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8 348화. 의좋은 자매 (3)
"네 말이 맞다고 치고, 그 여자가 서큐버스라고 쳐. 내가 서큐버스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남자를 발정시키는 그런 생물 아니야?"
"… 글쎄, 뭐. 음. 꼭 그런 건 아니고."
엘리스의 눈을 피하며 괜히 사과를 하나 집어먹었다.
아무리 그래도 릴리아나를 팔아먹을 순 없지.
차라리 내가 쓰레기가 되는 게 낫다. 원래 쓰레기였으니 타격도 없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야. 일단 판데믹에 대한 얘기부터 해볼게."
"판데믹이랑 네가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어."
나는 릴리아나의 이야기를 뒤로 미루고, 최대한 엘리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시작했다.
암시장에서 운 좋게 얻게 된 지옥의 계약서로 릴리아나를 소환했고, 동시에 계약에 걸리며 릴리아나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된 것.
그리고 판데믹에서 소환하는 사도가 릴리아나와 똑같은 지옥에서 온 걸 알아냈기에 켄타우로스를 쫓은 일까지.
내 말을 들은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 사실 대부분은 이해가 안 돼."
"그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나름 열심히 설명했는데 역시 아예 새로운 개념이다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특히 지옥이나 사도 같은 부분은 이해를 못 하겠지.
현대인에게 지옥을 아냐고 물어보면 꺼지라고 욕을 먹을 테니까.
"서큐버스… 라는 존재도 모르겠고, 지옥의 계약이라는 것도 처음 들어봐. 게다가 서큐버스와 켄타우로스가 같은 곳에서 왔다고 해서 켄타우로스를 생포하려고 한다는 동기도 이해가 안돼."
"…."
엘리스는 내가 두루뭉실하게 넘어간 부분을 딱딱 집어냈다.
"그리고, 그 전에 하나."
"응."
"스칼렛이랑은 대체 무슨 관계야? 널 위해 몸을 던진 건 켄타우로스 생포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서라고 쳐도, 그 뒤의 반응은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어. 그 여자의 반응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맞아. 스칼렛이랑은 작전 전부터 아는 사이였어."
이미 스칼렛이 나 대신 공격을 맞은 순간 의심당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릴리아나의 반응을 본 엘리스라면 더더욱 의심하겠지.
"어떻게? 어디서 알게 된 건데? 프랑스에서? 설마 아이리스 길드를 안내해줬을 때 무슨 짓을 한거야?!"
"… 아니.한국에서 날 미행하던 스칼렛을 잡았거든. 잡아서 물어보니 우연히 아이리스 길드라서 서로 도움을 주기 시작했어."
엘리스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아마 찔리는 게 있겠지.
스칼렛을 처음 만났을 때가 엘리스의 명령으로 날 미행했을 때니까.
자신의 치부가 들켰나 불안해하는거다.
'여기선 착한 거짓말을 해주는 게 낫겠지.'
엘리스를 압박할 필요도 없고, 스칼렛의 입장도 고려해야한다.
그녀는 자타공인 아이리스 길드의 에이스니까.
"… 혹시 스칼렛을 이용해 아이리스 길드의 정보를 빼간거야?"
"아니야. 아이리스 길드에 대해서 뭔가 들은 적은 없거든. 스칼렛은 뛰어난 암살자니까,한국에서 뒷작업이 필요할 때만 도움을 받았어. 애초에 아이리스 길드의 정보는 필요가 없으니 묻지도 않았어."
"… 그래?"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98 ] ( + 0.1 )
─ [ 성욕 : 85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내가 정보를 요구했다는 걸 알면 화를 내지 않았을까?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진심인 것 같은데.
엘리스는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날 의심하진 않을 거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겠지.
사실 남자는 여자가 내 알몸을 봐도 그렇게 열받지는 않거든.
예쁜 여자라면 심지어 보여주고 싶어하는 남자도 있겠지.
여자는 그 감성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아닌가?'
다른 남자로 살아보질 않았으니,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나는 괜찮다.
그게 중요한거지.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다른 궁금한 건 없어?"
"… 네가 그랬잖아. 지옥의 정보도 그렇지만 판데믹에 대한 정보도 필요했다고."
"그랬지."
켄타우로스 생포에 집착했던 만큼, 릴리아나와 고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기에 판데믹을 좀 팔아먹었다.
"어째서야? 네가 판데믹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어… 음."
