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27화 (627/648)

< 627화 > 지옥의 문 (2)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

"꺄악-!"

"으, 으아아아악! 살려, 살려줘!"

도시 곳곳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유황 냄새.

공기에는 스산함이 스며들어 있고, 북적거리던 거리는 끔찍한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지옥의 문에서 나오는 어둠은 순식간에 대륙으로 다가왔다.

괴수의 습격은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헌터들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씨발. 지평선 너머로 어둠이 보이는 데도 안전하다고 했던 새끼들 먼저 죽여버려야 해. 그런 새끼들을 전문가라고 데려다 놔?"

"… 닥쳐. 지금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니까."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지원 부탁드립니다!"

현장에 나온 A급 헌터들은 상황을 파악하면서 일반인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곳곳에 구조팀들이 생존자를 찾고, 부상자들은 후방으로 이송하며 임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마치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를 수습하는 듯했지만, 아직 습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쿵! 쿵!

키아아악-!

걸음걸이마다 바닥을 울리는 외눈박이 거인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가고일.

반인반수인 미노타우르스와 산양의 뿔이 돋아있는 악마병들까지.

도시를 반파한 괴수들은 멈추지않고 움직였다.

"전투 준비해! 마법사들도 마법진 펼쳐!"

"저 괴물은 마법이 안 통합니다! 마법을 써봤자 전부 튕긴다고요!"

"이런 씨발. 그렇다고 죽을 거야?! 뭐라도 해보라고!"

지옥의 괴수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 A급 헌터가 10명 이상 필요했다.

대부분의 능력자들이 B급 이하라는 걸 생각해보면, 지옥의 괴수는 지금까지 던전과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과 차원이 다르게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들이 아직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

아직은 도시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옥의 문에서부터 바다를 덮은 어둠은 단단한 땅이 되어 괴수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길이 되었고 칠흑 같은 어둠은 바다 위 하늘까지 닿았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습격이 이루어졌기에 대비할 틈이 없었고, 인간은 추산할 수 없는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모든 나라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능력자들을 모았다.

자연스럽게 뭉치게 된 인간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형 길드와 정부, 헌터 협회는 괴수의 습격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 대응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정보의 공유가 이루어졌는데, 이상하게 피해가 적은 나라가 있었다.

"어째서… 프랑스와 한국의 피해만 적은 거지?"

"두 나라의 공통점은 없나?"

[대륙의 끝과 끝이라는 지리적인 이유다.]

[특정 온도나 대기 상태가 조건이다.]

[두 나라에 괴수의 먹잇감이 없다.]

등등.

여러 이유들이 쏟아졌지만, 어느 것도 타당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지리적인 이유라기엔 모든 나라가 동시에 공격받았다.

대륙 내부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와 맞닿지 않은 곳엔 하늘을 날아다니는 가고일과 거대한 맹금류들이 쏟아졌다.

물론 가정 자체가 틀렸다.

한국과 프랑스에도 엄청난 양의 괴수들이 들이닥쳤으니까.

그럼에도 피해가 적었기에 더욱 이상했다.

"이, 이건… 외눈박이 거인에게 마법이 통하고 있어!?"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고일들의 활동성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게다가 미노타우르스의 힘도…."

한국과 프랑스에 나타난 괴수들의 영상이 공개된 후에는 파장이 더욱 컸다.

하나하나가 재앙이었던 지옥의 괴수들이 한국과 프랑스에서는 눈에 띄게 약했다.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곧바로 다시 분석을 시작했고,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프랑스와 한국.

그리고 미국의 일부 지방까지.

이렇게 답을 떠먹여 주는데 공통점을 찾지 못할 리가 없었다.

"… 검은 기둥을 부순 나라들이야."

모든 사람이 반대했던 검은 기둥 부수기.

괴수들의 강함은 그것과 관련이 있었다.

*

- 쿠오오오오!

거대한 굉음이 빌딩 사이로 울려 퍼진다.

