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9 349화. 의좋은 자매 (4)
엘리스는 환자복을 벗기 힘든 듯 이리저리 돌렸고,나는 멍하니 엘리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스칼렛하고 릴리아나가 저녁에 같이 나간다고 했으니 나도 저녁먹을 상대를 구해야한다.
레베카도 바쁜지 연락이 없고.
역시엘리스랑 먹을까.
"엘리스,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라도 할래?"
"식사? 저번에 갔던 곳으로?"
"그것도 좋고. 새로운 곳도 좋고?"
"좋네. 마사지하고나서 예약할게."
좋아좋아.
밥은 예쁜 여자랑 먹어줘야 맛있지.
내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리자, 환자복의 단추를 열던 엘리스가 갑자기 손을 뚝 멈췄다.
"음, 잠시 나가 있어."
"… 나가라고?"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지?
옷을 벗는 순간을 보는 것도 큰 내게는 기쁨인데.
분명 저번에는 안 그랬잖아.
우리의 관계가 벌써 차가워진걸까.
아니면 저녁을 먹자고 한 게 문제였나?
슬픈 눈으로 엘리스를 바라보자, 한숨을 쉰 엘리스가 말했다.
"… 안에 아무것도 없이 환자복만 입고 있어서 그래. 빨리 나가."
"으음. 알겠어."
이미 저번에 다 보여주지않았나?
서로의 알몸까지 다 봤고,어차피 속옷이 있어도 벗을거잖아.
뭐라도 말하고싶지만, 이것도 여자만의 감성이겠지.
때로는 공감도 필요한 법이다.
난 아쉬움을 숨기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어차피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여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드네.
병실의 앞에서 기다리던 나는 마력을 일으켰다.
"혹시 모르니 결계는 쳐놔야지."
위치가 병실이다 보니 위험요소가 많다.
물론 VIP인 엘리스의 병실에 올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만큼 들켰을 때 큰일 나는 사람밖에 없으니까.
특히 아이작같은 사람.
들키면 분명 죽을거야.
나는 룬의 결계를 펼쳐 병실을 감쌌고,동시에 이상한 마력을 감지했다.
"… 뭐야?"
정확히는 마력의 흔적.
그것도 내가 아는 마력이다.
빠르게 룬의 결계를 넓혀 이 건물 전체를 덮자,멀어지고 있는 마력 하나가 느껴졌다.
바로 아이린의 마력이었다.
"이 사람은 무슨 스토커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다.
엘리스랑 만날 때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거지?
아니, 더 이상한 건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다.
아무래도 여자 앞에 있을 때 약해진다는 스칼렛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영 집중을 못 하겠단 말이지.
나는 룬의 결계를 단단하게 펼쳤다.
이번엔 확실하게 못 들어오게 해놔야한다.
그런데 그 꼴을 당하고도 또 올까?
'… 올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좋아!' 라고하면서 올 것 같다.
그래도 마사지 중에 난입하진 않겠지.
그녀도 엘리스와 관계가 무너지기는 싫을테니까.
"흐음."
괜히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 왜 이렇게 불안한 지 모르겠네.
미친 년을 상대할 때는 항상 방심하면 안된다.
난 룬의 결계를 조금 더 강화했다.
"이제 들어와도 돼."
"바로 들어갈게."
때마침 들리는 엘리스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
"으으. 왜 그랬을까."
점심 식사를 끝낸 아이린은 아이리스 길드의 의료팀으로 향하며 자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호연과 메시지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병실에서 나온 건 너무한 것 같았으니까.
물론 겨우 메시지때문에 미소를 보낸 엘리스에게 잠깐 서운했지만, 언니로서 그 정도 여유는 가져야 했다.반성해야한다.
오전 내내 그 일이 걸렸던 아이린은 일을 마치자마자 허겁지겁 식사를 끝내고 엘리스의 병실로 돌아왔다.
이제 어른이 된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하루의 피로가 싹 날아가는 것 같았으니 바쁜 일정에 대한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계속 사랑해준 덕분이겠지.'
