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4화 〉 384화. 장인어른 (2)
* * *
문성민은 살기를 풀풀 내뿜으며 날 쳐다봤다.
뭔가 말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기세였다.
'무섭네.'
수염이 드문드문 난 얼굴은 마치 인자한 옆집 아저씨 같았지만, 더러운 마인의 향기가 풍기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등장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원작에서 보던 문성민의 얼굴과는 약간 달랐는데, 수린 누나가 준 몽타주 덕분에 한 번에 알아봤다.
"장인어른? 다시 묻겠다. 네 놈은 누구지?"
"저도 다시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수린 누나 남자친구입니다."
"수린… 수린이? 설마 문수린을 말하는 거냐?"
"예. 제가 수린 누나의 남자친구거든요.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서 참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문성민에게 인사했다.
그래도 장인어른인데 최소한의 예의는 가져야지.
"수린이? 설마 수린이가 내 정보를 발설한 건가?"
"…."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기 싫어졌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딸한테 배신당한 표정 짓지 마세요. 수린 누나를 버리고 도망쳤잖아요."
"…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다. 언젠가는 수린이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문성민은 날 바라보며 마력을 일으켰다.
아쉽지만 남자친구라도 봐주지 않는구나.
"남자친구라고 했었지. 이제 보니 수린이의 주변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군. 네가 있다면 수린이도 내 말을 들어주겠지."
"… 아닐 텐데."
내가 잡혔다는 말을 들으면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절연하지 않을까.
아버지라는 사람이 딸을 저렇게 모르면 어떡해.
"수린 누나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아요? 그놈의 복수는 언제까지 할건데요."
나는 답답함을 풀기위해 대화를 유도하면서도 마력을 끌어올려 방어 태세를 갖췄다.
언제 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대화할 때도 준비를 해놔야 한다.
"수린이도 곧 내 마음을 이해할 거다. 내 딸이니까."
"이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왜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지 알려주세요. 아버지와 딸보다 그딴 복수가 더 중요한가요?"
"… 모른다."
"…?"
"내 삶의 목적은 마인을 이 세상에서 없애는 것. 그것뿐이다."
문성민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내게 적의를 불태웠다.
진짜 수린 누나의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쌍욕을 퍼부었을 텐데.
아니, 어차피 마인인데 욕해도 되는 거 아닌가?
꾸득 꾸드득
"모든 걸 파괴할 수 있는 이 힘. 난 이 힘으로 복수를 이룰 거다…."
문성민은 마력을 몸에 두르며 중얼거렸다.
마인들을 죽이기 위해 마인이 되어버린 남자.
문성민.
원작 게임에 나왔던 그는 강한 증오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마인을 죽이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정도로 복수에 미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직접 마주한 문성민은, 위태로워 보였다.
마인에게 복수하는 목적이라기보단… 자기 자신이 만든 제약에 갇힌 느낌이다.
'나는 마인을 제거해야한다.'라는 규율에 자신이 먹혀버린것이다.
'결국 이 사람도 운명에 이끌리는 건가?'
케이론이 말하길, 세계를 멸망시키는 운명이라는 마에스트로.
엘리스를 좋아하는 운명인 아이린.
마인을 죽이는 캐릭터인 문성민.
그 외에 다른 엑스트라들도 모두가 원작대로 움직였다.
그놈의 운명이 뭐길래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진짜 바꿀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야겠지.
두근
전투 감각이 활성화됨과 동시에 룬의 결계로 내 주변을 감쌌다.
이제서야 문성민이 나를 적으로 인식한것이다.
콰아아앙
동시에,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문성민의 주먹이 내게 날아왔다.
룬의 결계로 공격을 막아내며 마력을 끌어올리자, 문성민이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끝내주마. 수린 이의 남자친구라면 인질로 써야하니 죽지는 않게 해주지."
"… 진짜 미치겠네"
문성민의 눈동자는 광기로 가득 찼다.
마인의 특성상 전투를 이어갈수록 저런 상태가 된다. 아마 전투가 심해질수록 더욱 심해지겠지.
