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23화 (623/648)

<623화 > 범인은 이호연이었습니다 (32)

스륵-

마력을 일으킨 이호연은 의사가 맥을 짚는 것처럼 아서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서는 자신의 손목을 잡은 채 마력을 일으키는 이호연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지만, 굳이 막진 않았다.

눈앞의 청년이 나쁜 마음을 먹을 사람은 아니니까.

다만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건 지 물어보기로 했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협회장님."

"혹시 자네 솔이를 가지고도 나를 마음에…."

"그 말끝까지 하시면 마법사 협회 뒤집어엎습니다."

"… 흠."

요즘 젊은이들은 농담이 안 통하는구만.

첫 만남 때 이호연에게 마법을 가르쳐준다는 구실로 대련을 했다가 그대로 기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문제는 없는 거 같아.'

이호연은 아서의 손목을 잡고 그의 마력을 느꼈다.

레베카가 룬의 결계로 마에스트로의 세뇌를 벗어난 것처럼, 이호연도 마력을 사용해 그것을 흉내낼 수 있었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이호연은 그의 손목을 놔줬다.

괜히 기분 나빠서 손에 클린 마법까지 사용했다.

"죄송합니다. 세뇌가 걸려있는지 확인해야 해서요."

"세뇌라니?"

"판데믹의 세뇌. 못 들어보셨어요?"

이호연은 판데믹과 마에스트로의 세뇌에 관해 설명했다.

이런 정보를 전달할 때는 아이리스 길드의 이름을 팔아먹으면 된다.

현재 많은 고위직이 마에스트로의 세뇌에 당해있고, 지옥의 문과 검은 기둥을 지키는 게 그들의 목표다.

자신은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검은 기둥을 부수고 있다… 라는 설명이었다.

"… 허어. 그런 일이었나."

이호연의 설명을 들은 아서는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만나며 티를 내진 않았지만, 이호연에게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는 건 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최근 [무한의 엔트로피]를 추적하느라 자세한 사항을 모르는 자신에게도 들려올 정도였으니, 이호연에 대한 악평은 엄청났다.

'검은 기둥이라고 했었지.'

이호연의 말이 무조건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서는 자신이 본 것만을 믿었다.

그가 본 이호연은 천재 마법사 임솔의 애인이자 건실한 청년이었다.

권력자들과 이호연.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이 청년을 골라야겠지.

"그렇다면 세뇌 때문에 날 찾아온 건가?

"아니요. 학회장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세뇌를 확인하는 건 그 부탁을 위해서였어요."

이호연은 품에 챙겨온 마도구 설계도를 꺼냈다.

지옥의 마력을 일반인에게도 접하게 만들어주는 마도구다.

"이건 뭐지?"

"마도구의 설계도입니다. 제 힘으로는 양산하는 게 불가능해서요. 마법사 학회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아서는 꼼꼼히 설계도를 확인했다.

중간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눈을 찌푸리기도 했다.

이내 설계도를 내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

"자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군."

"네?"

"자네처럼 모든 정보를 꿰뚫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나도 지옥의 마력이 가진 위험성은 느끼고 있었다네. 안 그래도 솔이에게 한 번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자네에게 물어봐도 되겠지."

아서의 진중한 표정을 본 이호연은 조용히 아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숨을 돌린 아서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옥의 마력 중독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 괴물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지옥의 마력에 대항하는 장치를 만들 생각이었다."

"지옥의 문을 대비하셨다는 거에요?"

"그래. 태평양 전체를 둘러싸는 보호막을 설치할 생각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파츠가 없었어."

"중요한 파츠라는 건…?"

"[무한의 엔트로피]라는 아티팩트다."

"… 음."

"태평양을 덮을만한 마법진을 설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법진을 실행하려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했지.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하나 밖에 없다."

"…."

"무한의 엔트로피만 있었더라면… 전세계적으로 마력을 공급할 수 있었을텐데…!"

"쓰읍."

아서가 한숨 쉬는 걸 본 이호연은 침음을 삼켰다.

무한의 엔트로피가 그렇게 중요한 거였으면 미리 좀 말해주지.

… 그럼 마력을 좀 남겨놨을텐데.

주섬주섬.

이호연은 고이 모셔 온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서 성배가 튀어나오자, 아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 아니… 무한의 엔트로피를 왜 자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이 기하학적인 문양은 또 뭐고?"

"…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

아서는 큰 착각을 했다.

아주 잠깐.

이호연이 자신을 위해 [무한의 엔트로피]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그는 에이든을 처리하며 [무한의 엔트로피]를 슬쩍 챙긴 거 였다.

"내가 제자를 잘못 키웠구나. 그러니까 제자의 제자도 이 모양이지…."

"죄송합니다…."

"솔이도 예전부터 자신의 몫을 슬쩍하곤 했는데. 왜 그런 걸 배운거냐…."

이호연은 고개를 푹 숙였고, 아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한의 엔트로피를 끌어안았다.

이 성배 하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설마 이렇게 가까운 곳에 도둑이 있을 줄이야.

"어쩐지 솔이한테 메시지가 와있었다."

"메시지요?"

"혹시 우리 제자를 괴롭히면 죽여버린다고 하더구나.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후우."

