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22화 (622/648)

< 622화 > 범인은 이호연이었습니다 (31)

아카데미 주변에 있는 카페. 낙월(落)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카페였다.

낙월의 1층 정중앙 자리.

루시와 루미 쌍둥이가 앉아있었다.

그녀들은 어깨를 딱 붙이고 앉은 채 담소를 나눴다.

"루미. 이거 짱 맜있당."

"응. 내 것도 한 입 먹어봐. 루시."

카페의 구석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쌍둥이는 서로의 음료를 나눠 먹으며 헤헤 웃었다.

그런 행동만으로도 카페 내부에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 찼지만, 그녀들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았다.

"으으. 이건 너무 써서 못 먹겠어."

루시는 커피를 마시자마자 눈을 찡그렸다.

그녀에게 커피는 너무 썼다

"그 정도로 써?"

"응. 난 역시 이게 맛있어-."

루시는 쓴맛을 지우기 위해 재빨리 라떼를 홀짝였다.

입 안에 단맛이 맴돌자 그제야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루미. 이번에 하는 일은 오래 걸리겠지?"

루시는 라떼를 쪽쪽 빨다가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호연 씨가 길면 일주일도 걸린다고 했으니까. 으음…."

루시와 루미가 카페에 앉아있는 이유.

이 카페가 검은 기둥을 부수는 인원들이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기 때문이다.

"근데 검은 기둥 부수기를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야? 뉴스 보니까 하면 안 되는 거라던데."

"호연 씨가 다 설명해줬는데 루시가 안 들은 거잖아. 그리고 뉴스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어."

"아하. 기억나는 것 같아."

루시는 기억을 되짚으며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연이 도와달라길래 듣지도 않고 알겠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설명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띠링-

그때, 카페 안으로 여자 한 명이 걸어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린 남다은은 이내 쌍둥이를 찾고 다가왔다.

"얘들아. 안녕."

"응? 다은아!"

"다은 양. 안녕하세요."

남다은은 루시와 루미에게 인사를 건넨 뒤 카운터로 가서 음료를 주문했다.

메뉴는 복숭아 아이스티.

음료를 들고 자리로 돌아오자, 루시와 루미가 말을 걸어왔다.

"아이스티네? 나도 그거 좋아해. 쭉쭉 마시기 편하잖아.

"다은 양도 루시처럼 쓴 걸 잘 못 마시나요?"

"으응. 그렇지."

남다은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사실 맛이나 식감은 잘 모른다.

그냥 아이스티가 가격이 싸서 골랐으니까.

이호연이 마음대로 돈을 쓰라고 항상 말하지만 남다은은 언제나 이랬다.

기숙사에서 저녁 대신 물을 떠먹던 기억은 그녀의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고, 아끼고 절약하던 습관은 바꾸려고 해도 바꿔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다희랑 함께 놀 때는 돈을 쓰는 편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아끼는 게 마음이 편했다.

"여기 카페에 그것도 팔던데. 끌레… 뭐였지?"

"루시, 끌레르 로즈 라떼 말하는 거야?"

"아, 맞아. 그거. 엄청 맛없어서 아무도 안 먹는 음료수인데 이상하게 계속 메뉴에 있다고 하더라."

남다은은 쌍둥이가 대화하는 걸 바라보며 의자에 몸을 맡겼다.

루시와 루미는 자신이 조용히 있어도 대화를 진행해주니 같이 있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맞아. 다은아. 이제 곧 아카데미도 정상화된다는데 다음 수업도 같이 듣자."

"응. 알겠어."

남다은은 루시에게 대답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적당히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얘들아. 오랜만이네. 임솔 교수님은 아직 안 오셨나봐?"

"앗, 학생회장님!"

"학생회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3명을 보며 문수린은 손을 휘저었다.

이런 어색한 공기는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분위기다.

"창피하니까 그런 인사 하지 마. 아, 나도 앉아도 괜찮지?"

문수린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셨다.

오랜만에 이 카페에서 파는 끌레르 로즈 라떼를 한 입 마시니까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끌레르 로즈 라떼를 본 루시와 루미가 쑥덕거렸지만, 문수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최근 그녀는 여유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이호연이 말한 대로 전문경영인을 고용하고, 몸이 괜찮아진 아버지도 일에 복귀시켰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닥달해 잡무까지 맡기다보니 문수린이 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진작 이렇게 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보다 걱정되는 건 아버지였다.

'… 일은 잘하고 계시겠지.'

당연하게도 아카데미 일을 시킨다고 해서 마인이 된 아버지의 죄를 용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이후로 그를 남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평생 속죄하며 살게 할 것이고, 그걸 자신이 바로 옆에서 감시할 생각이다.

"학생회장님. 근데 오늘은 학생회 일 안 하시는 거예요?"

루미와 남다은이 눈치만 보는 동안, 먼저 말을 걸어온 건 루시였다.

항상 바빠 보이는 학생회장님이 검은 기둥을 부순다는 게 루시로서는 신기했다.

"응. 요즘은 일이 널널해졌거든. 계획에 방해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버지를 일에 복귀시킨 것도 검은 기둥을 부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전문 경영인이 있다고 해도 자신이 아카데미에서 아예 빠져버리면 그 빈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루시 양이나 루미 양은 지옥의 마력을 얼마나 잘 다룰 수 있어?"

"저희는 임솔 교수님한테 조금 배웠어요."