부산 한복판에 나타난 지옥의 괴수들은 무언가를 찾는 듯이 빌딩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 크르릇. 크륵….

지옥의 마력.

괴수들이 찾는 것이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지옥의 마력이 없이도 싸울 수는 있었다.

예를 들어 케이론도 지옥의 마력 없이 인간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그를 가볍게 물리친 릴리아나가 이상할 정도로 강했을 뿐, 케이론은 지옥에서 굉장히 강한 편에 속했다.

지옥의 괴수들에겐 그 정도의 힘이 없었다. 그들은 지옥에서 뛰어다니는 마수에 불과했다.

지옥의 마력이 있다면 재앙이나 마찬가지지만, 지옥의 마력이 없다면 단순한 마물이었다.

촤악-

바다를 건너온 가고일의 목이 손쉽게 떨어져 나갔다.

반인반수 미노타우루스의 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저놈의 날개를 노려!"

"마법진을 준비해! 하나둘 셋 하면 쏜다!"

한국은 괴수가 나타난 즉시 초기 진압을 시작했다.

이호연이 며칠 내내 뛰어다니며 높으신 분들에게 진심을 보여준 결과였다.

"증원은 아직이야?!"

"곧,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거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버텨봐…!"

도시 곳곳에서 대기하던 비상 전력들이 거세게 저항했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가장 다른 점은 비상 전력만으로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 괴물들을 전부 쓰러뜨리진 못해도, 일반인들이 대피하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은 벌 수 있다.

- 크르륵!

콰아앙-!

그때, 빌딩 사이로 거대한 외눈박이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해졌다곤 해도 비상 전력으로 대기하던 B급 헌터들이 대처하기엔 너무 강한 적이었다.

쿵- 쿵-

"도, 도망쳐!"

"젠장! 빌딩이 무너진다! 뒤지기 싫으면 달려!"

외눈박이 거인이 다가오며 가볍게 밀어낸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자신의 머리 위를 덮는 거대한 그림자.

비상 전력으로 대기하던 B급 헌터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아?"

그러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은 빌딩이 아니라 시멘트 조각 몇 개였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건물 전체가 푸른 마력에 덮인 채 허공에 떠있었기 때문이다.

- 쿠오오오!

촤악-

푸른 마력은 건물을 지탱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외눈박이 거인의 눈을 후벼팠다.

B급 헌터들이 맥도 못추리던 거인이 마법 한 번에 명을 달리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거인이 쓰러진 뒤.

저 멀리서 다가온 이호연이 B급 헌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혼자 걸어서 돌아갈 수 있겠어요?"

"예, 예. 괜찮습니다… 혼자 일어나겠습니다."

"협회 건물로 가서 명령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일반인들 대피시킨 곳 아시죠?"

스윽-

B급 헌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괴물을 처리한 건 그렇다 쳐도….

대체 얼마나 마력을 잘 다루길래 저만한 건물을 들고 있는 것인지, 자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쿵-

이호연은 건물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바닥에서 피어나는 먼지를 마력으로 막으며 스마트 워치를 두드렸다.

"이호연입니다. A 구역 처리했습니다. B 구역으로 향하겠습니다."

저벅. 저벅.

이호연은 헌터들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B 구역으로 걸어갔다.

주변에 위험 요소가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나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쟤 이제 20살인 거 알지? 개소리하지 말고 니 마법서나 챙겨서 따라와. 보상이라도 받아야지."

"으, 으응."

비상 전력으로 대기하던 헌터들은 이호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협회로 돌아갔다.

다행히 그들은 자신의 주제를 잘 알았다.

'이 정도면 한국은 피해없이 막아낼 수 있겠어.'

이호연은 괴수의 강함을 확인한 뒤 안심하고 있었다.

뉴스들을 보면 해외에 나타난 괴수들은 하나하나가 케이론 정도로 강해 보였다.

이미 엄청난 피해가 나왔고,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프랑스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만 피해 없다는데 이거 뭐야? 단군 할아버지가 캐리한 거임?]