아서는 오랜만에 연락한 제자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평소에 연락도 안하던 임솔은 이호연이 미국으로 온다는 걸 듣자마자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 솔이 : 아저씨. 우리 제자 괴롭히면 죽여버릴 거야. 우리가 아저씨한테 해준 걸 기억해.

아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임솔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자신은 학회장이 되어 부패한 마법사 학회를 바꾸고 싶었다.

학회 내부에 자리 잡은 원로들이 아니라 실력 있는 젊은 마법사들이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법사 학회장이 되어도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는 마법과 다르게 정치적인 싸움엔 재능이 없었다.

그런 아서가 마법사 학회를 확실하게 장악한 건 임솔과 이호연 덕분이었다.

경쟁자인 에이든을 없애며 원로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고, 천재 마법사 임솔과 이호연의 마법은 젊은 마법사들의 지지를 받았다.

임솔과 이호연이 아서를 지지했으니, 많은 마법사들이 아서를 지지했다.

"마음 같아선 이 성배로 네 머리를 내려찍고 싶지만… 그럴 순 없겠구나."

"음… 그래도 기다리면 다시 마력이 차오르긴 할 거예요. 이 마법진도 제가 제거할 수 있구요."

"기다릴 시간이 없지. 괴물들의 습격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지 않았냐. 너 때문에 계획은 망가졌다."

"학회장님. 다시 생각해보세요. 결국 저희 둘이 원하는 건 같은 거 잖아요. 제가 하는 방식이 더 좋을 거예요."

"… 네 마도구는 확실한 방법이 아니지 않느냐. 개개인에게 기대는 건 확률이 낮은 도박이야."

"죄송한 말이지만, 방어막 같은 걸로 막을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에요."

이호연은 고개를 저었다.

마왕과 지옥의 악마들은 겨우 방어막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학회장님은 저만 믿고 이걸 도와주세요."

이호연은 아서를 설득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

버려진 공장 지역.

한때 산업의 중심지였던 시외의 폐공장에 온 이호연은 눈을 찌푸렸다.

높이 솟아있던 굴뚝은 금이 가 있거나 무너져 있었고, 창문은 깨져있었다.

이호연은 곳곳에 녹이 슨 철근을 보며 마력을 흘렸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주변일 텐데.'

이호연은 폐공장 일대를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이는 먼지 때문에 공기가 탁해진다.

아서 협회장을 설득한 뒤, 이호연이 이런 곳까지 온 이유는 아이리스 길드에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루시퍼의 마지막 기운이 느껴졌다는 케이론의 말이 있었다.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 있는 검은 기둥을 부술 겸 찾아왔다.

'그래도 협회장님이 착하긴 하네.'

무한의 엔트로피를 훔친 걸 고백했는데도 이렇게 넘어가 주다니.

솔이가 메시지를 보내준 덕분인가?

스읍-

잡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무언가 이호연의 머리를 스쳤다.

"…."

피부를 찌르는 기분 나쁜 마력에 이호연은 기척을 죽였다.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가 벽에 몸을 붙이자,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그 주변 정리는 끝났어? 한 번에 확실하게 하자. 간부들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머리 깨지지 말고.]

[다 끝났다.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걱정하지 마라.]

[확인했으면 빨리 챙겨. 다음 은신처를 전달받아야 할 거 아니야.]

[알고 있다. 지옥의 문 주변은 기분 나쁘니까 천천히 가자고.]

이호연은 두 마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겉으로 보기엔 인간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마인의 그것과 같았다.

듣자 하니 이미 판데믹의 간부들은 사라졌고, 뒷정리하는 마인들은 판데믹에서도 그렇게 높은 계급은 아닌 것 같았다.

'딱히 숨어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마인의 기세가 꽤 강하긴 했지만, 이호연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나가서 다 죽여버릴까. 라고 생각한 그때.

마인들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왔던 안젤라 길드장에게 실수를 했다가 머리가 날아간 놈은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일이 있어서 못 봤거든.]

[별거 아니야. 원래 VIP들은 마인을 개 취급하잖아.]

[근데?]

[그게 다야.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고 죽었어. 그런 년이 인간 사회에서 그렇게 착한 척을 하고 있는 게 웃긴 거지.]

[하여튼 미친 년이네. VIP들이 더 심하다니까. 맞아. 그러고 보니 여기 VIP들의 장부가….]

끼이익-

더 이상 대화를 들을 필요가 없다.

이호연은 철근을 치우고 몸을 드러냈다.

"거기 누구냐!"

"젠장. 침입자가…!"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린 마인이 이호연을 노려봤다.

그들은 침입자를 보자마자 비상 연락 장치를 가동했다.

딱-

하지만 비상 연락 장치를 가동하는 것보다 이호연의 손가락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쇄도한 푸른 번개가 마인 두 명의 심장을 꿰뚫었다.

털썩-

자신이 죽은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

두 명의 몸이 허물어졌다.

주변에 남은 마인이 없는 걸 확인한 이호연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기대는 안했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나?"

이호연은 두 마인의 몸을 불태운 뒤 주변을 살폈다.

애초에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혼자 오지 않았겠지만, 마인을 죽였는데 아무것도 없는 건 뭔가 아쉬웠다.

"이건 뭐야?"

소중한 듯 꽁꽁 싸매어놓은 노트.

마인들이 싸놓은 짐을 뒤적거리던 이호연은, 장부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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