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화 〉 420화. 화동 던전 탐사
* * *
"냠냠냠."
"맛있냐?"
"웅. 달아."
옴뇸뇸뇸.
나는 양손에 초콜릿을 들고 햄스터처럼 먹고 있는 릴리아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효린 박사와 만나 조사팀에 합류하기로 한 지 며칠이 지났다.
이제 곧 연락이 올 때가 됐다.
"오늘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근데 언제 나갈 지는 몰라."
"힘내. 먹을 거 사오고."
"그래그래."
나는 릴리아나가 먹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먹는구나.
먹고 죽은 귀신이 떼깔도 곱다는데 릴리아나는 죽어도 예쁠 거 같다.
'판데믹이 한 일이 맞겠지?'
마나 측정 실패가 자주 일어난다는 화동 던전.
오늘 조사에서는 자세한 이유를 파악할 거라고 한다.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아이리스 길드의 지부에서 동시에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하니, 아마 그 정보들을 취합하면 또 다른 결과를 알 수 있겠지.
지구와 지옥의 동화.
지구의 던전이 점점 지옥화 되는 현상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판데믹의 계획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내가 아는 미래의 시나리오들이 벌써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내가 강해진 게 이유인가? 아니면 히로인을 너무 빨리 공략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릴리아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보니 답답할 뿐이었다.
정말 내가 강해져서 일 수도 있고, 히로인을 너무 빨리 공략해서 일 수도 있다.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 세계라면 그런 것도 가능하겠지.
아니면 내가 강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나비 효과가 태풍으로 돌아오는 걸 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만든 일.
해결도 내가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부드러운 릴리아나나 만지면서 쉬자.
나는 릴리아나의 배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먹는데 어떻게 뱃살이 없을까?
"배는 왜?"
"그냥 안고 있으려고."
"알겠엉. 가슴 만져도 괜찮아."
릴리아나는 익숙한 듯 내게 몸을 맡겼다.
몸을 만지는 정도야 일상이 되었으니, 나도 딱히 어색하진 않았다.
나는 릴리아나를 끌어안은 채 생각했다.
'어쩌면 마왕이 금방 등장할지도 몰라.'
프랑스에서 릴리아나가 마왕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후로 릴리아나를 볼 때마다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케이론의 기억 구슬에서 봤던 마왕의 딸.
릴리아나 칼리오페.
그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
눈을 질끈 감고 그 기억을 털어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더라도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한다.
내가 릴리아나를 믿고 릴리아나가 날 믿는다면, 지구가 지옥이 되든 마왕이 눈앞에 나타나든 달라지는 건 없겠지.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왜 내 뒤에서 한숨을 푹푹 쉬어. 가슴 만져도 괜찮다니까. 아니면 아래도 괜찮아."
"… 아무것도 아니야. 간식 그만 먹고 밥이나 먹자. 나 배고프다."
"웅. 좋아. 나 치킨 먹을래."
"왜 매일 치킨만 먹냐고."
"몰라! 사줘! 빨리 시켜!"
릴리아나는 치킨을 시켜달라고 칭얼대며 내게 매달렸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행동하니까 마음이 편하네.
마왕이 나타나더라도 빨리 해치우고 치킨을 먹자고 할 것 같다.
띠링
치킨을 시켜주려고 할 때, 내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잠깐, 잠깐만 놔봐. 시켜줄게."
"그럼 알로에 치킨으로 부탁해!"
"… 대체 그딴 치킨집이 왜 있는 거야."
나는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강효린 박사 : 이호연 생도. 오늘 오후 7시에 출발입니다. 약속 장소는 사진으로 첨부할게요.
나 : 네. 알겠습니다.
그 날 연락해준다고 했는데, 정말 당일에 통보해줬다.
아마 보안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니까 저렇게 움직이는 거겠지.
"… 알로에 치킨이 진짜 있잖아?"