"맞아요… 하지만 아직 잘하진 못해요."

"흐음. 그렇구나. 그래도 계획을 수행할 순 있겠지. 다은 양은?"

"아… 음,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문수린은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신보다 어린 1학년들과 대화였지만 이런 경험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몇 십분 정도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문수린은 스마트워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언제 오시는 거야?"

"모르겠어요. 약속 시간이 지나긴 했는데…."

"어제 답장까지 하셨으니까 좀 더 기다려보자."

문수린은 주변을 둘러봤다.

임솔이 있어야 계획을 짜고 움직일 수 있는데, 정작 계획의 핵심인 임솔 교수가 안 보였다.

그때.

띠링-

카페의 문을 연 임솔이 느지막하게 등장했다.

임솔은 카페에 등장하자마자 모두의 시선을 받았다.

자신 있게 안으로 걸어 들어간 임솔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늦어서 미안해. 마법 연구가 조금 늦어졌어. 바로 현장으로 갈까?"

아무리 임솔이라지만 시간개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후에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멈출 수 없는 마법 연구를 하진 않는다.

그녀가 약속에 늦은 이유는 복장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호연이 별 생각 없이 던진 항상 그 옷만 입냐는 말.

그가 돌아가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본 임솔은 깨달았다.

오늘 만나는 여자들은 전부 이호연과 친한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들을 통솔하는 임솔이 집에서 주워 입은 츄리닝을 입는 건, 자칫하다간 무시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입고 갈 옷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결국 임솔은 마법사 학회에 갈 때 입은 정장을 입고 왔다.

이호연이 멋있다고 칭찬했던 복장이었다.

"네. 시간이 없으니 바로 가시죠. 교수님."

"교수님. 저희도 준비 됐어요!"

하지만 그녀들은 아무도 임솔의 복장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임솔이 분홍 티를 입든 정장을 입든, 그런 걸 지적할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복장을 신경 쓰는 건 이호연뿐이었다.

"… 응. 그래."

우르르 카페 밖으로 나가는 여자들을 보며, 임솔은 눈을 깜박거렸다.

이 옷을 고르는데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겨우 이런 반응이라니.

'좀 더 스승을 존경스럽게 바라볼 줄 알았는데….'

임솔은 힘없이 문수린의 뒤를 따라갔다.

*

미국의 공항.

시끌시끌한 사람들의 말소리와 곳곳에서 들리는 기계음.

알아듣기 힘든 안내 방송이 들리고, 사람들이 뿌린 향수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나는 룬의 결계를 사용한 채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각자 갈 곳을 찾으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오랜만에 공항의 입국 게이트를 지났다.

'저번에 솔이랑 왔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그때는 마법사 학회 때문에 사람이 훨씬 많았었다.

오늘은 그 날에 비해 사람이 눈에 띄게 적었다.

"비행기가 결항이라니. 무슨 소리예요?"

"정체불명의 괴물이 항공로 주변에서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제 미팅은 어쩌라는 거죠?!"

사람이 없는 이유가 뭔가 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방금 비행기를 타고 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지옥의 문이 열렸는데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정해진 항공로가 아니라 전용기를 이용해서 괴물을 피해다녀야한다.

'아무튼… 약속 장소가 어디였지? 저긴가?'

나는 아서 학회장을 만나기 위해 그가 찍어준 약속 장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 오는 곳이라 지리가 헷갈리긴 했지만, 스마트 워치를 따라가니까 나름 걸을만했다.

게다가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

무언가 불안한 지 여권을 꽉 쥔 여자.

초조하게 스마트 워치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소년.

다른 나라의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도 꽤 재밌었지만,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었다.

별거 아닌 일상이라도 자신에겐 가치가 있었다.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니까.

"여긴가?"

공항 주변 호텔에 붙어 있는 카페.

아서 학회장을 처음 만났던 장소였다.

나는 바깥의 통창으로 안을 슬쩍 바라봤다.

'저기 있네.'

카페 구석에 훤칠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전에 봤을 때보다 표정이 좋은 걸 보니 좋은 걸 많이 드셨나 보다.

그는 시선을 눈치채고 이쪽을 알아보더니 손을 흔들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크흠.

나는 아공간 주머니를 다시 챙기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에 느껴지는 마력의 기운.

아서 협회장은 이미 결계를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호연 생도! 아니, 이호연 마법사라고 불러야겠지. 얼마나 안 봤다고 예전보다 더 마력이 진해졌구나."

"학회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얼굴이 뜨거워지네요."

나는 살짝 묵례한 뒤 아서 학회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임솔 교수님하고 같이 보는 게 아니라 단둘이 보니까 약간 어색했다.

"요즘 안 좋은 말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역시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야."

"원래 유명해지면 안 좋은 말이 많은 법이잖아요. 협회장님처럼요."

"으하하. 역시 자네랑은 통하는 게 있어. 저번에도 말했지만, 형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도 된단다."

"... 네. 협회장님."

저 한마디로 분위기가 더럽게 불편해졌다.

아저씨들은 왜 그걸 모르는 걸까.

"크흠. 아무튼,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 솔이에게 대충은 들었다. 지옥의 마력에 대한 일이었지?"

"예.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협회장님."

"응? 해야 할 일이라니?"

"잠깐 손을 내밀어주세요."

마에스트로의 세뇌는 고위직들에게 퍼져있다.

학회장 님이 세뇌에 당했을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확인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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