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7화 > 악마교 소탕 (5)
'실제로 봐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호연은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며 마력을 가다듬었다.
원작에서도 마에스트로는 제대로 된 공략법이 나오지 않는다.
마에스트로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마왕을 소환해 버리니까.
'마에스트로의 마력은 내 마천궁하고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어.'
마에스트로의 마력은 실체가 없는 것도 세뇌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다.
마에스트로의 몸을 둘러싼 마력은 마에스트로가 인지하지 못한 것도 세뇌해 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마력 자체에 깃든 세뇌의 힘이 마에스트로에게 위해가 되는 것을 없애는 것이다.
영역을 지배한다는 점에선 일정 영역의 마력 지배력을 높이는 마천궁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마에스트로는 마력을 인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저 마력을 뚫을 수는 있는 거야?'
개안을 통해 보이는 마에스트로의 마력은 너무나 두터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 있는 인간과 마인만 해도 수천 명이다.
심지어 이전에는 판데믹을 운영하며 전세계의 인사들을 혼자서 세뇌하기도 했다.
그런 놈의 마력이 가벼울 리가 없다.
만약 이호연이 없는 세상에서 마에스트로의 목적이 마왕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인간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면, 혼자서 과업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 쯧."
이호연은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토벌대는 이미 악마와 전투를 시작하고 있었다.
악마 두 마리와 마인 잔당들이 강하긴 하지만, 토벌대의 전력도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아직 전황은 팽팽해 보였다.
'내가 해내야 해.'
이호연이 마에스트로를 맡은 이유는 세뇌에서 안전하기 때문이다.
마에스트로가 끼어들었다간 팽팽한 전황은 순식간에 붕괴한다.
설령 세뇌어를 알고있다해도 잠깐의 망설임 때문에 몸이 두동강날 수 있다.
그렇기에 마에스트로를 저기로 보내선 안 된다.
두근-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온몸을 감싸는 전투 감각의 고양감.
감각이 예민해지고 머리가 차가워진다.
지금 상태라면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러드 비트.
마나 회로가 팽창하고 온몸에 마나가 빠르게 순환한다.
'뚜렷한 정신력'으로 차가워진 머리는 눈앞의 남자를 이길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에스트로의 마력과 맞닿아 있는 마천궁의 끄트머리가 흔들린다.
놈의 마력에 닿는 것만으로 마법이 붕괴하려는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운명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에스트로는 이호연을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호연을 처음 봤을 때는 마에스트로가 아직 운명에 순응하지 못할 때였다.
그때부터 그는 다른 인간과 다르게 빛이 났다.
마왕님을 위해 삶을 바치기로 한 지금도 그의 빛은 바래지 않았다.
그는 마왕님을 위한 운명의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다.
설령 자신의 운명이 부서지는 결과라도 상관없다.
마왕님의 강림이 확실해진 지금 마에스트로는 잃을 것이 없었다.
"그놈의 운명. 운명. 시끄러워 죽겠네."
저 새끼가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
사실 이호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
A클래스의 양아치 도진혁.
마법연구부 부장 김현도.
처음 이 세상에 빙의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호연에게 악의를 보이던 양아치들을 이호연은 기억하고 있다.
루시와 루미를 노렸던 마인 펠릭스.
남다은을 노예로 만들었던 바이어 길드장 박민규.
문수린을 노리던 부회장 신동민.
임솔을 좋아하던 마법사 에이든.
친동생을 사랑하는 아이린.
굳이 자신에게 덤빈 사람이 아니라도, 이 세계에는 원작과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들의 삶은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 있다.
이호연같은 특이점이 없다면, 이 세상이 수백 번 반복되어도 언제나 같은 삶을 살겠지.
'하지만 절대 바꾸지 못하는 건 아니야.'
친동생과 자기 자신만을 애정의 대상으로 보던 아이린의 마음이 바뀌었다.
강간당하기를 좋아하던 백아영은 자신만을 사랑하는 여자로 바뀌었다.
이 세상은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니다.
화면 밖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이라면 몰라도 자신이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저놈이 말하는 운명은 개소리다.
화아악-
몸 안의 넘치는 마력을 결계로 형상화한다.
룬의 결계.
하지만 마에스트로의 마력에 닿은 결계는 흐느적거리며 그 힘을 잃어갔다.
이호연은 결계의 마력을 거두고 정면을 노려봤다.
마에스트로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세뇌 능력은 세상에서 유일하면서도 굉장히 강했다.
