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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19화 (419/648)

〈 419화 〉 419화.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 (3)

* * *

어두운 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에 위치한 판데믹의 은신처.

뛰어난 보안으로 숨겨진 이곳에서, 마에스트로는 심복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차기 마법사 학회장 자리는 무너진 건가요."

"예. 게다가 학회에 연을 만들어놨던 원로들까지 모두 들켰습니다."

"… 마법사 학회는 포기해야겠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당신들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지끈­

두통을 느낀 마에스트로는 미간을 누르며 의자에 몸을 맡겼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최근 몸에 가해지는 부담감이 점점 심해졌다.

마에스트로는 말을 이었다.

"인류 멸망 계획의 진행도는 어떻죠?"

"세계 곳곳에 있는 던전을 침식하고 있습니다. 마에스트로님의 명령에 따라 몇몇 던전이 들키더라도 빠르게 침식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입니다."

"… 좋아요. 최대한 빨리 진행하세요. 저는 사도 소환식을 준비하겠습니다."

마에스트로는 그제야 몸을 누르는 중압감에서 빠져나왔다.

심해지는 두통이 약해지고, 권태감도 사라졌다.

몸을 휘청거리자 심복이 놀라 마에스트로에게 다가왔다.

"마에스트로 님, 괜찮으십니까?"

"… 휴식이 필요할 것 같군요. 기도를 너무 열심히 한 모양입니다. 일은 그대로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심복은 허리를 숙이며 바깥으로 빠져나갔고, 혼자 남은 마에스트로는 허공을 바라봤다.

인류를 멸망시켜야 하는 건 처음부터 그의 운명이었다.

이 운명을 자각한 뒤로 감정을 버렸지만,이호연을 만난 뒤로는 더더욱 이상해졌다.

마치 누군가 조종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계획을 미루면 온 몸에 권태감이 들고 힘이 빠졌다.

그 정도는 아마도 이호연의 강함.

이호연이 강해질수록, 그가 판데믹의 앞을 방해할수록, 계획을 더욱 앞당겨야 했다.

마에스트로는 눈을 감고 자신의 운명을 떠올렸다.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태어난 자신이라는 존재.

그리고 자신을 방해하는 이호연이라는 존재.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면, 운명에 타야한다.

"이미 되돌릴 수 없어."

자신의 운명은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

그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운명의 굴레.

마에스트로는 방에 있는 기분나쁜 조각상을 보며 기도를 시작했다.

한 편, 바깥으로 나온 심복은 수정구를 켰다.

멀리 있는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아티팩트.

그는 허공에 떠오른 간부들의 얼굴을 보며 계획을 전달했다.

"마에스트로 님은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시다. 마왕 님과 소통이 잦은 탓이겠지."

"그렇습니까."

"그래. 인류 멸망 계획은 이대로 진행한다. 전 세계 지부에 그대로 전달하고… 한국 지부 간부는 어디 있지?"

"여기 있습니다."

수많은 마인 중 하나가 대답했다.

"한국 지부는 특히 조심하도록. 미친 놈이 아직 한국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한국 지부의 간부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최근 한국에서 활동하는 마인 학살자. 통칭 미친 놈.

마인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남자였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이 한국이었기에 판데믹에서도 주의했다.

"전달은 끝이다. 특이사항이 생기면 언제든지 보고하도록."

"예!"

마인들은 하나둘씩 사라졌고, 곧 심복도 수정구를 끄고 위치로 돌아갔다.

*

저녁 시간.

"아야…."

장난 좀 쳤다고 진짜 때리는 게 어딨어.

노예 계약서를 없앤 이후로 스칼렛이 사나워진 것 같다.

쩝. 어쩔 수 없지.

내가 먼저 놀렸으니 감안해야한다.

나는 스칼렛이 때린 등을 만지며 거리를 걸었다.

"호연아. 괜찮아?"

"응. 그렇게 강하게 맞은 건 아니야."

"휴우. 스칼렛 씨가 배려심이 있네."

"… 그런 건가?"