나는 릴리아나가 먹고 싶어 하는 치킨을 주문하고 스마트워치를 덮었다.
*
오후 7시.
나는 약속 장소 주변에 도착했다.
아카데미와 꽤나 거리가 있었지만, 꽤 멋진 산 하나가 있었다.
예쁜 자연경관과 잘 정비되어있는 등산로.
잘 정비된 동네 뒷산이었다.
"… 근데 약속 장소는 왜 여기지?"
예쁘게 정비되어있는 등산로가 있었는데, 약속 장소는 그 뒤였다.
길도 표지판도 없는 산의 비탈길.
아이리스 길드원들은 자연스럽게 그 앞에 모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응, 반가워."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이호연 생도."
나는 조사팀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던전은 생성 조건 없이 랜덤하게 나타난다.
이런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인원 중에는 아이린과 강효린 박사도 있었다.
아마 저 둘이 조사팀의 핵심이겠지.
"다 모였으니 이동합니다."
강효린 박사는 조사팀을 감싸는 결계를 펼친 뒤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이리스 길드원들은 익숙한 듯 산을 올랐다.
이런 경험이 많나 보네.
"뭐 이렇게 가파르냐."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렇게 팀으로 움직이다 보니 프랑스에서 케이론을 쫒았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 때도 아이린이 있었잖아.
나는 아이린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린 씨. 길이 엄청 험하네요?"
"… 응. 아직 헌터 협회에 신고된 던전이 아니니까."
"아하."
그래서 길이 험했구나.
아이리스 길드가 단독으로 조사하는 곳이었다.
"아이린 씨는 이런 경험이 많아요?"
"… 꽤나?"
아이린은 단답으로 대답하며 나와 대화를 피했다.
올라가는 길에 말 좀 하면 안 되나. 심심한데.
"둘이 사이가 안 좋았나요? 조사팀에 넣어달라고 해서 당연히 좋은 줄 알았어요."
그때, 강효린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이린은 강효린에 말에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린의 옆에 붙었다.
"아니에요. 친해요. 그렇죠? 아이린 씨."
"…… 응. 친해. 오늘 컨디션이 좀 별로네."
총총총.
아이린은 고개를 저으며 앞장서서 산을 올랐다.
내 옆에 있던 강효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입니다."
그리고 앞장서던 길드원이 던전의 입구를 찾았다.
저렇게 숨겨져 있으면 진짜 찾기 힘들겠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인데, 입구도 엄청나게 좁았다.
조사팀은 허리를 숙이며 비좁은 입구로 들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아마 큰 위험은 없을 겁니다. 사전 조사에서 이미 던전의 보스까지 처리했습니다."
"…?"
길드원의 브리핑을 듣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위험 요소가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이 온 거야?'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조사원들의 무력은 강한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강효린 박사와 아이린이 따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험 요소가 없다면, 아이린과 강효린 박사가 올 필요가 없잖아.
나는 옆에서 걷던 강효린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강효린 박사님."
"응? 무슨 일 있어요?"
"던전 보스까지 처리했으면 위험요소가 없잖아요. 왜 아이린 씨랑 강효린 박사님까지 오신 거예요?"
강효린 박사는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원래는 조사원들끼리만 오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린 씨가 이호연 생도를 넣으면서 자기도 같이 오겠다고 했거든요."
"아, 정말요?"
"네. 감시라고 했었나…?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하…."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내가 이상한 짓을 할까 봐 아이린이 직접 감시하러 따라온 거다.
그러면 이해가 가지.
어쩐지 조사원들이 오는 내내 긴장한 표정이었다. 아이린이 갑자기 끼어서 그랬구나.
"강효린 박사님께 왠지 죄송하네요. 계획에 갑자기 상사가 끼면 불편하실 텐데."
"아니요. 저도 아이린 씨가 참여한다길래 직접 온 거예요."
"… 왜요?"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요."
"…."
역시 이상한 여자다.
조사팀들이 제일 불쌍하네.