설령 평범한 인간이라도 세뇌를 받은 순간 두려움을 잊고 죽을 때까지 덤비는 전투 요원이 된다.
그리고 강한 세뇌는 마에스트로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세뇌는 본래 정신에 깊게 관여할수록 강해지는 법.
그 대상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라면 더욱더 완벽한 세뇌를 걸 수 있다.
"세상을 부수는 힘이 내게 깃든다."
마에스트로의 몸에 충만한 힘이 깃든다.
강한 세뇌는 억지로 마에스트로의 한계를 끌어냈다.
마에스트로는 자기 자신에게 되뇌이며 손으로 허공을 내리쳤다.
파아아앙-!
단순한 마력의 움직임과는 달랐다.
공간을 세뇌하며 공간의 힘을 받은 마력이 엄청난 물리력을 만들어 낸다.
"이런 씹…!"
마천궁의 마력을 찍어 누르는 엄청난 압력.
이호연은 뒷걸음질 치며 공격을 분석했다.
놈의 마력이 가진 주변을 세뇌하는 힘은 공간을 지배하며 마천궁의 마력마저 집어삼켰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다은의 공간참과 비슷했다.
실체가 없는 것마저 세뇌해 버리는 마에스트로의 마력이 자리를 빼앗듯 이호연의 마력을 밀어냈다.
"… 이클립스."
이호연은 눈을 찌푸린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검은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질량을 먹어 치우는 검은 태양은 이호연의 마력을 듬뿍 먹은 채 마에스트로에게 쇄도했다.
"소용없습니다."
콰아앙-!
가벼운 손놀림에 이클립스가 지우개처럼 지워진다.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태양의 뜨거움이 마에스트로의 마력에 담긴다.
"큽…!"
이호연은 손끝의 마력에 집중하며 마에스트로의 힘을 밀어냈다.
뜨거운 열기가 코 앞까지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엄청난 집중력은 물론이고 몸 안에 마력이 쑤욱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한 번의 힘싸움으로 느꼈다.
이대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방어를 무시하는 공격을 하면서 자신에게 오는 공격은 반사한다.
뭐 저런 놈이 있나 싶지만, 이호연의 전투 감각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아크는 안 통해.'
마에스트로의 마력은 그가 인지하지 못한 공격도 튕겨낸다.
아크 컨저레이션으로 십 수개의 마법을 때려 박는 건 비효율적이다.
'이레이저도 아껴놓고 싶어.'
마력을 지우는 마법 이레이저.
그걸 사용한다면 잠깐은 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결국 이레이저라는 마법도 세뇌당하며 순식간에 힘을 잃을거다.
적어도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때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틈을 만들어야할까.
공간을 장악하는 것도 통하지 않고, 압도적인 마력으로 짓누르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반사해 버리기에 다중캐스팅도 효율이 안 좋다.
파아앙-!
마에스트로의 마력이 이호연이 서 있던 곳을 덮쳤다.
마력 자체에 깃든 파괴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막을 수 없는 공간참이라면 피할 수밖에 없다.
이호연은 점점 뒤로 물러나며 입술을 깨물었다.
'뭐 이렇게 강해?'
마에스트로가 원작에서도 강하긴 했지만, 강해봤자 악마 하나 정도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호연의 눈앞에 있는 마에스트로는 그보다 훨씬 강했다.
'진짜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건가?'
이 세계는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니다.
이미 이호연은 원작의 이호연을 뛰어넘었다.
원작의 세상이 그대로 구현되었다면 이호연이 목숨을 걱정할 일 따위는 없었을 거다.
그러나 이호연이 강해지면서 만들어 낸 나비효과는 이미 태풍이 되어있었다.
이세계의 신은 마왕으로 직접 강림했고, 악마들은 지구의 헌터들이 지옥의 마력에 적응하기 전에 나타났다.
'놈이라고 달라지지 않을 이유는 없어.'
이호연은 끝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았다.
마에스트로는 그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운명은 아직 제 편인 것 같군요."
"닥쳐."
"주변을 확인해 보시죠. 당신에게 여유는 없을 겁니다."
이호연은 정면에 집중하며 슬쩍 옆으로 눈알을 굴렸다.
팽팽한 줄 알았던 토벌대의 싸움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악마 두 명과 마인의 합공에 연신 밀리고 있었다.
주변에 마인과 인간의 시체가 늘어나고 있었지만, 악마에겐 제대로 된 상처가 나지 않았다.