사실 몇 번이고 고민했었다.
'이 세계는 게임이고 난 너희를 공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렇지않으면 세상이 멸망한다.'
'여자를 늘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렇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방법이나적당히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설득하는 방법도 생각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된단 말이지.
자신의 삶이 게임이라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을 거다.
게임이라는 걸 숨긴다면 설득할 방법 자체가 사라진다.
내 퀘스트와 상태창을 남에게 보여줄 수 없으니까.
그리고 나도 이 세상을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데이터가 아니고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이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없애야 한다.
"판데믹은… 그냥 겸사겸사 한 거지. 나쁜 놈들이니까 처리하면 좋잖아."
결국 나는 멍청한 변명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이 없더라.
세상을 구해야한다는 거창한 소리를 해봤자 정신병자 취급만 받을테니까.
"잡으면 좋긴 하겠지. 하지만 이해가 안 돼. 왜 그 일을 네가 해야 하는데?"
"그러게 말이다."
나도 싫어.
평화롭게 살면서 여자들하고 딩가딩가 놀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결국 마왕과 마에스트로를 잡아야 하는 운명이니까.
엘리스는 내 대답에 더욱 의문이 생긴 듯 입을 열었다.
"… 진짜 이상해. 혹시 정의의 사도가 되려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걱정하지 마. 위험한 일은 안 할게."
"걱정하는 게 아니고, 어이가 없어서 그러는 거야.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정상인 것 같은데…. 후우."
엘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끄응하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핀 엘리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궁금한 게 많긴 해. 네 수많은 정보의 출처도 궁금하고, 그 지옥이란 곳도 궁금해. 서큐버스에 대한 것도 궁금한 게 많아.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을게."
"믿어주는 거구나."
"믿는다기보단 그냥… 하아, 나도 몰라."
엘리스는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 편 들어줄 거면서 왜 아닌 척이야. 응?
이 새침떼기 녀석.
"… 그 표정은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역시 눈치가 빠르다.
다행히 대충 해명은 한 것 같으니 주제를 돌려볼까.
"그러고 보니 켄타우로스 생포 작전 때 마법을 엄청나게 잘 사용하던데, 후유증 같은 거 없었어?"
"아… 맞아. 그거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어."
엘리스는 침대 등받이에 등을 붙인 채, 손에 마력을 일으켰다.
파악-
곧 그녀의 손바닥에 마력구가 뭉쳐지기 시작했고, 완성된마력구는 내가 보기에도 선명했다.
엘리스는 날 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제 이런 것도 가능해."
"…엘리스, 잠시 손목 좀 줄래?"
"응?"
나는 엘리스의 손목을 붙잡고 몸 안의 마력을 빠르게 체크했다.
놀랍게도 엘리스의 마력 회로는 거의 정상인 수준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 마사지한 바로 그 날 마력을 엄청나게 사용해서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정상인 수준 아니야?"
"맞아. 이제 완전히… 돌아온 것 같아. 이런 기분은 처음이거든."
"이렇게 튼튼한데 왜 입원하고 있어?"
"… 나도 몰라."
평소라면 내가 몸에 손을 댄 것도 뭐라고 할 텐데, 엄청나게 기쁜 모양이다.
저렇게 기뻐하니까 나도 기분이 좋네.
엘리스는 손안에서 빛나는 마력구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나도 기분이 좋은 엘리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그럴 것 같아. 조금만 더 다듬으면 완치라고 봐도 되겠는데? 이렇게 빠르게 완치가 될 줄은 몰랐네."
"… 뭐라고?"
엘리스는 마력을 꺼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이렇게 빠르게 완치가 될 줄은 몰랐다고."
"아니, 그 전에."
"조금만 더 다듬으면 완치할 것 같다고 한 거? 거의 일반인 수준까지 왔으니까."
"… 이게 완치가 아니야?"
"당연하지. 몰랐어?"
"전혀 몰랐어. 나는 그날 밤의 그… 마사지 때문에 완전히 고쳐진 줄 알았어."
"으음."
켄타우로스 생포 작전의 전날 밤에 했던 섹스 때문에 완치한 줄 알았구나.
뭐, 그 날 마사지를 오래 했으니 효과가 크긴 했다.
내가 점점 강해지면서 마사지 실력이 늘기도 했고.
하지만 아직 완치는 아니다.
조금 더 마력 회로를 늘릴 수 있을 테니까.
… 잠시만.
