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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81화 (481/648)

〈 481화 〉 481화. 달콤한 승리

* * *

"… 으음. 막상 하고 나니까 쪽팔리네."

이호연은 병실 복도를 걸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릴리아나 일행을 돌려보낸 이호연은 다시 병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 역시 안아주는 건 너무 오글거렸나.

딱히 이상한 말을 들은 건 아니지만, 괜히 신경 쓰인다.

게다가 다들 흐뭇하게 웃어준 것도 창피했다.

상남자로서의 태도는 유지해야 하는데. 음.

앞으로는 언행에 주의할까.

"그래도 뭐… 잘 됐으니까 괜찮겠지."

이호연은 입맛을 다시며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 길게 병실을 비운 건 아니었지만, 임솔이 자고 있었으니 당연히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아직도 안 일어나시네."

이호연은 임솔의 침대로 다가갔다.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임솔이 숨을 색색 거릴 때마다 가슴이 올라온다.

백아영이 괜찮다고 했으니 걱정은 하지 않지만, 이왕이면 빨리 일어나면 좋겠네.

'근데 이런 건 보통 자는 척하는 게 클리셰 아닌가?'

건드리면 은근슬쩍 고개를 젓다가, 결국 기분 좋음을 참지 못해 스스로 다리를 벌리는 임솔… 꽤나 재밌을 것 같았다.

쿡. 쿡.

쓰담쓰담.

"역시 현실은 가혹하구나."

하지만 몸 곳곳을 찔러봐도 임솔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이호연은 아쉬움을 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자연 치유력이 좋다고 하지만, 빠른 쾌유를 위해선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신이 아는 마왕, 루시퍼는 굉장히 호전적이다.

실제로 릴리아나를 만나자마자 달려들었으니, 앞으로는 언제 싸움이 일어날 지 모른다.

컨디션 난조는 빠르게 털어내야 한다.

이호연은 침대에 누워 스마트워치를 실행했다.

생각할 일이 많긴 하지만, 일단은 뉴스라도 확인할 생각이었다.

"역시 난리가 났네."

자신과 임솔의 대련.

훈련이라기에는 누가 봐도 본격적이었다. 당연히 인터넷에서도 꽤나 화제가 되었겠지.

대강당에는 기자들도 많았으니 벌써 기사가 났을지도 모른다.

[천재 마법사 임솔과 천재 마법사 이호연의 세대교체? 훈련을 빙자한 임솔의 서열 정리 시도]

[아카데미 이사장. 단순한 사제 간의 대련일 뿐이라고 밝혀.]

[스승과 제자가 대립하는 이유는? 마법사 학회 회원의 단독 인터뷰.]

[이호연 생도의 엄청난 성장을 견제하는 임솔 마법사….]

"지랄을 해라 아주."

저 놈들은 어떻게 매일같이 헛소리를 생산해내는 걸까.

몇몇 무책임한 사람들 때문에 직업에 대한 편견이 쌓여간다.

이호연은 스마트워치를 종료하고 침대에 누운 채 손으로 눈을 가렸다.

'… 저건 아이린 씨한테 부탁할까.'

아이리스 길드의 한국 지부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협업하며 꽤 잘 자리잡고 있다.

내게 우호적인 기사 정도는 쉽게 내줄 수 있겠지.

"잠시만, 생각해보니 감사 인사도 아직 못했잖아."

아이린이 레베카 일행을 구해준 것. 감사 인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대련 뒤에 기절해버렸다.

케이론의 전언을 전해주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아이린 덕분에 모두가 살 수 있었다.

"지금 다 처리해버리자."

이호연은 스마트 워치를 실행시키고 아이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 아이린 씨. 부탁이 있어서….

"음…. 전화로 하는 게 낫겠다."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자판을 건드리던 이호연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감사 인사에다 추가로 부탁까지 하는 건데, 문자로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아이린과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닌데 너무 딱딱했다.

이호연은 문자 창을 끄고 곧바로 아이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띡.

짧은 신호가 울리고, 스마트워치 너머로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뭐야, 이호연. 깨어났어?

"네. 아이린 씨. 조금 전에 정신을 차렸어요."

­ 다행이네. 근데 무슨 일이야? 전화를 하는 건 오랜만이잖아.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죠 뭐."

­ 그래? 나는 여론 작업이라도 도와달라는 줄 알았네.

"… 그것도 도와주시면 참 고맙고요."

­ 큭, 그럴 줄 알았어.

이호연은 아이린의 웃음소리에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정보 길드 출신이라 눈치가 빠르다. 이미 다 알고 있구나.

­ 임솔 교수님과 안 좋은 기사를 내려주면 되는 거지?

"네.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니까 괜찮아. 용건은 그게 끝?

"아. 감사하다는 말도 하고 싶어서요."

­ 감사?

"아이린 씨가 습격당한 스칼렛 일행을 구해줬잖아요. 정말 감사해요."

­ 아아. 그 일 말이구나? 아니야. 나도 운 좋게 구한 거니까.

"그래도 확실하게 해야죠. 아이린 씨가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예요. 그건 생각만해도 아찔하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 …… 으음. 그렇긴한데.

이호연은 갑자기 흐르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뭐지? 아이린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방금 자신이 잘못 말한 거라도 있었나?

이호연이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아이린이 말을 이었다.

­ 이해는 하지만, 막상 감사를 받으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네?"

­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네 소중한 사람을 지킨 외부인이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쪽을 더 신경 써주는 것 같잖아. 아, 이런 느낌이 아닌가…? 음… 아니다. 방금 말은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줘.

