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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39화 (639/648)

< 639화 > 서큐버스의 사랑

"… 아."

몸이 무겁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들게 들어 올린다.

아침햇살과 함께 지난밤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제 몇 시까지 했더라.'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잠들어 있는 백아영이 보였다.

나는 곤히 자고 있는 백아영의 가슴을 주무르며 어젯밤을 떠올렸다.

천천히 희미한 기억을 되짚자 딱 7번 하고서 쓰러진 게 기억났다.

백아영의 반응이 기억에 없는 걸 봐선 백아영은 그 전에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지옥의 괴수를 처리하느라 너무 바빴던 탓에 성욕 해소를 못 했으니 자제하지 못한 것 같다.

'클린.'

먼저 축축한 침대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지금 시간은 오전 10시.

정기적으로 있는 메디컬 체크 시간이다.

본래 백아영이 그 역할을 맡지만, 백아영은 아직도 꿈나라에 있다.

어젯밤 정밀 검사를 이유로 병실 출입을 금지했다고해도 밤을 새고 메디컬 체크 시간까지 연락이 없는 건 이상하겠지.

다른 의료팀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스르륵- 스륵-

백아영에게 클린으로 깔끔해진 옷을 입히고 간호인용 간이침대에 눕혔다.

그녀도 꽤나 피곤한 지 마법으로 몸이 둥둥 떠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똑똑똑.

나도 환자복을 챙겨입자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일어나있습니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이호연 마법사님. 다름이 아니고 성녀님이… 헉? 무, 무슨 일인가요?!"

병실에 들어온 의료팀은 백아영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다가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던 답변을 꺼냈다.

"어젯밤 발작이 일어나서 성녀님이 밤새 간호해 주셨습니다. 방금 잠들었으니 내버려 두세요."

"아,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죠? 다른 의사 선생님을 불러올까요?"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성녀님이 방금 잠드셔서 혹시나 깰까 걱정이네요. 성녀님이 일어나면 다시 연락해 드릴게요. 그리고 발작 때문에 저도 잠을 잘 못자서요. 제가 연락할 때까지는 병실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주세요."

"앗. 알겠습니다."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의료팀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조용히 병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정도 말했으면 당분간 안 오겠지.

"… 나도 좀 더 잘까. 피곤하네."

철컥-

의료팀에게 말해놓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마력을 이용해 병실 문을 잠근 뒤 백아영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다시 내 옆에 눕혔다.

그리고 백아영의 끌어안은 채 가슴을 주무르며 눈을 감았다.

어젯밤에 너무 무리한 모양이다.

백아영이 일어날 때까진 자야지.

*

며칠 뒤.

일주일을 입원해야 한다며 시위하던 백아영을 간신히 잠재우고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나도 마음 같아선 평생 병원에서 백아영과 딩가딩가 놀고 싶었지만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호, 호연아…. 흑. 여보… 읍. 읍…."

"… 아영아. 여기 공항이야. 조용히 좀 해."

"읍읍…. 읍, 여ㅂ, 읍…."

울상을 지으며 내게 안기려 하는 백아영과 그녀를 막는 솔이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마침 아카데미로 돌아가려는 둘과 같이 가려는데 공항에서부터 영 쉽지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솔이 교수님. 나중에 연구실로 찾아갈게요. 아영 씨도요."

"응. 우리 제자랑 대련이라도 했어야했는데 아쉽네. 그래도 호연이 덕분에 카르쿠스의 머리랑 심장을 가져가니까 할 일은 많겠어."

"소유권이 저한테 있는데 제일 좋은 건 교수님한테 드려야죠."

"여ㅂ… 읍…!"

"… 아영 씨. 한국에서 만나면 되잖아요."

누가 보면 영영 헤어지는 줄 알겠어.

심지어 며칠 내내 병원에서 같이 있었는데도 저런다.

결국 백아영을 한 번 안아주고, 차별하지 않기 위해 옆에 있던 임솔도 한 번 안아주고 나서야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마력비행기는 순식간에 한국으로 도착했다.

백아영과 임솔을 아카데미로 보내고, 난 혼자 집으로 향했다.

"한국에 오는 게 왜 이렇게 오랜만 같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부우웅. 부아아앙!"

