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395화 (395/648)

〈 395화 〉 395화. 아이린, 엘리스.

* * *

시간이 흘러 금요일.

나는 오늘도 집에서 뒹굴거렸다.

방학식도 했으니 아카데미에 갈 일도 없었고, 내 일정은 계속 똑같았다.

­ 집에서 쉬다가 히로인들 만나기.

­ 남는 시간에는 마법 수련하기.

프랑스에 갔다가 와서는 히로인들을 만나는 빈도수도 늘어났다.

특히 히로인들과 단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낸 적이 얼마 없는 것 같아서, 요즘은 그런 느낌으로 움직였다.

그나마 마법 수련이 힘들었다.

아크를 중심으로 전투에 도움이 되는 사용법을 생각하거나, 응용하는 마법들을 고민했다.

판데믹이 레베카를 쫒는 듯한 움직임도 사라졌다.

마에스트로가 나타나면서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다행히 뭔가 하진 않은 것 같고.

나는 마법사 학회가 열리기 전까지 준비를 계속했다.

"슬슬 가야곘다."

나는 스마트워치를 보며 집에서 빠져나왔다,

오늘은 임솔 교수님을 도와줘야한다.

대련은 아니고, 학회에서 발표할 논문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시간이다.

연구실에 도착해보니, 이미 준비를 마친 교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일찍 왔네?"

"발표 시간이 얼마나 될 지 몰라서 일찍 왔어요."

"그렇게 길진 않을거야. 앉아."

임솔 교수님은 곧바로 논문을 들었다.

"바로 하는거에요?"

"응. 너도 빨리 끝내는 게 좋잖아."

"그렇긴한데…."

교수님은 곧바로 발표를 시작했다.

도입부부터 엄청나게 복잡했는데, 핵심 술식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은 확실히 참 잘 쓴 것 같았다.

다른 마법사들이 들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쓰여져있었으니까.

교수님이 얼마나 고생했을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마법의 핵심술식 논문 발표를 마칩니다. 이상입니다."

짝짝짝짝­

나는 교수님이 발표가 끝나자마자 짝짝 손뼉을 쳤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는 단어들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게, 이게 진짜 논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완벽해요. 이 정도면 핵심 술식의 개념은 다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아쉬운 건 역시 100%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일까요. 발표 시간이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직접 논문을 읽어야지. 나는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성과를 발표하는 거니까."

임솔 교수님은 대본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걸 수많은 마법사 앞에서 말하는 건 엄청 떨릴 텐데.

교수님은 긴장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예상 질문 같은 거 준비 안 해도 돼요? 질문이 엄청나게 들어올 거 같은데."

"대부분은 논문에 다 나와 있어. 그리고 그놈들 머리에서 나오는 질문은 다 비슷해서 준비할 필요도 없어.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쓸데없는 트집이나 태클을 말하는 거야."

"이상한 건 제가 다 막아드릴게요."

"근데 너한테도 질문이 갈 수 있으니까 신경써."

"… 그래요?"

"너도 공동 저자잖아."

"그런 건 미리 좀 말해주면 정말 좋을텐데."

할 일이 더 늘었네.

논문도 확실히 읽어놔야겠다. 그래야 당황하는 일이 없지.

공동 저자라고 나온 이상 공식 선상에서 교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순 없다.

"미국 일정은 다음 주 월요일이면 괜찮지?"

"3일 뒤네요. 도착하자마자 바로 학회는 아니라면서요."

주말만 지나면 바로 출발이다.

분명 저번에 며칠 여유를 가지고 출발한다고 했었지.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발표날을 잡을 거야. 그전까지는 자유시간."

"자유시간…."

"응. 그럼 다음 주 월요일로 예약해놓을 테니까 인지해놔."

"교수님은 발표 전까지 약속 있으세요?"

"딱히 없… 아, 하나 있네.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 있어서."

"그럼 학회까지 남은 시간에 같이 놀러 다녀요. 제자 미국 구경도 좀 시켜주시면 좋잖아요."

"그럴까?"

"네. 저는 초행이거든요."

임솔 교수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번 마법 박람회도 그렇고 교수님과는 상성이 좋다.