요즘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것 같아 더욱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쪽을 봐주지 않아서 괴롭히거나 물건을 뺏고는 했는데.
그 우는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역시 미소짓는 게 더 아름다웠다.
특히 차가운 듯 살짝 웃는 미소는….
"흐으응…."
생각만해도 흥분된다.
아이린은 부르르 몸을 떨고는 다시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
자신과 엘리스 둘만의 시간을 위해 의료진들은 필요할 때가 아니면 오지말라고 말해놨다.
병실에 도착한 아이린은 콧노래를 부르며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으응?"
- 이건 뭐야? 예쁘게 깎았네. 네가 한 거야?
- 아니. 언니가.
- 언니? 아. 아이린 씨. 신기하네. 이런 재주도 있고.
- 그러게. 대단한 사람이야.
하지만, 병실의 문틈으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아이린을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들리면 안 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호연이 왜 여기…."
일정에 관해서는 메시지로 말했잖아.
설마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뜻이었나?
아이린은 기척을 숨기고 문 뒤에 붙었다.
- 확실히, 그럴 것 같아. 조금만 더 다듬으면 완치라고 봐도 되겠는데? 이렇게 빠르게 완치가 될 줄은 몰랐네.
- … 뭐라고?
안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아이린은, 완치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슬쩍 문 사이를 훔쳐보자 손에 선명한 마력구를 띄우는 엘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완치…?'
설마 엘리스의 선천적 마력 장애를 말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켄타우로스 생포 작전 때 엘리스의 컨디션이 비정상적으로 좋았다.
그게 정말 마사지 때문이라니….
"… 이상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리스가 강해지는 것도 싫었고, 그 계기가 저 남자인 것도 싫었다.
강해질수록 점점 실전에 나가려 할 테고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많을 테니까.
'그걸 왜 네가 먹는 거야… 엘리스를 위한 사과인데….'
아이린은 사과를 집어먹는 이호연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둘은 익숙한 듯 마사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오히려 이호연이 아니라 엘리스 쪽에서 원하는 듯한 말투였다.
- 응응. 그럼 지금 바로 할 거야? 퇴원은 언제인데?
- 나도 몰라. 확실한 건 오늘은 여기 있을 거니까 괜찮아. 언니도 일하러 갔으니 적어도 몇 시간은 안 올 거고.
"엘리스…."
역시 그냥 가면 안 됐는데.
상처라도 받은 건지 엘리스의 목소리가 차가운 것 같았다.
- 오늘은 이상한 짓 안 할거지?"
- … 응.
'그런 일을 당해놓고 왜….'
엘리스는 그날 밤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마사지를 받을 생각을 하다니, 선천적 마력 장애를 고치려는 욕망 때문일까.
- 역시 하는 편이 좋아. 확실하게 고쳐줄 수 있어. 나만 믿어봐. 엘리스.
- 하아, 그래. 부탁할게.
왜.
어째서?
엘리스를 보는 아이린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왜 옷을 벗으려고 하는 거지?
저 남자한테 당하려고?
또?
"…."
아이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다 저 남자 때문이야.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모든 게 꼬였다.
하필 왜 지금 프랑스에 같이 와서 일을 망치는 거야.
'어떻게, 어떻게 하지?'
저 미친 남자한테서 엘리스를 구해야 한다.
자신을 협박했다고 말할까?
아니, 그건 자신이 마사지를 지켜본 게 들킨다.
엘리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부분을 보여주긴 싫었다.
아이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러면 안 되잖아.
엘리스.
난 너만 있으면 됐는데.
계속 잘해줄 수 있는데 왜?
왜 저런 남자한테 속아서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안돼. 절대 안 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엘리스를….
- 잠시 나가 있어.
- … 나가라고?
"…!"
눈이 아플 정도로 이호연을 노려보던 아이린은 엘리스의 말에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 이호연이 나오자마자, 찾아가야 해.'
저번에 확실히 느꼈다.
