퇴치하는 일로 먹고 살고 있었다.

그렇게 마이~ 마이~ 라이프를 즐기면서 살아가면서 불편한 것 하나 없이 고향에서 안빈낙도의 삶.

근데 이제부터 불편해질 것 같았다.

[삐­­­삐리리­삘릴리리­삐­­­­]

[긴급 경보 발령! 전역 가까운 대피시설로 대피하고 방송 청취!]

[경계경보 발령.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퍼짐. 인간을 습격.]

“응? 뭔 개소리야? 어디 미사일 떨어졌어?”

김준은 오늘 저녁에 소사벌시의 종합운동장에서 아이돌들 예능 촬영한다고 해서 그거 구경하러 가려고 했는데, 별안간 긴급 속보로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한다.

그때 TV에서 나온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크아아아! 으어어어!]

[꺄아악! 여러분 긴급경보입니다! 갑작스런 감염된 환자들이 늘어나고 주변에서 발작 시…]

갑자기 전국에 사람 뜯어먹는 괴물이 나타났고 물린 순간 감염돼서 똑같은 괴물이 된다.

“어우, 시발! 저거 뭐야?…”

김준이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연락해보려는 순간, 통신망이 모두 끊겼는지 전화가 안 됐다.

“뭐야 씨? 이건 또 왜 안돼?”

라디오를 틀어도 여기저기서 모두 치직거리는 비프음, 몇몇 채널에서는 ‘으아아악!’ ‘꺄아아악! 살려줘!’같은 비명이 울리다가 끊겼다.

이후 TV 채널 모두가 바로 검은 화면으로 돌아왔다.

전직 부사관이자 현 헌터로 살던 인생이 전 세계에 좀비가 퍼져 모든 세상이 무너져 사라졌다.

그렇게 첫 날.

TV와 인터넷, 전화가 차례차례 끊기면서 좀비 사태가 시작됐다.

[치직­ 치지지직… 국민 여러분 라디오를 집중해 주시…지지지지지지직­]

“미친! 말을 하고 끊겨야지!”

라디오로 무슨 생존수칙을 말해줄 겨를도 없었나 보다.

모든 미디어가 끊긴 뒤로 세상은 완전히 무법지대가 되었다.

집 전체의 문을 잠그고 커튼 너머로 본 환경에는 수많은 좀비가 길가에서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은 좀비가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에 김준은 헤드셋을 차고 잠들었다.

다음 날.

어제 일이 영화 촬영이라 생각하길 바라며 커튼을 쳐 봤지만, 사방에 피가 뿌려져 있었다.

시골 외곽인 이 동네도 이럴진대, 인구 천만의 서울은 어떨지 상상이 안 갔다.

휴대폰도 안되고, 인터넷에 방송도 안 나오니 할 게 없었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전기와 물을 위해 일단 있는 대로 욕조에 물을 담았다.

그리고 그동안 할아버지가 요새처럼 만든 이 집의 물건들이 빛을 발했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하나하나 준비해야겠다.”

김준은 먼저 대문을 단단히 잠근 다음, 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담벼락 안에 있는 뒤꼍 빗물 탱크들의 뚜껑을 모두 열어놔 언젠가 올지 모르는 폭우를 기다렸다.

그리고 혹시 모를 담을 타고 넘어올 존재들을 염려해 차고에서 접착제와 분리수거 유리병들을 꺼내 일대에 치덕치덕 발라대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을 뿌렸다.

“붙잡는 순간 손모가지 작살나는거지.”

김준은 집 주변으로 바리케이드를 쳐 놓은 뒤로 지붕 전체를 쌓은 집열판들을 바라봤다.

창고 위에 슬레이트에는 태양열에너지, 그리고 옥탑방 지붕 위에는 태양광 집열판.

모두 지난날 시골에서 보조금 준다고 설치해 놓은 것들이었다.

“저거는 어떻게 손 봐서 잘 운용할 수 있고, 그다음은 먹을 거인데….”

김준이 중얼거리며 창고를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수많은 쌀 포대가 쌓여있어 보기만 해도 배가 터질 양이었다.

“흐으으음~”

할아버지 친구분들이 빈 창고 좀 쓰자고 맡긴 것이었다.

농사지으면서 도정 처리 안 된 쌀들 좀 농협하고 협상할 동안 봐달라고 보관비로 공판장 아재들에게 소주 열 박스 받고 보관한 것들.

덕분에 쌀밥하고, 소주는 배 터지고 간 적실 정도로 아주 넉넉했다.