재밌게 즐길 수 있겠지.

해외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괜히 기대되기도 하네.

프랑스에 갔을 때는 제대로 놀 지를 못했다.

미국에서는 자유시간에 좋은 곳 좀 가보고싶네.

"마법 박람회도 재밌었으니 마법사 학회도 재밌겠죠?"

"그럴 거야. 이상한 놈들이 다가오면 대답해주지 말고. 뭐 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돼."

"당연하죠."

"혹시 나랑 친하다고 해도 믿으면 안 돼."

"… 안 믿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임솔 교수님은 나름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양이다.

내가 설마 납치라도 당하겠냐고.

아니면 그만큼 적이 많다는 뜻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좀 마음이 아프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교수님 옆에 딱 붙어있을게요."

"응. 좋은 마음가짐이야. 우리 제자."

"좋네요.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벌써?"

"네. 교수님 발표하는 거 봤잖아요. 대련은 힘들어서 못 할 거 같은데."

아크의 숙련도가 올라간 것도 아니고, 경험을 쌓기는 좋겠지만 미국에 가기 전에 컨디션 관리를 할 필요성이 있다.

나도 교수님도 마찬가지다.

"아니, 당 보충은 해주고 가야지."

"… 아."

생각해보니 요즘 안 한 지 좀 됐네.

저번에도 백아영이 있어서 그냥 넘어갔었지.

슬슬 저런 반응이 올 때가 됐다.

"해줄거야?"

"교수님이 원하시면요."

"그럼 벗어봐."

"다 좋은데 단어를 좀… 쩝, 뭐라고 해야 하나."

벗어봐도 좋지만 좀 더 야한 단어를 써주면 좋겠네.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겠지?

그러고보니 생각났다.

대련에서 잘 한 걸 칭찬해달라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근데 교수님. 저 대련에서 35%나 깎았잖아요. 칭찬은 없나요?"

"칭찬…? 잘했다고 했잖아."

"아뇨. 그 당보충하실 때 패턴을 바꿔보면 어떤가 해서…."

펠라치오가 좋긴 하다.

근데 그거만 하면 너무 답답하잖아.

내 부탁을 들은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패턴… 생각은 해볼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안 돼. 단 걸 안 먹었더니 슬슬 머리가 아프거든. 빠른 섭취가 필요해."

"… 넵."

교수님은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오늘은 말을 꺼낸 걸로 만족해야겠네.

나는 바지를 내리는 교수님의 손을 보며 소파에 등을 눕혔다.

*

연구실에서 나오고.

나는 그대로 아카데미를 걸었다.

향하는 곳은 아카데미의 상가 거리의 분수.

'수린 누나는 와있으려나.'

방학이 된 기념으로 히로인들과 데이트를 엄청나게 자주 했다.

어제는 루시루미와 영화관도 갔고, 백아영이 야근하는 곳을 찾아가서 같이 저녁을 먹기도 했다.

오늘은 수린 누나와 같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저기 있네."

약속 장소에서 주변을 열심히 살피는 문수린을 발견한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시간에 늦지는 않았지만, 벌써 와있을 줄이야.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누나, 기다렸어요?"

"아니. 나도 방금 왔어. 걱정하지 마."

수린 누나는 싱긋 웃으며 날 반겼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엄청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

"그래요? 오래 기다렸으면 미안해서 팔짱이라도 끼고 가려고 했더니 안그래도 되겠네."

"2시간이나 기다렸네. 휴우."

"거짓말. 아직 약속시간까지 5분 남았는데 두 시간 전에 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미안미안. 나도 삼십 분 정도 밖에 안 됐어."

수린 누나는 자연스레 내 옆에 서서 팔짱을 꼈다.

우리가 향할 곳은 풍미당.

익숙하지만 계속 먹어도 맛있더라.

게다가 수린 누나와 함께 가면 예약이 없어도 제일 좋은 자리를 받을 수 있다.

이게 인맥이지.

풍미당에 들어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고급진 방은 확실하게 방음처리가 되어있었다.

이런 방이면 대화가 새어나가고 싶어도 못 새어나간다.