이거 또 각이 보이는데.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마력을 느끼고 있는 엘리스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마력을 쓸 때 답답한 느낌이 있지 않아?"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해. 이 느낌도 없앨 수 있는 거야?"
참고로 답답한 느낌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이제야 마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엘리스는, 내가 그렇다고 하면 정말 그런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인터넷에 있는 성격 검사와 비슷한 느낌이다.
누가 봐도 공감되는 내용을 써놓으면 정말 맞는 것 같이 느껴지니까.
"그 느낌을 없애는 건 네 노력에 달렸지. 나는 마나 회로를 늘려서 보조해주는 것만 가능하고."
"… 오늘 시간 있어?"
엘리스는 조심스럽게 날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서부터, 마사지의 느낌이 왔다.
'통했구나!'
마음 같아선 바로 침대에 뛰어들고 싶지만, 그 전에 정해야 할 게 있다.
"나는 괜찮은데… 우리 일정을 먼저 정해야지. 나만 얘기하느라 일정을 못 정했잖아. 아카데미에 안가고 프랑스에 계속 있을 거야?"
"아, 잠시만."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마트워치를 켰다.
그리고 눈 앞에 뜬 홀로그램 모니터를 보며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톡- 톡톡-
"뭐해?"
"잠시만. 거의 됐어."
아이작한테 연락하는 건가?
난 옆에 있는 귀여운 사과를 먹으며 엘리스를 기다렸다.
근데 이거 무슨 조각한 것처럼 예쁘네.
태어나서 본 토끼 사과 중에 제일 예쁘다.
사과를 보며 감탄하고 있다보니 엘리스가 말을 걸었다.
"목요일에 돌아가기로 했어."
"목요일?"
"응. 너도 괜찮다며."
"그렇긴 한데… 그게 이렇게 빠르게 끝나?"
"아빠한테 문자 했거든."
"오…."
이렇게 빨리 끝난 걸 보면 애교라도 부린 걸까.
미간이 살짝 좁아진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엘리스는 스마트워치를 끄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 몇 번이면 될 것 같아?"
"마사지 말하는 거지?"
"응."
"어… 세 번?"
나는 순간적으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한 번은 너무 적잖아.
패스.
두 번?
두 번은 좀 아쉬워.
그렇다고 너무 많은 수를 말하면 또 욕을 먹을 것 같아서, 적당히 세 번 정도로 말했다.
"거짓말 같은데."
"…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
"방금 네 눈동자가 떨렸어."
"…."
히로인들이 내 거짓말을 눈치채는 게 저거였나?
앞으로 눈을 조심해야겠어.
나는 눈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한 번에 열 몇 시간 씩 하면 한 번으로도 되겠지만, 보통 그렇게 하지는 않으니까, 그걸 고민한 거야."
"… 그래? 알겠어."
"응응. 그럼 지금 바로 할 거야? 퇴원은 언제인데?"
"나도 몰라. 확실한 건 오늘은 여기 있을 거니까 괜찮아. 언니도 일하러 갔으니 적어도 몇 시간은 안 올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었다.
어제 그렇게 했는데도 또 하고 싶다니, 내 몸이지만 참 신기하단 말이야.
"오늘은 이상한 짓 안 할 거지?"
"… 응."
하지만 이어지는 엘리스의 말에 힘이 쭉 빠졌다.
마사지.
물론 마사지도 좋다.
하지만, 이미 경험해 본 걸 어떡해.
경험하지 못했을 때는 마사지로도 만족했지만 엘리스의 저 탐스러운 육체를 경험하고 나니 이제 만지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만지다 보면 허락해주지 않을까.'
아니면 저번처럼 자연스럽게 해야 하나?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진짜 엄청 욕먹을 것 같은데….
진지하게 고민을 이어갈 때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면… 역시 이상한 마사지가 효과가 좋나?"
"뭐… 하면 좋긴 한데, 강요하는 건 아니고…. 네 선택이니까."
하고싶다.
나는 눈을 빛내며 엘리스에게 어필했다.
이 정도면 알아주지않을까 하고.
"… 이왕이면 제대로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남자가 돌려말하는 거 아니야."
"역시 하는 편이 좋아. 확실하게 고쳐줄 수 있어. 나만 믿어봐. 엘리스."
"하아, 그래. 부탁할게."
그럴 줄 알았다며 헛웃음을 지은 엘리스는, 환자복을 벗기 시작했다.