“그래도 이게 있는게 다행이지….”

김준은 창고 문단속을 단단히 한 다음, 집 안으로 다시 돌아와 안방 장롱을 열어 공기총을 꺼냈다.

경찰서에서 수령해와서 원래였다면, 송전탑 까치랑 까마귀 잡으러 가져갈 무기인데, 이걸 가진 상태로 세상이 망했다.

“갑자기 좀비 세상이 되었고, 자급자족할 상황이 완벽하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은 군대 후배한테 보험이랑 저축 가입할 때나 들은 말이지만, 우주의 기운이 김준에게 모두 몰려 있는 것 같았다.

***

사흘이 지났을 때 김준은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기다렸다.

인터넷은 안 돼도 급한 대로 TV를 틀어서 VCR로 영화를 감상했다.

바이오 레지던트 시리즈, 아침의 황당한 저주 시리즈, 데드 워킹, 28일 후 시리즈까지 모두.

“크에에에에에!!!”

[투두두두두두!]

세상 부족한 스테미너 없이 달려드는 좀비들, 총으로 요격하는 생존자들.

그걸 볼 때마다 간간이 커튼을 치고 봤을 때, 저 멀리 좀비 하나가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영화처럼 막 뛰어다니진 않는구나.”

이대로 지내다 보면, 곧 영화 마지막처럼 헬기 타고 군대가 나타나서 모든 걸 쓸어버리겠지.

김준은 그때를 위해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다 좀비 영화를 보고서, 밖에 상황보고 이것만 계속 보기도 뭐해서 컴퓨터를 켰다.

“다운 많이 받아놓을걸….”

아쉬운 대로 명작이라고 담아놓은 영상을 틀었다.

[아앙­ 아앙~ 하악~ 스고이~!]

어차피 볼 사람도 없고, 들을 사람도 없으니 스피커 틀어놓고 AV나 감상하며 그날 밤을 마쳤다.

***

1주일이 되었는데, 아직도 군대 이야기는 없다.

서울부터 먼저 구하나 싶어서 라면 한 그릇 때린 다음에, 오랜만에 목욕의 시간을 가졌다.

“아직 물하고 전기 안 끊긴 거 보면, 집 안에 생존자가 많이 있겠지?”

그동안 언제 끝날지 몰라서 화장실도 오줌 몇 번 싼 다음에 하루 지나서 물을 내렸고, 큰 거는… 일단 두 번까지는 같이 내렸다.

하지만 집에만 조용히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으어어어­]

맞은편 집에 문이 열리고 이웃이 좀비가 되어 나오고 있었다.

저 양반 옛날에 농수로 문제로 싸우다가 할아버지에게 낫을 겨눠서 경찰서 갈 정도로 사이가 매우 안 좋았는데, 이쪽으로 오는 걸 보자 바로 공기총을 꺼내 연지탄을 장전하고 갈겼다.

띠잉­

화약이 아닌 공기 압축으로 발사된 납탄이 머리에 맞으면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이웃 좀비였다.

“썅….”

어차피 밖으로 나온 일. 일단 동네 마트라도 살펴보려고 김준이 캠핑카를 타고 나왔다.

그리고 난장판이 된 밖에서 좀비를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공기총을 쐈다.

띵­ 철컥! 띵­

사람을 죽였다는 감정이 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농협하고 엮여서 한따까리 했던 앙숙들이었다.

한 발 쏘고 장전하고 한 방, 그러면서도 정확히 헤드 샷으로 잡은 좀비가 열 마리였다.

김준은 최대한 좀비들이 없는 자리를 찾았고, 일단 자주 가던 주유소로 향했다.

마트와 함께 붙어있는 곳인데,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장님은 논두렁에 묻혀서 부패한지 오래… 안에 있던 좀비 셋을 김준이 전부 잡았다.

열 마리 이상을 잡았을 때, 김준의 마음속에서는 더 이상 사람을 죽였다는 감정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주유소에서 경유랑 휘발유를 말통으로 담아서 한가득 꼭꼭, 거기에 편의점 내에 있는 통조림과 라면, 소면 우선으로 채우고 물과 티백도 쌓아둔 다음, 마지막으로 담배를 발견했다.

“…후우, 다 챙기자.”

담배도 박스 단위로 담아서 차가 한계를 넘을 정도로 과적해서 겨우겨우 집에 돌아와 그것들을 모두 담았다.