"어…."

이호연은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구해줬으니 감사를 전한 것뿐인데, 다른 히로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걸까.

물론 아이린이 자신에게 그 정도로 애정을 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걸 지금 물을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다.

어쩌면 엘리스의 입장까지 대변한 것일지도 모르지.

여기서 어떻게 반응해야 정답인지는 모른다.

이호연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 떠오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기분은 이해하지만요. 저는 레베카 씨가 아이린 씨를 구했어도 감사하다고 했을 거예요. 아이린 씨도 소중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이, 이상한 말 하지말고. 걱정한 게 아니야.

"그래도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이린 씨. 앞으로는 주의할게요."

­ 몰라. 아무튼… 용건 끝났으면 끊을게!

아이린은 이 대화를 이어가기 싫은 듯, 곧바로 통화를 종료하려는 목소리였다.

아직 할 말이 남은 이호연은 필사적으로 아이린을 말렸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아이린 씨. 할 말이 하나 더 있어요."

­ 뭔데?

"프랑스 아이리스 길드에 케이론. 아직 남아있죠?

­ 응. 아직 아이리스 길드의 교관으로 지내고 있어.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저랑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릴리아나의 기억이 없는 이상,루시퍼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건 케이론과 알베도일 것이다.

아이린이나 다른 길드원이 듣고 내게 전달하는 것도 생각했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직접 물어보는 게 정보의 왜곡이 적겠지.

­ 연결 자체는 지금이라도 해줄 수 있어. 몇 분만 기다리면 돼.

"아니요. 지금은 제가 입원 중이라…. 퇴원하고 나서 집으로 찾아갈게요."

아직 정신을 차리진 못했지만, 옆 자리에 임솔이 있다.

루시퍼나 지옥 같은 대화를 병실에서 나누긴 싫었다.

­ 알겠어. 그것도 준비해놓을게.

"네. 항상 고마워요. 아이린 씨."

이호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엘리스와 셋이 시간을 보낸 이후로 아이린이 많이 고분고분해졌다.

아까 질투하는 것도 그렇고 나름 귀엽단 말이지.

"으, 으음… 으응…."

"어?"

벌떡.

임솔의 끙끙대는 신음을 들은 이호연은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 침대에서는 임솔이 눈을 감은 채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호연을 임솔의 얼굴을 바라봤다.

표정이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

아픈 건 아닌 것 같으니, 곧 깨어나려는 걸까.

이호연은 임솔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 깨어나면 뭘 시키지?'

자는 얼굴도 참 예쁘다.

이 사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남자로서 이상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역시 처음에는 입으로… 아니, 입으로 하는 건 항상 했잖아. 처녀에게 곧바로 하는 건 좀 그러니까, 음… 다른 특별한 경험이 있을까.'

이호연이 임솔의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임솔은 서서히 눈을 떴다.

"…아."

머리가 멍하다.

온몸은 강철에 짓눌리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지기만 할 뿐, 백아영의 치료 덕분에 몸에 남은 상처는 없었다.

아마 근육이나 마력 회로가 놀란 상태겠지.

"응? 솔이 교수 님! 정신이 들어요?"

익숙한 목소리에 임솔은 위를 올려다봤다.

눈을 깜박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제자, 이호연이 보인다.

그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제자…."

"네. 저 맞아요. 교수님. 자, 제 손을 바라보세요. 이거 숫자 몇 개로 보여요?"

슥. 슥.

이호연은 검지와 중지를 핀 채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임솔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두 개."

"오. 다행히 머리는 정상."

"몸도 정상이야."

끄읏.

임솔은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침대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무리하지 마시고 그냥 누워있으시지."

"괜찮다니까."

이호연은 임솔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고집이 센 걸까.

임솔은 후유증도 없이 건강해 보였다. 아직 살짝 불안정해보였지만 조금만 쉬면 괜찮아지겠지.

역시 백아영을 믿길 잘했다.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긴 한데….'

이호연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후유증이 남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임솔의 상태가 평소와 너무 똑같았다.

임솔의 연구실에 놀러갈 때 마다, 그녀는 어느 정도 무심한 행동을 이어갔다.

아마 그녀 나름대로 거리를 유지하려는 생각이었겠지.

자신보다 강한 남자에게만 모든 걸 허락하겠다는 임솔의 마음.

이호연은 그걸 존중했다.

'그렇다고 곧바로 엄청난 태새전환을 바란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똑같은 거 아닐까.

자신이 대련을 이기기 전 상태와 똑같았다.

살짝살짝 눈을 피한다거나. 부끄러워 한다거나.

조금은 바뀔 수 있잖아.

임솔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일부러 피하고 있던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설마 자신의 최선이 아니라서 안된다거나. 방심했으니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지않은 건 아니다.

임솔 입장에서는 제자를 봐주다가 잠깐 방심한 틈에 승리를 빼앗겼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혹은 그녀가 모든 분야에서 자신을 압도하는 남자만이 승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호연에게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이 승부는 무효라고 말하면… 난 어떻게 하지.'

으으.

이호연은 끙끙대며 고민했다.

자신은 이번 대련에 모든 걸 쏟아부었으니, 이 일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다.

"…?"

한편 임솔은 끙끙대는 이호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제자는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하지만 이호연이 이상 행동을 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임솔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은 할 말만 하면 된다.

임솔은 입술을 깨무는 이호연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호연아."

"네?"

"오랜만에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 기분 전환이요?"

임솔은 배시시 미소를 지었고.

이호연은 뜬금없는 임솔의 말에 눈을 깜박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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