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4화 〉 394화. 마법사 학회 준비 (4)
* * *
"와 씨. 죽을 뻔했네.'
탁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당황했다고 제자한테 저렇게 진심을 내는 게 어딨어.
"너 진짜 미쳤어? 임솔! 빨리 호연이한테 사과해!"
훈련장으로 올라온 백아영은 임솔에게 화를 냈다.
그래도 나 대신 저렇게 진심으로 화를 내주는 게 고맙네.
"… 미안해. 호연아, 괜찮아?"
"네. 아프긴 해도 괜찮아요. 교수님 등은 괜찮아요?"
스파이럴이 등에 직격으로 꽂혔으니 엄청 아플 텐데.
임솔 교수님은 등을 슥슥 만지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나는 괜찮아. 이런 상처는 현장에서 많이 당했거든. 그리고 쉴드로 위험한 곳은 막았어."
"아하, 근데 교수님. 마지막은 좀 심했어요. 갑자기 진심을 내면 어떡해요."
"정말 미안.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조절을 못 했어."
"혹시 아영 씨가 안 말렸으면 큰일 나는 상황은 아니었죠?"
"그건 아닐 거야. 아마 마지막에는 정신을 차렸을 거라고 생각해."
"확실해요?"
"… 아마도."
내 눈을 피하는 임솔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하는 걸 보니 아마 괜찮았을 거 같긴한데… 그래도 무섭네.
"그래도 오랜만에 긴장감있는 대련이었죠?"
"응. 확실해."
나는 허공에서 빛나는 게이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게이지는 15대 65.
당연히 내가 15였다.
둘 다 제대로 맞은 마법은 하나인데, 내 피해가 훨씬 큰 걸 보면 내 판정패로 봐도 무방하겠지.
하지만 교수님의 게이지를 35%나 줄였다는 게 중요했다.
저번 대련 때는 제대로 의표를 찔렀는데 1%도 줄이지 못했다.
무너지지않는 태산같던 임솔의 틈을 결국 찌른 것이다.
인간이 태산을 상대로 35%나 깎아냈다면 그건 기적이지.
게다가 나는 발전할 여지도 남아있었다.
아크는 이제 처음 사용한 스킬. 계속 갈고 닦으면 더 잘 할 수 있을 거다.
자신감이 올라오는 기분이네.
"제 마법 어땠어요?"
"대단했어. 그건 무슨 마법이야?"
"이건 아크라는 건데요. 음, 무슨 마법인지는 비밀."
"… 왜?"
임솔은 아쉬운 눈초리를 보냈지만, 이제 나도 그렇게 막 말해줄 수는 없다.
이번 대련으로 느낀 게, 내 약점을 더 알려줄 수는 없거든.
하나 알려줄 때 마다 난이도가 너무 올라간다.
"저도 교수님을 이겨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제 입장도 좀 생각해주세요."
"지금까지는 알려줬잖아."
"안 알려준다는 건 아니에요. 제가 교수님을 이기는 날이 오면 뭐든 다 공유할 수 있죠."
"으음…."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임솔을 위해 추가로 설명을 이었다.
"이렇게 대련을 자주 하는데, 제가 조금 발전할 때마다 모두 공유하면 교수님이 매번 대책을 세우잖아요. 그럼 제가 이기기 너무 힘들어져요."
"그런가?"
"네. 그러니까 이제부터 좀 숨길게요."
"어쩐지. 그래서 바로 공개한 거구나. 흐음. 원리가 뭐지? 마력을 먹고 마법을 쏘는 스킬이라니…."
임솔은 내 눈앞에서 고민을 이어갔지만,아마 아크는 눈치채기 꽤 힘들 거다.
내 [뚜렷한 정신력]과 [마나 감응]을 총동원해서 만든 스킬이니까.
기본적으로 구체 하나하나에 내 의지가 들어갔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정신력으로는 버틸 수 없다.
아무리 마력 친화력이 높은 교수님이라도 아크는 쓰기 힘들겠지.
"너희, 훈련장이 다 망가진 건 알고 그런 소리 하는 거야? 시설팀에 연락할 테니까 빨리 내려와."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던 백아영의 말에 나는 주변을 확인했다.
완전히 녹아버린 땅, 박살이 나 있는 천장과 벽. 떨어져 있는 조명까지.
이거 잘못하면 시스템에도 무리가 갔을지도 모른다.
"… 마법사들은 다 모르겠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거야. 다 부숴진 곳은 찝찝하잖아."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툴툴거리는 백아영을 달래며 임솔의 연구실로 돌아왔다.
날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따라오는 임솔이 들을까봐 걱정이네.
