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0화 〉 380화. 레베카는 유명해
* * *
"하우, 아응…."
"고생했어요."
토닥토닥.
난 내 위에 앉은 백아영을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오늘은 섹스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네.
귀두가 따가울 정도다.
연속으로 4명을 상대했더니 체력적으로도 피곤했다.
"후으으…. 호연아. 괜찮아?"
"당연하죠. 아영 씨."
나와 백아영은 절정의 여운에 잠긴 채 대화를 이어갔다.
이때 나누는 대화가 진짜 좋거든.
몸은 나른하고 기분은 좋아서 괜히 옆에 있는 사람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시험은 잘 봤어?"
"저는 언제나 잘하잖아요. 아영 씨는요? 힘든 거 없어요?"
"응. 아, 나도 요즘 권능이 점점 진화하는 느낌이 들어."
"정말요?"
백아영의 치유의 권능.
다른 힐러들보다 훨씬 강한 치유의 힘은 백아영에게 성녀라는 이름이 붙게 한 일등 공신이다.
'그게 설정상 강해졌었나? 그런 내용은 없었는데.'
언급이 없어도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백아영이 주인공이 아닌만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을거다.
"이게 다 여보 덕분이야."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영 씨가 열심히 한 덕분이지."
"그게… 으음…."
신나게 말을 이어가던 백아영은 눈을 끔벅거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내가 건드리면 안되는 걸 건드린건가?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호감도 : 100 ] (+ 2.7)
[ 성욕 : 50 ]
[ 식욕 : 30 ]
[ 피로도 : 70 ]
현재 상태 : 처녀막을 재생할 때부터 강해졌는데, 그때는 최면이었으니 내가 알면 안 되는 거겠지…?
'….'
별로 좋은 주제는 아닌 것 같네.
처녀막 재생이 그렇게 힘들었는 지 궁금하긴한데….
역시 조용히 지나가자.
난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뭐… 아무튼, 그럴 수 있죠."
"으응."
"근데 아이가 생기면 응급실에서 빠지잖아요. 갑자기 그래도 괜찮아요?"
"그 정도는 아니야. 나는 어디까지나 지원이니까…."
백아영은 내게 안기며 미소를 지었다.
"여보는 원하는 거 없어요?"
"원하는 거?"
"뭐든지 괜찮은데.밤일을 여보가 하고 싶은 대로 조금 더 과격하게 해도 괜찮고…."
"…응. 하지만 아이한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봐 걱정이긴 하네요. 나중에 천천히 해봐요."
"여보. 으응,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 백아영의 등을 쓰다듬었다.
반말과 존댓말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적응이 됐다.
지금처럼 성욕을 드러낼 때마다 살짝 긴장되긴 하지만, 저 모습도 귀여웠다.
'임신을 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사실 안전한 하렘을 위해서는 임신은 안 하는게 맞다.
레베카 같은 특수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백아영은 임신하는 순간 나와 관계를 공표해야한다.
다른 히로인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
한 명만 특별대우 해주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 모르겠다.'
뭔가 웃기네.
살다살다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는 날이 오는구나.
"호연아, 무슨 생각해?"
"그냥 아영 씨가 좋아서요."
나는 내 품에서 날 올려다보는 백아영을 꽉 끌어안았다.
*
'다들 자고 있겠네.'
나는 완전히 어두워진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제 곧 다음 날이 되는 시간.
이렇게 늦게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네.
"쩝. 어쩔 수 없지."
일주일 만의 귀국이니까 다들 이해해줄거다.
정 안되면 주말에 미안하다고 하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예상과 다르게 다들 깨어 있었다.
레베카와 스칼렛, 릴리아나까지.
"다들 안 자고 뭐해?"
"드디어 왔네요."
"애기 아빠, 너무 늦어."
"뭔데요? 다은이는 어딨고?"
"빨리 와봐. 이상한 놈이 있어."
셋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거실에 서있었다.
난 릴리아나의 손을 잡고 거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외투도 못 벘었는데 뭐가 이리 급한 거야.
"… 마인 아니야?"