"여기는 먹어도 먹어도 맛있네요. 누나가 소개해준 이후로 계속 여기만 찾아와요."

"입맛에 잘 맞아서 다행이야."

우리는 메뉴를 주문하고 식사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대화를 나누면서 먹다 보니 식사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요즘도 제 사진 찾아봐요?"

"… 가끔?"

"굿즈는요?"

"그것도 가끔…?"

수린 누나는 내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여전히 열심히 하는 모양이구나.

나는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사진이라도 하나 찍을까요? 같이 식사하는 기념으로."

"오늘은 카메라를 안 가져와서… 다음에는 꼭 찍자."

"그냥 스마트 워치로 찍어도 되잖아요."

"안돼. 그건 호연이에 대한 모욕이야. 좋은 피사체에는 좋은 카메라가 필요해."

"… 네네."

그래도 도촬은 안 해주니까 고맙네.

좋은 피사체라고 밥도 사주는 건가.

푹.

나는 아이스크림에 수저를 꽂으며 수린 누나를 바라봤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니 식사가 만족스러웠나 보네.

이제 슬슬 진지한 얘기를 해볼까.

"그러고보니 아버님에 대한 일은 어떻게 되고 있는거에요? 뉴스는 하나도 안 나오던데요."

"똑같지 뭐. 마인들의 세력 경쟁이 멈추면서 오히려 행방이 묘연해지긴 했지만 다행히 네가 준 펜던트덕분에 추적할 수 있을 것 같아."

"뭘요. 혹시 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는 거 잊지 마세요."

"응. 고마워. 그러고보니 호연이는 이제 미국에 간다고 했었지?"

"네. 마법사 학회가 있으니까요."

"교수님하고 단둘이 가는 거야?"

"그렇죠…?"

수린 누나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

마법사 학회에 누굴 데려가는 것도 이상하잖아.

나도 마음 같아선 데려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나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학회 끝나면 단둘이 또 데이트해요."

"으응. 알겠어."

"그 때는 좀 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죠?"

"그것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수린 누나는 내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은 나보다 연상인데도 뭔가 챙겨줘야 할 것 같단 말이지.

물론 그게 매력포인트다.

우리는 기분 좋게 식당을 빠져나왔다.

수린 누나는 남은 일이 있어서 돌아가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오늘 일정은 없으니 집에가서 마법 수련이라도 해야겠네.

'엘리스도 한 번 봐야 하는데.'

프랑스에서 돌아온 이후로 제대로 챙겨주질 못했다.

물론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알아서 잘 지내고 있겠지만… 그래도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

나는 천천히 아카데미 상가를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시끌시끌한 말소리와 도시의 소음은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다.

평소와 달라진 건 없지만, 사람 사는 느낌이 드는 게 역시 좋네.

"응?"

그때, 상가를 바라보던 내 시야에 익숙한 금발이 잡혔다.

엘리스와 같은 환한 금발에 섹시하게 빠진 뒷모습.

슬랜더형인 몸은 주변의 시선을 잡을 게 분명한데도,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 저거 아이린 아니야?"

익숙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고,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 히로인 상태창

[아이린]

─ [ 호감도 : 40 ] (+ 0.2)

─ [ 성욕 : 60 ]

─ [ 식욕 : 40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강효린은 여전히 이상하네. 빨리 엘리스한테 가야겠어.

눈 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저건 아이린이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지금쯤 프랑스에 있어야 하잖아.

'혹시 나 때문인가?'

내가 준 연락처에는 연락이 없었지만, 자존심이 쎈 그녀의 성격상 그 정도는 예상했다.

언제오나 했는데 이제야 왔구나.

나는 빨리 달려가서 아는 척을 하려다가, 잠시 발을 멈췄다.

'강효린은 아이리스 길드의 한국 지부장이잖아.'

그녀를 보고 왔다는 건 아이리스 길드의 일로 왔다는 것.

게다가 내가 아닌 엘리스한테 가고 있었다.

"일단 따라가볼까?"

어차피 엘리스의 집에 가는 거라면 우리 집으로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뭘 하려는 건지 확인해보면 알겠지.

나는 룬의 결계를 키고 아이린의 뒤를 따라 걷기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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