내 옆을 걷는 남다은은 내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집 근처의 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만 되면 사람이 붐비는 이곳은 남다은이 애용하는 쇼핑장소다.

보통 저녁 준비 전에 장을 보러 오는데, 오늘은 할 일이 없어서 나도 도와줄 생각이다.

"근데 왜 아침에 안 오고 지금 오는 거야? 저녁에는 사람이 많잖아."

"마감시간이 되면 세일을 하는 게 많거든."

"아하. 그래?"

나는 남다은의 설명을 들으며 뒤를 따라갔다.

확실히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네.

"응. 그래서 보통 이 시간에 와서 사곤 해."

"우리 다은이는 알뜰하네."

"… 고마워."

남다은은 나랑 같이 걷는 것으로도 좋은지 기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별생각 없이 따라온 건데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나는 남다은의 뒤를 따라 돌아다니며 간식거리를 찾았다.

"이건 어때? 우유가 싸잖아."

"그럼 시리얼도 사자. 릴리아나 씨가 좋아해."

"우리 집 간식은 다 릴리아나가 먹는 것 같네."

우리는 금방 장보기를 마쳤다.

내가 간식거리를 찾는 동안 남다은이 이미 재료를 다 챙겼으니까.

'여유롭네.'

이런 것도 방학이라 시간이 남으니까 가능한 거지.

바빠지면 못 할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웃으며 남다은에게 말했다.

"오늘은 시간이 꽤 남으니까, 내가 저녁 준비도 도와줄게."

"…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원래 남자는 주방에 들어오는 게 아니래. 호연이는 쉬고 있어."

"그래?"

생각해보면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었던 거 같다.

남다은이 하는 말이니까 맞겠지.

우리는 담소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온 남다은은 스칼렛과 저녁을 준비했고, 릴리아나가 내가 사 온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는 동안 나는 소파에 누웠다.

내 옆에는 레베카가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누워있다가 레베카에게 말을 걸었다.

"레베카 씨."

"왜?"

"레베카 씨는 요리 잘 안 해요?"

릴리아나가 요리하는 건 몇 번 봤는데, 레베카가 하는 건 한 번도 못봤다.

레베카도 혼자 살던 경력이 길텐데 요리를 못하는건가?

"으음. 나도 할 수는 있어. 일족에서 배운 요리가 많거든. 하지만 저 둘이 한 게 더 맛있어."

"아하…."

"그 대신 청소를 많이 도와주지."

"방에서 마법 연구만 하는 게 아니었군요."

"당연하지. 어머니는 위대해. 못하는 게 없어."

레베카는 가슴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아직 어머니 아니잖아요."

"예비어머니야."

레베카는 내 말에 대답하며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맞아. 애기 아빠. 임솔 마법사 소개해준다면서."

"임솔 마법사요?"

"응. 둘이 친한 사이잖아. 저번에 분명 소개해준다고 했잖아. 어떻게 됐어?"

"어…."

생각해보니 저번에 분명 그런 대화가 있었지.

레베카가 의외로 임솔의 팬이었다.

분명 그 때 약속을 잡을 생각이었는데,임솔을 만날 때마다 마법 연구만 하다 보니 까먹어버렸다.

"연구 때문에 못 물어봤어요. 이제 학회도 끝났으니까 한 번 물어볼게요. 아마 마법 얘기라면 엄청 좋아하실 거예요."

"응. 고마워."

레베카는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기뻐하는데 지금 바로 물어볼까?

나는 스마트워치를 두드려 임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 솔이 교수님! 제가 아는 마법사분이 교수님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임솔 교수님 : 귀찮아. 그건 됐고 연구실에 언제 보러 올 거야?

­ 나 : 곧 갈게요. 그리고요. 제가 설마 동네 마법사를 소개하겠어요? 엄청난 마법사라 솔이 누나도 놀랄걸요.

­ 임솔 교수님 : 그럼 다음에 데려와.

오케이.

역시 임솔은 마법으로 꼬시면 무조건 넘어오게 되어있다.

엄청난 마법사라고 하니까 바로 허락하네.

"허락받았어요. 다음에 만나러 가요."