슬쩍 눈을 흘기자 임솔 교수님은 바닥을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훈련장에 갈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
내게 한 실수를 의식하긴 하는 모양이다.
연구실에 돌아와서도 교수님은 딱히 말이 없었고,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대련도 했는데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가요. 제가 산다고 했잖아요."
사실 이제 좀 나갔으면 좋겠다.
몸을 움직였더니 너무 배고파.
"나는 안 따라갈게. 제자한테 실수했으니까… 오늘은 좀 그렇네."
"네? 저는 괜찮은데요."
"내 마음이 걸려서 그래."
임솔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 그러는 척하면서도 마음에 계속 걸렸나 보네.
괜히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교수님. 미안하면 안 따라오는 게 아니고 따라와서 밥을 사야죠."
"… 그래도 괜찮아? 기분 나쁘잖아."
나는 임솔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렇게 약한 모습은 오랜만이라 꽤 귀엽다.
마법 박람회에서도 저런 모습이었는데, 딱 자기가 실수할 때만 나오는구나.
"기분 안 나빠요. 제가 한 말 기억하죠? 교수님은 임솔잖아요. 평소대로 해요."
"… 응. 그럼 내가 살게."
"이제야 원래 솔이같네."
임솔 교수님은 그제서야 살짝 웃었다.
내 옆에 있던 백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백아영은 단 둘이 먹는 걸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친구인 임솔을 챙겨주는 모양이다.
"교수님, 방금 대련 복기나 해볼까요?"
"그래. 제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지."
우리는 대련을 처음부터 복기했다.
열심히 복기해주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다가, 문득 떠오른 걸 물었다.
"근데 마지막에 나왔던 교수님의 그건 뭐예요? 마법 박람회에서도 봤던 거 같은데, 그게 비밀병기에요?"
"비밀병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보통 무슨 짓을 해도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상대를 만났을 때 사용하거든. 몸에도 무리가 가는 위험한 방법이야. 네가 날 그만큼 몰아붙인 거지."
"오, 약간 최후의 수단이네요. 근데 마법 박람회 때는 처음부터 꺼내지 않았어요?"
"… 그때는 너무 짜증 나서 이성이 끊어졌어. 아마 다른 강자들도 이런 거 하나쯤 준비하고 있을 거야. 죽을 바에는 뭐든 해봐야 하는 거니까."
확실히, 그때의 기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혼자 판데믹도 다 소탕하지 않을까.
그 정도로 압박감이 강했다.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옆에 있던 백아영이 신경 쓰였다.
"아영 씨는 재미없지 않아요?"
"듣다 보면 나쁘지 않아. 둘 다 진심인 게 느껴져서 나도 기운이 나는 느낌이야."
"아영이도 있으니까 여기서 그만할까? 더 필요하면 혼자 찾아와서 복기하자."
"네. 밥 먹으러 가요."
다행히 마법에 진심인 교수님도 백아영을 보고 복기를 그만뒀다.
백아영은 착하게 기다려줬지만, 내버려 두기는 좀 그렇단 말이지.
우리는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
둘과 식사를 끝내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역시 미녀랑 먹는 밥은 참 맛있단 말이지.
게다가 미녀가 사주기까지하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집에 돌아오자 거실을 가득 채우는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베카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절차를 밟도록 해."
"릴리아나. 또 어디서 이상한 걸 듣고 온 거야?"
"이상한 게 아니야. 내가 이 집의 위계질서를 바로잡아야겠어…!"
릴리아나는 대체 평소에 뭘 하면서 지내길래 매일 이상한 걸 배워오는 걸까.
저번에는 치킨집을 하자며 난리를 친 적이 있는데, 저건 또 며칠이나 갈지 궁금했다.
"릴리아나.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아, 왔구나! 너도 나를 누나라고 불러야 해."
"… 왜?"
"그게 위계질서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먼저 나한테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생각해볼게. 그게 위계질서야."
"주인님…? 잠시만, 주인님인데 나한테 누나라고 부를 수 있는 거야? 주인님이 내 동생이라고? 그건 안 되는데."
릴리아나는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고민에 빠졌고, 나는 익숙하게 레베카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레베카는 릴리아나를 순식간에 조용하게 만든 날 보며 손뼉을 짝짝 쳤다.
"애기 아빠는 릴리아나를 잘 다루는구나. 나는 아직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모르겠어."
"이것도 오래 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저도 커피나 한잔 주세요."
"연구중에 갑자기 위계질서를 잡자며 찾아오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쪼르르
레베카는 내게 커피를 따라주며 미소를 지었다.
릴리아나가 귀찮게 하는 바람에 마법 연구를 못 하고 있었구나.
'그러고보니 레베카도 비밀병기가 있나?'
레베카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떠올랐다.