그동안 집 근처에서 달려드는 좀비 둘을 추가로 잡고, 그날 밤 잊기 위해 소독약 한 통으로 온몸 씻고, 먹고 죽자고 소주를 들이켰다.

***

열흘이 지나자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좀비 소리가 보이면 그대로 불을 끄고 창문 너머로 총구를 꺼내고, 백발백중으로 좀비 머리에 연지탄을 박아줬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좀비가 되면 빠르게 감염이 되면서, 죽을 때 소멸도 빠르다는 것이다.

농가에서 쥐나 닭도 죽으면 그거 썩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면서, 몇 주 동안 파리랑 구더기가 들끓지만, 좀비는 죽은 다음 2~3일만 있으면 점점 녹아내리면서 바닥에 흔적만 남기고 빠르게 거름이 된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김준이 죽인 좀비들의 시체를 밖에 나가 생존 물품을 루팅할 때마다 계속 자기가 죽인 것들을 보면서 지나갔을 거다.

좀비 시체 각도 하나 잘못 잡으면 눈을 마주칠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던 중 생각이 난 곳이 있었다.

엽사 시절 도움을 많이 받은 시골의 총포상.

거기 사장님이라면 캠핑도 같이 다녔고, 거기 무기를 생각하면 도움을 청할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했을 때…

[크에에에에!]

띵!

철컥­

띵!

두 발로 좀비가 된 사장님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다가가 확인사살로 머리를 겨누며 말했다.

“미안해요, 사장님….”

띵!

공기 압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총포사 사장의 머리에 바람구멍 세 방이 박혔다.

김준은 다른 좀비들 보다도 유독 가슴이 아픈 상황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 되고, 안의 물자는 챙겨야 한다.

김준은 담배를 바닥에 던진 뒤 눈 딱감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의 총포상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젠장… 죄 박살이 났네.”

일단 망가진 총들 중에서도 그나마 고쳐 쓸만한 엽총을 두어 자루 챙겼다.

그리고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 총알이 있는 금고를 봤을 때, 비밀번호가 책상 밑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리고 금고를 열자 그 안에는 엄청난 노다지가 있었다.

“미친… 이거 걸렸으면 개작살인데!”

12게이지 샷건, 슬러그탄.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곰이나 엘크 사냥용으로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걸렸다간 쇠고랑을 면치 못하는 살상용 총알이 50발이나 있었다.

그 외 손톱만 한 사이즈의 김준의 공기총 연지탄이 한 박스. 게다가 가스총과…

“…야이씨! 이건 또 왜 있어?”

경찰들이 사용하는 스미스&웨슨 m10 리볼버. 그것도 투박한 초기형이었다.

설마 해서 열어봤지만, 안타깝게 총알은 없었다.

계속 뒤져봤지만, 딱 한발이 케이스 안에서 나왔다.

딱 보니까 수집용으로 사놨는데, 공이는 안 없애고, 그냥 숨긴 것 같았다.

“권총… 그것도 경찰용...”

김준은 총포상 안에서 샷건 두 자루와 권총, 각종 총알들을 가득 챙겨 나갔다.

이것으로 혼자서 몇 달은 싸울 수 있다.

***

여느 때와 같이 루팅을 하려고 마트를 찾았지만, 세 곳이나 좀비들이 가득했다.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다른 곳을 찾던 중 시내에서 몇몇 현수막을 발견했다.

[걸스 파이팅~ xx월 xx일 싸인회!]

[우리 동네, 아이돌이 뜬다!]

“아, 맞다 저거!”

좀비 사태가 일어난 첫날, 원래 가려고 했던 소사벌 종합운동장의 연예인 촬영.

각 걸그룹의 예능돌들과 배우, 가수등이 모여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까맣게 잊었다.

“쟤들도 여기 왔는데 이 지경이… 아니, 잠깐만!”

김준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담배를 물고 생각에 잠겼다.

“…쟤들다 죽었으려나?”

소사벌 운동장이라면 눈감고도 알수 있는 구조였다.

과거 거기서 간판 설치 일을 잠깐 했었는데, 원래 전국체전 용도로 만들어진 곳이라 그 안에 대기실도 넓고, 또 대피소 용도라 비상 발전기가 있을 거다.

“오다가다 종합운동장 한 번쯤은 가 봐야 하는데….”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핸들을 돌렸다.

‘그래 가보자!’

일단 한 번 둘러는 보고, 정 안 되겠으면 오늘 루팅은 실패니까 그냥 집에 돌아가 당분간 존버할 생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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