저 정도 상황이라면 지원군을 불렀겠지만… 이대로라면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토벌대가 전멸해 버릴지도 모른다.
최악은 토벌대가 전멸당한 뒤 이호연에게 합공을 하는 것.
그 전에 자신이 놈을 쓰러뜨려야 한다.
"큽…!"
마에스트로는 이호연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콰앙-!
이호연은 다시 뒤로 물러났다.
조금 늦게 반응했는 지, 손끝에 얼얼한 감각이 맴돈다.
마에스트로의 마력에 잠깐 노출된 모양이다.
'더럽게 아프네.'
살짝 스쳤을 뿐인데 뼈가 부러진 것 같다.
카르쿠스처럼 날카로운 공격은 아니지만, 거대한 몽둥이에 맞는 느낌이다.
제대로 맞으면 몸이 부서질 것 같다.
'… 응?'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마에스트로의 공격은 마력을 집어삼키고 그 공간의 힘을 받아 더욱 강해진다.
'내 몸에 있는 마력은 그대로야.'
공간과 마력을 밀어내며 돌진한 힘이 이호연의 마력은 손상시키지 못했다.
그때 눈치챌 수 있었다.
놈의 파괴력은 진짜다.
공간과 마력을 집어삼키며 만들어 낸 물리력은 이호연도 막아낼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력은 세뇌되지 않는다.
'뚜렷한 정신력 때문이겠지.'
이호연은 세뇌를 당하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이호연 몸 내부의 마력도 마에스트로의 세뇌에 저항한다는 뜻이다.
찰나의 시간 동안 이호연은 빠르게 사고를 가속했다.
몸 내부에 퍼져있는 마력을 심장 부근으로 모았다.
'마력을 바깥으로 뽑아내면 마에스트로에게 빼앗긴다.'
하지만, 만약 마에스트로의 상대가 세뇌에 당하지 않는 카르쿠스였다면 어떨까.
카르쿠스는 세뇌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마에스트로의 몸을 두동강내겠지.
'내가 너무 몸을 사리고 있었어.'
자신은 마에스트로의 세뇌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 몸 자체가 무기였으니까.
이호연은 빠르게 마력을 회전시켰다.
마나 회로가 팽창하며 몸 내부의 마력을 증폭시킨다.
동시에 룬의 결계와 마천궁의 범위를 극한으로 좁혔다.
룬의 결계를 몸에 두르고 빠르게 접근했던 레베카를 떠올린다.
마법사도 그런 전투를 해낼 수 있었다.
'조금 더 몸에 가까이. 아니, 몸과 하나가 되도록.'
상대는 마에스트로였다.
몸에 두르는 정도가 아니라, 몸과 일체화가 되어야 한다.
그 순간에도 마에스트로는 이호연이 마음대로 마법을 펼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마에스트로는 사방의 마력과 공간의 도움을 받아 강한 마력의 폭풍을 만들어 냈다.
세뇌의 마력이 담긴 폭풍은 결계로 막아낼 수 없다.
'미래 예지.'
이호연의 눈이 금빛으로 빛난다.
화아악-
눈동자가 밝게 빛나며 순간적으로 감각이 확장된다.
눈앞의 마에스트로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막을 수 없는 마력의 폭풍.
마에스트로는 이 공격을 절대 막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서로 부딪히며 더욱 강해진 충격파가 이호연의 몸을 덮쳤다.
무작위로 번지는 충격은 피할 곳이 없어 보였다.
저 공격에 노출되는 순간 몸이 박살나는 미래가 이호연에게 보였다.
하지만 막대한 충격량이 이호연의 몸에 도달하기 직전.
이호연은 룬의 결계 내부를 가속하며 몸 내부의 마력을 한 번에 폭발시켰다.
금빛의 섬광이 순식간에 폭풍 사이 틈을 돌파한다.
그 빛이 향하는 곳은 마에스트로의 몸뚱아리.
"……!"
직접 돌진하는 이호연을 본 마에스트로는 눈을 크게 떴다.
이호연이 이상한 전투법을 사용한다지만, 설마 직접 뛰어들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마에스트로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세뇌의 마력과 주변 공간. 그리고 곳곳에 있는 건물 자재까지 모아 방벽을 만들어 낸다.
그 상태로 뒤에 있는 공기에 몸을 실어 십 미터 이상 거리를 벌릴 생각이었다
'이레이저.'
하지만 마에스트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을 때.
방벽은 사라지고, 이호연의 신형이 이미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파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이호연의 주먹이 마에스트로의 몸을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