"네. 집에 들어오려고 하던 걸 처리했습니다."
나는 거실에 엎드려있는 남자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약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더러운 마력의 향기.
마인이 분명했다.
툭 툭
난 조심스럽게 마인을 건드렸다.
엎드려있는 마인은 이미 목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대체 이게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지?
"이상하네요. 주변에 마인이 돌아다니진 않을 텐데… 치안이 좋은 구역이잖아요."
"나 때문이야."
"레베카 씨?"
내 의문에 대답한 건 레베카였다.
레베카는 눈을 찌푸리며 마인의 옆구리을 걷어찼다.
마인의 몸이 돌아가면서 가슴 한가운데에 있는 해골 문양이 나타났고, 나는 그 익숙한 모양을 금방 떠올렸다.
"해골 가면… 이거 판데믹 쪽 끄나풀이잖아요."
"맞아. 저번에 애기 아빠랑도 싸웠잖아. 이놈은 그중에서도 최하급 같지만, 엄청 귀찮은 놈들이야."
"레베카 씨가 들킨 거에요?"
"그렇겠지. 애기 아빠한테 관심을 가졌다고해도 배신자인 날 먼저 조사할 테니까… 아마 내가 문제일 거야."
"으음…."
해골 가면.
기억이 나긴 한다.
분명 수린 누나가 조사해준 기록이 있다.
판데믹 산하의 조직 중 하나고,강한 마인들이 많이 있다고 했었지.
"여기까지 왔으면 이미 눈치챈 거 같은데… 어쩌지? 내가 잠깐 나가 있을까?"
"눈치챘다고 해도 굳이 레베카 씨가 피할 이유가 있어요?"
저 마인이 판데믹 산하 조직인 건 알겠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인가?
레베카, 스칼렛, 남다은, 그리고 나까지.
S급 마인 몇 마리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전력이다.
"저랑 레베카 씨, 스칼렛하고 다은이까지 있잖아요."
"애기 아빠 말이 맞긴해. 하지만 이 집을 저쪽에서 눈치챈 게 문제야."
"죄송합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아니야. 스칼렛 양이 돌려보낸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진 않았을거야. 빨리 죽이는 게 나았어."
레베카의 말대로, 이 집을 들킨 건 기분이 나쁘긴 하네.
이게 얼마짜리 집인데.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저도 집에 올 때는 룬의 결계를 항상 사용하거든요."
"그러게. 한국에 온 이후로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데."
"맞아. 치사하게 내 방송에도 안 나왔잖아."
"릴리아나. 그건 치사한 게 아니야. 보다시피 날 쫒는 사람이 있거든."
"근데 마인이 뒤쫒고 하는 거 보면 레베카가 유명한 게 진짜인가 보네. 난 사실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
"…."
레베카는 릴리아나의 말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난 그걸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 사람도 진짜광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냐."
난 릴리아나의 뒤통수에 꿀밤을 때렸다.
지옥에서 예의를 어떻게 배운 건지, 막말을 뱉는다.
"아악! 아파!"
"그니까 누가 그런 말 하래."
"아니야. 애기 아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레베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가 말을 이었다.
"일단 마인들이 이 집을 알아낸 순간 모두가 조사대상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은 괜찮다고 쳐도 다희가 문제야."
"아… 확실히 다희는 문제가 있겠네요."
남다희는 다른 사람처럼 강하지 않다.
다희가 이 집에서 들락날락하는 게 들키면 적이 다희를 노릴 수도 있다.
내가 24시간 케어해줄 수는 없으니까.
"응. 차라리 내가 잠시 집을 나가 있을게. 다른 곳에서 흔적을 남기면 이 집은 가벼운 조사만 하고 넘어갈 거야."
"… 으으음."
난 잠시 고민을 이어갔다.
언뜻 들으면 합리적인 것 같아도,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레베카가 혼자 희생하는 거보다 같이 일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도움을 엄청나게 받았으니 나도 좀 도와주고 싶기도 했고.