임솔의 진심모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레베카도 엄청난 강자다.
그렇다면 그녀도 비밀병기가 있을까.
"레베카 씨.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레베카 씨한테도 비밀 병기가 있어요?"
"비밀 병기라는 건 뭘 말하는 거야?"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상대를 만나거나… 적의 전력이 너무 강해서 가능성이 작을 때 죽을 각오로 펼치는 마법 같은 거요."
"아하. 숨은 한 수는 당연히 있지. 죽을 바에는 목숨을 거는 게 낫잖아."
"오… 저도 그런 거 하나 만들까요?"
다들 그런 도박수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결국, 강자가 되려면 목숨이 걸린 사건들을 해결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경험들이 쌓여서 결국 내 강함이 되어주니까.
나도 목숨을 건 마법 같은 걸 개발해야 하나?
"글쎄. 애기 아빠는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임솔 교수님하고 대화하는데 교수님도 그런 목숨을 건 한 수가 있더라고요. 레베카 씨도 있다고 하니 강자들의 특징인가 싶어서요."
"아하… 글쎄. 나는 마법 연구 중에 우연히 만들어진 마법이야. 기껏 만들긴 했는데 몸에 부담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쓰기는 힘든 마법이지. 아마 임솔 마법사도 비슷한 느낌 아닐까?"
"음, 들어보니까 그럴 것 같기도 해요."
임솔 교수님도 목숨을 건 마법을 직접 개발할 성격은 아니다.
아마 다른 마법 연구 중에 우연히 만들어진 마법이겠지.
"그리고 그런 상황이 안 오는 게 제일 좋잖아? 비밀병기 같은 걸 만들려고 노력할 시간에 기본기를 다져서 강해지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것도 설득력이 있네요."
"응. 하지만 선택은 애기 아빠가 해."
레베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커피를 홀짝거렸다.
역시 마법은 어렵네.
하지만 레베카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굳이 비밀 병기를 만드느라 힘을 빼는 것보다 마법 연구에 집중하는 게 낫겠지.
애초에 내 블러드 비트로 마력 회로를 늘리는 것도 비밀 병기라고 할 수 있다. 몸에 부하가 엄청나게 걸리는 스킬이니까.
"으음, 주인님. 아니, 위계질서를 다시 검색해봐야겠어. 무슨 뜻이더라?"
나는 아직도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있는 릴리아나를 보고 생각했다.
비밀 병기 같은 고민을 하는 이유.
내 상대는 마왕이기 때문이다.
아크를 갈고 닦아서 임솔 교수님을 이긴다고 해도 마왕은 다른 얘기다.
그렇게 강한 기세를 가지고 있던 마에스트로가 판데믹과 자신을 희생하며 소환하는 게 마왕이다.
당연히 엄청나게 강하고, 원작에서는 극후반에 가서야 이길 수 있는 상대.
지금의 나는 너무 부족했다.
"릴리아나."
"응?"
"지옥에서 마왕은 얼마나 강해?"
나는 릴리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옥에서 마왕은 얼마나 강한 존재일까.
"얼마나 강하냐구?"
"응. 위세가 어느 정도야?"
"글쎄에… 나도 진짜 싸우는 건 못 봤어. 하지만 말 그대로 지옥의 지배자니까 엄청 강하겠지."
"그건 그렇겠지."
기억이 없는 릴리아나는 잘 모르는 모양.
나중에 케이론한테 물어볼까.
이게 물어본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싶지만.
"애기 아빠는 진지한 사람인지 가벼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저요?"
내 얼굴을 뻔히 바라보던 레베카는 말을 이었다.
"응. 평소에는 가벼운 사람이다가도 가끔씩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어떻게 사람이 딱 정해지겠어요. 매일 가벼울 수는 없잖아요."
"역시 그렇겠지. 애기 아빠는 참 어른스럽네."
나는 입꼬리를 올리는 레베카를 보며 미소를 지어줬다.
세상이 날 내버려 두질 않으니, 내가 극복할 수밖에 없지.
'마법 훈련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네.'
마에스트로를 직접 본 이후로 괜히 더 초조해졌다.
원작에서 마왕이 등장하려면 적어도 몇 년이 걸리지만 왠지 훨씬 빨라질 거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어낸 나비효과는 점점 커지고 있고, 이미 막기엔 늦어버렸다.
그러니 더 강해져야 한다.
교수님과의 대련도 좋고, 마인과의 실전도 좋다.
판데믹이 세계멸망계획을 실행하기 전까지… 적어도 임솔 교수님은 따라잡아야겠지.
오늘 가능성을 봤으니 남은 건 노력뿐이다.
나는 한 번 더 다짐하며 커피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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