마인이 된 순간부터 예견된 일이었지만…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저런 꼴이 된 걸 직접 보는 게 영 편하진 않네.
까드드드드득
나는 룬의 결계를 전방위로 펼치며 문성민의 주먹을 방어했다.
문성민은 잠깐의 틈에도 수 십 번의 공격을 해왔는데, 그 속도가 심상치않았다.
빠르게 '개안'을 키고 공격에 반응하고있지만 꽤 역부족이었다.
"큭…."
더럽게 빠르네.
문성민의 주먹은 눈에 보이지않을 정도로 빨랐는데,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파괴력도 상당했다.
주먹에서 나오는 충격파가 내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있었으니까.
주먹을 막아내는 것 만으로도 벅차 반격을 할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나보다 전투 경험이 훨씬 많은 문성민은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절묘하게 내 약한 부분을 노려오는 공세에 그 튼튼한 룬의 결계가 떨릴 정도였다.
내가 튕겨낸 마력들은 애꿎은 간부실에 쏟아지며 집기들을 부쉈다.
문성민의 공격을 막는 데에 힘을 집중하느라 주변을 막아놨던 룬의 결계도 해제한 지 오래.
아마 금방 다른 마인 들이 도착할 거다.
'빨리 승부를 내야 해.'
문성민은 도망치더라도 자신의 몸만 챙기면 되지만, 나는 셋이나 더 챙겨야 한다.
그렇다고 레베카나 스칼렛, 남다은의 지원을 기다리기엔 문성민을 만난 시간이 너무 일렀다.
그쪽도 암살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지원을 기다리기보단 직접 처리하는 게 낫겠지.
'블러드 비트… 최대치로.'
두근
마나 회로를 팽창시키며 내 몸에 부담을 넣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쿠우웅
나는 룬의 결계를 강화하며 정면에 마력을 폭파시켰다.
필요한 건 잠깐의 틈.
허공에 마법진을 설치할 틈만 있으면 내가 공세를 가져올 수 있다.
"흐으으읍!"
내 마법에 밀려난 문성민은 기합을 넣으며 왼발로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그의 발끝에서 나오는 강한 마력 폭풍이 내 시야를 가렸다.
"이런 씹…."
콰아앙!
정면에 강해지는 강한 충격.
방금 결계의 틈을 노린 공격으로 룬의 결계가 무너졌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살기.
죽이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저 정도의 살기라면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극도로 위험한 상황.
나는 최대한 효과적인 마법을 구상했다.
'프로스트 에어리어'
닿기만 해도 얼어버리는 극저온의 냉기.
내 몸을 중심으로 펼쳐나간 섬뜩한 냉기를 눈치챈 문성민이 흠칫하며 거리를 두었고.
나는 그 틈을 노려 손에 마력을 모았다.
'스파이럴'
나선으로 돌아가는 전격의 마력이 문성민과 내 틈을 갈라놓았다.
권법을 쓰는 마인이 마법사와 거리가 벌어진 순간 이미 승기는 내게 기울었다.
냉기에 놀라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챈 문성민은 아예 나와 멀어졌다.
다시 파고들 틈을 찾거나, 포기하고 도망칠 생각이겠지.
하지만 절대 그렇게 내버려두진않을거거든.
난 스파이럴을 유지하며 마력 사슬을 뿜어냈다.
콰직
문성민은 어떻게든 내 틈을 찾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스파이럴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가까이 와봤자 갈기갈기 찢길 뿐이었고,아예 힘으로 뚫어내려는 시도도 했지만 절대 틈을 주지 않았다.
애초에 날 생포한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자만이었다.
철컥 철컥
꽤 긴 공방이 오가고, 결국 문성민의 몸은 내 마력 사슬에 닿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씩 몸을 허락한 문성민은 내게 사지를 속박당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저항은 멈추는 걸 추천드립니다. 저도 장인어른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한 손으로 마법진을 그리며 말했다.
솔직히 문수린을 버리고 도망간 사람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다.
처분은 수린 누나에게 맡겨야겠지.