"리, 릴리아나 언니…! 좀 더 해줘!"

거실에 보이는 건 마력을 이용해 다희를 붕붕 띄우고 있는 릴리아나였다.

"호연아…! 돌아왔구나?"

그 꼴이 웃겨서 잠시 조용히 지켜보는데, 남다은이 총총 다가와서 품에 안겼다.

마치 출장 갔다 온 남편을 반기는 와이프 같아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응. 다은아. 많이 기다렸어?"

"… 아니. 괜찮아. 하지만 다쳤다길래 걱정하고 있었어."

"내가 괜찮다고 연락했잖아."

"그래도… 으음."

내 존재를 확인하려는 듯 안겨있는 남다은을 쓰다듬으며 거실로 들어갔다.

"호연 님? 다행히 잘 살아계시는군요."

"애기 아빠. 왔구나?"

커피를 마시던 스칼렛과 레베카 씨도 나를 반겨줬다.

나는 스칼렛이 타 주는 커피를 받으며 릴리아나가 하는 짓에 관해 물었다.

"고마워. 근데 저기 두 명은 뭐 하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릴리아나 님이 자신의 마력이 강해졌다며 저런 장난을 치곤 합니다. 어제는 남다은 양을 들어 올려서 다은 양이 화를 냈었죠."

"스, 스칼렛 씨. 그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피식 웃으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오랜만에 와도 역시 집은 마음이 편했다.

"애기 아빠. 미국에서 많이 다쳤다면서 괜찮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다 나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응.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데 혹시 안 보이는 곳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해서."

"네?"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누가 봐도 무언가 숨기는 것 같잖아.

의심스러운 눈으로 레베카를 바라보는데, 옆에서 스칼렛이 말을 이었다.

"예전부터 호연 님의 성기능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하셨는데 그 말을 하시는 거 같네요."

"스칼렛 양. 그걸 애기 아빠한테 말하면 어떡해."

성기능?

응?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성기능? 레베카 씨. 어떻게 남편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이런 모욕을 하다니, 오늘 밤에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다.

"… 그치만 배란일마다 애기 아빠를 덮치는 데도 임신이 안 되잖아."

"레, 레베카 씨. 다희도 있는데 목소리 좀 낮춰주세요."

남다은이 볼을 붉히며 레베카를 말렸지만, 레베카는 억울한 듯 말을 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야. 매일같이 임신에 좋다는 음식을 먹어도 임신이 안되는 건 애기 아빠 문제 아닐까?"

"허어. 하? 와… 레베카 씨. 오늘 밤, 아니. 지금 벗어보세요."

"호, 호연아…."

"호연 님. 일단 자중하시죠. 레베카 님도요."

이 자리에서 내 남성성을 증명하려 했지만, 남다은과 스칼렛이 양팔을 잡고 말리는 바람에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 다희도 있는데 집에서 행패는 부리지 말자.

그랬다간 릴리아나와 다를 게 없어진다.

남다은은 내가 진정한 걸 보자마자 레베카를 보며 말했다.

"레베카 씨도 빨리 사과하세요. 호연이의 성, 성기능이 문제라니… 원래 임신은 잘 안되는 거라고 들었어요."

"미안해. 애기 아빠… 하지만 임신이 하고 싶은걸…."

"… 아니에요. 저도 더 노력해 볼게요. 레베카 씨."

나는 반성하는 얼굴의 레베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는 받겠지만, 이 모욕은 잊을 수 없다.

오늘 밤에 전부 씻어내야지.

*

몇 시간 뒤.

아쉽게도 곧바로 이호연의 성기능을 증명할 시간은 없었다.

저녁을 먹은 히로인들은 각자 할 일이 있다며 방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레베카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가려 했더니, 오늘은 보육원에 가서 룬의 일족 꼬맹이에게 마법을 가르쳐줄 생각이라고 한다.

"아. 애기 아빠랑 임신이 잘 안된다고 해서 그 애를 건드릴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 레베카 씨."

"후후. 농담이야. 오늘 내 차례니까 기다리고 있어야해."

"저는 말로 안합니다. 오늘 밤에 기다리고 있으세요."

결국 복수의 시간은 미뤄졌다.

이호연은 거실로 나와 멍하니 마당을 바라봤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건 남다희와 릴리아나.