"정말? 역시 애기 아빠네. 능력이 좋아."

레베카는 기쁜 듯 내 옆에 앉아 팔짱을 껴왔다.

임솔은 마법사의 우상 같은 존재라고 하니, 레베카도 기분이 좋겠지.

나는 저녁이 준비되었다는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레베카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같이 TV를 시청했다.

*

다음날.

아카데미의 연구실.

"안녕하세요. 강효린 박사님."

"오랜만이네요. 이호연 생도."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강효린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왜 교수가 아니라 박사냐면, 그녀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객원 교수로 초빙받았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고 생각해보면 아마 아이리스 길드의 수작질이 아닐까.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교수직을 안 받는거겠지.

강효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날 반겼다.

"편하게 앉아요. 아, 차는 뭐가 좋아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나는 접객용 소파에 앉아 강효린이 준비해주는 차를 홀짝였다.

저번에 만났을 때도 왠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스칼렛의 말을 들으니 더욱 경계하게 된다.

"으음, 조사팀의 합류였죠. 바로 얘기해볼까요."

"네. 감사합니다."

"아이린 님이 한 부탁이니 당연히 허락하겠지만… 명목상 물어볼게요. 이호연 생도가 합류를 원하는 목적이 뭔가요?"

강효린 박사는 순수한 궁금증인 듯 물었고, 나는 생각해놓은 대답을 꺼냈다.

이럴 때마다 쓸 수 있는 완벽한 변명이 있거든.

"개인적인 마법 연구를 위해서입니다."

"아하… 역시 천재 마법사는 다르네요. 이상 현상이 일어났는데도 마법을 탐구하다니."

천재 마법사라는 별명을 처음 붙여준 게 누군지 몰라도 참 고맙다.

그 별명 덕분에 웬만한 일은 다 넘어갈 수 있다.

"조사팀은 언제쯤 꾸려지나요?"

"아마 며칠 내로 소집될 거예요. 이호연 생도가 준비할 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아, 그래도 몇 개 서류에는 서명이 필요해요."

강효린은 내게 서류를 내밀었고, 나는 대충 읽으며 사인을 해나갔다.

마력이 담긴 계약서였으니 위조 걱정 따위는 없었다.

"다 끝났네요.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빨리 끝났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찻잔을 들고 커피를 비웠다.

일을 다 처리했으니 돌아가야지.

"아,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개인적인 궁금증인데요."

그때 강효린이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스칼렛하고는 어떻게 사귀고 있는 거예요?"

"… 네?"

"스칼렛이 남자한테 그러는 건 처음 봐서… 아, 혹시 실례였다면 미안해요."

당연히 조사팀과 관련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스칼렛이 나오다니 생각도 못했네.

강효린은 입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표정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그건 개인적인 사정이라서요… 그, 제 의지만으로 말하기에는 좀."

스칼렛과의 관계를 나 혼자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적어도 스칼렛의 의지를 들어봐야한다.

"어머, 그래요?"

내 말을 들은강효린은 미소를 유지하며 내가 사인했던 서류를 손에 들었다.

"흐으음. 역시 조사팀에 외부인을 마음대로 끌어들이는 건 고민해봐야 할지도?"

"…."

"아니면 다음에 스칼렛이 출근했을 때 물어봐야 하나? 대답 안 하면 해고를 해버려야겠어요. 음."

"제가 얘기해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어.'

여기서 아이린의 말인데 정말 그럴거냐고 따졌다가는 더 일이 복잡해진다.

진짜 미친 년은 그런 걸 신경쓰지않거든.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강효린이 웃으며 서류를 다시 내려놨다.

"후후. 농담이에요. 스칼렛을 잘 지켜주고 있네요. 아주 좋은 남자에요."

"하아…."

"그럼 조사팀에 대한 일은 끝이에요. 다음에는 화동 던전에서 봐요. 이호연 생도."

"예. 참 감사합니다. 강효린 박사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칼렛의 말대로, 아이리스 길드에서 미친 년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대충은 알 것 같다.

더 깊게 엮이지는 말아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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