"레베카 씨. 그냥 같이 있는 게 어때요? 어차피 곧 방학이에요. 일주일 정도만 제가 다희를 챙기면 되잖아요. 스칼렛이나 다은이도 있으니까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야.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 보는 건 싫거든. 애기 아빠면 몰라도 애기 아빠 여자친구들까지 신경쓰게 하긴 싫어."
끼익
레베카는 고개를 저었다.
의외로 중요할 때는 남을 신경쓰는 타입이네.
그때, 문이 열리며 남다은이 나왔다.
"호연이도 왔구나."
"아, 다은아."
"미안. 다희를 재우고 오느라 좀 늦었어."
"지금 마인에 대해 얘기 중이야."
방금 나온 남다은에게 짧게 설명했다.
레베카가 마인에게 쫒기고 있는 것부터 마인이 우리 집을 확인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내 말을 들은 남다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레베카 씨.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응? 그치만 이건 내 일이야. 애기 아빠면 몰라도 다른 사람한테는…."
"아니요. 스칼렛 씨도 동의할 거에요."
"맞습니다. 레베카 님. 저희한테 그런 식으로 선을 그을 줄은 몰랐네요."
남다은과 스칼렛은 살짝 서운한 티를 보였다.
레베카의 언행이 선을 긋는다고 느낀 모양이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단순히 내 일이니까 그렇지…. 판데믹이 엮여서 좋은 곳은 아니잖아."
"됐어요. 다들 동의했잖아요."
나는 마인의 시체를 들어 올렸다.
이러다가 밤새우겠네.
도와준다는 데 왜 안받는거야.
"애초에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스칼렛하고 다은이한테도 도움을 받는 거잖아요. 릴리아나도 그렇고."
"맞아. 레베카는 재밌으니까 도와줄 수 있어!"
"으음… 하지만 미안해서."
"괜찮습니다. 어차피 백수라 할 일도 없거든요. 그동안 남다희 양이나 지키겠습니다."
"맞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각자의 방식으로 레베카를 달래주는 여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집 분위기가 좋긴해.
나는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그럼 계획이라도 짜볼까요. 가만히 있다가 습격당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움직여요."
*
서울,판데믹의 임시 은신처.
뒷골목의 마인들은 연락용 스마트워치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연락이 끊겼습니다."
"죽었나?"
"아마 그럴겁니다. 생체추적 신호기가 붙어있으니까요."
"흐으음. 또 이상한 짓 하다가 경비원에 걸린 건 아니겠지? 저번에도 예쁜 여자를 보고 달려들었잖아."
"죄송합니다…. 최하위 마인들은 가끔씩 그렇게 행동하더군요."
"쯧. 그럼 이호연이 눈치챘을 가능성은?"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급 주택가를 조사하다가 순식간에 죽어버린 걸 보면 아마 이호연이 아니라 그놈일 가능성이 큽니다."
"알겠다. 어차피 소모품들이니 괜찮아."
접대용 소파에 앉은 남자는 담배를 꼬나물은 채 의자에 앉았다.
남자의 정체는 판데믹의 간부.
그는 이호연을 조사하는 목적으로 한국까지 왔는데, 며칠 전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인을 사냥하는 미친 놈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마인 진영에서 세력 경쟁이라도 하나 싶었는데, 피아구분없이 모든 마인을 죽여버리는 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처리하려 해도 워낙 강하고 신출귀몰한 놈이라 혼자만의 힘으로 처리하기는 힘들었다.
거기에 이호연의 조사까지 겹치니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은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굽신거리는 남자에게 말했다.
"역시 지원을 요청해야겠어. 이호연은 몰라도 그 미친 놈은 감당이 안 돼."
"좋은 선택이십니다."
"연락이 끊긴 놈 마지막 위치는?"
"아카데미 주변 고급 주택가입니다. 그놈의 영역과 거리가 있긴 하지만… 활동 범위를 늘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 조사는 우리가 다시 할 테니까 너희들은 하던 대로 최대한 넓게 뿌려."
"알겠습니다."
꾸벅
고급 주택가. 미친 놈의 영역일 가능성 있음.
남자는 가볍게 지도에 메모한 채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