아카데미의 휴교로 쉬고 있는 남다희는 매일같이 릴리아나와 놀고 있었다.

백수가 된 릴리아나도 할 게 없었으니, 둘이 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릴리아나 언니! 이제 내려줘!"

"으으. 어떻게 내리는 거더라?"

"으아아앙! 릴리아나 언니!"

릴리아나의 마력이 강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릴리아나를 보다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릴리아나의 몸에 있는 지옥의 마력이 몇 배는 불어났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마나량.

릴리아나가 싸우는 방법만 안다면 카르쿠스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그 마력으로 저러고 있는 건가…?"

남다희는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건 릴리아나의 의지가 아닌 것 같았다.

저래서 집 안에서만 하라고 한 거구나.

이호연은 마당으로 나가 남다희의 몸에 마력을 붙여 잡아당겼다.

릴리아나의 마력에 붙잡혀 있던 남다희는 이호연의 마력에 질질 끌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오빠! 내려줘서 고마워!"

"뭘 이런 거 가지고. 아까 다은이가 간식 만들고 있던데 가서 도와주는 거 어때?"

"알겠어! 언니한테 갈게!"

남다희는 또 릴리아나에게 붙잡힐까 후다닥 도망쳤다.

뒤를 돌아보자, 릴리아나가 자신의 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힘 조절이 쉽지가않네. 하지만 내일의 나는 더 발전하겠지…!"

"헛소리하지 말고 이리 와. 릴리아나. 거실에서 티비나 보자."

"응. 구랭."

이호연은 릴리아나를 데리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의 마력이 강해진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지옥과 지구의 동화가 더욱 심해졌다는 뜻이겠지.

"릴리아나."

"응? 왜?"

남다은이 가져다준 과일을 집어 먹던 릴리아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이호연을 바라봤다.

"얼마 전부터 마력이 강해졌다면서?"

"맞앙. 얼마 전부터 마력이 남아돌더라고. 레베카랑 스칼렛이랑 다은이를 한 번에 들어올리기도 할 수 있는데 다들 거절했어."

"…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릴리아나, 네 마력이 강해졌다는 건 지옥과 지구가 더욱 연결되었다는 뜻이잖아. 알고 있어?"

"헉. 그렇구나. 몰랐어. 내가 살던 곳 앞에 고블린 국수 집이 진짜진짜 맛있었는뎅. 나중에 같이 가자."

릴리아나는 과일을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얘는 아무 걱정도 없는 건가?

"혹시 긴장 되지는 않아?"

"뭐 어때. 어차피 기억도 안 나는걸?"

"… 지구랑 지옥이 연결되면 지옥에 있는 어머니를 만날 수도 있잖아."

이호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언젠가는 해야할 말이다.

릴리아나가 혼란스러움을 느끼더라도 갑작스럽게 서큐버스 퀸을 만났다가 당황하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았다.

"몰라. 이 세상이 지옥이 되도 난 너랑 있을 거야. 엄마는 으음. 잘 모르겠어."

릴리아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호연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리곤 어깨에 머리를 기대듯 몸을 딱 붙였다.

릴리아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이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다.

자신의 엄마는 릴리아나가 기억하는 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가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닐 수도 있지만… 너는 그대로 있잖아?"

케이론이 보여준 기억을 보고 나서, 자신을 안아준 이호연의 따뜻한 품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호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호연이고, 그를 만난 뒤 생긴 추억들은 전부 진짜였다.

설령 과거에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이호연은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고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릴리아나는 아무 걱정이 들지 않았다.

"너 같은 남자를 잡았으니 우리 엄마도 좋아할걸? 심지어 뺏으려 할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야 해. 후후."

릴리아나는 이호연의 팔에 얼굴을 슥슥 비볐다.

볼에서 느껴지는 그의 부드러운 살이 기분 좋았다.

"…."

이호연은 그녀를 바라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부담도 심해졌지만, 그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방구석 백수가 이렇게 성공했잖아."

"뭐? 가장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진짜 어이없엉."

이호연은 삐죽 튀어나온 릴리아나의 입에 과일을 하나 넣어줬고.

릴리아나는 툴툴거리면서도 과일을 먹으며 헤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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