[나 괴물이랑 사진 찍었음. 의외로 잡을 만 하던데 해외는 왜 호들갑 떠는 거냐.]

[지금 전세계가 난리났음. 이상하게 한국과 프랑스만 피해가 없대. 근데 해외에 있는 괴수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위험할테니 조심해야해.]

'그거 다 똑같은 놈들이야.'

스마트 워치를 보니 한국과 해외의 엄청난 격차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아카데미 생도 선에서 정리되는 한국의 괴수는 큰 사회적 문제가 아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이제 머리도 잘 돌아가겠지."

검은 기둥이 문제라는 게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호연은 그 전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이호연은 B 구역으로 걸어가며 마력을 퍼트렸다.

B 구역에 남아있는 괴수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스윽-

몸에서 마력을 뽑아내 얇은 실로 만들었다.

B 구역으로 지원을 온 생도는 두 명.

이호연이 너무나 잘 아는 친구들이었다.

'개안.'

이호연의 눈이 금빛으로 빛나고, 머리 위에 마력구가 떠올랐다.

마력 감지에 걸리는 괴수는 13마리.

하나하나 찾아다니긴 귀찮으니,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낙뢰부(落雷符).'

실처럼 퍼진 마력이 괴수들에게 달라붙고, 거리를 계산한 아크가 번개를 쏘아냈다.

빌딩 사이사이를 가로지른 번개는 순식간에 괴수의 미간에 꽂혔다.

- 크르르르르륵!

- 쿠, 쿠오오오옥!

괴수 중에 가장 강한 외눈박이 거인도 버티지 못한 마법이다.

잡다한 놈들은 한 방이면 충분했다.

쿠웅-!

한 구역의 괴수를 눈 깜짝할 사이에 전멸시킨 이호연은 익숙한 얼굴들에게 다가갔다.

B구역을 맡은 생도는 루시와 루미 쌍둥이.

마력을 엄청나게 사용했는지 지친 듯 숨을 헐떡이는 루시가 보였다.

"하아… 후, 후아…. 이호연. 나 너무 힘들어. 마력이 쭉 빠진 느낌이야."

"아직 싸울 수 있잖아. 루시. 왜 엄살 부리고 그래."

"헤헤. 들켰네."

이호연은 루시의 등을 토닥거리며 챙겨왔던 음료수를 건넸다.

옆에서 눈을 깜박거리는 루미에게도 쥐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꿀꺽. 꿀꺾. 프하아, 으아. 살겠당."

"가, 감사합니다. 호연 씨…."

"너무 급하게 마시진 말고."

이호연은 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곧 수업을 재개할 계회깅었던 아카데미는 결국 대민지원에 집중했다.

이호연의 부탁도 있었고, 실제로 비상사태였으니까.

자신은 A 구역이었고, 마침 루시와 루미가 B 구역을 맡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걱정되어서 와봤다.

오랜만에 본 쌍둥이들은 여전히 밝았다.

"근데 주변의 괴수들은 전부 죽인 거야?"

"응. 편하게 쉬어."

"… 여기서 편하게 쉬어도 돼?"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래야 다른 괴물들을 죽이지."

"그건 그렇지만…."

이호연은 다시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지옥의 괴수가 세상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움직이는 게 맞겠지만 이호연은 한국의 피해를 줄이는 데에 집중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미 일이 일어난 다음에서야 조치를 취한다는 뜻인데, 다른 말로 하면 소를 잃어봐야 외양간에 관심을 둔다는 뜻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몇 번이나 겪었고 그 대처법도 알고 있다.

'다들 좆돼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똑같다.

한국의 피해를 줄이는 데에 집중하고 히로인들에게 더욱 집중하는 것.

괴수를 상대하는 법 정도는 알려줬으니, 검은 기둥을 부숴달라고 매달릴 때까지만 한국에 집중할 생각이다.

이호연은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다른 구역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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