"… 어린 나이치고 실력이 제법이군. 혹시 네가 그 유명한 천재 마법사인가?"
"마인에게도 소문이 퍼졌다니 자랑스럽네요."
"하지만 이런 자만은 좋지 않다. 실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전투가 일단락되서인지, 문성민은 이성을 되찾은 것 같았다.
이렇게 보면 참 인자하게 생긴 아저씨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쓸데없는 훈수나 두고 말이야.
"알아요. 무슨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문성민 씨, 아니지. 장인어른이 둘로 보이거든요."
"… 뭐?"
콰드드드득
문성민이 눈을 크게 뜨자마자 내가 준비하던 마법진이 발동했다.
노리는 곳은 문성민의 바로 뒤.
마력이 듬뿍 담긴 나무덩쿨이 바닥에서부터 튀어나와, 문성민의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문성민을 덩굴로 감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마나 사슬에 묶여있던 문성민은 눈 녹듯 사라졌고, 마나 사슬만 허공에 떨어졌다.
"무슨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간을 뒤튼 거죠? 어쩐지 느낌이 제대로 안왔어."
또 하나 배웠네.
어쩐지 공격이 비정상적으로 빠르더라.
남다은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문성민도 공간을 건드리는 능력일 거다.
문성민은 자신의 몸을 묶은 덩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만약 네가 마인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걸어서 제거했을 거다."
"그 말은 도망치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장인어른."
"당연하지. 인간과 싸우면서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두둑 두두둑
문성민은 눈을 찌푸리며 내 덩굴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왔는 지 신기할 정도였다.
깜짝 놀라 마력을 더 집어넣었지만, 흐름을 내 쪽으로 돌렸을 때는 이미 문성민의 팔 하나가 튀어나온 상태였다.
"다음에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지이잉
문성민의 손가락에서 마력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해석되지 않는 걸 보면 마법이 아닌 그의 고유권능.
"저게 무슨…!"
나는 천천히 옅어지는 문성민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담배 연기가 공중에서 사라지듯, 몸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마력 또한 약해지는 걸 보면 정말 존재가 사라지는 권능인 모양이다.
재빠르게 덩굴을 풀고, 옅어지는 문성민의 몸에 마력을 내뿜었다.
찰랑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잠깐 눈에 잡힌 무언가를 마력으로 잡아채긴 했지만, 문성민의 몸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계속 안 잡히는 이유가 있었네.'
마법으로는 추적할 수 없는 이동능력.
케이론이 쓰던 텔레포트와는 결이 다르다.
아마 가까운 랜덤좌표로 이동하는 능력같았다.
그렇게 멀리 가진 못했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완벽한 도주수단이었다.
수린 누나에게 말해줄 게 늘었네.
"이건 뭐지?"
나는 손에 잡힌 타원형의 악세서리를 들여다봤다.
이리저리 돌리면서 자세히 관찰하자, 옆에 이음새가 보였다.
그걸 열어보니 젊은 남녀와 어린아이가 찍힌 사진이 보였다.
"… 수린 누나잖아."
수린 누나의 가족사진.
이걸 아직도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건, 가족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라는 뜻인가?
근데도 마인에 대한 복수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대체 뭘까.
"쩝."
착
나는 펜던트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시끄럽게 싸웠는데 아무도 안 온 걸 보면….
"으, 으아아악! 어, 어! 이봐. 배달원! 너 잘 만났다. 당장 저쪽으로 몸을 던져! 내가 도망갈 시간을…!"
촤악
내게 달려오는 마인의 머리를 떨어뜨렸다.
이럴 줄 알았어.
다른 여자들이 이미 잔당을 처리하는 중인 거다.
"하아… 응? 호연아?!"
"다은아. 괜찮아?"
"응. 근데 옷이 왜 그래? 많이 다쳤어?"
"아니야. 싸움을 좀 열심히 했거든. 잔당 처리는 어떻게 되고 있어?"
"스칼렛 씨가 입구를 막고 있어. 이쪽으로 와."
"… 나 먼저 도와주지."
나는 옷을 탁탁 털면서 남다은의 뒤를 쫓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