간부 급이 갑자기 두 명이나 끼어들었으니 얼마나 부담일까.
나는 실실 웃고 있는 강효린 박사를 내버려 두고 아이린의 뒤를 따랐다.
던전의 내부는 꽤 신기했다.
좁은 통로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공동이 나왔고, 공동 곳곳에는 기분 나쁜 덩굴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식물들이었는데, 아마 던전의 풍부한 마나를 먹으며 괴상하게 생김새가 변한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실제 던전은 처음이야.'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위해 들어간 던전을 제외하고, 자연적으로 생성된 던전을 들어가는 건 첫 경험이었다.
가짜 던전을 만들기로 해놓고 정작 실제 던전에 안 가본 것도 뭔가 웃기네.
다음에 레베카 씨랑 가봐야겠다.
길드원들이 모두 공동으로 들어오자, 조사팀 중 나이가 많은 길드원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각자 위치로 가겠습니다. 던전 보스를 포함한 몬스터들은 모두 제거한 상태이니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오케이! 흩어져!"
조사원들은 던전 곳곳으로 흩어졌다.
아마 마나 농도 같은 걸 체크하겠지.
'나도 혼자 움직일까.'
조사팀의 결과만 들어도 되겠지만, 그럴 거면 직접 올 이유가 없지.
내 마나 감응으로 직접 던전의 마력을 느끼면서 돌아다니면 확실히 도움이 될 거다.
"스읍, 하아. 스읍, 하아."
나는 조사팀이 없는 던전의 내부로 들어가며 마력을 느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릴리아나가 말했던 지옥의 마력은 느껴지지 않지만, 마력의 농도가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지금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마나 농도가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변화가 있었으니까.
'혹시 판데믹이랑 상관 없는 현상인가?'
우연히 원작 시나리오에 나오는 현상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가능성은 적지만, 그 가능성도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집중하며 던전의 마나를 감지했다.
'이거 의외로 대충 만들어도 되겠는데?'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던전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이지만, 밝혀진 영역도 많다.
그중 제일 기본이 던전의 위험 체크.
던전의 마나 농도와 크기 등을 계산해서 안에 얼마나 강한 적이 있나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마나 농도가 마구잡이로 바뀐다면, 지금까지 쌓여있던 데이터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는 셈.
새로운 형식의 던전이 나오더라도 의심이 덜 하겠지.
즉, 내 가짜 던전에 디테일이 부족하더라도 슬쩍 넘어갈 수 있는 거다.
'아이리스 길드의 조사팀한테 도움을 받으면 되겠네.'
어차피 가짜 던전은 아카데미에 펼칠 생각이었다.
그때 마침 아카데미와 사이가 좋은 아이리스 길드의 조사팀에게 도움을 받으면 된다.
조사팀에 포함된 아이린이 같이 조사하면서 '이건 새로운 이상현상이다.'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됐다 됐어."
오늘따라 머리가 쌩쌩 돌아간다.
계획도 완벽했다.
역시 아이린은 가짜 던전 계획에 끌어들여야겠어.
'일도 잘 풀리고 있으니, 이제 슬슬 합류할까.'
던전 조사팀이 조사하는 내용도 들어봐야지.
내가 모르는 다른 점이 나올지도 모른다.
스으으윽
공동으로 돌아가려 했던 그때.
던전의 안 쪽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걸음을 멈췄다.
"… 음?"
이제는 익숙할 정도로 많이 만난 불쾌한 마력.
마인의 마력이었다.
쿵 쿵
와다다다
기분 나쁜 마력은 던전의 안 쪽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도망치는 것 같이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마인이 왜 여기 있어?'
분명 위험 요소는 다 제거했다고 말했었지.
그 말은 사전 조사가 끝난 후에 마인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역시 판데믹과 관련이 있는건가?
'일단 죽이고, 아니 제압하고 생각하자.'
때리다 보면 정보를 말하겠지.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전투 준비를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