화나지만 이호연은 자신보다 강했다.
무력으로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괜찮으니, 언니인 자신이 해결해야한다.
*
"… 뭐야?"
엘리스의 말을 듣고 문을 열자마자 본 건 어두운 병실이었다.
불이 꺼져있었고, 암막 커튼도 쳐져 있었다.
커튼이 얼마나 고급인지 창문에서 빛이 하나도 들어오질 않았다.
엘리스는 어두운 병실의 침대 위에서 부스럭거리며 말했다.
"조심히 걸어와. 그래도 대충은 보이잖아."
"불은 왜 다 꺼놓은 거야?"
"네가 마사지에 집중을 못 하길래, 몸이 잘 안 보이면 마사지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인데.
열심히 설득을 할까 했다가, 그냥 조심스럽게 마력을 일으켰다.
'개안'
눈에 마력을 집중해 안력을 높이는 스킬.
본래 마나가 깃든 존재를 인식하는 능력이 높아지는 스킬이지만, 당연히 이럴 때도 쓸 수 있다.
서서히 눈 앞이 밝아지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침대로 다가갔다.
"엘리스. 내 얼굴은 보여?"
"잘 안 보이긴 하는데, 여기쯤 아니야?"
찹찹-
엘리스는 내 얼굴 주변을 손으로 문지르며 주물럭거렸다.
부드러운 손이 꽤 기분 좋았다.
"그래그래. 그 정도면 됐어."
나는 선명하게 보이는 엘리스의 몸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불도 꺼놨으면서 이불 안에 왜 숨어있는 거야.
"넌 어디 있어. 이게 너지?"
이불의 틈 사이로 파고들어 간 내 손은 엘리스의 쇄골을 스치며 가슴을 건드렸다.
"잠시, 잠시만. 잠시만! 손 빼!"
"미안. 잘 안 보여서…."
"… 엎드릴 테니까 이대로 해 줘."
"알겠어."
나는 내가 있는 방향을 경계하는 엘리스의 귀여운 반응을 지켜보며 몸을 뒤집기를 기다렸다.
"이제 해도 돼. 등부터 해줘."
"오케이. 이불 내릴게."
난 엘리스의 몸을 더듬으며 이불을 끌어 내렸다.
새하얀 엘리스의 피부와 섹시한 몸의 라인이 그대로 보였다.
"흐으응…."
손톱 끝으로 척추를 쓸어내리자 몸을 부르르 떠는 것도 엄청나게 귀여웠다.
몸이 잘 안보이니까 마사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지.
엘리스가 모르는 게 있다면, 인간의 감각이 의외로 중요하다는 것.
시각이 거의 차단된 지금은 다른 감각에 신경이 집중된다.
얼마나 민감해졌는지 확인해볼까.
나는 엘리스의 목덜미부터 어깨, 등과 허리까지.
손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피부결과 솜털.
마치 애기피부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렇게 섹시한 애기피부는 없겠지만.
"아, 으음. 후우…."
몸의 라인을 따라 쓰다듬기만 했는데도 엘리스는 가쁜 숨을 내뱉었다.
이게 민감해진 게 아니면 뭐겠어.
"반응이 좋네."
"… 그런 말은 하지 마."
"칭찬이야."
"그건 칭찬이 아니고 성희롱이라고 하는거야."
"우리 사이에 성희롱이 어딨어."
"… 아무튼, 칭찬을 하려면 다르게 칭찬해."
"항상 예쁘다고 말했잖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예쁘다고."
"…."
엘리스에게 잘 통하는 외모 칭찬.
몇 번이나 말했으니 엘리스도 인정할 수 밖에 없지.
물론 내가 계속 예쁘다고 하니까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는 거 같긴하지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어느새 조용해진 엘리스의 반응이 재밌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 마사지에 집중해줘."
"네네. 고객님."
"으, 으흐읏…."
나는 엘리스의 몸을 주무르며 살짝 웃었다.
오늘은 어디까지 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